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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정상에 올랐지만 백록담을 볼수 없었습니다. 안개가 많이 끼어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라산 정상에 있는 그림으로 그린 백록담을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내려와야 했습니다. 한라산 정상은 날씨가 항상 그래서 백록담이 잘 나타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 그림으로 본 백록담 한라산 정상에 올랐지만 백록담을 볼수 없었습니다. 안개가 많이 끼어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라산 정상에 있는 그림으로 그린 백록담을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내려와야 했습니다. 한라산 정상은 날씨가 항상 그래서 백록담이 잘 나타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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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중순. 저는 업체로부터 정리해고되었습니다. 현대차 울산공장 사내 하청업체에 10년을 다녔는데 하루 아침에 일자리 잃고 나니 황당했습니다. 새로운 공장을 짓는다며 공장을 뜯어 낸다고 했습니다. 1년간 공사를 한다고 했습니다. 정규직은 1년간 유급휴직을 주고 우리 비정규직은 모두 정리해고되고 말았습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가족과 함께 먹고 살아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무엇을 해보고자 시도도 해보았지만 어느것 하나 저에겐 무리였습니다. 손기능이 필요했고 지식도 있어야 했습니다. 평생을 그냥 단순노동만 해왔던 저로서는 다른 일자리 찾기가 쉽잖았습니다. 3개월 동안 골머리만 썩혔습니다.

"우리 제주도 여행이나 한번 다녀 올까요?"

아내는 결혼 초부터 제주도 여행을 그렇게도 가보고 싶어 했습니다. 결혼한 지 16년 넘게 살아오는 동안도 제주도 제주도 하면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렇게도 가보고 싶어하는 제주도 좀 무리해서라도 여행시켜주고 싶었습니다.

지난 10년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러 다니면서 '직장에서 짤리면 어쩌나'하고 두려움 속에 생활했습니다. 그러다 정리해고를 덜커덕 당하고 나니 이번엔 무엇을 해서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하나 하는 걱정이 마음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여기저기 또 하다 못해 제주도까지 가서 직업을 알아 보았으나 나이는 많고 기능은 없다면서 받아주는 곳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3개월간 골머리만 앓았습니다.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아무 생각없이 가족과 함께 제주 여행이나 해보고 싶었습니다. 홀가분하게 제주를 여행하고 나면 뭔가 새로운 돌파구가 생길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제주여행을 가자고 제안했고 아내와 아이들도 흔쾌히 승락했습니다.

길 입구엔 공사 중인지 어수선 했습니다. 컨테이너에 임시 관리소가 있었습니다.
▲ 한라산 탐방로 성판악 길 입구 길 입구엔 공사 중인지 어수선 했습니다. 컨테이너에 임시 관리소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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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우선 가장 저렴하게 가고 오는 항공편을 알아 보았습니다. 그리고 예매했습니다. 울산서 김해공항 가는 방법도 알아보았습니다. 다행히 신복로타리라는 곳에서 하루에 몇 차례 김해공항행 직행버스가 있었습니다.

여행 기간은 일주일을 잡았습니다. 우리가 가족이 된 이후 가장 긴 여행입니다. 제주도를 한바퀴 돌아보자는 취지였습니다. 버스로 이동을 하고 찜질방에서 하루밤 보내기로 했습니다. 제주여행정보를 수집하고 만반의 준비를 해나갔습니다. 걷고 버스타고 다녀야 하므로 짐보따리는 최대한 가볍게 하고 그날 옷은 찜질방서 빨아 말려 다음날 다시 입기로 했습니다.

한라산을 오르면서 가끔 이런 안내판이 있었습니다. 어느 정도 올라 왔는지 어느 정도 갈길이 남아 있는지 알수 있어 좋았습니다.
▲ 현위치 안내판 한라산을 오르면서 가끔 이런 안내판이 있었습니다. 어느 정도 올라 왔는지 어느 정도 갈길이 남아 있는지 알수 있어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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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통해 최대한 저렴한 항공편을 알아보고 계약하니 왕복 45만 원 정도가 되었습니다. 일주일 경비는 왕복 비행기 삯까지 합쳐 100만 원을 잡았습니다. 그러니까 55만 원으로 일주일 버텨야 합니다.

짐보따리를 한사람이 가지고 다니면 무거우니 작은 가방에 각자 자기 것을 짊어지고 다니기로 했습니다. 최대한 가볍게 한다고 했지만 각자 만든 짐보따리 가방은 빵빵하게 부풀어 있었습니다. 더 빼자고 하니 아내는 일 주일간 지낼 물량이니 더 뺄 게 없다고 했습니다. 할 수 없이 각자 빵빵한 작은 가방을 짊어지고 다니기로 했습니다.

제주 가족여행 첫 날

지난 7월 21일 수요일 오후 1시경 집에서 출발했습니다. 시내버스를 타고 신복로타리를 가니 마침 김해공항 가는 버스가 왔습니다. 김해공항에 도착하니 오후 3시경이 되었습니다. 공항 내에서 현악4중주 연주를 하고 있었습니다. 우린 잠시 시간이 남아 음악을 감상했습니다.

