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6·2 지방선거 이후 새로운 정치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한국정치에 어떤 가치와 정책을 담을 것인가 하는 고민도 여러 갈래다. <오마이뉴스>는 한국정치의 대변신을 위한 토론과 논쟁을 시작한다. 진보에서 자유주의까지 함께하는 '무지개 정치'의 길을 묻는다. <편집자말>

 

"내가 진보주의자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믿고 투표할 수 있는 정당 하나, 내 생전에 보고 싶다. 마지못해 던지는 한 표가 아니라 정말 찍어주고 싶어서 찍는 정당. 이런 정당이 안 나오니까 나라도 좀 거들어보겠다는 게다. 국회의원 되려고 그런다고? 내가 너무 순진한가. 좋은 정당 만들어지면 당연히 2선 후퇴다."

 

이학영(58) 한국YMCA전국연맹 사무총장은 참 소박했다. 20년 넘게 시민운동을 해온 사회운동가지만 평범했다. 대중의 눈높이와 같았다. 정말 찍어주고 싶은 좋은 정당 하나 만들기가 이렇게 어려운 것인가, 성토하는 대목에서는 숙연해졌다. 한국정치를 바라보는 답답함의 발로,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왜 없겠나.

 

새로운 정치에 대한 진지한 모색이 시작됐지만, 시민운동은 조용했다. 김기식 참여연대 정책위원장이 '빅텐트론'으로 선제구를 날렸지만 뒤따라오는 후속타가 없었다. 개인별 고민에 그치는 건가 싶었다. 그런데 대중적 진보정당 건설운동에 뛰어든 시민운동가가 눈에 띄었다. 그것도 한국 시민사회에서 신망이 높은 대표적 시민운동가다.

 

이 총장은 지난 지방선거 직후 연합정치의 성과를 묵혀둘 수 없다면서 '새로운 진보대중정당 건설운동'에 몸을 실었다. 이른바 복지국가와 진보대통합을 위한 시민회의가 그것이다.

 

지난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에 참가해 평화시위를 벌이다 허리를 다치는 등의 사고를 당한 뒤 MB정권을 향해 무도한 정권이라고 비판했던 이 총장은 이번 개각을 보면서 "참 위험한 사람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됐다"고 혀를 찼다.

 

임기 말 이재오 '4대강 전도사' 등 친위부대를 전면에 배치한 뒤, 국민이 그토록 반대하는 4대강 사업을 기어코 밀어붙이겠다는 것 아니고 무엇이겠냐고 개탄했다. 이 총장은 "무릇 인간은 완벽하지 못해 항상 허점이 있게 마련인데 이명박 대통령은 어쩌면 저렇게 자신감이 있나, 자기신화에 빠져 있구나 싶다"고 걱정했다.

 

이명박 정부가 이처럼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데도 이를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는 야권의 현실을 보면 더욱 답답함이 밀려온다는 이 총장은 "민주당에 (진보)세력을 보태준다고 해서 민주당이 진보적으로 변한다고 기대하지 않는다"며 "진보적 자유주의자들은 이제 진보정당에 힘을 실어줘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찬물 세 컵의 지혜

 

어렵게 지켜온 노동자-농민 계급정당에 이른바 중산층까지 포괄해온 시민운동이 함께 나서 진보적 대중정당 건설에 힘을 보태야 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NGO형태의 진보적 대중정당이 건설된다면 '시민참여형 복지국가 건설'이 왜 불가능한 현실이겠냐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한편, 이 총장은 "민주당 정치인들이 2012년까지 반MB정서가 유지돼 얼마든지 민주당 간판으로도 국회의원에 당선될 수 있다고 판단하는 한 민주당은 절대로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헤쳐 모여!'식 진보정당 건설은 요원한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또 시민사회에서 신뢰를 쌓은 40대 현업 시민운동가들이 일정하게 정치에 힘을 배분한다면 좋겠다고 언급한 이 총장은 "일일이 이름을 거명하기는 그렇지만 40대 현업 시민운동가들이 직접 정치에 뛰어들면 나보다는 훨씬 더 신선한 힘을 낼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사실상 시민운동가들의 정치참여가 필요하다고 역설한 대목으로 해석할 수 있다.

