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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의 한 할머니가 단둘이 있을 때 처에게 신신당부했단다. 별 대답을 하지 않고 웃으면서 이야기를 듣는데 몇 번이나 다짐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었다. 결국 그 다짐에 대한 답을 하는 일은 너무나 막중한 책임감을 가지게 되므로 거부하는 편이 나았다.

 

"한이 엄마가 꼭 학교 같이 댕겨야 한다고 해. 응? 초등학교를 안가면 말이 되느냐고. 한이 보낼 때 울 아가도 꼭 같이 가야 한다고 이야기를 하란 말이야. 알았지?"

 

초등학교도 안 보내?

 

어찌해서 초등학교를 가는 것에 다짐씩이나 받아야 하는지 의아해하겠지만 그 집의 상황을 들여다보면 이해가 된다. 학교를 다녔으면 고1인 첫아이는 지금 인도여행중이다. 중2때 그만두고 홈스쿨링을 택했다. 얼마 전 달라이라마를 만나게 되었다고 기쁨 가득한 메일을 받은 아빠의 자랑을 들었다. 둘째아이는 올해 초등학교를 마치고 진학하지 않은 경우이다. 중1인 나이에 집에서 마을 근처의 선생들을 찾아 배운다. 바느질을 배운다거나 그림을 배운다거나 나무를 조각하거나 작은 책장을 만드는 일, 한가한 시간에 교과서가 아닌 책을 읽는 일로 '배움'을 대신한다.

 

상황이 이러하니 그 집 할머니는 불안한 거다. 유일한 남자아이인 막내마저 학교를 못 다니게 할까봐 걱정이다. 이제 6살인데 벌써 걱정이시다. 여자아이들이야 그렇다 해도 남자손자만큼은 꼭 학교에 보내고 싶은 마음. 이해가 된다.

 

그 집 학부모(?)의 입장을 들어보자. 그들은 지금의 공교육은 오히려 아이를 망치고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시골의 학교들은 입학 때부터 교사들에 의해 열등감을 주입당하며 도시의 아이들과 경쟁도 되지 않는 처지의 열악한 교육환경을 자탄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리고 기껏 본인이 출세를 위해서 스스로 교과서와 참고서를 파고드는 방법뿐인데 결국 그것이 대학입시를 위한 것이고 보면 이곳 시골에서 스스로 자립해서 살아가는 인간형으로 성장하는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라는 것이다.

 

학교는 '배움'을 위한 곳인가


아직 어린 예비학부모지만 우리집도 비슷하다. 서울 중상위권대학을 나온 나와 처는 이곳 시골에서는 최상위수준의 학력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전혀 쓸데가 없다는 것이다. 기껏 이력서를 쓸 때 학력으로 우위를 지니겠다는 심사가 아니면 도움이 되지 않는다. 거의 모든 생존의 지식을 새로 익히고 있는 중인데 삶의 경험이 지식으로 축적되기를 기다린다는 표현이 맞겠다. 상황이 이러하니 구지 높은 수준의 학력을 가지는 것을 자식에게 강요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네 살 아들이 장차 공부를 뛰어나게 잘해서 장학금을 받고 대학에 가지 않는 한 우리는 무리해서 아이를 대학에 보내지 못한다. 지금 천만 원 하는 등록금이 아이가 입학할 때 즈음에는 시골의 집 한 채 값이 될 것이다. 그 돈을 저축으로 벌 생각을 하니 너무 아득하고 갑갑하다. 결국 다시 도시로 나가서 돈 잘 버는 일자리로 취업을 해야 한다. 물론 된다는 보장도 없다. 적게 벌고 적게 소비하려는 생각으로 택한 길이니 당연히 '돈'이 드는 일은 배제하는 것이 맞는다고 정리한다.