오후 4시 30분, 제주 가는 비행기 탑승 수속을 밟고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비행기가 뜨고 제주에 도착하니 오후 5시 30분경이었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가장 간단하게 정하는 방법은 관광안내소에 가서 알아보는 것이었습니다. 잠시 쉬려고 앉아 있으니 렌터카 업체사람이 다가 오더니 렌터카 빌려 여행하라더군요. 운전면허증은 있었지만 자꾸 귀찮게 하기에 한마디 했습니다. 귀에다 대고 속닥속닥.

"저 미안한데요. 면허증이 없어요"

그렇게 말했더니 더이상 아무 말 없이 스르르 사라졌습니다. 잠시 쉬고는 공항에 있는 관광안내소에 갔습니다.

"여기서 가장 가까운 찜질방이 어디 있을까요?"

안내원은 친절하게도 여러가지 여행 정보를 알려 주었습니다. 용담이라는 곳에 있는 찜질방도 알려 주었고 다음날 한라산을 올라갈 예정이라고 하니 버스 타고 가서 어떻게 올라가야 하는지도 알려 주었습니다. 그렇게 여행정보를 수집하고 공항을 벗어 났습니다.

알려준 대로 밖에 나가서 500번 제주대 가는 버스를 탔습니다. 용담정류장에서 내려 용담해수사우나로 갔습니다. 그곳에도 구경할 곳이 많았습니다. 제주도는 가는 곳마다 구경거리가 있다더니 그게 맞는 말인가 봅니다. 우리 가족은 용담해수사우나가 보이는 가까운 식당에서 간단히 저녁을 먹고 들어 갔습니다. 목욕도 하고 찜질도 즐기면서 놀다가 내일 일정을 위해 자리를 잡고 잠자리 들었습니다.

성탄악 길을 따라 한라산 오르는 내내 이곳이 유일한 마실 물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더 꼭대기로 올라가도 냇물처럼 흐르는 물은 있었습니다. 아마도 백록담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 같았습니다. 목마를때 그물도 마셔 보았습니다.
▲ 이곳 외에는 더이상 마실 물이 없습니다. 성탄악 길을 따라 한라산 오르는 내내 이곳이 유일한 마실 물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더 꼭대기로 올라가도 냇물처럼 흐르는 물은 있었습니다. 아마도 백록담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 같았습니다. 목마를때 그물도 마셔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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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가족여행 둘째 날

아침에 일어나 오늘 일정에 대해 가족간 대화를 했습니다. 내린 결정은 한라산 올라갔다온후 오늘 밤도 다시 용담해수사우나서 지내자는 것. 오늘 저녁에 다시 오겠다고하니 짐을 보관해 준다고 했습니다. 짐을 찜질방에 그냥 두고서 홀가분하게 밖으로 나왔습니다. 첫날 한라산을 다녀오기로 한 것은 아내의 주문 때문입니다.

아내는 "누구에게 들었는데 한라산을 올라갔다 오지 않고는 제주도 여행을 다녀온 게 아니다더라"라고 해서 한라산부터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동네 산길 걷는것도 힘들어 하는 아내가 왕복 20km 다 되어 가는 거리를 걷겠다니 참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대단한 각오를 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제주시외터미널로 갑시다."

마침 택시가 왔기에 그렇게 말하니 제주도가 고향인 개인택시 운전기사님은 말했습니다.

"어디 가시는데요?"

성판악으로 한라산을 올라갔다 내려 올 것이라고 말했더니 다시 말했습니다.

"네사람이 버스 타나 택시 타나 비슷해요. 택시 타고 가세요. 버스 타고 가면 들르는 곳이 많아서 시간이 많이 걸릴 겁니다. 택시 타면 곧장 가니 시간도 절약되고 좋아요. 10시 전까지 가야지 안 그러면 한라산 정상에 갔다올 수 없어요"

택시기사 말을 듣고 보니 시간이 촉박한 듯하였습니다. 우린 한라산을 처음 타보는지라 상황이 어떻게 될지 예측할 수 없었습니다. 가족이 모두 택시 타고 가자고 의견이 모아져서 택시 타고 가기로 했습니다. 택시는 5.16도로를 달려 성판악으로 향했습니다.

성판악은 5.16도로 중간지점에 있었는데 저는 왜 5.16도로라 하는지 궁금해서 택시기사님께 물어 보았습니다.

"박정희가 61년 쿠데타에 성공한 후 전국에 있는 깡패를 많이 잡아 들였잖아요. 그 깡패들을 강원도 길과 제주도 길 닦는 데 동원 시켰어요. 그때 군인들이 강제 노동을 시켜 많이 죽었어요. 이 길이 바로 그때 만들어진 길입니다. 그래서 5.16 도로라 합니다."

