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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들도 최저임금을 적용받을 당연한 권리가 있다.
▲ 이주노동자공동체 이주노동자들도 최저임금을 적용받을 당연한 권리가 있다.
ⓒ 고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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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자뷰, 기시감이라고도 하던가? 이주노동자 상담을 하다보면 늘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 많이 봐 왔던 현상, 늘 똑같은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문제를 일으켰던 회사와 업체 대표 혹은 똑같은 담당자에 똑같은 문제가 반복되는 것을 누누이 보며 이런 현상이 왜 없어지지 않는지 의아할 정도다. 그 중 최저임금 문제는 가장 많이 경험하는 일이다.

지난 28일 고용노동부는 2011년도 최저임금을 올해 시간당 4110원보다 5.1%(210원) 인상된 4320원으로 최종 결정했다. 이에 따르면 주 40시간제와 주 44시간제의 월급제 노동자는 각각 90만2880원과 97만6320원을 받게 된다.

해마다 반복되는 최저임금 논란을 보며, 최소한 기본, 최저임금만이라도 지켜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주노동자들이다.

여주에 있는 T사에 근무하는 밤방(25)은 외국인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온 지 지난 6월로 만 3년이 된다. T사는 폴리에틸렌 다용도 덮개, 즉 천막 제품을 생산하는 연매출 100억이 넘는 중소기업으로는 탄탄한 회사다.

회사는 밤방이 한국에 들어올 때 작성한 근로계약서를 무시하고, 입사하자마자 새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도록 강요했다. 계약서에 의하면 주 6일제 근무를 하되, 매월 고정급으로 급여를 받는다는 것이었다. 단 평일 근무는 10시간으로 하고, 매해 기본급을 인상한다는 조건이었다. 

그러나 실제 근무는 늘 12시간이었고, 근무시간은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똑같았다. 휴게시간은 식사시간으로 주어지는 30분 남짓한 시간이 전부였다. 그럼에도 밤방은 밤낮없이 한국인들이 기피하는 휴일근무도 마다하지 않고 일했던 덕택에 같이 한국에 왔던 친구들보다 월 평균 20만 원 정도 더 벌 수 있었다.

문제는 밤방이 친구들보다 더 많은 급여를 받는다고 하지만, 실제 일한 시간을 최저임금에 따라 계산해 보면 매월 50만 원 가량의 차액이 발생한다는 점이었다. 회사에서 근로계약서에 작성한 고정급을 기본급으로 하면, 그 차액은 훨씬 더 많이 난다.

밤방은 매달 이틀간의 휴무를 제외하고는 3년간 매일 같이 주야교대로 근무를 했다. 그는 잔업과 야근, 토요일과 휴일 근무 등을 포함하여 법정 최저임금 계산법에 따라 근무 시간을 계산하면 월 평균 455시간의 급여를 받아야 한다. 주6일제 노동자의 경우 226시간을, 주 5일제 노동자의 경우 209시간을 기본시간으로 하고 있는 점에 비춰보면 가히 살인적인 노동시간을 일한 셈이다.

그렇게 살인적인 노동을 강요당하면서도 묵묵히 일한 밤방에게 회사에서는 근로계약서 내용은 물론이고, 최저임금도 지켜주지 않고 있다. 그 일로 노동부에 진정을 한 밤방은 요즘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사측으로부터의 진정을 취하하라는 협박 때문이다. 진정을 취하하지 않으면 인도네시아로 돌려보내겠다는 말과 함께, 진정을 해도 받을 돈이 없을 것이라는 말로 진정 취하를 매일 같이 강요당하고 있다.

게다가 진정 사건 조사를 맡은 성남지방노동청 근로감독관은 사장이 출석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진정한 지 한 달이 다 되도록 아무런 소식이 없다. 그래도 밤방은 억울해서라도 포기하지 못하겠다고 한다. 그간 제대로 받지 못한 차액만 해도 일 년 이상을 일해야 벌 수 있는 금액인데다, 자신이 무슨 악덕한 일을 한 것처럼 취급하는 회사측 사람들로 인해 감정이 상할만큼 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일이 밤방만이 겪고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기시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밤방은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최소한 기본만이라도 지켜달라는 것이다. 계약서대로만이라도, 혹은 최저임금만이라도 지켜 달라는 것이다.

매년 최저임금 논란을 보며, 그 약속만이라도 제대로 지켜지기를 고대하는 이들에게 우리사회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제대로 제공해 주지 않고 있는지 되씹게 된다. 그들은 한국사회가 함부로 막 대해도 되는 존재가 결코 아니다. 죽어라도 일 시켜놓고 최저임금도 주지 않는 사장님들에게 그들은 이렇게 소리지르고 있는지 모른다.

"사장님, 최저임금만이라도 지켜 주세요!"


태그:#최저임금, #이주노동자, #근로감독관, #고용노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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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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