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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유러피언드림 세 번째 이야기는 바로 볼로냐 경제모델의 비밀이다. 인구 40만이 채 안 되는 이탈리아 북동부 중소도시 볼로냐. 1970년대 경제위기와 불황 속에 한때 빈민의 도시로 전락하기도 했던 곳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삭막하고 치열한 경쟁 대신 협동과 연대의 정신이 오늘날 볼로냐를 이끌었다. 일부 소수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를 가진 한국경제에도 볼로냐가 던지는 시사점은 많다.

경제전문가와 협동조합 연구자 등으로 구성된 볼로냐 취재팀은 농업을 비롯해 소비자, 건설 등 각 분야 협동조합과 기업 등을 방문했다. 또 사회적 경제의 권위자인 스테파노 자마니 교수(볼로냐대학) 등 주요 전문가들의 심층 인터뷰도 진행했다. [편집자말]
이탈리아 볼로냐 시에서 자동차로 약 30분거리에 있는 '이페르 코프(Iper Coop)'라는 이름의 대형 쇼핑몰. 볼로냐 시에만 이같은 대형 쇼핑센터는 모두 3곳. 이곳 모두는 볼로냐를 주요 무대로 하는 소비자협동조합인 '코프 아드리아티카(Coop Adriatica)'가 운영하고 있다.
 이탈리아 볼로냐 시에서 자동차로 약 30분거리에 있는 '이페르 코프(Iper Coop)'라는 이름의 대형 쇼핑몰. 볼로냐 시에만 이같은 대형 쇼핑센터는 모두 3곳. 이곳 모두는 볼로냐를 주요 무대로 하는 소비자협동조합인 '코프 아드리아티카(Coop Adriatica)'가 운영하고 있다.
ⓒ 김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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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정리 : 김종철 기자
공동취재 : 오마이뉴스 <유러피언 드림 : 이탈리아편> 특별취재팀

지난달 26일 오전 11시. 이탈리아 볼로냐 시(市)에서 자동차로 약 30분 거리에 있는 센트로 노바(Centro Nova). 아침께 잔뜩 구름이 끼었던 탓에 어느새 하늘에선 보슬비가 흩날리고 있었다. <오마이뉴스> 취재팀이 찾은 곳은 '이페르 코프(Iper Coop)'라는 이름의 대형 쇼핑몰.

이곳 쇼핑센터의 모습은 한국의 여느 대형 쇼핑몰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각종 세계 유명 브랜드 제품 매장과 함께 서점, 여행사, 식당가 등이 눈에 띄었다. 또 국내 대형 유통업체들이 운영하는 '이마트'나 '롯데마트'와 비슷한 대형 할인매장도 있었다.

평일 오전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민들이 매장 곳곳에서 물건을 고르거나 음식을 먹고 있었다. 볼로냐 시에만 이같은 대형 쇼핑센터가 모두 3곳. 모두 볼로냐를 주요 무대로 하는 소비자협동조합인 '코프 아드리아티카(Coop Adriatica)'가 운영하고 있다.

소비자협동조합원 바치씨의 소비를 들여다보다

바치 씨는 "코프 매장의 경우 다른 일반 기업에서 운영하는 매장보다 품질면에서나 가격에서 만족스러워 자주 찾는편"이라고 말했다.
 바치 씨는 "코프 매장의 경우 다른 일반 기업에서 운영하는 매장보다 품질면에서나 가격에서 만족스러워 자주 찾는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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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넘게 코프 아드리아티카의 조합원인 파올라 바치(Paola Bachi)씨. 바치씨의 가족 7명 모두 조합원이다. 그는 "일주일에 2~3번 정도 이곳 매장을 찾는다"면서 "평상시에는 집 주변에 있는 작은 협동조합 매장에서 장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바치씨처럼 볼로냐 시민 대부분은 코프에서 운영하는 마트에서 물건을 사고 있다.
물론 일반 사기업에서 운영하는 마트도 있긴 하다. 하지만 볼로냐 시민 3명 가운데 2명꼴로 소비자협동조합에 가입돼 있는 조합원이다 보니, 대체로 코프 아드리아티카에서 운영하는 매장을 이용하고 있다.

바치씨는 현재 정년으로 은퇴한 남편과 단둘이 살고 있다. 그가 한 달에 코프 매장에서 사용하는 돈은 약 200유로(한화 30만 원) 정도. 바치씨는 "코프 매장의 경우 다른 일반 기업에서 운영하는 매장보다 품질면에서나 가격에서 만족스러워 자주 찾는 편"이라고 말했다.

