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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추암해수욕장 전경. 중간에 뾰족하게 솟아나온 바위가 촛대바위다.

 

늦은 새벽, 마지막 방송이 끝나고 치지직 하며 빈 화면을 내보내기 전에 틀어주는 애국가 '뮤직비디오'. 그 첫소절 영상의 뒷배경이 된 곳이 바로 동해 추암이다. 일출 조망지로 유명하고 드라마 <겨울연가>를 촬영하기도 한 곳이다.

 

삼척에서 추암까지 바로 가는 61번 시내버스는 하루에 일곱 번 밖에 다니지 않는데 시간을 못 맞췄다. 그냥 좀 걷기로 하고 추암입구까지 가는 21-1번 버스를 탔다. 오른편에 '천하절경 일출명소 추암'이라는 표지판이 등장하니 기사 아저씨가 여기서 내리라고 알려주신다. 폴짝 뛰어내린 곳에서 해수욕장까지 거의 삼십 분을 걸었다.

 

 추암 가는 길. 논길을 따라 거의 삼십 분쯤 걸었다.

 물가에서 유영하던 오리들

 물속을 유유히 헤엄치던 물고기들

 

추암은 촛대바위와 일출로 유명하지만 해수욕장에 들어서는 나를 먼저 맞아준 건 개울가의 특별한 생명들이었다. 건강해 보이는 오리들은 궥궥거리며 물가를 유영하고 맑은 물 속에는 조그만 물고기들이 헤엄친다. 부모와 함께 놀러 온 어린아이들은 물고기를 잡겠다며 소란을 부려보지만 고사리손 사이로 매끄럽게 잘도 빠져나간다.

 

 바닷물이 굉장히 차서 깜짝 놀랐다.

 

물이 이렇게 차다니! 놀라울 정도다. 7월 중순인데, 초여름 대천의 바닷물보다도 차다. 생각해보니 동해물에 이렇게 발을 담가 본 거, 처음이다. 동해는 물이 차다더니 정말이네. 금세 발목이 시려온다.

 

 추암 해변의 형제바위

 

해변에서 바라보면 먼저 눈에 드는 건 촛대바위가 아니라 형제바위라고 한다. 두 개의 바위가 나란한 게 꼭 의좋은 형제 같다.

 

 야트막한 산 위에서 내려다본 촛대바위. 바위 바로 왼쪽으로 보이는 나무들 사이에 해암정이 있다.

 

촛대바위를 가장 가까이서 보려면 해변 왼편으로 보이는 언덕으로 올라가 해암정을 찾으면 된다. 해암정이나 전망대에서 촛대바위를 내려다볼 수 있다. 나는 해변가를 따라 오른쪽으로 걷다가 나무계단을 따라 야트막한 산 위로 올랐는데, 그쪽에서도 기암괴석 뒤에 숨은 촛대바위를 볼 수 있었다. 이 기암괴석 사이로 떠오르는 일출이 그렇게도 장관이라는데. 촛대모양으로 솟은 바위 끝에 불타는 태양이 걸린 걸 보면 그 한 해가 얼마나 희망찰까?

 

갈매기의 꿈,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고 걷다 보니 어느새 시(市)의 경계를 넘었다. 촛대바위가 있는 추암해수욕장은 동해시에 속해 있고 바다 풍경을 감상하며 낮은 산을 하나 지나니 거기서부터는 삼척시 증산해수욕장이다.

 

 증산 갈매기마을
 
증산 해수욕장을 끼고 있는 어촌에는 '갈매기 마을'이라는 별칭이 붙어 있다. 삼척시의 시조(市鳥)가 갈매기란다. "가장 높이 나는 갈매기가 가장 멀리 본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끝없이 노력하는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의 정신을 시민정신으로 삼고자 하는 뜻이 담겨 있단다. 상업적인 광고판과 네온사인들로 번쩍이는 해수욕장들을 보다가 이렇게 작고 예쁜 어촌을 보니 적이 사랑스럽다.
 