그런 역사의 아픔을 가진 도로라는 사실을 제주도 가족여행 와서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택시라 그런지 성판악 등산길 입구에 빨리 도착했습니다. 버스비랑 비슷하다더니 2만 원이나 되더군요. 좀 비싼 이동비를 지출했으나 5.16도로에 대한 사실을 알게 된 비용이라 생각했습니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였고 시간이 있어 입구 식당에 들어가 간단히 아침을 먹고 쉬면서 먹을 간식거리도 샀습니다. 가게 주인은 한라산엔 비가 자주 내린다며 비옷을 준비하라고 해서 2개를 샀습니다. 한장에 3000원이나 했어요.

진달래 대피소라 이름하고 있었습니다. 성판악 입구서 7.3키로 올라간 곳에 있었습니다. 간단한 간식거리를 팔고 있었고 옆에 화장실도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13시전까진 올라가야지 이후엔 한라산 등반 통로를 막아 버립니다. 그 이후엔 위험요소 때문에 못올라가게 하고 있었습니다.
▲ 한라산 가는 길 중턱에 있는 대피소 진달래 대피소라 이름하고 있었습니다. 성판악 입구서 7.3키로 올라간 곳에 있었습니다. 간단한 간식거리를 팔고 있었고 옆에 화장실도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13시전까진 올라가야지 이후엔 한라산 등반 통로를 막아 버립니다. 그 이후엔 위험요소 때문에 못올라가게 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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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한라산을 올라 갈수 있는 길은 5.16도로 중간지점서 시작되는 성판악 길과 1100도로 중간지점으로 오르는 영실 길, 어리목 길, 제주시 관음사로 가는 길이 있었습니다. 그중에 알아보니 성판악 길은 좀 긴 길이지만 가족이 함께 다녀 올수 있는 원만한 길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성판악 길을 택했고 그곳으로 올랐습니다.

나중엔 좀 가파른 길이 있었지만 산책을 겸할 수 있는 멋진 길이 이어져 있었습니다. 중간쯤에(성판악 입구에서 걸어 5.3Km 올라가면 있음) 먹는 물이 나와서 그것을 먹고 다시 걸었습니다. 낮 12시 30분쯤 대피소에 도착했습니다. 간단하게 먹을수 있는 것도 팔고 물도 팔고 있었고 화장실도 있었습니다. 산길은 그다지 덥지 않았습니다. 흐린 날씨 덕분도 있었지만 높게 자란 나무들이 햇살을 막아 주어서 걷는 길은 어두울 만큼 숲이 우거져 있어 바람이라도 불면 시원했습니다.

"자 빨리 올라 가세요. 오후 1시 이후엔 한라산 오르는 문을 닫습니다."

산을 오르는 중간중간에 13시 전까지 대피소를 통과해야 한다는 문구가 쓰여 있기에 그게 무슨 뜻인가 몰랐습니다. 대피소를 관리하는 분도 그런 말을 했습니다. 이유를 들어보니 오후 1시가 넘어 올라가게 되면 내려가다 날이 어두워지기 때문에 꼭 오후 1시까지는 대피소를 통과해야 한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간단히 속을 채우고 12시 55분에 대피소를 지나 다시 한라산 오르는 길을 걸었습니다. 길목엔 문지기가 지키고 있었고 오후 1시 이후엔 문을 닫는다고 계속 말하고 있었습니다.

오르는 도중 간혹 비가 오락가락할 뿐 더이상 많이 내리지는 않았습니다. 한라산으로 올라 갈수록 더운 날씨가 시원하게 바뀌었습니다. 성판악 입구에서 한라산까지는 9.6Km였습니다. 대피소에서 한라산까지 남은 구간 거리가 2.3Km라고 하니 우린 대피소까지 7.3Km 걸어온 것입니다. 길은 잘 닦여 있었습니다. 어떤 곳엔 네모 통마무를 깔아서 길을 만들었고 오르막엔 나무로 계단을 만들어 두었습니다.

한라산 백록담 가까이엔 이렇게 나무계단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안개가 많이 끼고 바람이 불어 추웠습니다.
▲ 성판악 방향 내려가는 길 한라산 백록담 가까이엔 이렇게 나무계단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안개가 많이 끼고 바람이 불어 추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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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정상에 오를수록 날이 추워지고 안개가 자욱했습니다. 바람도 세차게 불었습니다. 12시 55분에 대피소서 출발했는데 14시 30분경이 되어서야 한라산 정상인 백록담에 도착했습니다. 안개가 너무 많이 끼어서 앞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난간에 있는 백록담 그림을 보며 만족해야 했습니다.

"난 한라산 7번이나 올라 왔는데 아직 한번도 백록담 속을 못봤어. 오는 날마다 이렇게 안개가 끼어 있네."

옆에 서있던 한 여행자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한라산 백록담 속 풍경은 참 보기드문가 봅니다.

"지금 바로 내려가야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내려 갑니다. 서두르세요."

