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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철 MBC 사장의 사전 시사 요구로 인해 방송이 보류되며 논란을 일으켰던 MBC <PD수첩> '4대강 수심 6m의 비밀' 편이 24일 예정대로 방송됐다.

 

방송은 제작진이 예고했던 것처럼 정부가 주장하는 '홍수 예방', '물 부족 해결'이라는 4대강 사업 목적의 허구성을 지적했다. 또 청와대 인사가 개입한 '비밀팀'에서 사업 계획이 수립되었으며 이로 인해 4대강 사업이 자연친화적 사업에서 '한반도 대운하 사업'과 닮은꼴로 변경됐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방송 후 <PD수첩> 시청자 게시판에는 제작진을 응원하고 노고를 치하하는 글이 폭발적으로 쏟아졌지만, 반면에 "이게 다인가? 조금 부족한 것 같다", "칼질 안 된 내용을 보고 싶다", "기존에 알려진 사실이 너무 많다"는 아쉬움 섞인 질책의 목소리도 높았다.

 

시청자들의 반응에서 알 수 있듯이 이날 <PD수첩>은 그리 새롭지 않았다. 4대강 사업의 목적이 홍수 예방과 물 부족 해결에 있지 않다는 지적은 사업 초기부터 제기돼 왔고, 운하사업과 연관성을 지적하는 부분도 일부는 기존 보도를 통해 알려진 내용이다. 어찌 보면 특별할 것이 없는데 김재철 사장이 사회적 논란을 무릅쓰며 방송을 보류시킨 배경에 의문이 쏠릴 수밖에 없다.

 

결국 새로운 내용, 즉 4대강 사업 수립 과정에 '청와대(영포회)'가 개입했다는 내용 때문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이날 MBC에서 낸 보도자료에 따르면 김 사장은 방송이 나가기 전인 오후 8시 결국 사전 시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열린 각 본부장과 국장들 시사회에서 '비밀팀'과 '영포회' 등의 용어들이 수정됐다. 

 

"청와대도 아니고 더 굉장히 높은 분들"은 누구?

 

시청자들 역시 이날 방송의 핵심 내용이라고 할 수 있는 '비밀팀'과 '영포회' 인사의 개입 관련 내용에 대해 의구심을 표하고 있다. 특히 시청자들은 4대강 사업이 6~7m의 수심을 갖게 된 배경에 이명박 대통령 측근의 지시가 있었다는 박재광 위스콘신대학 교수의 발언에 주목하고 있다. '청와대'보다 윗선의 지시를 받았다는 박 교수의 말에 "그 실체를 밝혀야 한다"는 시청자들의 요구가 커지고 있다.

 

<PD수첩>은 초기 계획에서 2m 정도였던 수심이 6~7m가량으로 깊어진 것에 의문을 표하며 최근 모 케이블채널의 토론에 참석했던 박 교수의 발언을 인용했다.

 

당시 박 교수는 토론회에서 "수심이 바뀐 것은 이명박 대통령이 정책적으로 마음을 바꿨기 때문"이라며 "(대통령이) 보고를 받은 뒤 100년 빈도에서 200년 빈도의 홍수에 대비해 설계하라고 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박 교수는 제작진과 한 전화 인터뷰에서 "대통령이 수심을 얼마로 하라고 한 것은 아니고 '100년이다', '200년이다' 하면 밑에 있는 사람들이 (결정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박 교수는 대통령의 지시를 청와대 비서관에게 들었는지 묻는 질문에 "청와대도 아니고 더 굉장히 높은 분들"이라며 "대통령이 그분께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라고 덧붙였다.

 

이날 방송에는 또 정부의 4대강 마스터플랜 수립과정에서 청와대 인사가 개입한 태스크포스(TF)가 구성됐고, 청와대 인사들에 의해 4대강 사업의 수심이 한반도 대운하 수심과 같은 6m로 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청와대 인사들이 '수심 6m' 안을 강하게 밀어붙였다는 것.

 

<PD수첩>은 청와대 인사 가운데 한 명인 김모 행정관이 TF의 부팀장이라는 제보를 입수하고 이를 확인하려 했지만 당사자와 관련자들은 이를 모두 부인했다. 김모 행정관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한반도대운하 TF에도 참여한 '운하 전문가'로 알려졌다.

