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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유러피언드림 세 번째 이야기는 바로 볼로냐 경제모델의 비밀이다. 인구 40만이 채 안 되는 이탈리아 북동부 중소도시 볼로냐. 1970년대 경제위기와 불황 속에 한때 빈민의 도시로 전락하기도 했던 곳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삭막하고 치열한 경쟁 대신 협동과 연대의 정신이 오늘날 볼로냐를 이끌었다. 일부 소수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를 가진 한국경제에도 볼로냐가 던지는 시사점은 많다.

경제전문가와 협동조합 연구자 등으로 구성된 볼로냐 취재팀은 농업을 비롯해 소비자, 건설 등 각 분야 협동조합과 기업 등을 방문한다. 또 사회경제의 권위자인 스테파노 자마니 교수(볼로냐 대학) 등 주요 전문가들의 심층 인터뷰도 진행할 예정이다. [편집자말]
취재정리 : 정태인 기자
공동취재 : 오마이뉴스 <유러피언 드림 : 이탈리아편> 특별취재팀

소박하다. 내가 다녀본 1인당 GDP 4만 달러 이상의 유럽 나라들, 스웨덴이나 핀란드에 다시 온 듯하다. 해가 두 개 있다고 보면 된다는 아내의 조언이 무색한 여름, 북부 이탈리아의 날씨는 선선하다. 일 주일 전만 해도 40도에 눅눅했다는데 우리가 도착하는 순간부터 한국의 초가을이다.

26일 <오마이뉴스> 유러피언 드림 취재팀은 아침 일찍 에밀리아 로마냐 주(州)의 리유니테(Riunite), 와인 협동조합으로 향했다. 볼로냐 시(市)를 벗어나는 순간 나는 런던의 교외에 온 듯한 착각에 빠졌다. 교외 풍경도 풍경이지만 도로 곳곳에 놓인 라운드 어바웃(Round-about, 이탈리아에서는 그냥 로터리라고 부른다고 한다) 때문이다.

라운드 어바웃. 굳이 우리말로 표현하자면 '로터리' 정도다. 라운드 어바웃은 교차로(3거리든, 4거리든, 7거리든)에 원형 도로를 만들고 이 도로를 따라 돌다가 운전자가 가고 싶은 방향으로 빠져 나가는 방식을 말한다. 운전자 서로 신뢰만 있으면, 일반 신호등체제보다 훨씬 교통체증을 줄일수 있다는 것이다.
 라운드 어바웃. 굳이 우리말로 표현하자면 '로터리' 정도다. 라운드 어바웃은 교차로(3거리든, 4거리든, 7거리든)에 원형 도로를 만들고 이 도로를 따라 돌다가 운전자가 가고 싶은 방향으로 빠져 나가는 방식을 말한다. 운전자 서로 신뢰만 있으면, 일반 신호등체제보다 훨씬 교통체증을 줄일수 있다는 것이다.
ⓒ virginiadot.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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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드 어바웃이란 교차로(3거리든, 4거리든, 7거리든)에 원형 도로를 만들고 이 도로를 따라 돌다가 운전자가 가고 싶은 방향으로 빠져 나가는 방식을 말한다.
도로의 교차로를 통과하는 방법에는 몇가지가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교통신호체계가 첫 번째이다. 파란불이 들어오면 가고 빨간 불이 들어오면 멈추는 꽤나 안전한 방법이다.

그러나 인기척조차 없는 새벽에도 빨간 불 앞에 멈춰 서 있어야 하는 비효율이 도사리고 있다. 눈치로 신호를 어기는 것은 비도덕적 인간이 될 뿐 아니라 엄청난 사고를 유발할 수도 있다.

또 하나의 방법으로 선착-선발(first come, first go)의 규칙이 있다. 이 역시 합리적 방법이다. 그러나 교차로 상하, 좌우로 차가 길게 늘어선 경우에는 어느 차가 먼저 왔는지 알 도리가 없다. 어쩔 수 없이 한 대, 한 대 교대로 통과할 수밖에 없다. 스탠포드 대 교내에서 목격한 광경이다. 천재와 바보는 종이 한 장 차이다.

교통신호등 없애는 에밀리아 로마냐, 왜?

물론 아무 신호 없이 알아서 통과하는 방법도 있다. 주류 경제학에서 상정하는 대로 완전 정보가 있다면, 그리고 차가 초고속이라면 0.1초의 차이를 두고도 교차할 수 있다. 물론 현실은 다르다. 툭 하면 대형 사고가 날 것이고 어쩔 수 없이 교통신호 규칙에 동의한 것이다(시장에 규제가 필요한 이유도 사실은 이 때문이다).

