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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 끈질긴 역사를 보아라

쌀이 제 온몸 던져 거듭나는 새 생명

신이 살포시 빚은 뭉게구름빛 젖을 보아라

한 모금 마시면 세상 갈증 달아나고

두 모금 세 모금 마시면 밥이 되는

이 신비스런 감로를 보아라 

한반도가 가만가만 널 부른다

지구촌이 널 외치며 발 동동 굴린다

이 세상 얼큰하게 쓰다듬는 너, 막걸리

너 없인 못 살아

너 없는 삶은 졸도야

나도 너처럼 이 모진 세상을 날마다 거르고 싶다

 

이 시는 나그네(내가)가 한반도 남녘 곳곳에 있는 막걸리를 마시러 다니다가 어느 날 문득 포천 이동막걸리에 기분 좋게 취해 버스 안에서 손전화 메모장에 쓴 '환족이 빚은 술방울, 막걸리'란 짤막한 글이다.

 

환인시대부터 거슬러 내려온 우리 민족술 막걸리에게 이 시를 바치면 행여 막걸리가 다짜고짜 나그네에게 뺨따귀를 한 대 철썩! 하고 때릴 런지도 모르겠다. 왜? '이깟 것도 시라고 써서 환족 영혼이 담긴 나한테 함부로 바치느냐'는 소리를 지금도 냉장고 속에 들어 있는 서울 장수막걸리가 마구 외치는 것만 같아서이다.

 

그동안 인천 경기 등지에서 코가 얼큰하도록 마신 막걸리는 포천 이동막걸리와 포천 일동막걸리, 고양 배다리쌀막걸리, 화성 부자생술, 안성 순곡생막걸리 등이다. 그중 인천 경기를 대표하는 술이라 할 수 있는 막걸리는 포천 이동막걸리와 일동막걸리, 고양 배다리막걸리이다.

 

사실, 이렇게 말하면 부자생술이나 안성 순곡생막걸리 등 인천 경기지역에서 다른 이름을 가진 막걸리를 만드는 사람들이 혀를 끌끌 차다가 마구 혼을 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만난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게 입을 모아 말하는 것을 어찌하겠는가. 포천 이동막걸리과 포천 일동막걸리는 다 같이 흰 플라스틱 병에 담겨 있는 것이 특징이다.

 

50년 전통을 자랑하는 포천 이동막걸리는 이동면을 발바닥으로 삼아 짙푸른 하늘로 우뚝 솟아 뭉게구름을 머리띠로 삼고 있는 백운산에서 흘러내리는 구슬처럼 맑은 물에 쌀을 주원료로 삼아 옹기에서 발효시켜 빚는다. 입에 넣으면 톡톡 치는 맛과 함께 은은하게 감기는 감칠맛이 아주 뛰어난 이 막걸리는 발효가 끝나면 청주를 떠내지 않고 그대로 걸러 빚으며, 팩이나 캔으로 만들어 수출도 하고 있다. 알콜도수는 6도이며, 보관기간은 18일이다.

 

포천 일동막걸리는 일동면을 둥지처럼 감싸 안고 있는 관음산에서 퐁퐁 솟아오르는 천연암반수와 찹쌀을 주원료로 삼아 5일 이상 자연 발효시켜 빚는다. 웬만큼 마셔도 숙취가 거의 없는 이 막걸리는 유기산이 듬뿍 들어있어 혀를 오그라들게 만드는 깊은 단맛과 파도처럼 쏴아 하고 밀려드는 상쾌한 맛이 좋아 여성들도 즐겨 찾는다. 알콜도수는 6도이며, 보관기간은 이동막걸리와 엇비슷하다.

 

 

저 벼가 만약 없었다면 이동막걸리 또한 없었지 아니한가

 

지난해 이맘 때 쯤이었을 것이다. 포천 이동막걸리를 마시기 위해 동서울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포천으로 갔던 그때가. 그때도 지금처럼 마악 초가을로 들어가는 길목이어서 그런지 들판에 꼬리를 내리고 있는 야트막한 산과 그 산을 촐싹이며 드러누운 들판이 온통 초록 진초록 연초록빛을 머금고 있었지.

 

버스가 양평 가까이 다가가자 갑자기 차가 막히기 시작한다. 차창 밖에서는 가을빛을 살짝 문 벼가 고속도로에 쭈욱 늘어서 있는 차를 바라보며 저도 주말이면 기를 쓰고 여행을 다니고 있는 사람들이 한심하다는 듯이 한숨을 포옥 내쉬고 있는 것만 같다. 마치 나처럼 제자리나 잘 지키고 있으라는 듯이.

 

그래. 저 벼가 사람 목숨을 살리는 밥이 되기도 하고, 사람 건강을 지키는 막걸리가 되기도 하니, 이 얼마나 고마운 식물인가. 저 벼가 만약 없었다면 사람들 입에 착착 달라붙는다는 포천 이동막걸리 또한 없었지 않았겠는가.    