 

TF에 개입한 또 다른 청와대 인사인 김철문 행정관은 이명박 대통령의 후배인 동지상업고등학교 출신으로, <PD수첩>은 "TF에서 김철문 행정관의 발언은 곧 청와대의 뜻으로 해석됐다"고 전했다. <PD수첩>이 지난주 보도자료를 통해 밝힌 '영포회' 관련 인사는 바로 김 행정관을 가리킨 것이었다.

 

김 행정관은 제작진과 한 인터뷰에서 "추진 현황을 점검해야 했기 때문에 당시 회의에 두 차례 참석했다"며 "김모 행정관이 부팀장을 맡았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밝혔다. <PD수첩>은 제보자의 말을 빌려 "만약 6m 수심을 유지한다면 또 대운하를 하려 한다는 반발이 일 것이 분명해, 청와대도 끝까지 관철시키기에는 부담이 있었다"며 "따라서 일단 소규모 정비 계획으로 가고 6m는 나중에 하기로 했다"고 주장했다.

 

<PD수첩>에 따르면, 이 TF는 2008년 9월 국토해양부 산하 한강홍수통제소에서 4대강 사업의 기본 구상을 수립하기 위해 조직됐다. 이는 이명박 대통령이 대운하 포기 선언을 한 지 불과 3개월 지난 시점이었다.

 

마스터 플랜 변경, "원점에서 검토했다"

 

이어 <PD수첩>은 이날 4대강 사업과 한반도 대운하 사업의 연관성을 찾는 데 주력했다. 제작진은 2008년 12월 발표된 '4대강 살리기 프로젝트' 초안과 4개월 뒤 발표된 '4대강 살리기 마스터플랜'의 내용이 크게 차이나는 점을 파고들었다. 준설량이 두 배 이상 늘었고 친환경적인 강변 저류지 건설은 21곳에서 3곳으로 줄었다. 1~2m 규모의 자연형 보 4개를 건설하려던 계획은 평균 높이 10m에 달하는 대형 보 16개로 늘어났다. 이 과정에서 수심도 2m에서 4~6m로 한참 깊어진 것이다.

 

<PD수첩>은 이런 급작스러운 계획 변화에 의문을 제기하며 운하를 위한 사전작업이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에 홍형표 '4대강 살리기 추진본부' 기획국장은 "12월에 발표된 초안은 국토해양부에서 처음 검토한 구상안이었다"며 "그것을 근거로 마스터플랜 용역을 준 것이고 그 과정에서 사업이 확대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정작 마스터플랜을 작성했다는 총괄책임자는 "그런 내용을 들은 바 없다"며 "완전히 원점에서 검토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책임자의 말은 TF에 참여한 청와대 행정관이 여론의 반발을 고려해 초안은 소규모로 하고 '수심 6m' 안을 차후로 미루자고 했다는 내용과 맞아떨어진다. 4대강 사업을 운하사업으로 변모시키기 위해 청와대 인사가 개입했다는 의혹에 힘이 실린다.

 

<PD수첩>은 또 한반도 대운하 추진 당시 낙동강의 수로 평면도와 4대강 사업의 평면도를 분석해 두 물길이 상당 부분 겹친다는 점을 제기했다. 두 사업의 평면도가 겹치지 않는 부분도 강폭이 넓어져 배가 다니기에 무리가 없다는 것이 <PD수첩>의 주장이다.

 

<PD수첩>은 방송에서 "4대강 사업의 물길이 왜 대운하 사업의 물길을 닮아가는지 의혹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또 운하 건설에서 자주 사용되는 '사다리꼴 준설'이 4대강 사업 현장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점과 문화관광부에서 추진 중인 '리버 크루즈' 사업을 들어 운하와 관련한 의혹을 재차 제기했다.

 

한편, 국토해양부는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방영 내용이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하고 그에 대한 충분한 반론이 보장되었는지 면밀히 검토할 것"이라며 "방송 내용 중 수용할 것은 수용하고, 사실과 다른 내용이 방송될 경우에는 이에 대한 정정 보도 요청 등 별도의 법적 조치를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태그:#PD수첩, #4대강, #이명박, #청와대, #문지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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