백록담을 지키는 산지기가 말했습니다. 우리 가족은 잠시 구경하다가 바로 한라산을 내려 왔습니다. 성판악 입구에 다 내려와 시간을 보니 18시 30분이었습니다. 잠시 앉아 쉬다가 서귀포서 오는 시외버스타고 제주시 시외 터미널에 내려 택시로 어제 지냈던 찜질방으로 갔습니다. 우리 가족은 모두 지쳤는지 목욕후 저녁먹고는 찜질방 구석으로가서 잠들었습니다. 다리도 아프고 힘들었습니다.

안개가 자욱해서 앞이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날씨도 산 아래랑 달라서 많이 서늘했습니다. 백록담을 보고 싶었지만 안개 때문에 볼수가 없어 아쉬웠습니다.
▲ 한라산 정상 안내소 안개가 자욱해서 앞이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날씨도 산 아래랑 달라서 많이 서늘했습니다. 백록담을 보고 싶었지만 안개 때문에 볼수가 없어 아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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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가족여행 셋째 날

피곤했던지 모두 오전 10시경 일어났습니다. 씻고 아침 먹고 시외터미널로 갔습니다. 아이들이 해수욕장 가자고 했습니다. 처음엔 조천읍, 성산읍, 남원읍 쪽으로 돌아서 서귀포 중문을 지나 화순, 애월 쪽으로 해서 한바퀴 돌아 보려고 했으나 방향을 바꿔 곽지 해수욕장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오늘 저녁엔 민박집에서 지내보자."

가족들 의견이 그래서 곽지 해수욕장 근처에 있는 민박집을 얻었습니다. 좀 골목안으로 들어가 있는 가정집 2층 독채였는데 주인 할머니 이야기로는 아들이 살다가 이사간 지 얼마 안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직 살림 도구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습니다. 오래 전부터 민박집을 했는지 1층엔 샤워장 시설이 갖추어져 있었습니다. 인터넷으로 검색할 때는 20,000원~30,000원 한다고 했는데 주인 할머니는 50,000원을 달라고 했습니다. 작은 방도 아니고 독채이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고 하루 지내기로 했습니다.

방을 구하고 짐을 내려놓자마자 아이들은 해수욕장을 가자고 성화였습니다. 우리 가족은 물놀이 하는 옷으로 갈아 입고서 곽지 해수욕장으로 갔습니다. 깨끗하고 맑은 바닷물, 멋진 풍경이 우리를 반겼습니다. 사람들도 별로 없었습니다. 10,000원 주고 튜브 2개 빌려 아이들에게 주었습니다. 물도 별로 차갑지 않아 해수욕하기 아주 좋았습니다. 아이들은 신나게 물놀이를 즐겼습니다. 그시간 아내는 땀냄새 나는 빨래를 해 널었습니다. 두어 시간 지나서야 해수욕장에 나와서 함께 물놀이를 즐겼습니다.

"오늘 저녁에 고동 삶아 먹어보자."

17시가 넘어서자 아내는 주변 바위에 붙어 있는 고동을 모으기 시작 했습니다. 물놀이 하던 아이들도 바위에 붙어있는 작은 고동을 줍기 시작했습니다. 쓰고간 모자에 고동을 모았습니다. 모자속에 고동이 많이 모이자 그것을 민박집으로 가져가 삶았습니다. 그날 저녁은 라면과 함께 삶은 고동으로 저녁을 먹었습니다. 낮에 놀때는 몰랐는데 한라산 올라 갔다온 후유증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가족 모두 다리 근육이 뭉쳐 아파왔습니다. 그래도 재밌나 봅니다. 즐거운 표정이었으니까요.

모래밭이 넓은 해수욕장이었습니다. 바로 앞에 섬이 보였습니다. 섬에 가보고 싶었으나 시간관계상 못갔습니다. 아이들은 즐겁게 놀았습니다.
▲ 금능협재해수욕장 모래밭이 넓은 해수욕장이었습니다. 바로 앞에 섬이 보였습니다. 섬에 가보고 싶었으나 시간관계상 못갔습니다. 아이들은 즐겁게 놀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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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가족여행 넷째 날

아침에 일어나 라면과 빵, 음료, 고동을 먹고 짐정리를 했습니다. 아내가 교회 다니는 것을 좋아하므로 오늘은 아내가 좋아하는 곳으로 가보기로 했습니다. 지난 6월 중순경 애월에서 지낼 때 어음교회 목사님을 만나 여러가지 도움을 받았었습니다. 고맙기도 하고 해서 우리 가족을 목사님께 소개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목사님, 제주도에 가족여행 중입니다. 오늘 저녁 선교센터서 하룻밤 지내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저는 목사님께 문자를 보냈습니다. 선교센터는 어음교회에서 가까운 곳에 있었습니다. 선교센터를 관리하시는 목사님이셨습니다. 한달에 한 번 정도는 그곳에서 대규모 부흥집회가 열린다고 합니다. 다행히 우리가 가는 날은 집회가 없는 날이라 하룻밤 지내도 된다고 했습니다.

