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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하는 사람 치고 , 책에 대한 책을 싫어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리고 책에 대한 책은 생각보다 많이 출간되고 있고, 대형서점이라면 별도의 코너를 마련해도 좋을 만큼 인기도 많고 , 이 분야에 대한 인기 전문가와 저작들도 많이 나와 있다. '독서 에세이'이라는 장르가 이젠 낯설지 않을 만큼 친숙하고 대중적인 인기가 높은 분야가 됐다는 것이다.

 

이 분야에서 가장 많은 저작을 낸 사람은 아무래도 '아무개의 ~을 읽다'로 항상 시작하는 <독서일기>를 총 7권까지 펴낸 '장정일'이겠다.

 

그는 헌책방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헌책방에서 한 번 쯤은 마주친 경험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헌책방 마니아기도 하다. 장정일의 <독서일기>는 7권까지 출간이 되었고 아직도 전 권이 절판되지 않고 꾸준히 읽히고 있다.

 

장정일 말고도 이 분야에서 인기 스타는 많다. <탐서주의자의 책>을 지은 '표정훈' <강철로 된 책들>의 장석주,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 1~3>의 최성일,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의 다치바나 다카시, 지상에서 가장 관능적인 독서기라는 자평을 내건 < 침대와 책>의 정혜윤, <책>(책이름이 '책'이다)을 지은 강유원,  <행복한 책 읽기>를 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비평가 중의 한 분인 작고한 김현님도 이 분야의 스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빡세고 드라이한' 직장생활을 '책 읽기와 글쓰기' 덕분에 할 수 있었다는 '성수선'이 쓴 <밑줄 긋는 여자>도 독서 에세이 붐을 일으킨 주요 원동력이자 그 중심에 서 있는 좋은 책이다. 이름난 비평가나 문필가가 쓴 '책에 관한 책'에 비해서 평범한 생활인이 쓴 책은 나름의 매력과 존재 이유를 충분히 가지고 있음은 물론이다.

 

<밑줄 긋는 여자>이 공감하고 쉽고, 세상을 살아가는데 힘이 되는 '독서 에세이'라면 헬렌 한프가 지은 <채링크로스 84번지>는 책에 관한 가장 따뜻한 책이다. 이 책은  '뉴욕에 사는 가난한 여류 작가와 런던의 중고서적상이 바다를 건너 꽃피운 우정의 편지들'을 엮은 것인데 책과 따뜻한 우정이 곁들여져서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하모니를 들려주는 아름다운 이야기다. 영화로도 제작되었기도.

 

'앤 패디먼'의 <서재 결혼시키기>는 제목만큼이나 흥미진진하고, 책에 대한 지독한 사랑을 맛 볼 수 있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독서 에세이 중의 하나이다. 서재를 결혼시킨다는 것은 부부가 서로의 책을 한 데 '섞는 것'을 말하는데 금실이 좋던 부부가 이혼을 심각하게 고려할 정도로 서재를 결혼시키면서 겪는 에피소드를 흥미진진하게 그리고 있다.

 

이 책에 대해서 이런 문제를 내면 어떨까?

 

문제) 다음 중 이 책을 쓴 목적이 무엇인가?

가) 정보를 주기 위해서   나)즐거움을 주기 위해서

다) 교훈을 주기 위해서  라) 추천을 하기 위해서

 

물론 정답은 가) 나) 다) 라) 모두다. 이 책은 책을 어떻게 사랑하고, 보관하고, 사용하고, 정리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보를 준다. 책을 사랑하는 가족들이 겪는 범상치 않은 에피소드는 폭소를 자아내고, 독서와 자녀의 독서생활에 대한 교훈도 주고, 마지막으로 '더 읽어 볼만 한 책들'이라는 장을 따로 둘 정도로 좋은 책을 많이 추천하고 있다.

 

나는 이 책의 초판본으로 양장본을 구매했는데 서재를 정리하다보니 도저히 안 보여서 다시 구매하려고 검색을 해보니 양장본은 더 이상 나오지 않고 소프트 커버에다 표지 디자인도 바뀌어 있었다. 주문해서 받아보니 확실히 양장본과는 장정의 컬리티가 떨어지고(이건 당연하다) 무엇보다 순전히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표지 디자인이 확실히 구판에 비해서 부족하다.