 

지난 9일 서울 북창동 한국YMCA전국연맹 사무실에서 만난 이 총장은 폭염주의보 속에서도 에어컨 없이 일하고 있었다. 그는 무더위에 진땀 빼고 걸어 들어간 기자에게 연거푸 찬물을 세 잔 마시면 더위가 가실 텐데 이 역시 매번 해오던 사람이 아니면 쉽지 않을 거라며 YMCA전국연맹이 운영하는 공정무역커피숍으로 안내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국민 70~80%가 시달리는 불안을 거둘 복지국가를 담론으로, 향후 생태적 가치를 살리는 지속가능한 모델로 한국사회를 변화시킬 대안적 진보대중정당 건설의 필요성에 대해 설파했다.

 

다음은 이 총장과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 이명박 정부가 개각을 단행했다. 개각에 대해 논평한다면.

"이명박 정부스럽다는 느낌이 들었다. 정치적인 고민과 배려를 한다기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겠다는 걸 보여준 개각이 아닌가 싶다. 기본적으로 차관이 장관으로 승진하는 것은 보기 좋은 형식이라고 본다. 그러나 문화체육관광부와 교육인적자원부의 차관들은 시민사회가 대표적으로 문제제기 했던 인물들이다.

 

그런 사람들을 장관에 기용하는 것을 보면, 기존에 시민사회가 반대했던 정책들을 더 적극적으로 시행하면 시행했지 절대로 양보하지는 않겠구나 싶다. 반환경적인 발언을 쏟아내는 환경부 장관도 유임됐고, 4대강 사업을 맡고 있는 국토부 장관도 유임됐다. 결국 다 밀어붙이겠다는 것이구나 판단된다."

 

- 4대강 사업에 반대하는 환경운동가들이 고공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현 정부는 끝까지 밀어붙이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어차피 단임제 대통령인데 뭘! 남는 임기도 없으니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끝내겠다는 게 아닌가. 이명박 대통령은 역사의 두려움을 모르는 사람인 것 같다. 인간은 무릇 완벽하지 못하고 항상 허점이 있게 마련인데, 어쩌면 저렇게 자신감이 있나, 자기신화에 빠져 있구나, 참으로 위험한 사람이다 싶다."

 

- 이명박 정부를 제어할 만한 정치적 대안이 없어보인다.

"그것이 가장 큰 고민이다. 보수 쪽도 박근혜씨 이외에는 정치적 대안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또 현 집권층이 박근혜씨로 안심할까 싶다. 이 가운데, 만일 진보진영이 100점짜리 대안은 아닐지라도 새로운 정치적 희망을 불러일으킨다면 상황은 좀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2012년 반MB 정서에 기대면 연합정치는 물거품"

 

- 야권은 지난 지방선거에서 후보단일화로 승리감을 맛봤지만, 7.28 재보선에선 참패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전국적 연합을 성사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선거연합이 성공했다고 평가할 수 없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큰 역할을 했어야 할 민주당이 실제 연합논의에 적극적이지도 않았고 전국적 연대의 판을 깨는 역할까지 했다는 점이다. 다만 연합의 성과는 민주당이 모조리 취했다. 혜택은 다 거둬간 셈이다.

 

이처럼 연합정치의 진정성이 없었기 때문에 민주당은 이번 재보선에서 오만하게 대응했다가 결국 참패하게 된 것이다. 지금도 민주당은 정치연합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다고 본다. 연합정치가 필연적이라고 생각은 하겠지만,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이 연합정치를 밀어붙일 의지가 있는가 불투명하다고 본다."

 

- 그렇다면 어떻게 야권연합을 성사시킬 수 있다고 보나.

"야권연합이 필요하다는 것은 온 국민이 느끼는 바다. 문제는 어디서 어디까지 어떤 내용으로 연합할 것인가다. 첫째, 21세기 한국사회의 발전정도에 걸맞은 새로운 가치와 담론으로 정치비전을 세워야 한다. 그 가치가 생태든 복지든 평화든 여성이든 그것은 토론하면 된다.

 

문제의 핵심은 어디까지를 연합의 대상으로 삼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제일 크게는 민주당까지 포함해서 하나의 정당으로 통합할 수 있으면 가장 좋겠다. 그냥 형식적인 통합이 아니라 소수정당과 시민사회까지도 어느 정도는 수긍할 수 있는 수준의 새로운 가치와 비전을 담았으면 좋겠다. 문제는 이것이 실현 가능한 것이냐 하는 점이다."