곽지해수욕장에서 애월읍 가는 버스를 타고가서 다시 어음1리행 버스를 탔습니다. 어음교회를 거쳐 선교센터까지 가고보니 오후 3시경이었습니다. 선교센터는 큰 예배당이 하나 있고 2층짜리 빌라 같은 큰 집이 너덧동이 있었습니다. 규모가 꽤 큰 선교센터였습니다. 산속에 있어서 조용하고 공기가 좋았습니다. 하루 방세 3만 원이라 해서 봉투에 담아 드렸습니다. 식당이 있는데 1인당 한끼 식대가 5000원 했습니다. 가격대로라면 2만 원인데 목사님은 우리 형편을 아시는지 1만2000원을 받았습니다. 또 나중에 우리 방으로 단호박 찐 것을 한그릇 갔다 주셨습니다. 우리 가족은 그날 밤 그곳에서 피곤한 몸을 쉬었습니다.

제주 가족여행 다섯째 날

아침에 일어나 미리 준비해온 사발면을 끓는 물을 부어 먹었습니다. 식당에서 일하시는 할머니 권사님이 김치와 밥 한그릇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렇게 아침을 먹고 선교센터를 관리하시는 목사님이 운영하는 교회에 가려고 기다렸습니다. 일요일이라 오전 11시 예배에 우리 가족 모두 가보려고 기다린 것입니다. 교회 사모님이 승합차를 몰고 오셨습니다. 반갑게 인사 나누고 교회로 갔습니다.

어음교회는 어음 1리 큰 길에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어제 땀흘려 일하던 모습과 다르게 말끔하게 양복을 입고서 예배를 준비했습니다. 아내는 목사님 설교를 듣고는 목사님 설교가 너무 은혜스럽다고 했습니다. 아내는 감사헌금으로 2만 원을 헌금함에 넣었습니다. 예배후 예배당에 모인 교인 모두와 점심을 나누어 먹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이틀이나 라면을 먹어서 밥이 그립던 차에 목사님 집에서 차린 음식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밥을 다 먹은 후 꿀차와 수박도 내왔습니다. 그렇게 이야기꽃을 피우며 짧은 시간 즐겁게 보냈습니다.

"협재 해수욕장으로 가보려구요"

목사님이 묻기에 그렇게 대답했습니다. 성도 한분이 그곳까지 태워다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두어번 갈아 타야 하고 시간을 많이 기다려야 하는 버스보다 시간을 많이 절약하여 금능, 협재 해수욕장에 도착할수 있었습니다.

그곳도 참 멋진 해변이었습니다. 바로 눈 앞에 작은 섬이 있는 그림같은 해수욕장이었습니다. 아이들은 거기서도 신나게 물놀이를 즐겼습니다. 저와 아내는 몸이 힘들어 아이들 물놀이 하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저녁에 잘 방을 알아보기 위해 그곳 여행안내소에 알아 보았습니다. 모슬포에 찜질방이 하나 있다고 했습니다. 모슬포가는 버스를 타고 모슬포 시장에 내려 찜질방을 찾아 갔습니다.

시장안에 있는 그곳은 오래 되었는지 낡은 분위기였습니다. 하지만 우리로선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불편을 감수하고 지내야 했습니다. 모슬포엔 찜질방이 그곳 한곳뿐이었습니다. 가까운 식당에 가서 저녁을 먹고 들어가 잠을 청했습니다. 냉방기 소음도 시끄럽고 모기도 많아 잠자리가 몹시 불편했습니다. 아내는 아이들 잠자리 지키느라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습니다. 그날 저녁 우리 가족모두 잠을 설쳐야 했습니다.

제주 가족여행 여섯째 날

아침에 일어나 구경다닐 준비를 했습니다. 아이들이 이상한 나라 앨리스와 초콜릿박물관을 가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모슬포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찜질방 입구에 짐보따리를 맡겨두었습니다. 그리고 근처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버스를 탔습니다. 한참을 기다리니 버스가 왔습니다. 한참을 버스타고 가서 아이들이 구경하고 싶다는 이상한 나라 앨리스를 구경시켰습니다. 그곳은 거울로 서로 비치게 해서 헷갈리게 해둔 곳이었습니다. 옆에는 소인국테마파크라는 게 있었습니다. 길건너 가서 그곳도 구경했습니다. 그곳엔 가족모두 들어갔습니다. 한바퀴 다 돌고나니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초콜릿박물관 가려는데 어떻게 가면 될까요?"

쉬엄쉬엄 소인국 구경을 다보고 나와서 머뭇거리다 승합차에 필름 상표를 그려넣은 차량 주인에게 물었습니다. 그곳 지리를 잘 알고 계실 거 같아서 물어본 것이었습니다. 그분은 잠시만 기다리라면서 작은 상자 몇개를 들고는 소인국 매점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우리는 그늘에서 잠시 쉬었습니다. 잠시 후 그분이 다시 나오면서 물었습니다.

"그곳에 들러 보고 또 어디로 가시려구요?"

