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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인기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삼순이 아버지 역을 맡은 배우 맹봉학씨가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인동 참여연대 회의실에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 중 이명박 정부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소통의 부재를 지적하고 있다.
 MBC 인기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삼순이 아버지 역을 맡은 배우 맹봉학씨가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인동 참여연대 회의실에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 중 이명박 정부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소통의 부재를 지적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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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 맹봉학씨는 좀 그렇지 않아요?"

정상급 연예인만 만났는데 갑자기 단역배우라니 섭외 단계에서 주변 사람들이 말렸다. '소셜'은 되는데 '엔터테인먼트'가 부족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사실 나도 맹봉학씨 어떠냐는 후배의 제안에 "누구?"했었다. 삼순이 아부지요! 했을 때야 무릎을 쳤다. 

그러나 이 남자, 간단치 않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부터 최저생계비 일일체험에 차명진 의원에게 공개편지까지 활동이 세다. 거의 사회 운동가 수준이다. 탁 치면 쑥 숨어 버리는 게 연예계의 관행인데 경찰에 잡혀가더라도 할 말은 한다.

연예인들이 방송에 출연 못하게 될까봐 눈치 봐야 하는 현실이 과연 제대로 된 민주주의냐고 한탄도 했다. 가난하지만 꿈이 있는 배우와 달리 꿈도 희망도 없이 쪽방에서 살고 있는 노쇠한 분들에게 최저생계비라도 넉넉히 주면 안 되는 것이냐고 갑갑증을 호소했다.

24년간 배고픈 연극배우로 살며 자신이 보고 느낀 사회현실에 대해서는 '거침없이 하이킥' 수준으로 직설을 퍼부었다. 공사판 막노동,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면서도 버리지 않았던 배우의 꿈.

그는 1986년 전주지방연극제에서 <멀고 긴 터널>로 데뷔했을 때의 그 마음으로 지금껏 살고 있다. 결혼하면 생계곤란으로 이혼하거나 연극판을 떠나야 할 것 같아서, 그 시절 많은 선배들이 그렇게 사는 걸 보면서, 쉰 살 바라보는 나이에도 결혼을 유예해 두고 있는 배우 맹봉학(47)씨.

지난 5일 그와 일대일로 문답을 주고받으면서 줄곧 든 생각이 있다. 이제 그만 그 '멀고 긴 터널'에서 빠져나와야 하는 것은 아닐까.

쪽방에서 날밤 세운 배우

배우 맹봉학.
 배우 맹봉학.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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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여연대에서 주관한 '최저생계비 일일체험'에 참여하셨다.
"연극하는 사람들의 현실도 비슷한 경우가 있다. 지금 시작하는 배우들이나 연출자들의 경우에 말이다. 고시원에서 생활하는 후배들도 있다. 1986년 내가 처음 연극을 시작할 때도 그랬다. 나도 라면 하나 끓여 먹으면서 연극했다. 개런티는 생각도 못했다. 그냥 연극이 좋아서 무대에 선 것이었으니까. 그때의 나, 그리고 지금 시작하는 배우와 연출자들은 모두 꿈이 있다. 희망도 있다. 그런데 그분들에게는 꿈도 희망도 풍요로운 먹거리도 없었다.

노쇠해진 분들, 기력도 없는데 편안한 잠자리조차도 제공이 안 되는 현실이 매우 안타까웠다. 방음도 안 돼서 옆방 사람 방귀 뀌는 소리,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 술 먹고 싸우는 소리 별별 소리를 다 들어야 했다. 솔직히 나는 서울 용산 동자동 쪽방에 누워 최저생계비 일일체험을 하면서 한 숨도 못 잤다.

이명박 정부가 친서민 정치를 한다면서 왜 가난한 사람들의 복지를 최우선으로 해주지 않는 건지 모르겠다. 내가 묵었던 쪽방 1층엔 식당이 있었다. 한 끼 밥값이 5천 원, 6천 원이더라. 그런데 최저생계비 하루에 6300원이다. 2100원으로 한 끼 먹으라는 소리인데 이건 현실성이 없다."

- 최저생계비로 황제처럼 살았다는 차명진 한나라당 의원에게 공개편지도 쓰셨다.
"한 인터넷 매체에서 연락이 왔다. 차 의원이 최저생계비로 황제처럼 살았다는데 글 좀 써달라고. 나 참... 한 나라의 국회의원이 그런 마인드를 갖고 있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슬펐다. 누구나 봉사는 1년씩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게 삶인 사람들에게는 차 의원의 말이 상처가 되지 않겠나."

