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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 권대식이 철수를 명령했던 바위에 잡초만 무성하다

산채에 공포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총융사의 정예군이 이미 한양을 떠났고 평안도의 날쌘 군사들이 또 투입된다 하지 않은가. 그보다 앞서 공주에 있는 관군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른다. 산채는 위기감이 팽배했다.

 

"배신자의 고변으로 우리의 존재가 백일하에 드러났다. 관군에 대적할 군세가 미약한 우리가 여기에 더 이상 머무를 수 없다. 산채는 군세가 강할 때는 철웅성이지만 약할 때는 독안에 든 쥐다. 남으로 자리를 옮겨 훗날을 기약하자."

 

권대식의 목소리에 비장함이 묻어났다. 산채는 신라의 위협으로부터 도읍지를 방어하는 백제의 군사기지 자리였다. 그 중요성은 고려와 조선시대에도 이어져 공주 월성산에서 보낸 봉화를 은진 황화산으로 중계하는 군사요충이었다. 하지만 사방이 평야로 둘러싸여 적에게 포위되면 고립되는 취약점이 있었다.

 

진정성이 결여되면 반목과 분열의 씨앗이다

 

"장군은 옵니까? 안 오는 겁니까?"

이지험이 정곡을 찔렀다. 사뭇 시비조다.

 

"오실 것이다."

"개뼈다귀 같은 소리 하지 마라. 장군은 잡혀서 묶여 온다는 풍문이 참일 것이다."

경어가 사라졌다. 위계질서가 무너졌다는 증좌다. 외부로부터 위협은 촉매가 되어 단결의 고리 역할을 할 수 있지만 진정성이 결여되면 반목과 분열의 구실이 된다.

 

"장군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셨다. 꼭 오실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모든 것을 사실대로 털어놓으면 서로 죽고 죽이는 살육이 벌어질 것만 같았다.

 

"장군은 죽었다."

"장군은 살아있다."

"살아 있으면 뭐하나? 묶여 오는 몸, 죽은 목숨이나 진배없다."

살벌했다. 살기등등한 눈동자가 산채를 굴렀다. 툭하면 터질 것만 같다.

 

"우리는 한 배를 탄 동지다.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아야 한다."

권대식이 목소리를 높였다.

 

"사는 것은 같이 살고 싶지만 죽는 것은 같이 죽고 싶지 않다."

"와~"

"우! 우! 우!"

찬성하는 함성과 반대하는 야유가 산채를 흔들었다.

 

"좋다. 여기에 남고 싶은 자는 말리지 않겠다. 남아 있을 사람은 앞으로 나서라."

권대식의 눈동자 구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아무도 없습니다."

앞줄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서둘러 답했다.

 

뭉쳐다니면 눈에 띈다, 흩어져라

 

"알겠다. 해가 저물면 이곳을 떠난다. 뭉쳐 가면 관군이나 마을 사람들의 눈에 뜨이게 되니 되도록이면 흩어져 가야 한다."

"네."

"산채를 빠져 나가 마흘치와 용담을 거쳐 전주 위봉산성에서 집결한다. 알겠는가?"

"네."

모두의 눈동자에 생기가 돌았다. 삶의 희망이다.

 

"칼과 총은 어떻게 할까요?"

"병장기는 칡넝쿨이나 헝겊으로 싸서 가지고 간다."

벌써부터 웃옷을 벗어 칼을 싸는 이가 있는가 하면 천 쪼가리로 화승총을 싸는 사람이 있었다.

 

"식량은 어떻게 합니까?"

"자신의 식량은 자기가 지고 가라. 알겠는가?"

"네."

 

산채가 부산해졌다. 철수 준비다. 철군이라기보다 도망준비다. 지휘계통이 살아있는 정예군도 철수작전에선 조직력이 무너진다. 하물며 어중이떠중이가 모여든 산채꾼들에 일사분란 한 퇴각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어수선하기만하지 진척이 없었다.

 

이때였다. 북쪽 성벽을 타고 기어오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흑색 전립에 검은색 전복을 입은 무리였다. 누각도 없는 북문에서 망을 보던 산채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입이 벌어지고 다물어지지 않았다. 놀란 망원이 있는 힘을 다하여 소리를 질렀다.

 

"관군이다."

산채가 소용돌이에 빠졌다. 칼을 뽑고 화승총을 들어 대적하기는커녕 도망가기에 바빴다. 서로 밟고 밟히는 아수라장이 벌어졌다. 칡넝쿨로 싼 화승총을 가지고 튄다는 것이 총을 싸기 위해 모아둔 칡넝쿨 더미를 어깨에 메고 뛰는 사람도 있었다.

 

북문 북문이 있던 자리는 성벽이 허물어져 형체를 알아볼 수 없다

역당의 실체를 상세히 기록한 장계를 한양으로 보낸 공청감사 임담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자신의 관내에 역적이 똬리를 틀고 있다면 그 역도를 완전히 토벌해도 책임추궁을 당할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무거운 징계에서 벗어나는 것은 선수를 치는 길밖에 없다."

임담은 공주감영 군사를 지휘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주청했다. 병사에게 이미 출동 명령이 내려졌지만 감사에게도 군권을 달라는 것이다.

 

감사와 병사는 종2품으로 품계는 같다. 허나, 평소에는 상대적으로 감사가 우위를 점했다. 하지만 비상사태 발생 시, 군대를 지휘하고 즉결 처분권을 가지고 있는 병사가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다. 한국전쟁 당시 도지사보다 지역 연대장이나 도경국장이 더 큰 힘을 행사했던 것과 흡사하다.

 

"정예군을 곧 보내줄 것이니 그동안 병사와 협의하여 군사를 발하라."

 

역당 토벌에 솔선해서 나서는 자가 없어 아쉬웠던 인조에게 단비와도 같은 희소식이었다. 문관이 갑주를 입고 역당 토벌에 나서겠다하니 그 충정이 갸륵했다. 인조는 군대 출동을 윤허했다.

 

지휘통제권이 이원화 되었지만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감사가 병사 배시량에게 석교천으로 우회하여 산채를 압박하라 지시했고 병사는 군말 없이 협조했다. 군사를 지휘한 임담은 접지산에 교두보를 마련하고 선발대를 큰앙골에 파견했다. 마을 어귀에 침투한 선발대로부터 아무런 저항을 받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은 임담은 서리골로 진출하라 명했다.

 

바위 보살들이 메달렸던 우물가 옆 바위

관군의 공격을 받은 산채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밟고 밟히는 생지옥이었다. 산채꾼들의 식사를 담당했던 보살들이 유탁의 소매 자락을 잡았다.

 

"두령님 우리는 어찌하면 좋습니까?"

"너희들은 갈 수 없다. 여기에 머물러라."

"관군에 잡히면 우리는 죽은 목숨입니다."

"너희들은 잡아가지 않을 것이다."

유탁이 소매를 뿌리쳤다.

 

"두령님! 우릴 두고 가시면 십리도 못가서 발병 납니다."

"재수 없는 소리 마라."

유탁이 아낙을 뿌리치고 돌아 섰다. 그때였다.

 

"꼼짝 마라."

십여 명의 관군이 그를 에워쌌다.


태그:#산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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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