 

불쌍하다. 우리 아들. 앞으로 부모의 교육비 지원이라고는 기대할 수 없으니 말이다. 세상에 나아가 뜻을 펼치기 위해선 꼭 필요한 지위, 타이틀이 명문대학 입학인데 말이다. 우린 지금과 같은 서열화된 간판에 불과한 대학에 무리해서(?) 보내기 싫다. 교육비는 치솟고 바뀌어가는 대입제도도 과외학습을 부추긴다. 오로지 대학입시만을 위해 존재하는 고등학교, 그리고 입시에서 분명하게 우위를 지니게 될 자립형사립고나 외고, 과학고 등에 보내기위한 중등, 초등 교육은 '아니다'라는 확신이다.

 

고등학교에서 사회를 담당하는 운동권(?)교사가 지은 <공교육과 sky의 미래>는 지금 교육현실의 문제를 지적하는 동시에 해결한 대안을 제시한다. 스카이가 중심이 된 10%를 위한 교육제도가 가진 문제점. 경제처럼 생각하는 교육계 당국의 잘못된 마인드, 승자와 패자를 가르고 이제 경제력에 의한 불공정경쟁을 부추기는 정책을 그만 두어야 한다고 한다. 우린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그래서 우리가 스스로 밖으로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학부모들의 가장 큰 짐, 사교육이 증가하는 현상은 '죄수의 딜레마'와 닮아있다. 다른 학생보다 조금이라도 앞서야 한다는 생각이 서로를 좀먹게 만드는 구조다. PISA(Programme for International Student Assessment)가 발표한 국제학업성취도비교연구에서 매스컴에 드러난 것은 국내 학업성취도가 세계에서 수위를 달리고 있다는 점이었다. 


2006년 조사결과는 만 15세 학생의 읽기능력, 수학은 수위를 달리고 과학은 5~9위로 조금 처지는 정도다. 학생들의 학습 투입 시간 대비 성적은 참담하다. 수학 33위, 과학 47위, 읽기 29위다. 이런 비효율을 부추기는 것이 지금 교육시스템인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사회가 요구하는 평등적·협력적 측면이 사라진다는 점이다. 각자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는 데에 혈안이지 손잡는 것도 나만의 이익을 위해서라는 관성이 올바를 사회시스템 유지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 아닌가.

 

왜 자율형사립고가 대안인가


자율형사립고 지원에 대한 의견이 흥미롭다.

 

강남 유흥업소에는 '텐프로'라 불리는 직업여성들이 있다. 미모와 몸매가 상위10%에 든다는 것을 빗대어 표현한 것으로 직업여성들을 미모와 몸매를 기준으로 청저하게 등급을 매기는 것이다. 한국에도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상위10%의 계층이 진학하는 고등학교가 출현했다. 


이것은 명문대 진입에 유리한 조건을 조기에 튼튼하게 다져놓기 위한 것이다. 물론 이전부터 과학고나 외고 학생들의 명문 대학 과점 현상이 심화되어왔다. 그러나 외고 존립에 이해관계가 있는 재단과 동문을 제외한다면 중·상층에게 '외고-명문대학'으로 이어지는 진학 코스는 완전히 만족스러운 것이 아니다. 외고 등 특목고 설명회에 중간계급 이상의 학부모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지만 실제로 그 자녀가 외고에 진학하는 경우는 이 중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또, 사교육이라는 비정상적 방법을 동원해 진학경쟁에 나서기 때문에 사교육비 축소라는 국가적·사회적 과제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중·상층 학부모들은 사회적으로는 사교육비 감소를 주장하면서도 개인적으로는 사교육의 최대 소비자가 되는 이율배반적 상황에 놓인다. 이런 고민을 해결해줄 묘수가 바로 부유층 사립고라 해도 과언이 아닌 자립형·자율형 사립고이다. 정부의 계획대로 전국에 100여 개 자율형 사립고가 설립되면 외고의 제한된 정원 탓에 마음을 졸이던 중·상층에게는 숨통이 트이는 일이 될 것이다. -본문중

 