그 아저씨에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초콜릿박물관을 갔다가 모슬포 찜질방에 둔 짐보따리를 들고 다시 중문 근처에 있는 찜질방으로 가려고 합니다"

그 아저씨는 그곳으로 가는 길이니 태워다 주겠다며 타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우린 처음 보는 그분 승합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차를 타고 가면서 그분이 말했습니다. 초콜릿박물관은 폐교를 개조해 만들었는데 아이들에게 별로 도움이 안된다고 했습니다. 초콜릿으로 뭔가를 만들어 보면 모르겠으나 이미 만들어진 것 몇 개 뿐이고 판매하는 물품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모슬포서 짐보따리를 들고 중문 찜질방으로 바로 가기로 했습니다. 다리도 아프고 해서 좀 일찍 쉬자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친절하게도 그분께서 모슬포 찜질방까지 태워다 주었고 짐보따리 찾아 오자 우리를 중문에 있는 찜질방까지 태워다 주었습니다. 참 고마운 분이었습니다.

"이곳은 해안 경치가 참 좋은 곳입니다."

그 분은 일부러 우리에게 구경해 보라며 해안도로를 따라 차를 몰았습니다. 산방산을 돌아 용머리 해안도 구경시켜 주었습니다. 가는 곳마다 이곳은 어떤 곳이고 어떤 곳이다고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주상절리라고 있어요. 그곳은 꼭 구경하고 가야 합니다. 아주 경치가 좋아요."

40분에 다시 태우러 오겠다며 우릴 주상절리 있는 곳에 내려 주고는 어디론가 가버렸습니다. 우린 주상절리라는 곳을 구경했습니다. 벌집 모양의 검은 바위에 파도가 하얗게 부서지고 있었습니다.

생전 처음 보는 우리 가족 모두 감탄사를 절로 내뱉었습니다. 그곳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곳이라 외국 관광객도 꼭 둘러보고 가는 곳이라 했습니다. 사진 찍자는 말을 않던 가족도 그곳에 있는 여러가지 멋진 풍경을 보고는 사진 찍자고 나섰습니다. 주상절리를 다 구경하고 찻길로 나오니 딱 40분이었습니다. 아마도 우릴 태워 주는 분은 이미 구경하고 나오면 40분 정도 걸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듯이 그때 태우러 오겠다고 했나 봅니다. 큰 길 나가서 잠시 있자니 그분 차량이 왔습니다.

"선생님은 언제 제주도 오셨어요? 지금은 또 뭐하시며 사세요?"

저는 그 분에 대해 궁금해서 물어 보게 되었습니다. 그 분은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잠시 들려 주셨습니다. 그 분은 17년 전 제주도에 왔다고 했습니다. 부산서 사업하다 쫄딱 망해서 무작정 그냥 온 게 제주도라고 했습니다. 어찌 살아야 할지 난감해서 택시를 대절시켜 제주도를 한바퀴 돌았다고 했습니다.

그때 만난 택시기사의 도움으로 택시운전을 했었다고 합니다. 1년쯤 택시운전을 했을때 빗길에 미끄러져 큰 트럭 속으로 들어가는 사고를 겪었다고 합니다. 옆에 손님이 타고 있었는데 죽을 고비를 넘겼다고 했습니다. 그후 택시를 그만 두었는데 고향 친구가 제주도는 관광도시니 필름 납품영업을 해보라 권했고 괜찮겠다 싶어서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이 사진은 주상절리 여러 경치중 한곳입니다. 정말 신기하고 멋진 화산돌 덩어리였습니다. 필름업 하시는 분을 못만났더라면 못볼곳을 보았습니다. 그분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 주상절리 이 사진은 주상절리 여러 경치중 한곳입니다. 정말 신기하고 멋진 화산돌 덩어리였습니다. 필름업 하시는 분을 못만났더라면 못볼곳을 보았습니다. 그분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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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많이 힘들었어요. 이미 다른 필름을 받고 있다면서 거들떠 보지도 않더라구요. 그래서 제주를 여행한다 생각하고 계속해서 돌고돌았지요. 계속 찾아가 안면을 트고 먼지 쌓인 곳 청소도 해주다보니 한곳 두곳 납품처가 생기고 해서 지금까지 하고 있지요. 영업엔 비법이 없는거 같아요. 성실하고 진실하고 부지런한게 기본이고 꾸준하게 해야 하는거 같아요"

그분은 제주도 와서 다시 기반 잡고 결혼도 하고 지금까지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배울 점이 많은 분 같았습니다. 중문 찜질방은 월드컵 경기장 안에 있었습니다. 그분은 그곳에 우릴 태워다 주고는 내일은 어느쪽으로 이동하느냐고 물었습니다. 표선 쪽으로 간다고 하니까 그분이 성산일출봉에서 오후 4시쯤 만나자고 했습니다. 다시 제주시까지 태워다 주겠다고 했습니다. 우린 고맙다고 인사하고 찜질방 안으로 들어 갔습니다.

중문에 있는 그 찜질방은 수영장을 겸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수영장에 들어 가보고 싶어 했습니다. 제주도 대부분 찜질방은 가족모두(나, 아내, 중1딸, 초3아들) 2만5000원이면 되는데 그곳은 수영장과 찜질방 이용료로 9만5000원을 받고 있었습니다.

