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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저는 여러분이 마실 급식 우유에 에이즈 감염 혈액을 넣었어요."

일본 S중학교, 1학년 B반 교실. 평화로운 종업식의 정적을 깨며 담임교사는 차분하게 자신의 범죄 사실을 고백한다. 교실은 동요하기 시작한다. 우유급식은 이미 끝난 상태다. 돌이킬 수 없다. 이 많은 우유 중 단 두 곳에만 에이즈 혈액을 넣었다는 담임. 학생 개개인의 이름이 적힌 우유팩이니 담임은 누군가를 해하기 위해 혈액을 주입했음이 틀림없다. 대체 왜. 사랑으로 학생들을 가르쳐야할 교사가 이런 짓을 저지른 것일까. 에이즈 혈액이 섞인 우유를 마신 학생 둘은 누굴까. 한 교사의 고백으로 시작된 미나토 가나에의 첫 장편소설 <고백>. 그녀의 충격적인 '고백'을 들어보자.

한때는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열혈교사였지만 에이즈에 걸려버린 남편, 그 남편과 떨어져 살며 홀로 외동딸을 키운 이야기. 그 외동딸이 얼마 전 자신이 근무하는 학교 수영장에 빠져 죽은 일들을 그녀는 차례차례 풀어놓는다. 더불어 딸의 죽음은 사고사가 아니었으며, 아이를 죽인 범인은 이 교실 안에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고백한다. 교사는 용의자를 A와 B로 묘사했지만, 그 반 학생들은 담임의 말만 듣고도 A와 B가 누군지 알 수 있다. 잔잔한 호숫가에 파문이 일 듯 학생들을 일렁이게 만든 교사는 고백을 마치고 학교를 떠난다.

과연 이 선생의 행동을 우리는 어떻게 봐야할까. 딸이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끝끝내 경찰에 용의자들을 고발하지 않은 그녀는 과연 옳은 것일까. 준엄한 사법절차에 따르기 보다는 스스로 심판자가 되고자 했던 그녀. 사실 그녀의 속사정은 따로 있었다.

미성년 범죄 연령제한, 이대로 괜찮은가요?

 미나토 가나에 <고백>
 미나토 가나에 <고백>
ⓒ 비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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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처벌 대상을 14세 이상으로 규정한 법이 문제였다. 아직 13세에 불과한 소년들을 재판정에 세워봤자 아무런 처벌을 내릴 수 없음은 물론, 그들은 끝끝내 반성조차 하지 않을지도 몰랐다. 이런 생각이 그녀를 스스로 범죄자의 길로 들어서게 만들었다. 미성년 범죄가 점점 더 잔학해지는 요즘 우리 사회도 한번쯤 고민해봐야 할 문제다.

현재 우리나라 형사상 성년의 나이는 만 14세 이상이다. 똑같은 범죄를 저질러도 만 14세 이상과 미만은 처벌의 경중이 크게 달라진다. 이 책의 저자가 고발하고 싶은 현실이 바로 이것이다. 심신발달이 미약하다는 이유만으로 청소년에게 면죄부를 주는 이 사회 말이다. 큰 죄를 저지르고도 단지 어린 소년소녀라는 이유로 법적 제재를 받지 않는 작금의 상황은 과연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지난 4월 체코는 살인죄에 대한 형사책임 연령을 현행 15세에서 다섯 살 낮추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13세 소년이 같은 나이의 소녀를 강제로 성폭행·살해하고도, 형사상 미성년에 해당돼 청소년 교화시설에 수용됐다가 풀려난 일이 발단이었다. 체코 국민 중 40만 명은 이에 문제를 느끼고 형사 기소 가능 연령을 내려달라 정부에 청원했다. 정부는 이들 손을 들어주며 형사 처벌 가능연령을 10살로 내렸다.

몇몇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는 청소년들 사례를 들며 수많은 선량한 학생들까지 잠재적 범죄자로 내모는 것은 아니다. 단지 어린 학생들의 손에 무참히 살해당하거나 상해, 혹은 금전적인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억울함을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작가도 이런 사회의 어두운 면을 고발하고자 했던 것이다.

<고백>의 여교사는 끝내 법을 초월한 나이의 제한을 부정했다. 스스로 우유에 에이즈 혈액을 섞어 범죄자들을 심판했다. 교사를 그만두고서도 끝끝내 A와 B의 파멸을 지켜보았다. 한 아이를 잃은 엄마라는 역할과 교사라는 사회적 지위 속에서 그녀는 철저히 '엄마'가 되고자 한 것이다. 윤리적 딜레마를 그녀는 단 한 번의 고민 없이 이겨냈다고도 볼 수 있다. 엄마에 무게를 싣고 그녀를 응원할지, 아니면 교사로서의 사명을 앞세우며 그녀를 비판할지는 독자의 몫이다.

