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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한국전쟁 발발 직후 대전형무소 재소자 사건과 관련, 20일 동안 3차례에 걸쳐 4900여 명이 대전 산내 골령골에서 군과 경찰의 불법행위에 의해 집단 희생됐다고 최근 밝혔습니다. 또 1951년 1·4후퇴 시기에도 대전 산내에서 최소 수백 명이 처형된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대전충청지역 형무소(대전형무소, 공주형무소, 청주형무소) 재소자 희생 사건을 진실화해위원회의 '진실' 규명 보고서를 토대로 재조명합니다. [편집자말]
 매년 대전형무소 옛터에서 열리는 인민군에 의해 희생된 우익인사들을 추모하는 자유수호애국지사 합동위령제
 매년 대전형무소 옛터에서 열리는 인민군에 의해 희생된 우익인사들을 추모하는 자유수호애국지사 합동위령제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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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신 아버지 생각보다 병든 어머니와 어린 동생들과 살아갈 일이 캄캄했다. (중략) 아버님이 잡혀가실 때 입으셨던 옷가지와 남아 있던 사진을 묘소에 묻던 날 어머님은 크게 통곡하셨다. 그동안 자식들 앞에서 눈물 한 방울 보이시지 않았던 어머님의 통곡에 온 동네사람들이 모두 울며 같이 통곡하였다." (인민군에 의해 대전형무소에서 희생된 유가족 김정희씨의 수기 중에서)

1950년 6월 말부터 이듬해 초까지 7개월 동안 대전형무소에 수감됐다가 희생된 사람들의 수는 최소 7500여 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중 6000여 명은 남한의 군인과 경찰에 의해, 나머지는 인민군에 의해 희생됐다. 희생자 유가족들에게 닥친 슬픔과 시련은 죽인 자가 누구냐를 떠나 천추의 한으로 응어리졌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이후 두 주검을 대하는 정부의 태도는 천양지차였다.

대전형무소, 반공 사적지로 탈바꿈

 대전형무소 옛터에 1985년 건립된 '반공애국지사 추모위령비'. 전두환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인민군에 의한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건립됐다.
 대전형무소 옛터에 1985년 건립된 '반공애국지사 추모위령비'. 전두환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인민군에 의한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건립됐다.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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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12월, 충남도는 거도적으로 '애국지사 합동장의 추진위원회'를 구성하느라 분주했다. 전쟁이 소강상태에 접어들자 그동안의 상흔을 어루만지는 여유를 갖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그 명칭에서 드러나듯 추모 대상은 인민군 및 지방좌익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로 제한됐다.

이듬해 3월, 대전시 용두동 용두산 기슭에 지사총(1200평)이 설치됐다. '전국 최초의 반공애국지사총'이었다. 희생자 유해(1557위)는 대전형무소 주변과 중촌동 언덕 등에서 발굴·수습돼 화장 후 안장됐다.  

"어희(오희)! 슬프도다. 형제 서루(서로) 내란에 다투어 무수한 인정이 생명을 잃었거니, 이곳 이 둘레에 달 밝든 팔월 하루저녁에 시여가신 형제의 가슴에 박힌 탄자(彈子, 총알)는 이 가슴을 다시도 이다지 쓰라리게 하는고……." (1952년 4월 거행된 합동위령제에서 낭독된 '애국지사합동위령제문'에서)

1980년대 초에는 유가족을 중심으로 '지사총 이전 성역화 사업'이 추진됐다. 1995년 3월 이전추진위가 결성됐고, 1996년 6월 대전시 사정공원에서 '반공애국지사총 이전 안장식'이 엄수됐다.

이곳 애국지사총에서는 유족회 주관으로 매년 6월 6일 현충일을 기해 합동추모제가 거행되고, 10월 30일엔 자유총연맹 주관으로 추계 추모제를 지내오고 있다. 또 추모제에는 대전시장, 관할 구청장, 경찰서장 등 지역 기관장들이 모두 참석하고 있다.

[인민군에게 희생된 이들] 추모탑·표창장에 일부 '국가유공자' 인정까지

1986년 8월에는 대전시 중구 사정동에 '반공건국청년운동순국기념탑'을 건립하고 전쟁 당시 순국한 지역우익인사 1403위의 위패를 봉안했다. 또 해마다 9월 28일을 기해 대한민국건국회 주관으로 기념탑 광장에서 합동위령제를 지내고 있다.

1984년 대전형무소 옛 자리에는 한국자유총연맹대전지부와 자유회관이 들어섰다. 이는 대전교도소 이전 당시 정부가 지역의 반공사적지 조성을 위해 옛 형무소 일부를 양여했기 때문이다. 회관 부지 안에는 반공애국지사 영령추모탑과 옛 형무소를 상징하는 감시대, 인민군에게 희생당한 대형 우물이 보존돼 있다. 

반공애국지사 영령추모탑은 1985년에 건립됐다. 이 추모위령탑은 1984년 6월 제2회 교정대상 수상자 다과회에서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내린 '6·25 당시 공산당에 의해 집단 학살된 장소를 찾아내 추모 기념물을 건립하는 방안을 강구하라'는 지시에 의한 것이었다. 현재 천안시를 비롯해 충남 15개 시·군에도 위령탑, 충혼탑, 충혼각, 반공위령탑 등의 이름으로 40여 개의 관련 희생자 추모시설 또는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정부는 1963년 10월 12일 김현철 내각수반의 이름으로 대전형무소에서 인민군 및 좌익에게 학살된 희생자들의 유족에게 '반공전선에서 고귀한 생명을 바친 그 숭고한 반공정신'을 기리는 표창장을 수여했다. 1999년에는 유족 가운데 최초로 김희자(당시 64)씨가 국가보훈처로부터 국가유공자 유족증을 발급받은 데 이어 2000년 1월 유족 구창근씨가 국가유족자로 인정받았다.  