 

그렇게 쉬거니 달리거니를 2시간 남짓 하고 나자 마침내 버스가 포천 이동면에 닿는다. 버스에서 내리자 버스매표소가 있는 상점 앞에 포천 이동막걸리 빈 병들이 낟가리처럼 차곡차곡 쌓여 있다. 그 옆에는 마악 어디론가 실려 나가는 이동막걸리 박스가 사람들 손길을 따라 잽싸게 차에 실리고 있다.  

 

 

포천 이동면에 가면 이동막걸리가 없다?

 

"여기 이동막걸리 파는 막걸리타운 같은 곳은 없나요?"

"그런 곳은 예전부터 없었어요. 산정호수로 가면 모를까."

"여기서 산정호수까지 얼마나 걸려요?"

"버스는 없고, 택시를 타면 2~30분 정도 걸릴까, 그래요."

"그럼 어디에 가야 이동막걸리를 마실 수 있을까요?"

"아무 식당에나 들어가 이동막걸리 좀 사 달라고 하면 사다 줄 걸요."

 

이동막걸리를 마시기 위해 차를 타고 포천 이동면에 갔다면 큰 낭패를 볼 수도 있다. 아무리 눈을 자주 씻으며, 자그마한 마을을 골고루 휘젓고 다녀도 이동막걸리를 파는 전문점이 없기 때문이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더니 포천군 막걸리 홍보는 빵점이다.

 

'나 참! 그렇게 유명한 이동막걸리 고향에 막걸리타운이나 막걸리 전문점이 하나도 없다니...'

 

혼잣말을 지껄이며 그렇게 1시간가량 이동막걸리를 팔 만한 식당을 기웃거리며 다니다 '에라 모르겠다' 싶어 허름하게 보이는 '오뚜기' 식당으로 들어가 '이동막걸리를 파느냐'고 물었다. 20대 허리춤께 나이로 보이는 젊은이가 '막걸리 안주가 될 만한 게 없으니 식사를 함께 시키면 사다 드린다' 했다.

 

"비빔국수 하나 시키면 되죠?"

"그럼요. 몇 병이나 사다 드릴까요?"

"두세 병 사다 주세요. 사진도 좀 찍게." 

 

끼니를 때우기에 어정쩡한 시간인 오후 4시여서 그런지 두 평 남짓한 이 식당에는 손님이 나, 딱 한 명뿐이다. 50대 허리춤께 나이로 보이는 이 식당 주인아주머니가 비빔국수를 만드는 동안 어느새 젊은이가 이동막걸리 세 병을 사들고 식당 안으로 들어오더니 밑반찬으로 김치와 버섯조림, 새우볶음, 가지나물과 함께 1.5리터짜리 이동막걸리 두 병을 식탁 위에 올린다.

 

 

마실수록 회초리 든 엄한 훈장님처럼 혀끝 톡톡 때려

 

"이동막걸리 이거 사진 좀 찍은 뒤 한 병만 마시고 나머지는 들고 가도 되죠? 작은 병이라면 다 마실 수 있겠는데, 비빕국수랑 같이 먹으면 너무 배가 부를 것 같아서..."

"그렇게 하세요."

 

사진을 찍어가며 사발에 이동막걸리 한 잔 따라 입에 갖다 댄다. 한 모금 입에 물고 혀를 천천히 굴려가며 맛을 보자 혀끝을 톡톡톡 쏘는 신맛이 마치 사이다를 탄 것처럼 새콤달콤하다. 그대로 쭈욱 한 잔 마신 뒤 막걸리병에 붙은 상표를 찬찬히 훑어보니, 처음 빚은 날로부터 5일이 지난 막걸리이다. 한 모금 더 마시고 있는데 주인아주머니가 커다란 양은그릇 가득 담긴 비빔국수를 내놓는다.

 

"뭘 이렇게 많이 하셨어요? 막걸리도 마시고 있는데? 참! 인심도 좋으시네요."

"많이 드시라구요."

"이동막걸리 맛이 서울에서 파는 이동막걸리와는 확실히 다르네요."

"그럼요. 서울에서 파는 이동막걸리는 보관기간이 6개월짜리잖아요. 여기서 파는 이동막걸리는 보관기간이 18일이에요."

 

이동막걸리 한 잔 다시 쭈욱 비운 뒤 보기에도 맛깔스러워 보이는 비빔국수를 안주 삼아 집어먹는다. 이 집 비빔국수는 국수 위에 고추장과 여러 가지 고명을 얹어 나오는 것이 아니라 미리 비벼서 나오는 게 특징이다. 가을노을처럼 바알간 국수 한 점 입에 물자 쫄깃하면서도 매콤달콤한 게 혓바닥에 착착 감긴다. 하지만 이동막걸리를 더 마시고 싶은 욕심에 반 이상 남겨 막걸리 안주로 삼아 천천히 먹는다.

 

이동막걸리 첫맛은 내가 우리나라 으뜸 막걸리로 여기는 여수 선소에서 마시던 개도막걸리 맛과 비슷하지만 마실수록 뒷맛이 조금 센 편이다. 개도가 부드럽게 술술 넘어가는 여성적인 맛이라면 이동은 좀 거친 남성적인 맛이라고나 해야 할까. 이동은 마시면 마실수록 회초리를 든 엄한 훈장님 얼굴처럼 혀끝을 톡톡 때린다.