 

- 실현 가능하게 만들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지방선거와 보선을 치른 민주당 정치인들은 2012년 총선에서도 반MB정서가 일정하게 유지된다면 얼마든지 민주당 간판으로도 국회의원에 당선될 수 있다고 판단할 것이다. 지역구에서 큰 실수 안 하면, 수도권이나 호남에서는 민주당 깃발로도 충분하다고 볼 것이다.문제는 현 민주당 국회의원들이 이런 사고를 갖고 있는 한, 민주당은 절대로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헤쳐 모여!' 정당이 될 수 없다는 얘기다. 민주당의 기득권을 인정한 채로 다른 진보정당들이 들어와라? 이건 상상 불가의 연합방식이다."

 

- 민주당을 포함한 모든 야권 정당들이 하나의 당을 만들자는 의견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인가.

"실현된다면 좋은 일이지만 그것이 실현 가능한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설령 그렇게 만들려고 하다가 잘못 만들어서 오히려 정당 하나를 더 만들어 버리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까 염려된다."

 

"민주당에 더 수혈돼도 진보정치 기대하기 어렵다"

 

- 최근 진보대통합정당 건설운동 조직체에 이름을 올렸다.

"내가 정치를 한다기보다는 좋은 정당을 만드는 일에 거들 일이 있다면 거들겠다는 심정으로 올렸다. 좋은 정당이 생기도록 끊임없이 이슈를 제기하고 정치권에 압력을 가하면 그래도 무언가 작품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정치권 밖에서 좋은 정치를 꿈꾸는 사람들을 모아내는 일까지다.

 

제일 좋은 것은 수권능력이 있는 민주진보연합당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그게 안 되면 차선으로 노동, 농민 이외에 생태, 여성, 환경, 평화, 인권, 민주주의 등등의 요구까지 대변할 수 있는 새로운 가치정당을 만들었으면 한다. 일반시민들도 참여할 수 있는 부드러운 정당조직, 이른바 'NGO형 정당'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싶다.

 

드나드는 게 쉽고, 경계가 불분명하면서도 정체성은 함께하는 NGO식. 여러 캠페인 가운데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은 하고, 동의 안 되면 안 하는 방식의 정당 활동, 조직사회에 얽매이기 싫어하는 중산층, 대단한 결단 없어도 촛불집회에 참여했던 대중이 참여할 수 있는 풀뿌리형 대중정당이 만들어지면 좋겠다."

 

- 단기적으로는 비민주 진보통합정당론을 지향하는 건가.

"민주당이 합리적 보수정당이나 중도우파정당이 되면 진보통합정당은 중도좌파정당 또는 진보대중정당 정도로 해서 한국정치 지형을 바꿔나가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우선 민주당은 경남에서 후보를 내도 당선이 어려운 형편이다. 경남지역은 민주당을 뺀 나머지 정당, 시민사회가 새로운 통합정당을 만들어 힘을 합친다면 당선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것을 지난 지방선거에서 확인한 바 있다. 마찬가지로 호남에서도 민주당을 극복할 제2의 대안정당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수도권에서는 진보통합정당이 민주당과 적절하게 경쟁하면서 연합하여 총선과 대선을 함께 치를 수 있다고 본다."

 

- 정치일정상 내년까지는 연합이 성사돼야 하는 것 아닌가.

"내년까지 민주당과 합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 지금부터 열심히 노력하면 진보의 외연은 넓힐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스펙트럼은 중산층의 이익도 대변하는 진보적 자유주의 노선까지다. 예를 들면, 지난 대선에서 문국현씨를 지지했던 사람들을 모아서 진보쪽과 함께 결합하도록 해준다면 어떨까 싶다.

 

지난 세월 끊임없이 진보적 자유주의자들은 민주당으로 수혈돼 갔다. 그러나 민주당의 개혁은 요원했다. 따라서 몇 사람 민주당 안으로 들어간들 그 당의 개혁을 끌어내기는 어렵다고 본다. 이미 지난 대선과정에서 시민사회세력들이 오충일 목사를 중심으로 민주당에 합류했던 '미래연대'의 결과를 보면 잘 알 수 있겠다. 시민세력 일부가 민주당으로 갔지만 아무 결실도 못 보고 끝났다. 그래서 나는 개인적으로 민주당에 세력을 보태준다고 해서 민주당이 진보적으로 변한다고 기대하지 않는다."