 증산 갈매기마을의 담벼락들

 갈매기마을이라는 이름에 어울리게 담벼락마다 예쁜 갈매기 그림을 그려놓았다.

 <갈매기의 꿈>이 떠오른다.

 

"거북아 거북아 수로를 내어라, 내놓지 않으면 구워서 먹으리"

 

증산해수욕장과 추암해수욕장 사이에는 <삼국유사> 기이편에 나오는 수로부인의 전설이 얽혀 있는 '해가사의 터' 수로부인공원이 있다.

 

 <삼국유사>의 전설이 얽혀 있는 해가사의 터

 

신라 성덕왕 때 사람인 순정공은 절세미녀인 수로부인을 아내로 두고 있었다. 그가 강릉 태수로 부임하여 가던 중 이곳의 정자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해룡이 나타나 부인을 끌고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당황한 순정공에게 한 노인이 나타나 "옛 말에 뭇 사람의 입김은 쇠도 녹인다 했으니, 해룡인들 어찌 이를 두려워하지 않겠는가? 모름지기 경내의 백성을 모아 노래를 부르며 막대기로 땅을 치면 나타나리라"고 했다. 이에 순정공이 <해가(海歌)>를 지어 노인의 말대로 하니 용이 수로부인을 모시고 나와 도로 바쳤다고 전한다. <해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구호구호출수로(龜乎龜乎出水路) 거북아 거북아 수로를 내놓아라

 약인부녀죄하극(掠人婦女罪何極) 남의 아내를 앗은 죄 얼마나 큰가

 여약패역불출헌(汝若悖逆不出憲) 네 만약 어기고 바치지 않으면

 입망포략번지끽(入網捕掠燔之喫) 그물로 잡아서 구워 먹으리라"

 

그 때 이 노래를 지어 부른 곳이 해가사의 터다. 해가사터에는 순정공과 수로부인이 점심을 먹은 정자인 임해정(臨海亭)도 있다. 물론 후대에 지어진 것. 수로부인은 워낙에 아름다워 큰 못을 지날 때마다 자주 용에게 납치되곤 했단다. 미인을 아내로 맞아 모시기는 예나 지금이나 녹록지 않다.

 

 해가사터에서 바라본 추암 촛대바위

 

<해가>의 내용을 보니 고등학교 때 배운 <구지가(龜旨歌)>가 생각난다. <해가>보다 700여년 전 지어진 <구지가>는 무언가를 내놓으라고 거북이를 협박(?)하는 형태상 <해가>와 상당부분 일치한다.

 

"구하구하(龜何龜何) 거북아 거북아

 수기현야(首其現也) 머리를 내어라

 약불현야(若不現也) 내놓지 않으면

 번작이끽야(燔灼而喫也) 구워서 먹으리"

 

소요비용

삼척→추암입구 버스 1100원

추암→동해역 택시 5900원

합계 = 7000원

가락국의 탄생설화에 등장하는 구지가는 거북에게 자신들을 다스릴 왕을 내어달라는 고대인의 소망을 담은 노래다. 한자음대로 읽으면 그 리듬감이 상당히 재미있어서 이 가사를 응용하며 장난을 치곤 했다. 예를 들면 이런 식.

 

"규야규야 치킨현야 약불현야 번작이끽야!

규야규야(친구 이름) 치킨을 쏘아라 내놓지 않으면 구워서 먹으리!"

덧붙이는 글 | 더 많은 사진과 정보는 기자의 블로그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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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없는 곳이라도 누군가 가면 길이 되는 거라고 믿는 사람. <청춘, 내일로>, <교환학생 완전정복>, <다낭 홀리데이> 등을 쓴 여행작가. 제4회 오마이뉴스 대학생 기자상(2010), 청춘 기자상(2013) 등 수상. 현 제주도 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