 

 

50년 전통 이어오는 이동막걸리 옹기에 담아 발효시켜

 

"이동막걸리와 일동막걸리 차이점은 뭔가요?"   

"물맛이겠죠. 이동막걸리는 백운산 약수로 빚고, 일동막걸리는 관음산 바위에서 흘러내리는 약수로 빚지요."

"이렇게 물어보면 좀 그렇긴 하지만 아주머니께서는 어느 게 더 맛있다고 생각하세요?"

"당연히 이동막걸리지요. 50년 전통을 이어오는 이동막걸리는 옹기에 담아 발효시키기 때문에 건강에 좋은 영양소가 다른 막걸리보다 훨씬 더 많이 들어있다고 봐야죠."    

 

이동막걸리 안내자료에 따르면 이동막걸리를 빚는 법은 먼저 쌀을 깨끗이 씻어 물기를 뺀 뒤 찜통에 넣고 찐다. 그 다음 찜통에서 밥을 꺼내 바람을 쐬어 식힌 뒤 보쌈실에서 누룩과 밥을 골고루 섞다가 보자기에 엎어 36시간 정도 누룩을 발아시킨다. 끝으로 발아시킨 누룩을 옹기에 담아 누룩을 섞지 않은 찐밥을 넣고 다시 숙성시킨 뒤 거르면 이동막걸리로 태어난다. 때에 따라 쌀 대신 밀가루에 물을 섞어 찌기도 한다.   

 

이동막걸리를 빚는 이동주조(주)에 가면 막걸리를 360리터나 담을 수 있는 큰 옹기가 300여 개나 있다. 이동막걸리에 숨어있는 걸쭉한 맛과 톡 쏘는 감칠맛도 이 숨을 쉬는 옹기가 선물한 맛이다. 포천일동주조(주)에서 만들고 있는 일동막걸리는 관음산 천연암반수를 사용해 5일 이상 자연 발효시켜 빚는다. 이동막걸리와 일동막걸리가 다른 점은 술을 빚을 때 사용하는 물과 발효시키는 방법이 조금씩 다르다는 것뿐이다.

 

 

"기사 양반! 어디서 물이 줄줄 흐르는데? 이게 무슨 물이죠?"

 

"참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아니, 국수를 왜 이렇게 많이 남기셨어요. 맛이 별로 없었나 보죠."

"막걸리와 같이 먹었더니 배가 너무 불러서요. 다음에 또 올게요."

 

아주머니에게 남은 이동막걸리 한 병 값까지 치른 뒤 이동막걸리 두 병을 검은 비닐봉지에 넣어 버스정류소로 간다. 배가 너무 부르고 소변이 자주 마려운 게 서울까지 2시간가량 걸리는 버스를 타고 가기에 심상치 않다. 버스정류소에 가서 서울 가는 표를 끊은 뒤 이동막걸리 두 병을 더 사면서 비닐봉지를 몇 개 더 달라고 했다. 타고 가다가 소변이 너무 급하면 죄송스럽긴 해도 버스 안에서 은근슬쩍 해결하기 위해서다.

 

서울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소변을 다시 한번 본 뒤 버스를 타면서 맨 뒷자리에 앉는다. 다행이 뒷좌석에는 사람이 거의 없다. 창밖이 벌써 거뭇거뭇해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1시간쯤 달렸을까. 아니나 다를까 소변이 점점 마려워오기 시작한다. 어쩔 수 없이 비닐봉지를 꺼내 앞좌석에 탄 사람들 눈치를 슬쩍슬쩍 살펴가며 소변을 본다.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

 

소변을 다 본 뒤 비닐봉지를 단단하게 묶어 바닥에 놓는다. 그게 큰 실수였다. 버스가 이리저리 움직일 때마다 고인돌처럼 납작하게 퍼진 비닐봉지에서 소변이 새면서 마치 물배암처럼 버스 앞좌석으로 꼬불꼬불 흘러내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얼른 비닐봉지를 다시 들었지만 이미 때가 늦었다. 

 

"기사 양반! 어디서 물이 줄줄 흐르는데? 이게 무슨 물이죠?"

"나중에 서울 도착해서 제가 닦을 테니 그냥 갑시다."

"지린내가 슬슬 나는 걸 보니 뒤에서 누가 오줌을 싼 거 아냐?"        

"죄... 죄송합니다. 제가 깜빡 실수를 하여 물병을 그만 쏟고 말았네요."

"젊잖게 생긴 사람이 여러 사람이 이용하는 버스 안에서 좀 조심을 하지 않고......"

 

그래. 설령 소변 땜에 실수를 하는 한이 있더라도 다가오는 초가을에는 머리도 식힐 겸   경기도 포천에 가서 이동막걸리 한번 배부르게 마시며 은근슬쩍 올라오는 취기에 몸과 마음을 담금질해보자. 이동 막걸리 한 잔에 시름을 씻고, 또 한 잔에는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결코 나아지지 않는 이 지독한 세상살이를 마시고, 또 한 잔에는 새로운 희망을 품어보자.


태그:#이동막걸리, #막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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