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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황 역사박물관

 둔황 역사박물관
 둔황 역사박물관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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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 둔황 역사박물관을 찾았다. 입구에 낙타 조각상이 우리를 맞는다. 이 박물관은 길고 긴 둔황의 역사에 비해서는 작고 부실한 편이다. 전시공간이 크게 두 구역으로 나누어지는데, 한나라 때 장성실과 둔황의 역사문물실이 그것이다. 여기서 장성은 만리장성을 말한다.

전시물로는 생활용품, 무기류, 마구 등이 있다. 이 중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짚과 왕골로 만든 생활용품이다. 지푸라기나 왕골로 만든 삼태기나 초석은 사실 100년을 가기 힘들다. 그런데 이곳에 있는 물건들은 2000년이 넘게 보관되고 있으니 신기할 따름이다. 건조한 날씨 때문에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손잡이 달린 물동이
 손잡이 달린 물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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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전시된 초석(草席: 돗자리)은 전한(기원전 206-8) 시대 작품으로, 1979년 마권만(馬圈灣) 유지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둔황 문물전시실에는 불교유물, 생활용품, 묘에 넣었던 부장품이 전시되고 있다. 이들 중 천마도는 양관박물관에서도 본 것이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당나라(618-907) 때 만든 손잡이 달린 물동이(雙耳陶罐)다. 깨진 것을 붙이고 유약도 다 벗겨져서인지 고졸한 맛을 느낄 수 있다.

구층루 입구에는 발 디딜 틈이 없다 

 대패루
 대패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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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황박물관을 보고 우리는 둔황 관광의 하이라이트인 막고굴(莫高窟)로 향한다. 막고굴은 둔황 시내에서 남동쪽으로 25㎞ 떨어져 있다. 둔황역과 비행장을 지나 30분쯤 가니 동쪽 산자락에 듬성듬성 굴이 보인다. 이곳이 막고굴의 북쪽 영역이다. 막고굴의 정확한 중국어 발음이 머우커우쿠다. 발음이 어려워 그냥 막고굴로 쓰기로 한다. 그런데 우리가 답사하게 될 막고굴은 남쪽 영역이다.

차를 주차장에 세우고 작은 개울인 대천하(大泉河)를 건너면 대패루(大牌樓)에 이르게 된다. 이곳 대패루에서부터 막고굴 관람이 시작된다. 대패루에는 상하로 막고굴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고, 좌우로 석실보장(石室寶藏)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다. 이곳에서 서쪽 산 방향을 바라보면 소패루가 보인다. 소패루는 막고굴 구경을 마친 사람들이 나오는 문(出口)이다.

 막고굴
 막고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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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고굴은 4세기부터 14세기까지 명사산 산록의 벽을 깎아 만들어졌다. 길이 1.7㎞에 735개 동굴이 조성되고, 그 안에 불상과 조각이 만들어지고 벽화가 그려졌다. 그러나 현재 남아있는 동굴은 492개이다. 전진(前秦)시대인 건원 2년(366년) 승려인 낙준(樂僔)화상이 작업을 시작한 이래 원나라 시대인 1300년대까지 1000년 동안 만들어졌다.
  
막고굴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소패루에서 남쪽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 구층루 앞으로 가야 한다. 우리는 이 길을 따라 가며 막고굴의 외관을 살펴본다. 굴 입구에는 번호가 붙어있다. 그리고 바깥벽에 그려진 채색불화를 볼 수 있다. 사천왕상도 보이고 부처님상도 보인다. 동굴 내부에는 3000여기의 불상과 4만5000㎡에 달하는 불화가 있다고 한다.

 막고굴 구층루
 막고굴 구층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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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층루 앞에 이르니 막고굴에 들어가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다. 성수기인 요즘 하루 만 명이나 되는 사람이 막고굴을 찾는다고 하니 그럴 만도 하다. 우리는 중국인 한국어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조금 기다린다. 2시30분이 되자 대학에서 한국어를 전공한 가이드가 와 우리를 막고굴 안으로 안내한다.