 

말이 나와서 말이지만, 국내 출판계에 가지는 불만 중의 하나가 우리나라 책의 표지 디자인이 대체로 '백의민족'의 후손임을 유난히 강조하는 콘셉트인 것 같다는 것이다. 출판선진국의 책에 비해서 표지가 대체로 매우 심심하고 너무 단순하다. 번역본도 마찬가지인데 원서의 표지디자인과 비교해서 국내에 출간된 번역서가 원서의 표지 디자인의 질에 버금가는 경우를 거의 보지 못했다.

 

<서재 결혼시키기>의 신판은 확실히 구판 하드커버에 비해서 장정도 장정이지만, 표지 디자인도 일보 후퇴했다는 느낌이다. 반면에 <채링크로스 84번지>의 장정과 표지 디자인은 한 차원 높은 완성도와 고급스러움을 더하고 있다. 물론 열악한 우리의 출판 환경에서 하드커버와 소프트 커버별로 다양한 가격대와 장정으로 출간하기가 힘들겠다는 추측은 해본다.

 

책에 대한 책 중에서 <통문관 책방 비화>는 숨어 있는 보석이다. 인사동의 유명한 고서점 '통문관'의 설립자 '이겸노' 선생의 저서이다. 고서점과 헌책방은 다소 다르다. 흔히 말하는 헌책이라는 것은 단순히 '낡은 책'이다. 그러나 고서라는 것은 '한국고서연구회'에 따르면 1959년 이전에 출간된 책을 말한다.

 

그러니까 '통문관'이란 고서점은 대체로 1950년대 이전의 책을 주로 취급한 책방이고, <통문관 책방 비화>는 고서를 취급한 비화를 엮은 책이지, 예를 들자면 '이문열 삼국지' 따위의 요즘 나오는 헌책을 사고팔면서 겪은 일들을 쓴 책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통문관'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 된 서점이고 인터넷 홈페이지도 (http://www.tongmunkwan.co.kr/)도 있긴 한데 목록의 업데이트는 여간해서 하지 않는 것으로 봐서 여전히 오프라인 중심으로 운영을 하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하긴 여전히 고가의 고서나 희귀본을 취급하다보니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한 거래는 다소 어려울 수밖에 없다. 어쨌든 <통문관 책방 비화>는 헌책방의 메인 화면에 노출이 되는 즉시 판매가 되고, 이 책을 구한다는 게시글도 심심찮게 발견 할 수 있다. 내가 알기로는 하드커버로도 출간이 된 모양인데 눈으로 구경해본 일은 없다.

 

고서점이나 일반 헌책방을 막론하고 책방의 주인이 고서나 책에 대해 쓴 책은 이 책과 '호산방'의 주인 박대헌 선생이 쓴 <고서 이야기>가 국내에서는 유이하다고 봐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 같다. 물론 <고서 이야기>는 절판본이 아니라서 누구나 쉽게 사서 읽을 수 있다.

 

<통문관 책방 비화>는 필자가 아마도 '자발적으로' 정독한 최초의 국한문혼용체 책임에 분명하다. 전형적인 한글세대인 나는 자발적인 독서생활을 초등학교 때부터 했지만 국한문혼용체 책을 끝까지 읽은 적이 없었다. 대학시절 교재로 국한문혼용체를 처음으로 읽어야 하는 난관에 부딪치기는 했지만 그건 '독서'가 아니라 '공부'였고 내가 기억하기로는 '영어 음성학 개론'을 제외하면 끝까지 '진도'를 나가고 '읽어가면서' 강의를 한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전형적인 한글세대인 내가 300페이지가 넘는 국한문 혼용체 책을 굉장히 재미나게 읽었다는 것은 이 책이 그 만큼 흥미롭고 , 어렵지 않다는 것을 반증한다. 70년 넘게 고서점을 운영했고 국어학자 이희승, 미술사학자 고유섭, 국립박물관장 최순우 그리고 이승만 대통령을 고객으로 만났던 고서점 이야기가 어찌 신기하지 않고 재미있지 않겠는가?