 

- 진보정당의 외연을 확대하는 게 급선무라는 얘기인가.

"노동자-농민정당이 아닌 중산층의 이해까지도 대변하는 진보정당이 되도록 이미지와 외연을 넓히는 게 좋다고 본다. 사실 진보적 자유주의 세력은 이제 진보세력에게 힘을 보태줘야 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진보정당이 계급정당이 아닌 대중정당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이제 힘을 좀 보탰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면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최소한 진보대중정당의 단초는 마련할 수 있지 않겠나 싶다."

 

- 진보대중정당 건설의 매개체 역할을 시민사회가 맡는 것은 어떤가.

"한국의 시민운동 역사가 20년이 지났지만 세력은 참 약하다. 솔직히 시민운동을 지키기도 힘든 상황이다. 새로운 정치의 필요성에 공감하지만 막상 시민운동을 놔두고 모조리 정치로 가자? 그럴 상황이 아니다. 또 이미 갈 사람들은 많이 갔다. 또 시민사회 안에는 시민운동 본집이라도 잘 지키는 게 이 시대의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한국정치가 너무 심각한 상황이니 시민운동이 힘을 쪼개 새로운 정당 건설까지만이라도 감당해봤으면 하는 게 내 생각이다. 나는 시민운동 이외의 각계각층에 있는 사람들을 모아 새로운 정치의 담론을 만들고 새로운 정당이 생기도록 촉구하는 일까지 하려고 한다."

 

- 이 총장이 직접 정치에 뛰어들면 어떨까.

"하하하하하. 정치권을 왔다 갔다 하면 즉각 오해받는다. 국회의원 한번 해보려고 저러는 구나 이렇게 오해 받으면 운동이 안 된다. 나도 시민운동가로서 인생을 아름답게 마감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 임기가 끝나면 시골에 가서 풀뿌리 시민운동을 하든지, 시민학교를 하든지 이렇게 살고 싶다.

 

그런데 현재 국민들 앞에 뭔가 새로운 사람들이 새로운 정치를 시작한다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개인적 욕망과는 다르게 정치에 기여할 게 있다면 기여하겠다는 것이다. 국회의원 되려고 이러는 것 아니다. 이 나이에 국회의원 돼서 또 뭘 하겠나."

 

40대 현업 시민운동가가 정치에 뛰어든다면?

 

- 40대 현업 시민운동가들이 직접 정치에 뛰어드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나.

"시민사회에서 신뢰를 쌓은 중견 지도자들이 일정하게 정치에 힘을 배분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시민운동도 굉장히 중요하고 꼭 필요한 운동이지만, 그 힘을 정치에 배분한다면 더 큰 힘이 나온다고 본다. 일일이 이름을 거명하기는 그렇지만 그들이 정치에 뛰어들면 나보다 훨씬 더 신선한 힘을 낼 수 있다고 본다."

 

- 그동안 운동사회 내부에는 정치적 중립노선이 있었는데.

"시민운동은 다양하다. 정치성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시민운동도 있고, 정치적이지 않아도 되는 시민운동도 있다. 또 모든 시민운동이 다 비정치적일 필요도 없다. 정치성이 있을 수밖에 없는 시민운동은 그 속에서 잘 훈련해서 정치로 갈 수도 있다고 본다."

 

- 진보의 의제에 대해서도 백가쟁명이다. 무엇이 진보의 최우선 의제가 돼야 한다고 보나.

"현실적으로 가장 시급한 것은 역시 삶의 안전을 지켜줄 수 있는 복지국가담론이 아닌가 싶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성장시대 패러다임이 일거에 무너졌다. 가족과 개인이 열심히 하면 국가의 도움 없이도 재산증식이 가능하고 잘살 수 있다고 믿었는데, 1997년 이후 지금은 개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한번 큰 위기가 오면 끝이라는 의식이 팽배하다.

 

핵심은 국민의 70~80%가 느끼는 불안을 해소시켜줄 복지담론이다. 이것이 새로운 정당의 정치담론으로 채택돼야 한다고 본다. 생태담론은 굉장히 긴 시각의 담론이라고 본다. 어떻게 하면 생태적으로 적게 생산하고 고르게 나눠 쓸 것인가의 문제다.