비용이 비쌌지만 아이들에겐 제주도 와서 가장 즐거운 시간이니 거금을 쓰기로 했습니다. 간만에 가족 모두 수영장에 들어가 신나게 놀았습니다. 아내도 아이들과 물놀이 하는게 좋은가 봅니다. 3시간 정도 물놀이하고 찜질방으로 가서 저녁 먹고 쉬었습니다.

가장 짧은 시간에 멋진 산 하나를 올라갔다온 기분이 드는 곳. 경치 멋진 곳. 외국인이 많이 올라 갑니다. 중간에 장사 하시는 분도 여러가지 외국어를 달달 욀 정도로 명소인가 봅니다.
▲ 성산일출봉 가장 짧은 시간에 멋진 산 하나를 올라갔다온 기분이 드는 곳. 경치 멋진 곳. 외국인이 많이 올라 갑니다. 중간에 장사 하시는 분도 여러가지 외국어를 달달 욀 정도로 명소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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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가족여행 일곱째 날

"김형 오전 9시까지 중문 월드컵 경기장으로 좀 와 줄수 있남?"

제주도 와서 알게된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김형은 저랑 동갑이고 전주에서 제주도로 귀농하여 잘 견디고 있는 중입니다. 방학이라 큰 아들이 와서 함께 여행하려던 참이라며 오전 9시 넘어 기꺼이 와준 고마운 친구입니다.

우리 가족과 함께 근처 식당으로 그 친구 차를 타고 갔습니다. 간단히 아침을 먹고 제주농업기술원으로 향했습니다. 제주도를 떠나기전 꼭 한번쯤 만나고 싶은 분이 있었습니다. 농업기술원 귀농교육담당 장길남 계장님과 함께 귀농교육 받은 반장님. 두 분은 힘들어 하는 저에게 많은 위로와 도움이 되신 분들입니다. 오전 11시경 가서 12시까지 기다려 보았지만 바쁘신지 못뵙고 다른 일정 때문에 더 있을 수 없어서 그냥 다음 장소로 이동해야 했습니다. 참 아쉬운 부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가족과 함께 간 김에 가족도 소개하고 이야기도 나누고 싶었는데 말입니다.

우리 가족은 남원과 표선을 지나 성산일출봉으로 가야 했습니다. 짐보따리를 가지고 그곳까지 이동하려면 상당히 힘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전주서 제주도로 귀농온 친구 김형이 자신의 승용차로 기꺼이 태워다 주었습니다. 아내가 고맙다고 인사를 건네자 친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아들이랑 그곳에 한번 가보고 싶었는데 잘된 일이지요. 오히려 제가 고맙습니다"

의리있는 그친구가 참 고마웠습니다. 성산일출봉에 도착하니 오후 2시경이 되었습니다.
친구는 우리에게 점심을 사주었습니다. '친구도 어려운 가운데 있는데 이거 얻어 먹어도 되는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주산 갈치조림을 근처 식당에서 사주었는데 맛있다고 모두 잘 먹었습니다. 점심을 든든히 먹고 우린 성산일출봉 입구로 갔습니다. 비가 내리다 말다 해서 비 피할곳으로 갔습니다. 아직도 다리 근육이 뭉쳐 뻐근했지만 저는 성산 일출봉을 올라가보고 싶었습니다. 가족에게 함께 가보자 했더니 힘들어 그냥 앉아 쉬겠다고 해서 친구와 친구아들, 저 이렇게 셋만 올라갔습니다. 주변에 알아보니 갔다 오는데 넉넉히 잡아 1시간이면 족하다고 했습니다.

밑에서 보아도 멋진 경치였습니다. 가장 짦은 시간에 이렇게 멋진 풍경을 볼수 있는 곳이 성산일출봉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간중간 올라갈 때마다 감탄사가 절로 새어 나왔습니다. 높은 곳으로 올라갈수록 새로운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정상에 다 올라 아래를 보니 성산 마을이 한눈에 다 들어왔습니다. 화산 폭발로 생긴 분화구가 큰 접시 모양으로 멋지게 보였습니다.

올라 가는 데 25분 정도 걸렸습니다. 천천히 내려 왔는데도 오후 3시경에 올라 갔다 왔음에도 오후 4시가 아직 덜 된 시간이었습니다. 어제 만났던 필름납품업 하시는 선생님과 만날 약속이 오후 4시 넘어 잡혀 있었습니다. 한편으론 과연 오실까 하는 마음도 들었으나 일단 믿기로 했습니다. 성산일출봉을 올라갔다 온후 입구 건물 안을 구경했습니다. 어느새 오후 4시가 넘었고 약속대로 그분은 그곳에 필름을 납품하러 왔습니다.

"친구 잘 좀 부탁 드립니다."