- 인기 드라마 <자이언트>에 출연하신다고 들었다.
"26부와 27부에 출연한다. 오늘 밤 촬영 예정이다. 극중에선 도로공사 현장소장 역할이다. 중요한 역할은 아니지만 그래도 대사도 몇 마디 있다. 하하. 16년 전 처음 드라마를 시작할 때 받은 등급이 있다. 18등급이 최고인데 아직 멀었고, 좀 올려주면 좋은데 잘 안 올라간다. 하하. 사실 나는 단역이니까."

뽀얀 최루연기 속에서 연극 포스터를 붙이다

-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 이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시위로 더 유명해지셨는데, 그 배경에는 87년 6월 항쟁에 참여하지 못했던 빚이 있다고 했던데.
"나는 대학을 못 갔다. 그러나 연극을 하면서 당시 대학생들이 읽어야 할 필독서인 사회과학서적을 읽게 됐다. 또 내가 속했던 극단도 깨어 있는 극단이었다. 상업극만 하는 곳은 아니었다. 수원의 극단 성(城)이었는데, 이 극단에서 87년 당시 나는 단종을 죽이는 세조 역할을 맡았다. 주인공이었다. 신났다.

그때 사람들은 늘 스크럼 짜고 최루탄 맞으면서 거리에서 독재타도를 외쳤다. 그 최루가스 속에서 나는 연극 포스터를 붙이고 다녔다. 그렇게 세월은 계속 흘렀다. 그러다가 지난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에 우연히 참여하게 됐다. 기성세대가 아이들의 먹거리를 책임져야 하는데 아이들 스스로 촛불을 들고 거리에 섰다는 게 참 부끄러웠다.

사실 나는 결혼을 안했기 때문에 아이도 없다. 그렇지만 어른으로서의 책임윤리 같은 게 있었다. 그런데 때마침 경찰이 촛불집회에 참가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폭력행사하는 걸 목격했는데 집에 도저히 갈 수가 없었다. 화가 났다. 뜬눈으로 아침 7시까지 있다가 집에 가 옷만 갈아입고 또 나오곤 했다. 그러다가 경찰서까지 가게 된 게다. 조사도 받고. 하하."

- 이명박 정부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보나.
"소통인 것 같다. 인간에게는 언제나 끝이 있는 법인데 하시는 걸 보면 끝이 없다고 착각하시는 게 아닌가 싶다. 나는 솔직히 좀 걱정된다. 도대체 임기가 끝나는 2년 뒤엔 어쩌시려고 저러나. BBK, 강남 세곡동 땅 이거 모조리 청문회 감 아닌가. 청문회 피해 망명 가시려고 그러나? 참 이해가 안 된다.

대중을 향한 죄스러운 마음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게 참 없으신 것 같다. 얼마 전엔 환경운동가들이 농성 중인 여주 이포보도 다녀왔다. 공사해 놓은 걸 보면 아하! 이게 운하가 되는 거구나 딱 보인다. 대운하의 전초라는 걸 금세 알게 된다. 그런데도 아니라고 저러시니 참 답답한 노릇이다."

맹봉학씨가 출연한 작품들
장편- <세친구> <노는 계집 창>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 <베사메무쵸> <하늘정원> <범죄의 재구성> <싸움의 기술> <왕의 남자> 외 다수

단편- <환생> <2001 이매진> <수사반장 트위스트 김> <트라이앵글 메모리즈> <잘돼가? 무엇이든> <바이칼> <아버지 어금니 꽉 깨무세요> 외 다수

- 가만히 얘기를 듣다보니 배우라기보다는 사회운동가에 더 가까운 게 아닌가 싶다.
"하하하하. 2008년 12월 17일 경찰에 소환될 때 후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니, 배우가 신문 문화면에 나와야지, 자꾸 사회면에 나오면 어떻게 해? 듣고 보니 맞는 소리였다. 그러나 배우는 사회현실에 민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사회에서 벌어지는 온갖 사회현실에 눈 뜨고 깨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배역을 해도 잘 소화할 수 있다고 본다. 연극에도 늘 사회성이 반영되기 때문이다."

- 유명 배우나 가수, 연예인들은 사회활동에 적극적이면서도 나서지 않으려고 한다.
"당연하다. 대중들로부터 인기를 먹고 사는 연예인들이 매사에 적극적으로 자기의 입장을 개진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나처럼 이름 없는 배우라면 모를까. 하하. 그러나 한편으로 나는 이런 생각도 한다. 사회문제에 적극 참여하면서 나 스스로 성찰하게 됐다.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기니 점점 화가 날 일이 없어졌다.