 

그리고 이겸노 선생은 단지 책을 팔고 사는 상인이 아니었다. 당시의 고서점에서 거래되고 그 분이 '입수'하고 '거래'했던 책이나 서화 등은 '문화재'급이 다수였다.  이겸노 선생은 청구영언' '두시언해' '월인천강지곡' 영인본을 펴낸 출판인이기도 하고 6·25 때는 가재도구 대신 80권짜리 〈조선군서대계〉를 지고 피난을 떠나셨던 일화로 알 수 있듯이 문화재의 발굴이나 보존에도 굉장히 큰 공을 세운 분이다.

 

'한국고서연구회'에서 고서의 기준을 '1959년 이전에 출간된 책'으로 정한 것에 대해서 박대헌 선생이 한국전쟁이 끝난 1953년을 기점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그의 저서 <고서 이야기>에서 주장했는데 나는 이 의견에 동감을 하는 입장이다. 박대헌 선생이 고서의 기준으로 1953년을 기점으로 잡은 이유는 6.25전쟁 때 수많은 책이 소실되었고, 전쟁 기간 중에 출간된 책이 매우 드물다는 것인데 나는 우리 집안의 경우를 봐도 이 의견에 동의를 하는 입장이다.

 

어렸을 적에 우리 집에는 딸 뒤주만한 나무로 된 책장이 있었다. 그 책장은 전면 전체가 항상 닫혀있어서 내 스스로 그 책장을 열어 본 것은 아마 상당히 머리가 굵어진 후의 일일 것이다. 여하튼 그 책장은 신주단지처럼 언제나 그 자리에 고이 모셔져 있었는데 내가 출가를 하고 시골집을 비워준 십년 전 쯤에 그 책장 안에 있는 고서만 꺼내서 지금 내 서재에 모셔두고 책장은 아직 시골집에 있는 것으로 안다.

 

그 책장에는 각종 고서가 가득 담겨있었는데 나의 고조할아버지의 장서라고 한다. 고조할아버지는 지방 관리를 지내시다 말년에는 마을 훈장으로 소일 하신 분인데 '천정에서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데 책만 읽으셨다고' 한다. 내가 고조할아버지를 닮은 것이 확실한데 그 분도 장서를 상당히 많이 수집했고 남기셨다. 그러나 6.25 전쟁 전후에 그 중 상당수가 불태워졌다.

 

전쟁 통이던 그 시절에 책을 보관하고 간수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번거로운 일이었을까? 그런 면에서 이겸노 선생의 문화재와 책에 대한 사랑은 높이 평가되어야 함이 당연하다.

 

이겸노 선생의 독서가로서의 인간적인 면모를 나는 '독서와 3병(炳)' 이야기로 알 수 있었는데 독서와 관련된 3가지 병은 '책을 빌려달라는 사람도 병, 빌려주는 사람도 병, 빌려보고 돌려주는 사람도 병'이라는 것이다. 책이라는 것은 되도록 많은 사람이 공유가 되어야 하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욕심을 가진 장서가로서의 욕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생기는 지병인 것이다.

 

즉 책을 읽으면서 병에 걸리지 않으려면 책을 빌리지도 말아야하고, 빌려주지도 말아야 하며, 일단 빌리면 절대로 돌려주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책을 절대로 빌리지는 않지만 빌려주는 경우는 종종 있느니 한 가지 병은 피하지 못하고 있다.

 

즉 '빌려주는 병' 말이다. 내가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보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책이라는 것이 읽고 싶을 때 읽어야 하는데 일단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면 반납을 해야 할 기한 때문에 반드시 그 기한 내에 읽어야 하는 압박이 생기면 그 이후는 독서가 아닌 '의무'가 되며 즐거움이 아닌 '괴로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나는 실천을 못하고 있지만 책은 가능한 한 번에 한 권 씩만 사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한꺼번에 여러 권을 사면 그 다음 책을 빨리 봐야할 것 같은 압박감이 생길 수도 있어서 책을 대충대충 읽기 쉽기 때문이다. 나는 책을 30분 만에 읽어치우는 것보다는 '천천히 읽기'를 권하는 쪽이다.

