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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는 여름에 찾아오는 손님들을 구경시켜줄 곳이 마땅치 않다. 함께 계곡을 찾아 물에 몸을 담그거나 읍내 시원한 음식점을 찾아 시간을 보내고 오는 것 등이 좋은 대접에 속할 것이다.

 

이런 것은 중소도시라고 해도 그렇게 다르지 않다. 문화를 즐길 줄 아는 이들이 찾아오면 유명 사찰과 박물관이 붙은 문화 공원을 찾거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거리가 좀 되긴 하지만, 이웃 군의 물안계곡 등을 찾아 오붓한 시간을 즐기는 것도 더위를 피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이것도 첫 방문자들에게는 통하는 방법이겠지만, 두세 번 우리 집을 찾은 사람들에게는 신선미가 떨어져 다른 길을 찾아보아야 한다. 지난 주 가까이 지내는 노부부를 따라 멀리 색다른 곳을 다녀왔다. 이야기는 오래 전에 들었지만 그곳에 가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숯가마, 숯가마'를 입이 닳도록 들으며 언제 시간이 되면 꼭 한 번 방문해겠다고 작심했었는데, 마침 기회가 온 것이다. 김 권사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목사님, 지금 시간 어떠세요. 전에 말한 적이 있는 숯가마를 가려고 하는데요. 함께 가시죠."

 

그러잖아도 벼르고 있던 곳이라 우리 부부는 단단히 준비를 하고 출발했다. 단단히 준비했다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면으로 된 긴 바지와 티를 입고, 면 양말을 신고 수건을 몇 개 가지고 가는 것이었다. 처음엔 여름에 시원한 곳을 찾아도 뭐할 텐데, 열이 풀풀 나는 숯가마를 찾는다는 것이 좀 이상하게도 생각했다. 하지만 숯가마에 들어갔다가 나오면 아무리 무더운 여름이라도 시원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아니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곳에 들어갔다 나오면 갖고 있던 병들이 사라진다는 것에 더 마음이 끌렸다.

 

무좀이 사라진 사람, 팔다리 쑤시던 병이 없어진 사람, 침침한 눈이 밝아진 사람 등 그곳의 효험을 본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는 김 권사님의 말은 확인할 길이 없으니 믿을 수밖에 없었다.

 

김천시에서 한 시간 정도를 들어가야 당도할 수 있는 곳이니 거리로는 결코 가까운 곳이 아니다. 평일(8월 3일) 오후여서 사람들이 많지 않은 것도 마음에 들었다. 숯가마가 세 동(棟)이 있었다. 각 가마마다 차이가 있었는데, 그것은 온도로 구분할 수 있었다. 섭씨 35도 정도의 미지근한 가마, 60도 정도 되는 중간 가마 그리고 80도가 넘는 뜨거운 가마.

 

이 세 개의 가마 중에 인기로는 중간의 것이 제일이었다. 노인들과 아이들은 주로 약한 온도를 유지하는 가마를 이용했고, 가끔 용기 있는 사람들은 발에서 얼굴까지 수건으로 칭칭 두르고 뜨거운 가마에 들어가지만 몇 분을 견디지 못하고 튀어 나오곤 했다. 제일 만만하기는 중간 숯가마였다. 한 5분 정도 지나니 땀이 비오듯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숯가마에서 흘린 땀은 운동이나 일을 하면서 흘린 땀과는 달리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르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뽀송뽀송한 상태로 된다는 점이다.

 

우린 그 숯 가마에 달린 식당에서 즉석 고기구이로 식사를 했다. 올려진 찬은 몇 가지 안 되는데 맛이 일품이었다. 숯가마를 이용하는 데는 요금을 받지 않고 대신 식사를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았다. 그러나 꼭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는 곳이었다. 그렇다면 그냥 가서 숯가마 찜질을 하고 돌아와도 된다는 이야기가 된다. 비용이 들지 않는 발품만 사면 족한 장소이다. 그래서 주말에는 앉을 틈이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붐빈다고 한다. 건강에 대해 무신경인 내가 다시 걸음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데 건강주의자들은 오죽 할까 싶었다.