그런 면에서 촛불집회에 참여해 경찰서까지 불려 가게 됐지만, 한편으로는 나를 성숙하게 해줬다는 측면에서 고맙게 생각한다. 사람들은 20년, 30년 후의 행복을 위해 오늘의 고통을 참아야 한다고들 한다. 그러나 나는 반대다. 내일 행복하기 위해 오늘 행복하자! 이런 주의다. 그래서 늘 웃는다."

D급 배우의 빨간 나일론 카페트

배우 맹봉학.
 배우 맹봉학.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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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영화계에서는 나름 알아주는 배우로 통하더라. '맹봉학 특별전'도 있었다고 들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학생들이 레드카펫 대신 빨간 나일론 천을 깔아주었다고.
"나는 D급 배우다. 그런 배우에게 학생들이 빨간 나일론천을 깔아줬으니 내가 얼마나 고마웠겠나. 하하. 그런데 이런 말은 하고 싶다. 연극을 잘하는 사람들도 운이 없어 발탁이 안 되는 경우도 있다. 내가 그렇다는 건 아니고. 하하" 

- 함께 했던 후배 가운데 잘 나가는 배우는 누구인가.
"송강호, 김윤석, 윤재문. 다들 카리스마가 있는 친구들이니까 나보다 훨씬 낫다. 예전에 배우는 사투리 쓰면 안 된다고 막 다그치고 가르치고 그랬는데, 그 친구들 뭐 사투리 써도 나보다 훨씬 이름 높다. 이젠 후배들에게 내가 할 말도 없다."

- 요즘 50대 아줌마들이 연극을 많이 본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연극은 잘 안 본다.
"박정희 정권 시절 먹고 살아야 한다는 이유로 자유와 문화를 억압했다고 생각한다. 먹고살기도 바쁜데 무슨 연극? 연극은 고급 엘리트들이나 누리는 문화생활이었다. 그러나 외국은 마을마다 소극장이 있고 연극을 본다. 그 연극에 기업이 지원을 하고 사회 환원도 기꺼이 한다고 들었다.

먹고 사는 데 1만 원이 필요하다면 그중 2천원만 아껴서 가슴을 넓힐 수 있는 문화에 투자했으면 좋겠다.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 가운데 자기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감히 말하건대 문화를 누리는 자는 행복하다고 본다. 경쟁만 하면서 더 많은 돈을 가지려고 뛰지 말고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한 삶을 위해 뛰시라고 말하고 싶다."

-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아버지 역할을 잘 소화해내 계속 아버지 역할만 들어온다고 하셨는데, 다른 극에선 어떤 역할을 하고 싶나.
"아버지 말고 딴 거 없냐? 했더니 아예 섭외 전화가 뚝 끊겼다. 하하. 연락 좀 주셨으면 좋겠다. 하하. 조폭 두목 역할 같은 것 한번 해보고 싶다. 나쁜 역할. 영화 <대부>에서 말론 브란도, 알 파치노처럼, 또 <우아한 세계>에서 송강호처럼 한번 해보고 싶다. 그런데 내 얼굴이 너무 유해졌나 싶다. 사람이 너무 유해 보여서 그런 강한 연기는 안 되나 그런 고민도 한다."

"깡패 한번 해봤으면"

- 좋은 이미지의 착한 역할을 해야 CF섭외도 들어오고 그러지 않나? 왜 악역을 선호하나.
"각인이 잘 되니까. 나를 잘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아서 그렇다. 연극을 할 때도 그렇다. 인상이 강한 연기를 하면 커튼콜 할 때 관객들의 박수소리가 다르다. 관객의 눈빛과 호흡도 달라지는 걸 느낀다. 정말 나쁜 깡패 역할 한번 해보고 싶다."

- 단역을 넘어 주목받는 조연으로, 또 주연도 하고 싶을 것 같다.
"주연배우가 하고 싶다. 그래서 내가 단편영화를 좋아한다. 주인공을 할 수 있으니까. 하하. 드라마는 사실 나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다. 대개 중간에 투입되고 내게는 포커스가 맞춰져 있지 않으니까. 대사 열 마디면 주인공이 다섯 마디하고 나머지 갖고 나누는 것이니까. 연기를 해도 편집에서 사라지는 경우도 종종 있고. <내 이름은 김삼순> 이 드라마에서는 감독님이 굉장히 잘 해주셨다. 삼순이 한번, 나 한번 바스트 샷으로 잡아줬고 대사도 길었고 좋았다. 그래서 시청자들께 각인이 됐다. 그런 점에서 참 감사하다."

