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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우리 민족 최대 명절인 추석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추석은 모처럼 주말이 끼어 있지 않은 연휴라서 여느 해 추석보다도 더 긴 휴가가 될 것이라고 한다. 이미 조상님 묘소를 찾아 벌초하고 온 사람들도 적잖이 있지만, 대부분은 이번 추석 연휴를 이용해 고향에 다녀오는 경우가 많다. 고향이 도시이건 아니면 시골이건 먼 길을 마다치 않고 민족적 대이동을 하는 우리네 명절인 추석. 오랜만에 만난 가족과 친지들이 모여 풍성해야 할 한가위이나, 아무래도 이번 추석에는 조상님을 뵐 면목조차 없을 것 같다. 

 

얼마 전 모처럼 휴일이라 아내와 함께 반찬거리를 사러 동네 재래시장을 갔었다. 거기서 볼 수 있었던 것은 상상 이상으로 심하게 오른 야채와 과일 값이었다. 지난 8월 말 한 포기에 3000~4000원을 하던 배추는 이미 8000원을 호가하고 있었고, 여름 내내 비싸다던 상추는 400그램당 거의 만원 가까이 올랐다. 한 박스에 십만원대의 상추를 들여놓기가 무서워 대부분의 작은 마트나 가게에서는 아예 상추를 들여놓지 않는다고 한다. 만원짜리 한 장 가지고는 저녁 장보기조차도 어려울 정도니, 이번 추석 차례상은 무엇으로 준비해야 할지 벌써 난감해진다.  

 

이미 올해 연초부터 우리네 장바구니 물가는 심하게 오른 상태였다. 그러나 지난해 겨울부터 더욱 심해진 이상기후로 인해 농작물의 피해가 컸다. 올봄 내내 일조량의 부족과 장기간의 황사현상으로 냉해로 인한 피해가 계속됐고, 여름 내내 길고 지루한 장마가 이어져 으레 매년 높았던 해왔던 장마철 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더구나 뒤늦게 연이어 우리나라를 강타한 태풍들로 그나마 남아있던 농작물마저도 거센 강풍과 폭우에 휩쓸려 떠내려갔다.  

 

예년 같은 경우 오히려 평년보다 기온이 높다는 이유로 이러한 과일과 채소 등의 수확시기가 열흘 이상 빨랐었지만, 올해는 어찌 된 일인지 '기후온난화'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의 저온 현상으로 농산물의 수확에 문제가 생겼다. 이상 저온으로 인해 과실의 착과가 원만하게 이뤄지지 않았고, 일조량의 부족은 마저 과실의 생육을 방해해 자연적으로 수확시기가 늦어지게 됨은 물론이다. 때문에 차례상에 올릴 만한 품질 좋은 과일은 보기 어려워졌다. 특히 밤이나 대추, 사과, 배 같은 제수용 과일의 수확은 추석 이후에나 가능할 것이라는 국립산림과학원의 발표는 이상기후가 우리네 풍속도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우려하게 한다.

 

과일과 야채뿐만 아니라, 차례상에 올려야 할 생선도 문제가 된다. 한반도 근해의 수온이 최근 40년간 1℃ 이상 올랐다. 주요 어장인 서해는 1.14℃, 남해는 1.09℃가 올라 이는 수산자원 어획량과 어종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차례상에서 빠질 수 없는 명태와 대구의 서식환경이 한류성 어류가 살기 어려울 만큼 변해, 어획량이 많이 감소하고 있다. 대신 난류성 어종인 멸치, 고등어, 오징어, 해파리 등이 크게 늘고 있다. 최근에는 동해에서 아열대성 어종이 출현해 이미 우리 바다의 어장 지도를 다시 그려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물론 이들 제수용 어종의 가격도 만만치 않게 오른 상태다.

 

사태가 이러하니 이미 올해 차례상이 풍성하길 바라긴 어렵게 됐다. '홍동백서(紅東白西)'니 '조율이시(棗栗梨枾)'는 이제 옛말이 되게 생겼다. 전문가들은 21세기 온난화 진행속도가 20세기보다 3~6배 이상 빠르게 진행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유엔 산하 정부 간 기후변화협의체(IPCC)에 의하면 지금과 같은 속도로 온난화가 진행된다면 한반도는 2100년 이후 기온이 섭씨 4℃ 이상 오를 것이라고 한다. 현재 남해안과 제주도 일대에 국한된 아열대 기후가 한반도 전역으로 확산된다는 분석이다.

 

이는 곧 우리의 농산물과 수산자원의 변화를 일으켜, 채 100년이 안 되는 시간 내에 사과나 배가 열려야 하는 자리에 감귤이나 멜론 등의 아열대성 작물이 대신할 것을 의미한다. 물론 기후변화로 인해 산간지방에서 나는 나물 또한 출하량도 감소되거나 사라짐은 물론이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되지 못하는 것들은 당연히 수입에 의존해야 할 테니, 그해 우리 땅에서 지은 것들로 올려야 할 차례상이 수입 농수산물로 차려지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추석 차례상 비용이 작년보다 25% 이상이 올랐다고 한다. 지난 세월 아무리 어려운 살림에도 차례상만은 반드시 정성을 담아 올리는 것이 우리네의 전통이었다. 하지만, 이번 추석엔 알도 굵고 모양이 좋은 햇과일을 올려 조상님께 감사를 드려야 할 텐데, 올해는 비싼 값에도 제대로 된 과일을 올리지도 못하고, 그나마 앞으론 구할 수 없는 제수용 음식마저 생길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조상님 뵐 면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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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수원일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추석, #추석물가, #이상기후, #온나화, #농작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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