관람은 안내 책자에 나온 순서에 따라, 가운데인 구층루에서 시작 남쪽으로 갔다 북쪽으로 가면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구층루 안에 있는 96굴을 먼저 보고 남쪽으로 가서 130굴과 148굴을 보게 된다. 그리고는 북쪽으로 가 61굴과 16-17굴을 보도록 되어 있다. 17굴이 장경동으로 혜초 스님의 <왕오천축국전>이 나온 곳으로 유명하다.  

눈으로 보면서 불교세계로 들어가야 하는 막고굴

 미륵대상의 머리 부분
 미륵대상의 머리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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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층루는 막고굴의 정문이자 출발점이다. 이곳에 들어가면 큰 부처님이 앉아 있다. 미륵대상(彌勒大像) 또는 북대상(北大像)이라 부르는데, 크기가 35.5m이다. 아래는 돌로 쌓고 진흙에 짚을 넣어 부처님을 만든 다음 채색하였다. 그런데 부처님은 크고 앞의 공간은 좁아 이 부처님을 보려면 고개를 뒤로 한껏 젖혀야 한다. 또 주위가 어둡고 색이 바래 그로테스크한 느낌이 든다. 크기만 크지 별로 존경심이 들지는 않는다.
 
이 대불은 초당(618-704) 시대 작품이다. 측천무후의 지시로 690년에 시작 695년에 완성되었다. 이곳은 막고굴에 오는 모든 사람들이 들르기 때문인지 항상 만원이다. 들어가기도 어렵고 오래 머물 수도 없다. 경건한 마음으로 부처님을 본다든지 경배하는 건 생각할 수도 없다. 정말 눈도장을 찍는데 만족해야 한다.

 도독부인 예불도
 도독부인 예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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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굴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성당(705-781) 시대 만들어진 130굴이다. 이곳에도 29m의 대불이 있다. 막고굴의 남쪽에 있어 남대상(南大像)이라 부른다. 부처님의 상호가 엄숙하면서도 원만하다. 뒤쪽에 광배가 있어 더 존경심을 유발한다. 이곳 130굴 남쪽과 북쪽 벽에는 당나라때 공양도(供養圖) 중 가장 아름답다는 '도독부인 예불도'가 있다. 그런데 플래쉬 불로는 그 아름다움을 관찰할 수가 없다.

130굴에서 더 남쪽으로 가면 148굴에 이른다. 이곳에는 길이가 14.7m나 되는 석가모니 열반상이 있다. 현장에서 보니 오른쪽 어깨를 아래로 하고 옆으로 누워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보통 와불(臥佛) 또는 수불(睡佛)이라고 부른다. 성당 시대인 776년 이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세 부처님은 정말 크다. 그런데 웬일인지 이들에 별로 존경심이 들지 않는다. 예술성과 종교성은 크기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절감한다.

 석가모니 열반상
 석가모니 열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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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부처님과 벽화가 더 좋아요

148굴을 나온 우리 일행은 9층루 앞을 지나 북쪽에 있는 61굴로 가야 한다. 그곳에 가면 문수보살상과 오대산도(五臺山圖)를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 굴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기다리고 있어 중당(781-834) 시기에 만들어진 231굴로 향한다. 이 굴에는 벽감을 만들고 그 안에 석가모니불을 주존으로 모셨다. 석가모니 부처님 옆에는 제자인 가섭과 아난이 협시하고 있다. 지금까지 본 부처님과는 달리 크기가 작으면서도 친근감이 든다.