- 주인공 역할을 잘 할 수 있는데 섭외가 왜 안 들어올까.
"연기를 잘 못 하나? 하하. 갑자기 질문을 하시니 말문이 딱 막힌다. 다른 사람들보다 매력이 부족한가. 얼굴이 너무 평범한가. 별 생각을 다 하게 되네."

- 어떤 배우가 되고 싶나.
"한 계단씩 오르는 배우가 되고 싶다. 국민배우 안성기 선배처럼. 흐트러짐없이 늘 그 자리에 있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다. 연기를 배우기 전에 먼저 인간이 되라는 말이 있다. 안성기 선배는 정말 인간적이다. 배우들 특유의 까탈스러움이 다 있는데, 안성기 선배는 그런 게 없다. 배우 1, 2년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언젠가는 나도 잘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인간됨을 배우는 것은 차분히 단계를 밟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다."

- 차라리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안 했나.
"30대 초반까지는 했었다. 계속 무명배우였으니까. 고향이 수원인데 서울로 올라와 자취를 시작했다. 가난한 집안인 데다 연극하는 걸 반대하셔서 손을 벌릴 처지가 아니었다. 스스로 생활비를 벌어야 했다. 그때 당시 공사판에서 막노동을 하면 하루에 5만 원을 받았다. 월세 10만 원 내면 최소한 20만~30만 원은 있어야 생활이 가능했다. 비가 오면 막노동은 못한다. 인력시장에 가서 일을 따야 하고, 그중 10%는 인력사무소에 수수료로 떼여야 한다. 그렇게 한달에 열흘은 '노가다'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건물에서 일하는데 누가 위쪽에서 각목을 던져 우연히 내 머리에 찍혔다. 피가 철철 나서 병원에 가 꿰맸다. 보상금은 한 푼도 없었다. 그날 일당만 겨우 받았다. 이렇게 살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굶어 죽어도 연기 이외의 일은 안 하겠다고 결심했다. 그 뒤로 정말 연기만 했더니 수입은 몇 배로 늘어났다. 나는 배우가 굉장히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에 험한 일이 참 많은데 배우처럼 찬란한 직업이 없다. 내가 선택한 이 직업에 후회는 없다."

막걸리당 창당론?

배우 맹봉학.
 배우 맹봉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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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례지만 요즘 연봉은 어떻게 되시나.
"오늘 내가 정말 별걸 다 깐다. 음.... 2천~3천만 원 사이다. 그래도 가끔 CF를 찍으면 괜찮다. 한번 찍으면 800만 원에서 1천만 원은 받으니까. 그게 어디인가. 예전에는 가발CF 들어오면 화내고 안 한다고 하고 그랬는데, 요즘엔 땡큐다. 하하."

- 코믹 연기에 도전할 생각은 없나.
"나는 그동안 정통극에 맞는 배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 선배 개그맨 하시지~ 그런 말을 많이 듣는다. 시트콤 같은 것도 해볼만하지 않느냐고. 지금은, 뭐든 시켜만 주시면 열심히 할 것이다."

- 자료를 뒤져보니 사이코드라마도 열심히 하시던데.
"스물아홉 살 때부터 해오던 일이다. 처음에는 배우로서 순발력도 배우고 그들도 돕겠다는 발상으로 갔는데 세월이 지날수록 나만 도움을 받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스스로 치유된다고나 할까. 그들을 보면서 많이 웃게 됐고 그러면서 내 얼굴도 온유하게 변한 게 아닌가 싶다. 앞으로 60살까지는 계속 하고 싶다. 내가 따로 사회에 환원할 게 없다. 그런 것이라고 해야지. 하하하." 

- 지방선거 전후로 '맹봉학의 막걸리당'이 창당된다는 얘기도 들었다. 정치하실 건가.
"배우는 배우를 잘해야 대접받는다고 생각한다. 섣불리 말할 문제가 아니다. 분명한 것은 내가 정치를 하려고 의도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사람 일은 모르는 법이니 뭐라고 말은 못 하겠다. 막걸리당은 한때 커피파티가 유행이어서 나는 막걸리를 좋아하니 막걸리당을 만들겠다고 했던 것일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