 

우리는 책의 내용보다 그 책의 시각적인 외관과 촉각으로 먼저 그 책을 만난다. 그래서 책은 내용도 내용이지만, 커버의 디자인이라든지, 장정도 무척 중요하다. 신입사원을 뽑는 면접관조차 신입사원 지원자에 대한 호감도를 단 몇 초 만에 결정한다고 하니, 책의 외모나 인상은 그 책의 상업적인 성공여부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또한 책을 만들고 디자인하는 것은 하나의 역사이며, 그 역사를 살펴보고 정리하는 작업은 문화사적인 측면에서 매우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박대헌의 <우리 책의 장정과 장정가들, 열화당>은 출판사(史)에서 누군가는 반드시 써야 할 책이다.

 

1883년 신식 활판 인쇄술이 도입된 이래 육이오 전쟁이 끝난 1953년까지, 근대출판 70년 동안 단행본들의 장정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데 이 시기의 장정이 매우 중요한 의미를 부여한 것은 이 시기에는 많은 미술가들이 장정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즉 장정이라는 것이 전문 예술가들에 의해 진행된 예술작품이라는 것이다.

 

장정에 관한 이 책의 장정은 한 마디로 평가하기 어렵다. 책의 커버는 평범하지만 속지의 인쇄나 사진은 문화재 도록에 버금가는 양질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시대별로 각 페이지에서 장정가를 소개하고 그 분이 장정한 책에 대한 소개와 간단한 서평 그리고 장정을 한 방법을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이 책이 더욱 가치가 있다는 것은 서양 것이 아닌 '우리 책'에 대한 장정을 체계적으로 정리했기 때문이다.

 

'이광주'의 <아름다운 책 이야기>도 책의 장정과 인쇄에 관한 자료가 풍부하고 무엇보다 이 책 자체의 장정이 아름답지만 '월리엄 모리스에서 중세 사본까지'라는 부제를 단 것으로 알 수 있듯이 서양의 책에 관한 내용이다.

 

<일본 고서점 그라피티, 박노인 번역, 신한 미디어>는 헌책과 헌책방에 관한 책인데 독자를 압도하는 놀라운 책이다. 이 책의 진가를 알아채는 데는 단 몇 초도 걸리지 않는데 이 책의 속지를 스르륵 펼쳐보면 '와!'하는 감탄사가 나올 수밖에 없는 책이다. 고서점들의 조감도를 미친듯한 세밀함으로 그린 삽화는 정말 '경악'스러운 눈에 대한 향연이다.

 

이 책에 가득 들어 있는 삽화는 고서점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은 듯한 정밀함과 세밀함을 자랑하는데 독자들이 그 서점의 가장 재미있는 모습을 독자들에게 전달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그렸다니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책에 대한 가장 행복한 경험을 맛 볼 수 있다. 물론 각 책방의 주인들의 모습도 담았고, 그 책방의 주인들의 표정도 정밀하게 담았다.

 

또한 각 책방들의 특징이 되는 책들의 목록과 위치 및 가격까지 쓰여 있다.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아쉬운 점은 삽화에 대한 번역이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삽화에 있는 각종 책에 대한 정보는 일본어 표기 그대로다. 이 책은 헌책과 고서를 좋아하는 사람이 궁금해 할 만 한 것은 다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서점 순회방법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제쳐두고라도, 고서점 순회복장에 대한 삽화와 내용은 정말 일본인들의 실용적인 가이드에 대한 존경심이 들 정도다. <일본 고서점 그라피티>의 동경편이 반응이 워낙 좋아서 속편으로 '교토. 오사카. 고베편'도 출간이 되었다.

이 책이 한국의 고서점에 대해 쓴 책이 아닌 일본의 책이라는 점도 아쉽지만 그나마도 더 이상 이 책을 구할 수가 없다는 것은 더욱 안타까운 일이다.


태그:#책, #헌책, #헌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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