'마녀사냥' 속 숨은 진실

작가의 문제의식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현대판 '마녀사냥'에도 일침을 가했다. 가해자 학생에 누군가 우유를 던지며 시작된 학생들의 광적인 심판을 보여주며 말이다. 작가는 작은 교실에서 벌어지는 이 모습을 그리며, 우리에게 심판자가 될 자격이 있는지를 동시에 묻는다.

심판자가 될 자격, 우리에겐 과연 있을까. 책 속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지만 현실에서도 어딘가 많이 본 장면이다. 벌써 오래 전 이야기가 된 '개똥녀 사건'이나 얼마 전 벌어진 '루저녀'사건 때도 우리 네티즌들은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당시에도 광적으로 우리 네티즌은 두 사람을 물어 뜯었다. 인신공격 정도를 넘어 개인의 신상 정보까지 낱낱이 인터넷에 공개했다. 과거 그들이 인터넷에 올렸던 글들이 수집돼 그들의 관심사나 감추고 싶던 과거들도 모조리 드러나게 됐다. 도덕적 비난을 살만했던 사건임은 분명하지만 이렇게까지 해야했을까란 의문이 남는다.

소설 속에서 작가는 현대인들의 광적인 공격성향을 이렇게 분석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남에게 칭찬받고 싶다는 소망을 조금이라고 가지고 있지 않을까요. 하지만 착한 일이나 훌륭한 행동을 하기란 힙듭니다. 그렇다면 가장 간단한 방법은 무엇일까요. 나쁜 짓을 한 사람을 질책하면 됩니다. 아무리 그래도 가장 먼저 규탄하는 사람, 규탄의 선두에 서는 사람에겐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겠지요. 아무도 찬동하지 않을지도 모르니까요. 하지만 규탄하는 누군가를 따르기란 무척 쉽습니다. 자기 이념은 필요 없고, '나도, 나도'하고 말만 하면 그만이니까요. 게다가 착한 일을 하면서 일상의 스트레스도 풀 수 있으니 최고의 쾌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한 번 그 쾌감을 맛보면 하나의 제재가 끝나도 새로운 쾌감을 얻고 싶어 다음번에 규탄할 상대를 찾지 않을까요? 처음에는 잔학한 악인을 규탄했지만, 점차 규탄 받아야 할 사람을 억지로 만들어내려 하지 않을까요?"

우리 사회가 분명 곱씹어 볼 만한 분석이다. 그러면서 작가는 이렇게 마무리를 짓는다.

"이것은 중세 유럽의 마녀 재판이나 다름없습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가장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벌할 권리가 없다는 사실을."

그들을 처벌할 권리. 그들에게 손가락질 하고 그들의 삶을 짓밟을 심판자의 권리가 과연 우리에게 있는 것일까.

퍼즐을 맞추듯 선명하게 그려지는 사건의 전말

작가가 우리 사회에 던진 화두는 이처럼 뜨거웠다. 문제의식을 드러내는 방식도 보통 이상이었다. 여교사의 고백 일변도로 이어질 것 같았던 소설은 갈수록 기존 소설의 질서를 거부했다. '사고사로 위장된 살해사건'에 연루된 인물들이 한 명 한 명 고백을 이어가는 구조다.

단지 어머니의 관심을 끌고 싶어 일을 저지른 소년 A. 패배의식에 찌들은 소년 B. 모든 상황을 아들에게 유리한 쪽으로만 해석하려다 극한의 모정으로 치닫는 소년 B의 어머니. 전지전능한 입장에서 상황을 예의주시하던 또 다른 학생 미즈키. 이들은 똑같은 사건을 바라보지만 생각과 입장은 전혀 다르다. 이들의 이야기는 퍼즐 조각이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듯, 극 후반으로 갈수록 사건의 전말을 선명하게 만든다.

살아있는 듯 자연스럽고 생동감 넘치게 움직이는 캐릭터들도 이 책의 묘미다. 비결은 작가의 습관에 있다. 이 소설을 쓴 미나토 가나에는 집필 전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에게 이력서를 작성해준다고 한다. 캐릭터의 성격을 세세하게 설정해 놓으면 등장인물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여 이야기를 만든다는 것이 이유다. 이런 그녀의 고집은 작품 속 인물들이 자신들의 캐릭터를 뚜렷하게 가질 수 있는 힘이 된다. 그녀의 첫 장편 <고백>의 인물들이 생동감 있게 살아 움직이는 비결이다.

미나토 가나에의 <고백>은 2008년 일본에서 출간된 후,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미스터리 소설 부문에서 여러 상을 휩쓸었는가 하면, 영화로도 제작됐다. 이 영화는 얼마 전 막을 내린 부천 국제영화제에서도 상영된 바 있다. 한국 언론의 주목을 받진 못했지만, 외면하고픈 사회의 추악한 부분을 담담하게 드러낸 그녀의 소설은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

덧붙여 작가는 마지막까지 독자를 놓아주지 않는다. 복수란 무엇인가를 독자들에게 제대로 가르쳐주려는 듯이 말이다. 작가가 보여주는 복수의 끝은 과연 어디까지일까.


고백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비채(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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