- 코미디언 김미화씨가 블랙리스트 문제로 KBS와 맞붙었다. 어떻게 보고 있나.
"포털을 뒤져보니 김미화씨가 나보다 한 살 적던데, 굉장히 멋지다. 정말 별것도 아닌 일을 갖고 온 나라가 들썩인다는 것 자체가 아주 챙피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사람이 배우건 코미디언이건 기자건 작가건 청소부건 시민인데 정치든 사회든 문화든 왜 말을 못하나. 그러고도 우리나라가 민주주의 국가라고 할 수 있나. KBS에 블랙리스트가 있는 거냐고 트위터를 통해 물어봤으면, 아, 있으면 있다, 없으면 없다, 답을 하면 될 것을, 왜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제기하나. 이게 코미디 아니고 무엇인가. 나는 그것보다 더 슬픈 것이 있다. 연예인들이 방송에 출연 못할까봐 눈치 봐야 하는 현실 말이다. 이게 민주주의냐."

- 맹봉학씨도 촛불 이후 방송사로부터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김미화, 김제동씨는 아주 유명한 분들이다. 나는 그들과 다르다. 피해를 당했다기보다는 나 스스로 피해의식을 갖고 있다고나 해야 할까. 하하하. 분명한 건 정권과 관계없이 방송국에 있는 소수가 알아서 기는 게 아닌가 싶다. 나도 물증은 없고 심증만 있다."

- 정통극 위주로 하셔서 예능프로엔 안 나가시나.
"아이 이 사람 정말! 불러야 나가지. 하하. <경향신문>에 실린 김C 인터뷰를 보면서 나도 공감한 바 있다. 나를 알리기 위해서 필요하다면 예능이든 그 무엇도 할 수 있지만 사실 나는 정통극을 지향한다. 배우이기 때문이다. 맹봉학의 인지도를 올리기 위한 것이라면 나가야지, 생각한다. 그런데 안 불러준다."

- 배우 출신이 문화부 장관이 됐다. 특별히 하실 말씀은?
"없다. 배우가 장관이 됐다는 일 자체는 굉장히 훌륭한 일이라고 본다. 나중엔 무용수도 장관이 되고, 소리꾼도 장관이 됐으면 좋겠다. 유인촌 장관이 정말 예술인을 생각한다면 우파가 권력을 잡았으니 좌파는 물러가라는 식으로 임기도 많이 남아 있는 분들을 자르고 그러지는 않았을 것 같다. 정말 하나 당부하자면, 빨리 물러나달라는 게다. 또 연극배우의 초심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소셜테이너? 땡큐지!"

배우 맹봉학.
 배우 맹봉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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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난한 연극배우들을 위해 정부가 무엇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나는 솔직히 배우노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등록제는 아니더라도 프랑스처럼 1년에 세 작품 하는 배우라면, 그가 한 작품당 100만원을 받는다면 이중 30%는 떼내 연금붓듯 정부에 내고 작품을 하지 않을 때 일종의 연금 형식으로 정부가 생활비를 보전해주면 어떨까 싶다. 안 그러면 순수창작예술은 계속 쇠퇴할 수밖에 없다. 당장 생활고에 시달리니 이 바닥을 떠나게 된다. 안 그랬으면 좋겠다."

- 연예인노조도 있지 않나. 배우노조가 꼭 필요한가.
"배우조합 정도도 좋을 것 같다. 연출가가 100명이라면 배우는 1천명 수준이다. 배우는 힘이 없다. 캐스팅 때문이다. TV도 마찬가지 구조다. 영화노조가 있지만 잘 안 되는 이유는 여전히 제작자와 감독들이 힘이 세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TV도 PD가 힘이 세다. 배우들의 마인드도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희생은 없고 양보는 없으면 안 되니까.

간혹 촬영장에서 섭섭할 때도 있다. 단역배우들이 인사해도 젊은 PD들이 모른 체 할 때다. '수고하셨습니다!' 한마디에 '네' 그러면 될 걸, 쌩 하고 돌아선다. 단역배우라고 하대하는 거지. 그러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아~ 나 이러다가 불이익 당하는 거 아니야? 하하."

- 소셜테이너라는 말이 있다. 동의하나.
"소셜테이너라고 불러주면 나야 너무 고맙지! 나이 마흔이 되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한다. 그걸 떠나 무릎 한번 구부리면 누구와도 눈높이를 맞출 수 있다. 내 입장이 아니라 다른 사람 입장으로 말이다. 내가 나누면 나눔은 커진다고 본다. 시간 있으면 시간, 시간 없으면 돈, 건강한 사람은 헌혈이라도. 주변을 돌아볼 여유를 갖고 살았으면 좋겠다. 연예인이 그렇게 산다면 그게 소셜테이너 아닌가. 하하."


태그:#맹봉학, #소셜테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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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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