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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암에서 동해역까지 택시로 이동한 후 다시 강릉으로 넘어가는 열차를 탔다. 아침 6시 15분 계룡역에서 출발해 조치원에서 환승, 조치원에서 제천, 제천에서 강릉까지 간 후 삼척행 바다열차, 다시 동해에서 강릉… 하루 동안 꼬박 8시간 30분을 기차 안에서 보낸 셈이다.

 해질녘 하늘, 추암에서 동해역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해질녘 하늘, 추암에서 동해역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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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기차를 타고도 창 밖 풍경에서 눈을 뗄 줄 모르니 이 정도면 기차 마니아를 넘어서 '오타쿠'라고 칭해도 될 것이다. 금방이라도 소금기가 훅 끼쳐 올 것처럼 새파랗던 동해도 밤에는 장사 없는 법인지라, 하늘 바탕에 흘린 귤빛 물감은 어둠 속으로 소거되어 이내 하얀 동그라미 하나만 남겨 놓는다. 강릉역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깜깜한 달밤이었다.

 강릉역에 도착해 열차에서 내려보니 이미 하얀 보름달이 떠올라 있다.
 강릉역에 도착해 열차에서 내려보니 이미 하얀 보름달이 떠올라 있다.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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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포호의 밤, 다섯 개의 달, 외로움

 경포해변의 야경
 경포해변의 야경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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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의 죽서루와 함께 관동팔경에 들어가는 강릉 경포대에서는 다섯 개의 달을 볼 수 있다고 한다. 하늘에 떠 있는 달, 경포호에 비친 달, 바다에 비친 달, 술잔 속의 달, 그리고 님의 눈동자에 반짝이는 달.

강릉역 오거리에서 202번 버스를 타고 종점에 내리니 높이 뜬 달이 경포호를 내리비추고 있다. 어쩜 저렇게 빛이 맑을까, 경탄하며 호수 둘레를 따라 걸었다.

잘 알려진 경포대나 율곡 이이의 생가인 오죽헌 외에도 강릉에는 둘러볼 거리가 참 많다. 전통 사대부 가옥 선교장, 허난설헌 생가와 초당두부마을, 국내 최대 사립박물관인 참소리박물관 등. 대부분의 관광지는 경포해변에 맞닿은 경포호 주변에 위치해 찾아가는 길도 용이한 편이다.

원래는 허난설헌 생가를 보고 가까운 초당두부마을에서 맛난 저녁을 먹을 생각이었지만, 생각보다 강릉에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포기해야 했다. 늦은 밤이라 관광지는 다 문을 닫았지만 호수는, 바다는, 언제나 인간에게 관대히 열려 있다.

 경포해변. 평일이라 사람이 썩 많지 않아 조용하고 좋았다.
 경포해변. 평일이라 사람이 썩 많지 않아 조용하고 좋았다.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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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밤바다를 보았다. 늘 활기차고 불빛이 반짝반짝한 해운대나 광안리의 밤과 달리 이곳 강릉의 해변은 차분했다. 쏴아, 하고 울리는 파도 소리에 마음이 경건해지는 기분. 파도가 높아서, 가만히 쳐다보고 있자니 나까지 쓸려가 버릴 것만 같다. 이래서 바다는 늘 경외로운 존재다.

 경포해변. 모래.
 경포해변. 모래.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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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빛나는 날이었대도, 아무리 보름달이 밝아도 까만 밤이 되면 쓸쓸해진다. 그저 누가 날 어디론가 데려가 줬으면 싶었다. 무거운 배낭을 짊어진 내게 아무도 말을 걸지 않는다. 형식적인 피알(PR, 나이트클럽의 호객행위를 이르는 은어)을 하고 있는 삐끼도 혼자 산책하는 나를 붙잡지는 않았다.

그렇게 쓸쓸해 하면서, 왜 굳이 혼자 여행을 하냐구? 그건 이 약간의 외로움과 객창감이 삶의 본질이고 여행의 본질임을 알기 때문이다. 동행과의 무의미한 언어 교환과 상대의 체온에 대한 감지, 그것이 결코 외로움을 해소해 주지 않는다. 외로움을 충분히 느끼는 데 필요한 감각을 분산시켜 사람을 잠시 무디게 만들 뿐.

흔히 성격이 '외향'적이니 '내향'적이니 하는 것은 한 사람이 가진 에너지가 흐르는 방향을 말하는 것이다. 본디 외향적이라 주변에 사람이 있으면 자신을 돌보지 못하는 나지만 혼자 있는 시간만큼은 완벽하게 내향적이 된다. 한 학기를 휴학하고 본가에 내려와 지내면서, 그 누구와도 상의하지 않은 채 혼자 배낭 매고 훌훌 떠남으로써 나는 자신을 더 잘 알게 되었다. 나 자신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에 모든 에너지를 쏟았고 자기자신과 시간 보내는 일에 익숙해졌다.

소통은 타인과 하는 것만은 아니다. 자신의 내면과 소통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 자기자신과도 잘 놀 줄 알아야 한다. 내면의 소리를 듣기, 그것이 이 세계와 인간이 소통하는 방식이다.

조금 쓸쓸해도 괜찮다. 그래야 어른이 될 테니까. 생소한 장소에서의 생소한 기분이 좋다. 끝도 없이 해변을 걸었다. 관성처럼, 발이 멈추어지지 않았다.

 경포호 위로 휘영청 떠오른 달
 경포호 위로 휘영청 떠오른 달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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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비용
내일로티켓 54700원
경포행 버스 1100원
복숭아속살 주스 950원
강릉시내행 버스 1100원
찜질방, 담요 대여 7000원
식혜 2500원
합계(내일로티켓 제외) = 12650원

덧붙이는 글 | 더 많은 사진과 정보는 기자의 블로그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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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없는 곳이라도 누군가 가면 길이 되는 거라고 믿는 사람. <청춘, 내일로>, <교환학생 완전정복>, <다낭 홀리데이> 등을 쓴 여행작가. 제4회 오마이뉴스 대학생 기자상(2010), 청춘 기자상(2013) 등 수상. 2016~ 제주도 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