이런 목적이라면 점점 계급화 되는 교육시장과 세습화되는 직업군들이 공고해지면서 평등과 자아를 실현할 자유의 가치는 소멸되고 만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평준화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다시 평준화로 돌아가고, 모든 학생이 시험성적과 무관하게 같이 한 교실에서 공부하고 밥 먹고 하는 장소로서의 학교가 절실하다. 등급별 수업과 학교의 등급차가 하위에 속하는 학생들에게 주는 박탈감은 크게 보면 사회적 손실이다. 자부심을 가지고 일을 할 나이에 상실감과 열패감에 싸여 자살을 택하는 청소년이 매년 늘어나는 추세 아니던가.

 

일단 대학을 바꾸는 것 부터


현실에 대한 대안의 근본은 바로 대학을 바꾸는 것이다. 모든 대학을 파리와 같이 이름부터 평준화하던지 경쟁과 시험 없이 공부하는 핀란드와 같은 교육의 실현이 입시경쟁을 사라지게 만들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한국형 실천대안으로 서울대를 포함한 국립대를 하나의 통합네트워크로 구성해 선발과 교육, 졸업을 통합적으로 운영하고 수능폐지 후 일정자격 갖춘 이에게 대학입학자격을 부여한다. 1,2,3지망으로 대학을 지원해 배정받되 국립대 통합네트워크 내 어떤 대학에서도 학점을 이수할 수 있게 사는 것이다. 서울대가 선두에 나서 학부가정을 개방하고 법대, 의대, 약대, 경영대, 사범대 등은 전문대학원으로 전환한다.

 

만약, 이 책에서 제시한 '대학평준화와 대학 공공성 강화'가 실현된다면 모르겠다. 내 아들이 대학생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뚝딱 되는 일은 아닐 것이다. 2004년에도 공립대평준화를 시도하려 했다가 얼마 전 총리를 그만두신 당시 서울대총장을 중심으로 시작한 '기득권'층과 보수신문들에게 뭇매만 잔뜩 맞고 유야무야 사라져 버린 적이 있다. 기껏 요즘 개혁이라고 하는 것이 초등학교에서 자율적이고 창의적 체험교육을 '실험'하는 정도다. (사실 그것도 감지덕지다. 가까이만 있다면 누구라도 그런 학교를 보내고 싶은 게 부모마음일거다)

 

한국 교육의 모든 것은 대학입시로 통한다. 그래서 사교육시장이 점점 커지고 고등학교 입시의 경쟁도 부활하고, 덩달아 국제 중학교 같은 귀족학교가 득세하는 것이겠지. 그러나 우리 같은 '서민'들은 엄두를 내지 못해 학비만 한 학기에 천만원씩 들어가는 곳이니 부자가 아니면 다니는 것도 부담스럽다. 공부 잘한다고 해도 소용없는 곳들이 이른바 '특수고'들이야. 민족사관고, 과학고, 외고, 국제고 들은 학비를 포함한 학부모가 부담해야 할 비용이 대학 등록금과 맞먹는다.

 

책이 제시하는 방법이 괜찮아 보인다. 하지만 지금 현실에서 너무 멀고 힘들겠다는 생각은 든다. 지금 나라를 움직이는 사람들이 대부분 SKY출신이다. 그들이 자신의 모든 이익을 버리고 대학도 안나온 사람들과 같은 위치에서 손을 잡자고 하면,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그렇게 하는 것에 동의하겠느냐 말이다.

덧붙이는 글 | 공교육과 sky의 미래/ 김학한 지음/ 한울아카데미/ 13,000원


공교육과 SKY의 미래 - 핀란드 교육체제를 통해 본 한국 교육의 청사진

김학한 지음, 한울(한울아카데미)(2010)


태그:#공교육붕괴, #대학평준화, #고교평준화, #평등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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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데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는데로 살기 위해 산골마을에 정착중입니다.이제 슬슬 삶의 즐거움을 느끼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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