[군·경에게 희생된 이들] '빨갱이 가족'-연좌제... 50년간 사건 은폐한 미국 

반면 군·경과 우익단체에 의해 희생된 대전형무소 좌익 인사 및 보도연맹원, 부역 혐의자들은 사실 자체가 역사에서 지워졌다. 정부는 군·경에 의해 희생된 유가족에게 재갈을 물렸다. 강화된 반공법과 국가보안법 때문에 유가족들은 '빨갱이 가족'으로 몰릴까 두려워 고향을 등지거나 자녀들에게도 죽음의 진상을 함구했다. 그런데도 면 서기조차 할 수 없게 만든 연좌제의 꼬리는 가족들에게 '입조심', '몸조심'을 유언으로 남기게 했다.   

"형이 대전 산내에서 희생된 후 빨갱이 가족이라는 손가락질을 받고 이를 견디다 못해 아버지가 목을 매 자살했다." (진실화해위원회 신청인 진술조서 중에서)  

미국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미 국무성장관인 애치슨은 남한 군·경에 의한 대전형무소 산내학살 직후인 1950년 8월 25일, 무초 주한 미 대사에게 '한국군 고위층으로부터(대전 산내 학살을) 전적으로 부인하는 성명서를 받아서 보내 달라'는 전보통신문을 보냈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은폐에 나선 것이다.

1953년 당시 마크 클라크 유엔군사령관과 롯지 미 유엔대사는 유엔 총회에 제출한 '공산주의자들의 만행이 어떠한 것인가'라는 제목의 보고서 및 연설을 통해 공산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사건의 대표적 사례로 1950년 9월의 대전형무소 집단 학살 사건을 꼽았다. 하지만 이들은 남한 정부가 주도하고 미군이 방조한 같은 해 7월 대전형무소 대학살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1950년 대전 산내 골령골에서 벌어진 대전형무소 수감 정치범 및 보도연맹원 집단 학살 장면. 미 극동군사령부 주한연락사무소 총책임자인 에버트 소령이 촬영했다. 이 사진은 50년간 비밀문서로 분류돼 묶여 있다가 지난 1999년 말 해제됐다.
 1950년 대전 산내 골령골에서 벌어진 대전형무소 수감 정치범 및 보도연맹원 집단 학살 장면. 미 극동군사령부 주한연락사무소 총책임자인 에버트 소령이 촬영했다. 이 사진은 50년간 비밀문서로 분류돼 묶여 있다가 지난 1999년 말 해제됐다.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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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부는 군·경에 의한 대전형무소 산내사건이 담긴 현장사진(1950년 미 극동군사령부 주한연락사무소 총책임자인 에버트 소령 촬영)과 보고문(미 대사관 소속 육군무관 에드워드 중령의 '한국에서 정치범 처형' 제목의 A-1 보고문, 1950년 9월 23일)을 50년 동안 1급 기밀문서로 묶어 놓았다(A-1은 '가장 신뢰할 만한 것'에 해당하는 등급이다).   

지난 1999년 말, 미국의 기밀문서 해제로 '죽음의 블랙박스'가 열렸지만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상당수 희생자 유해는 이미 훼손된 뒤였고, 이후에도 암매장지 한복판에 건축공사 허가가 내려져 많은 유해가 훼손됐다. 2005년 진실 규명과 과거사 정리를 위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발족해 유해 발굴을 시작했지만 이곳 대전 산내 골령골만큼은 예외였다. 해당 유해 매장지의 토지소유주는 진실화해위에 과다한 금액으로 토지를 매입할 것을 요구하며 유해 발굴을 거부했다. 유가족들은 땅만 헤집으면 쏟아져 나오는 유골 밭을 그대로 둔 채 산기슭에 있는 30여 구의 유해를 발굴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유골 밭 그대로 남겨둔 채 '진실화해위' 활동 종료

대전시장과 대전동구청장은 산내희생자유족회의 거듭된 요청에도 매년 위령제 참석 및 추도사 요청을 거부하고 있다. 또 더 이상의 현장 훼손 방지를 위한 안내판 설치마저 외면하고 있다.

지난 7월 2일, 진실화해위는 대전형무소 수감자 등이 군·경에 의해 위법하게 대전 산내골령골에서 집단 살해됐다며 ▲국가의 공식 사과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위령사업 지원 ▲재발 방지를 위한 전쟁 및 비상사태 시 민간인 보호조치 규정 정비 등을 권고했다.
   
하지만 진실화해위는 지난 6월 말 아무런 기약 없이 사실상 활동을 종료했다. 2010년 2월 초 현재, 진실화해위가 이송한 전체 권고사건 200건 중 이행 완료된 사건은 12건으로 6%에 그쳤다. 대전형무소 산내 골령골 살해사건에 대한 국가의 공식 사과도 아직까지 이행되지 않고 있다.

 한국전쟁 발발 직후 군과 경찰에 의해 대전 골령골에서 집단 희생된 희생자들의 유해가 지난 7월 15일 빗물에 잠겨 있다.
 한국전쟁 발발 직후 군과 경찰에 의해 대전 골령골에서 집단 희생된 희생자들의 유해가 지난 7월 15일 빗물에 잠겨 있다.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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