 석가모니 설법도
 석가모니 설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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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찾아간 244굴도 수나라 말기에서 당나라 초기(581-618)에 만들어졌다. 삼세불이 모셔져 있으며, 가운데 석가모니불이 있고 좌우에 과거 연등불과 미래 미륵불이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석가모니불과 연등불 사이에 가섭과 문수보살이 모셔져 있고, 석가모니불과 미륵불 사이에 아난과 보현보살이 모셔져 있다는 사실이다. 이곳에 그려진 벽화도 재미있는데,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에서 설법하고 있다.

그리고 또 찾아간 곳이 251굴이다. 초창기인 북위시대(445-534)에 만들어진 것으로 불상과 벽화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벽화가 특이한데 천인지(天人地) 삼계를 표현하고 있다. 후기인상파나 야수파 그림처럼 강렬하고 원색적이다. 검은색을 주된 톤으로 하늘색을 사용해서 종교적인 경건성이 느껴진다.

장경동 이야기

 막고굴 16-17굴
 막고굴 16-17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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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7굴은 막고굴의 북쪽에 있다. 16굴이 가운데 크게 있고, 입구 북쪽 벽에 17굴 출입문이 있다. 16굴에는 가운데 다섯 분의 부처님이 모셔져 있고, 그 옆에는 4명의 공양상이 있다. 비교적 공간이 넓은 편으로, 주변 벽에는 불화가 그려져 있다. 만당기의 작품으로 부처님이 이상적으로 표현되었다.

 도사 왕원록
 도사 왕원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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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오히려 관심의 대상은 장경동으로 이름 붙여진 17굴이다. 청나라 광서 26년(1900년) 16굴에 머물며 도를 닦던 도사 왕원록(王圓簶)이 벽을 치우다 우연히 17굴로 들어가는 출입문을 발견했다고 한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4세기에서 11세기 사이에 만들어진 고문서와 전적류 그리고 불화가 5만점 이상 있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17굴을 장경동이라 부르게 되었다.

장경동에서 발견된 문서와 책자 중 90% 이상이 불경이다. 그러나 경사자집으로 대표되는 중국의 고서와 고대의 문서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표현 언어가 주로 한문이지만, 범문(梵文), 회골문, 돌궐문 등 소수민족 언어도 상당수 있어 고대 중국과 소수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아는데 대단히 중요하다. 그런데 이들 전적류와 그림 중 4만 여점이 1907년에서 1915년 사이 영국, 프랑스, 일본, 러시아 탐험가들에 의해 반출되었다.

17굴은 현재 철창을 만들어 놓아 들어갈 수 없다. 단지 눈에 보이는 것은 조사상(祖師像)과 보리쌍수(菩提雙樹) 벽화다. 여기 앉아있는 조사스님은 만당기(848-906) 하서도(河西都) 승통이었던 홍공 화상이다. 그는 이곳을 선방 삼아 참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님 뒤에는 두 그루의 보리수가 그려져 있는데, 석가모니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에서 수행하던 모습을 연상케 한다.

 보리쌍수도의 시녀
 보리쌍수도의 시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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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수에는 경전을 담은 가방(經包)과 정병(淨甁)이 걸려 있다. 보리수 왼쪽에는 시녀가 주장자를 들고 서 있고, 보리수 오른쪽에는 비구승이 부채를 들고 서 있다. 이들이 보리수 옆에 서서 고승인 홍공을 받들고 공양하는 모습이다. 그림이 아주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다.

장경동을 보고 나오니 바로 앞에 장경동 진열관이 있다. 이 건물은 왕원록 도사가 장경동에서 나온 유물을 보관하기 위해 1908년에 지은 건물이다. 2000년부터 장경동 진열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막고굴의 역사와 장경동의 역사가 도표와 유물을 통해 일목요연하게 설명되고 있다. 그리고 역사적인 유물이 어떻게 반출되고 훼손되는지 전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꼭 한번 들러볼 필요가 있다. 

덧붙이는 글 | 둔황 막고굴에 대해 좀 더 알고 싶거나 입장 예약을 하려면, 둔황연구원 홈페이지(http://www.dha.ac.cn)를 찾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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