그에게 최근에 어떤 제품이 만족스러웠는지 물었더니, "코프에서 인증하고, 지역에서 생산해 만든 우유 등 유제품이 가격이나 품질 등이 좋아 자주 구매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는 또 "코프 조합원에게만 할인되는 제품도 많고, 과일이나 육류 등은 생산과 유통과정 등 각종 정보 역시 투명하게 제공되고 있어 믿음이 간다"고 덧붙였다.

값싸고 품질 좋고 윤리적으로 공정한 제품을 사고파는 사람들

바치씨처럼 소비자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매장과 제품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는 상당했다. 물론 이같은 신뢰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이탈리아에서 소비자협동조합이 생긴 때가 1854년. 가난한 노동자들에게 값싸고 질 좋은 먹을거리와 물품을 팔기 위해 협동조합이 만들어졌다. 이미 156년의 시간을 지내오면서 소비자협동조합은 이탈리아에서 가장 큰 유통업체가 됐다.

실제 이탈리아 전역에 걸쳐 소비자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매장은 수천 개에 달한다. 또 이탈리아 국민의 60%가 협동조합에 가입돼 있을 정도다. 볼로냐를 주요 무대로 하는 코프 아드리아티카의 경우 조합원 수는 작년말 기준으로 모두 105만8782명. 이페르 코프를 비롯해 대형매장만 16개가 있고, 중소형 매장만 볼로냐 곳곳에 138개에 달한다. 코프 아드리아티카의 작년 매출만 19억4900만 유로에 달한다.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2조9000억 원이 넘는다. 이탈리아 한 지역의 소비자협동조합 매출치곤 상당히 큰 규모다.

게다가 이들 소비자협동조합의 경우 매장 운영과 제품 취급 과정에서 그들만의 원칙을 세워놓고 있다. 코프 아드리아티카의 리노 부게리 부회장은 "값싸고 안전하고 품질 좋은 제품을 공급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생태적으로 친환경적인 제품과 함께 공정한 노동에 의해 생산된 것인지도 면밀하게 따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리노 부회장은 또 "소비자협동조합에서 친환경적이고, 지역에서 생산돼 품질을 인정받은 제품에 대해 '코프(COOP)' 마크를 부여하고 있다"면서 "이들 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만족도 역시 매우 높다"고 덧붙였다.

매장 곳곳에 걸린 '일 바쏘또(Il Bassotto)', 경제위기 속 오히려 성장

코프아드리아티카는 글로벌 경제위기에 따른 소비침체에 대응하기 위해 2010년 들어 생필품 500개 항목에 대해 대대적인 가격 할인정책 내놓았다. 이른바 '일 바쏘또(Il Bassotto) 캠페인'이다. '일 바쏘또'는 다리가 짧고 몸통이 상대적으로 긴 애완견의 일종으로 '바찌(Bassi)'라고 불리기도 한다. 값 싸고 질 좋은 제품을 오래동안 조합원과 주민들에게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이페르 코프' 매장의 천장에는 '일 바쏘또 캠페인'을 상징하는 각종 걸개 그림이 걸려있었다.
 코프아드리아티카는 글로벌 경제위기에 따른 소비침체에 대응하기 위해 2010년 들어 생필품 500개 항목에 대해 대대적인 가격 할인정책 내놓았다. 이른바 '일 바쏘또(Il Bassotto) 캠페인'이다. '일 바쏘또'는 다리가 짧고 몸통이 상대적으로 긴 애완견의 일종으로 '바찌(Bassi)'라고 불리기도 한다. 값 싸고 질 좋은 제품을 오래동안 조합원과 주민들에게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이페르 코프' 매장의 천장에는 '일 바쏘또 캠페인'을 상징하는 각종 걸개 그림이 걸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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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글로벌 경제위기 등으로 이곳 소비에도 변화가 있었을까. 리노 부회장에게 물었더니,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리노 부회장은 "2008년 하반기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작년 6월께 조사를 해봤더니 전체적으로 소비가 감소 추세였다"면서 "당시 국내 소비 역시 전년 대비 마이너스 2%를 기록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이어 "전체적인 경기 침체 국면 속에 조합원과 주민들 생활이 힘들 수도 있다고 판단해 올해 들어 생필품 500개 항목에 대해 대대적인 가격 할인 정책을 내놓았다"고 말했다.