귀농 친구는 차량봉사 하시는 그분께 우리 대신 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좀더 구경하고 가겠다며 우리 가족이 그 분 차량을 타고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기약없는 이별이 시작되었습니다. 성산일출봉까지 태워다준 귀농 친구에게도 고맙고 우릴 제주 시내까지 태워다 주겠다며 어제 한 약속을 잊지 않고 지켜주신 필름업하시는 분에게도 고마웠습니다. 비도 내리고 갈 길이 먼데 짐보따리 들고 버스 타고 여행했다면 아마도 가족 모두 벌써 지쳐 버렸을 것입니다. 중간에 행운의 그분을 만난 게 여행의 또다른 즐거움이 되었습니다.

"가는 길에 어딜 한번 들러보고 싶으세요?"

그분은 친절하게도 또 그렇게 물었습니다. 저는 아이들이 미로공원 가보고 싶어 한다고 했습니다. 김녕 미로공원이 있는데 그곳에도 납품처가 있으니 구경할수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일부러 바다 경치를 구경하라고 바닷가 길로 차를 몰았습니다. 아마도 우리 가족 때문에 물품 납품 시간이 많이 지체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한참을 달려 김녕 미로공원 이라는 곳에 도착했습니다.

"40분 정도면 미로공원을 한바퀴 돌아 볼수 있을 겁니다. 40분후에 다시 오겠습니다."

표를 끊고 우리 가족 모두 미로공원 안으로 들어 갔습니다. 미로공원은 나무를 빼곡히 심고 가꾸어 미로길을 만들어 놓은 곳이었습니다. 중간쯤에 사다리 타고 올라가 종을 치고 다시 입구로 오는 과정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미로길 입구로 들어 갔습니다. 길을 잃을세라 서로 붙어서 걸었습니다. 먼저 들어온 분들은 아까 왔던 길 또 온다며 어디로 가야 종치는 길이 나오는지 모르겠다고 수근거리며 지나가기도 했습니다.

딸은 입구서 받은 전단지 종이를 조금씩 찢어 떨어뜨리며 갔습니다. 그것도 소용없이 우리도 왔던 길을 몇번이나 되풀이 하면서 조금씩 종치는 곳으로 가까이 다가서고 있었습니다. 아들이 길을 찾았고 우린 사다리타고 올라가서 종을 힘차게 쳤습니다. 그리고 다시 입구를 향해 미로길을 걸었습니다. 밖으로 나오는데도 여러차례 헤맨 끝에야 나올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재밌는 경험을 하고 밖으로 다시 나오니 그분 차량이 이미 일을 마치고 와서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구경 잘 했습니까?"

그분은 우리에게 밝은 모습으로 물었습니다. 혼자 다니면 일도 빨리 끝니고 좋을 텐데 그분은 신경쓰이고 더디가는 길을 스스로 택한 것입니다. 맘씨고운 그분 덕분에 우린 예기치 않은 멋진 곳을 구경도 하고 체험도 해보는 시간을 가질수 있었습니다. 김녕미로공원에서 제주 시내까지는 시간이 꽤나 걸렸습니다. 제주 시내로 접어들자 소낙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구경 시키며 갔기에 더 시간이 걸렸을 것입니다. 우리가 머물 곳에 도착했을 땐 이미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습니다.

"오늘 밤 이곳에서 지내 보세요. 저도 가족과 함께 몇 번 와 봤는데 좋았습니다."

우리는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 다시 울산가는 비행기를 타야 하므로 공항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찜질방을 찾고 있었습니다. 어느 찜질방으로 가야 할지 잘 몰라 어찌해야 할지 모르고 있을때 그분이 공항과 가까운 곳에 있는 찜질방으로 우릴 태워다 준 것입니다.

"이거 딸 갔다 주세요."

우린 그 고마운 분께 뭐라도 해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작은 기념품을 하나 사서 예쁘게 포장한후 그분께 드렸습니다. 그분은 중학교 3학년 딸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딸에게 줄 작은 선물을 샀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끝내 사양했습니다. 그것은 자신을 욕되게 하는 것이라며 한사코 받지 않았습니다. 우린 정중히 그분께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분도 울산까지 잘 가라고 인사를 나눈뒤 차를 몰고 멀어져 갔습니다.

우린 다시 짐보따리를 들고 그분이 소개한 찜질방으로 들어 갔습니다. 그 찜질방은 윗층에 있어서 시원한 바람이 들어오는 곳이었습니다. 가족도 제주도서 마지막 밤을 보내는 그곳을 마음에 들어 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홀가분한 기분으로 일어나 그 찜질방을 나와 비행장으로 향했습니다. 비행기로 제주도를 출발한 지 5시간만에 다시 집으로 왔습니다. 우리 가족의 제주도 일주 여행은 그렇게 끝이 났습니다. 가족들은 힘들어서 그런지 제주도 여행 다녀온 후 집에 도착하여 "뭐니뭐니 해도 집이 최고다. 집떠나면 개고생이야"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했지만 저에겐 색다른 여행입니다. 이제 제주도 일주도로를 타며 다닌 '제주도 일주일간의 가족여행'도 서서히 추억의 저편으로 멀어져 가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2010 이 여름을 화끈하게! 응모'



태그:#가족여행, #백수, #아버지, #제주도, #한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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