이런 사정에 비춰 보면 '라운드 어바웃'은 가장 효율적이며 또한 인간적인 제도이다. 라운드 어바웃의 규칙은 간단하다. 왼편에 있는 차가 무조건 우선이다. 만일 당신의 차가 원 안에 들어선 상태라면 당신의 차는 바깥에 있는 모든 차에 대해서 먼저 통행할 우선권을 가진다.

만일 원 안 가까이 차가 없다면 당신은 원 안에 진입할 수 있다. 빠져 나가야 할 곳을 지나쳤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한바퀴 더 돌아서 원하는 곳으로 나가면 그만이다. 차가 없는데도 교통신호를 기다리는 비효율도 없고 규칙만 지킨다면 사고 위험도 전혀 없다.

그런데 왜 이 좋은 제도를 다른 나라에선 좀체로 찾아 볼 수 없을까? 상대가 규칙을 지킬 것이라는 신뢰(trust)는 이 제도가 부드럽게 돌아가게 하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이탈리아 볼로냐 도심 한가운데 우뚝솟은 두개의 탑이 있다. 아시넬리(오른쪽)와 가리센디는 이 도시의 상징물이다. 이곳을 중심으로 조그마한 골목길사이로 볼로냐 대학을 비롯해 각종 작은 공방들이 즐비해 있다.
 이탈리아 볼로냐 도심 한가운데 우뚝솟은 두개의 탑이 있다. 아시넬리(오른쪽)와 가리센디는 이 도시의 상징물이다. 이곳을 중심으로 조그마한 골목길사이로 볼로냐 대학을 비롯해 각종 작은 공방들이 즐비해 있다.
ⓒ 김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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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효율적이고 인간적인 교통체계인 '라운드 어바웃'

'빨리 빨리'가 습성이 되어 있다거나 눈치 보고 재빨리 끼어드는 게 미덕인 사회에서 라운드 어바웃은 온갖 사고의 진원지가 되고 말 것이다. 유럽 국가에선 영국과 프랑스 등이 이 부분에선 앞선 나라다. 물론 영국에서 성질 급한 젊은이들이 라운드 어바웃에서 곧잘 사고를 일으켜서 폐쇄되는 곳도 있다.

한국에도 울산시청 앞 네거리 등 몇군데 라운드 어바웃이 있다. 하지만 이 제도에 꽤 익숙하다고 할 수 있는 나는 들어가는 시점과 나가는 시점을 잡지 못해서 공포에 떨어야 했다. 상대가 어떻게 행동할지 도무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 에밀리아 로마냐에 그 '라운드 어바웃'이 있다. 취재팀의 현지 코디네이터를 맡은 김현숙씨는 "원래부터 있었던 것도 아니고 최근 몇 년 동안 교통신호등을 로터리로 바꾸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볼로냐 시를 벗어나서 고속도로에 이르기까지 신호등은 단 하나도 없었다. 물론 교통체증을 겪지도 않았다.

에밀리아 로마냐는 자기 사회에 가장 어울리는 제도를 발견한 것이다. 이번 '볼로냐의 기적'이라는 이름의 <유러피언 드림> 취재과정에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이 바로 에밀리아 로마냐는 '신뢰의 사회'라는 점이다.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론으로 유명한 미국 하버드대 교수 로버트 퍼트넘도 '신뢰'가 사회적 자본의 핵심이며, 이를 근거한 사회가 바로 에밀리아 로마냐라고 했다. 그의 주장에 대해 볼로냐 사람들은 퍼트넘 교수를 아예 '에밀리아 로마냐의 아들'이라고 부를 정도다.

이탈리아 공산당을 만든 안토니오 그람시가 진지전을 구상한 것도 이 지역을 유심히 지켜봤기 때문이다. 에밀리아 로마냐 주(州)와 볼로냐 시(市)의 놀라운 경쟁력의 비결은 바로 신뢰 그 자체에서 비롯됐다. <오마이뉴스> 유러피언 드림 취재팀이 이곳을 찾는 이유이기도 하다. 도대체 신뢰는 어떻게 쌓이는 것일까? 이것이 라운드 어바웃의 원리이고 또한 에밀리아 로마냐의 비밀이다.

오마이뉴스 <유러피언 드림 : 이탈리아편> 특별취재팀: 현지 취재 : 김종철 기자(팀장) 이승훈 기자, 편집 자문 : 정태인 경제평론가, 신성식 경영대표(아이쿱 생협), 정원각 사무국장(아이쿱 생협연구소)


태그:#유러피언드림, #에밀리아로마냐, #볼로냐, #라운드어바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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