이른바 '일 바쏘또(Il Bassotto) 캠페인'이다. '일 바쏘또'는 다리가 짧고 몸통이 상대적으로 긴 애완견의 일종으로 '바찌(Bassi)'라고 불리기도 한다. 값싸고 질 좋은 제품을 오랫동안 조합원과 주민들에게 제공하겠다는 표현이다. 실제 이날 취재팀이 방문한 '이페르 코프' 매장의 천장에는 '일 바쏘또 캠페인'을 상징하는 각종 걸개 그림이 걸려 있었다.

파올라 바치씨는 "우리집의 경우 경제위기 이후 특별히 소비가 줄어들지는 않았다"면서도 "그럼에도 경기 침체 때 상대적으로 고통을 받을 수 있는 저소득층 처지에서 코프의 이번 가격 인하 조치는 매우 옳은 일"이라고 말했다.

코프 아드리아티카의 프란체스카 카바차(Francesca Cavazza)씨는 "작년의 전반적인 침체 분위기 속에서도 전체 매출도 늘었고 매장 숫자도 증가했다"면서 "지난해 3조원에 가까운 매출의 74.8%가 조합원에 의해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들의 현명한 소비가 세상을 바꾸다

경제위기 속에서도 이탈리아의 소비자협동조합이 별다른 타격을 받지 않고 운영되는 이유는 바로 탄탄한 조합원 기금 때문이다. 코프 아드리아티카의 경우 조합원으로 가입하려면 25유로(약 3만7000원)의 가입비를 내야 한다. 105만 명이 넘는 조합원들이 낸 기금이 무려 19억 유로(약 2조8400억 원)에 달한다.

물론 조합에 가입하지 않아도 코프 매장을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조합원은 코프 매장의 제품 할인 뿐만 아니라 코프에서 운영하는 서점이나 극장, 식당 등에서 많게는 30%까지 할인을 받는 등 혜택이 많다.

특히 조합원의 경우 일정한 금액을 코프에 적립할 수 있게 했다. 조합원은 코프에서 만들어준 조합원 카드를 가지고 물건을 살 수 있다. 은행처럼 돈도 빌릴 수 있고, 이자도 받는다. 국내에서 은행들이 발행하는 일종의 '체크카드'와 비슷하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점은 이들 소비자협동조합에서 발생한 매출이나 수익은 고스란히 해당 지역에 재투자되고 있다는 것이다. 대기업 유통업체들이 앞다퉈 지방에 백화점과 대형마트를 진출시키면서 매출액 대부분을 서울 본사로 가져가는 한국과는 사뭇 다르다. 또 국내 대형 유통업체들이 지역 골목상권까지 진출하면서 중소상인이 길거리로 내몰리는 모습도 이탈리아에선 찾아볼 수 없다.

소비자이면서 직접 조합원으로 참여해 자신들의 먹을거리와 입을거리를 챙기는 사람들. 그들의 현명한 소비가 사람다운 세상으로 바꿔놓고 있었다.

이탈리아 소비자협동조합의 경우 매장 운영과 제품 취급 과정에서 그들만의 원칙을 세워놓고 있다. 코프 아드리아티카는 값싸고, 안전하고 품질 좋은 제품을 공급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고 있으며, 생태적으로 친환경적인 제품과 함께 공정한 노동에 의해 생산된 것인지도 면밀하게 따지고 있다. 사진은 볼로냐 인근 지역 농민들이 직접 재배, 생산한 야채와 과일을 보여주고 있다.
 이탈리아 소비자협동조합의 경우 매장 운영과 제품 취급 과정에서 그들만의 원칙을 세워놓고 있다. 코프 아드리아티카는 값싸고, 안전하고 품질 좋은 제품을 공급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고 있으며, 생태적으로 친환경적인 제품과 함께 공정한 노동에 의해 생산된 것인지도 면밀하게 따지고 있다. 사진은 볼로냐 인근 지역 농민들이 직접 재배, 생산한 야채와 과일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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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유러피언 드림 : 이탈리아편> 특별취재팀: 현지 취재 : 김종철 기자(팀장) 이승훈 기자, 편집 자문 : 정태인 경제평론가, 신성식 경영대표(아이쿱 생협), 정원각 사무국장(아이쿱 생협연구소)


태그:#유러피언드림, #볼로냐, #에밀리아로마냐, #코프 아드리아티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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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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