 

그리고 어제 손님들이 들이닥친 것이다. 그 숫자만 해도 만만치 않다. 아이들 이모 식구가 6명, 우리 식구가 세 명, 거기에다 장인 어른까지 동참해서 총 열 명을 데리고 숯가마로 출발하려고 하는데, 옥천의 이한구 집사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목사님, 김천 포도 구경도 하고, 개울가에 발이라도 담그고 싶은데, 시간이 어떨지요?"

"집사님, 좋습니다. 지금 우리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막 출발하려던 참이에요. 서둘러 오세요."

 

그로부터 한 40 여분이 지난 뒤, 이한구 집사님이 도착했다. 혼자가 아니었다. 이 집사님의 인근 동리의 이장을 맡고 있는 한순자씨와 그의 남편 이종무씨가 동행했다. 우리는 세 대의 차에 나누어 타고 김천군 증산면 장전리에 있는 숯가마를 향해 달렸다. 무더운 여름 날씨임에도 신록의 자연은 시원하게 다가온다. 그래서 우리는 일부러 직지사 뒤로 방아재를 통과하는 산길을 택해 여름 오후를 달렸던 것이다. 두 번째 길이어서 숯가마를 쉬 찾을 수 없었다. 중간중간 전화 통화를 하면서 무사히 숯가마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가기 전엔 무더위에 웬 숯가마냐며 감정들이 곱지 않았다. 숯가마에도 들어가지 않으려 했다. 평상 위에 쌓아둔 옷가지 등 물품을 지키겠다며 버티던 사람들이 한둘 나를 따라 숯가마에 들어왔다. 잠시 후 땀이 굵은 빗줄기마냥 흘러내렸다. 결가부좌를 튼 자세로 면벽수도를 하는 듯, 또 다른 이는 눈을 감고 명상을 즐기는 듯 각양 특이한 모습으로 땀을 쏟아내고 있었다. 높은 열을 토해내는 황토 벽에 몸을 의지한 이는 시원하다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아픈 어깨죽지가 나은 것 같다며 섣부른 효과를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좁은 숯가마 안에서는 처음 보는 사람도 십년 지기나 되는 듯 속내에 있는 말들을 드러낸다. 숯가마에 오게 된 동기와 아름아름으로 소개해서 이용하게 된 사람들의 치유 이야기며 좀 더 깊이 들어가면 가정사까지 허물 없이 털어놓게 된다. 그러고 보면 숯가마 안은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의 사랑방 역할까지 톡톡히 하는 것이다. 벌거벗은 상태인 목욕탕에서의  외형적 평등성까지는 담보하진 못한다 하더라도 걸친 면 옷들이 거기에서 거기인 이들에게서 맡게 되는 사람 냄새는 인정이 점점 메말라 가는 세태에 향수로 느껴진다.

 

우린 더위를 이기는 방법으로 '이열치열(以熱治熱)'의 지헤를 말한다. 하지만 정녕 그것의 진수를 맛보기란 쉽지 않다. 나는 여름에 우리 집을 찾는 손님들에게 숯가마 경험을 하게 함으로써 열로 열을 다스리는 실습을 하게 할 것이다. 허름한 곳, 사람의 몸에 좋다는 참나무 숯을 만들어 판매하는 과정에서 발산되는 열기를 황토 가마에 저장해 두었다가 호사가들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숯가마 주인의 마음도 그 열기만큼 뜨겁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고 한다. 이 말이 숯가마 주인에게 그대로 적용되어 그들의 사업도 베푸는 것 이상으로 발전하기 바란다.


태그:#이열치열, #숯가마, #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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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향기 그윽한 김천 외곽 봉산면에서 농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분리된 교회가 아닌 아웃과 아픔 기쁨을 함께 하는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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