 

인간이 후대와 공존하기 위해서는 오늘 우리 세대의 생산과 소비의 욕망을 절제해야 한다고 본다. 그러려면 저성장, 고른 기회, 고른 나눔이 돼야 지속가능한 사회가 될 것이다. 그러나 대중의 욕구와 의식수준이 당장 그것을 수용할 수가 없다는 것이 현실적인 한계이다. 당장에 그런 사회를 만들자고 하면 운동적으로야 유의미하지만 정치적으로는 얼마나 지지를 받을까 싶다.

 

또 공격도 많을 게다. 성장을 멈추면 가난한 사람은 어떻게 하라고? 깨끗한 청빈을 요구하는 이상주의자들이야! 또 보편적 복지국가담론은 이미 북유럽에서 다 실패한 모델인데, 이걸 때늦게 도입하려고 한다 등의 비판이 일 것이다. 그리스처럼 어설프게 복지를 하다가 막대한 재정파탄 위기에 몰리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

 

이때 무언가 대안을 갖고 있어야 한다. 복지국가의 기본 시스템은 국가가 세금을 통해 큰 밑받침을 하지만 자원을 만들고 시스템을 운영할 때는 국가와 관료 뿐 아니라 시민의 직접적인 참여도 동반돼야 한다고 말이다. 이른바 시민관리제도를 만들어 관료는 재정을 제대로 쓰는지 감시 및 평가만 하고 운영과 관리는 시민들이 자율적 행하는, 과거의 국가복지모델과 다른 '새로운 시민참여형 복지국가모델'을 만들 수 있다고 해야 한다."

 

한국에서 진보정치가 잘 안 되는 까닭

 

- 한국에서 진보정치, 진보정당이 잘 안 된다. 그 이유는 뭐라고 보나.

"냉전체제에 기인한다고 본다. 일종의 레드콤플렉스다. 우리 사회에서 빨갱이! 하면 끝 아닌가. 또 노동운동이 갖는 비타협성이 있다. 기업과의 관계에서 머리띠를 묶고 죽음을 각오하고 싸울 수밖에 없는 상황... 농민운동하면 죽창 든 시위, 뭐 이렇게 보수언론이 각인을 시켜놔서 일반시민들이 선뜻 동의하고 함께하기 어렵다고 본다.

 

그들의 처지를 이해는 하지만 일반시민들이 정서적으로 함께할 수 없는 어떤 벽이 있다고 본다. 따라서 그 벽을 넘기 위해 그동안 유연하게 시민사회의 입장, 중산층 입장도 대변했던 시민세력이 함께 해주면 새로운 대중진보정당이 가능할 것이라고 보는 게다.

 

시민운동이 했던 방식으로 정당을 해본다고 상상해보자. 캠프도 가고 재미있는 봉사활동도 하고. 커피파티만 생각해도 재밌지 않나. 새로 만들어질 정당이 YMCA처럼 일한다고 상상해보자. 우리 동네 청소를 깨끗이 하고, 재해가 발생하면 모금운동해서 돈을 보내주는 등 유연한 정당활동이 왜 불가능하겠나."

 

- 시민운동가 10명만 모이면 새로운 정당운동의 구심이 되지 않을까.

"나는 시민운동가 10명이면 문국현씨가 단기필마로 일으켰던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새로운 정당운동에 희망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솔직히 나는 내가 진보주의자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믿고 투표할 수 있는 정당 하나, 내 생전에 보고 싶다. 마지못해 던지는 한 표가 아니라 내가 정말 찍어주고 싶어서 찍는 정당이 있었으면 한다. 이런 정당이 나와 주길 바라는데, 안 나오니까 나라도 좀 거들어보겠다는 게다. 사람들은 내가 좋은 정당건설운동을 한다면 아, 정치하려고 하는구나 한다.

 

정치 안 할 거면서 왜 정당 만드는데 기웃거리느냐는 게다. 진짜 그런가? 내가 너무 순진한가. 좋은 정당이 만들어지면 당연히 2선 후퇴다."


태그:#이학영, #한국YMCA전국연맹, #시민운동가, #진보정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