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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버스를 타고 안동 시내로 돌아와 식사를 했다. 유명한 안동의 찜닭. 시내 구시장의 찜닭거리에 들어가면 온통 닭집 간판으로 도배가 되어 있다. 가게 이름 중에는 '서울찜닭' 같은 것도 있어서 어딘지 모르게 우습다. 혼자라서 꼭 찜닭을 먹을 생각은 없었는데 반 마리만 해주신다는 집이 있어 들어갔다. 원래 반 마리씩은 잘 안 해주는 모양인데 한 명인데다 바쁜 시간이 아니라 해 주었다. 반 마리랬는데 겨울에 둘이 와서 먹은 한 마리와 양이 비슷해 보인다. 이래서 반 마리씩은 잘 안 해주나?

 구시장 찜닭골목에서 먹은 안동찜닭
 구시장 찜닭골목에서 먹은 안동찜닭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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찜닭을 먹고 봉정사에 갈 예정이다. 보통 내 또래 내일로 여행자들은 하회마을이나 병산서원, 도산서원만 알지 봉정사는 잘 모르는 모양이었다. 나 역시 여행책을 보다 알게 된 봉정사는 역시 영국 여왕이 들렀던 곳으로 대웅전과 극락전이 국보로 지정되어 있기도 하다. 신라 문무왕 때 의상 대사의 제자 능인 대덕이 창건한 아름답고 역사 깊은 사찰이다.

봉정사 역시 버스가 자주 없는 산골에 있기 때문에 그곳에서 여유롭게 사찰 구경을 하다가 저녁쯤 내려와 안동 시내에서 잘 예정이었다. 그리고 내일은 대구행. 대구 시내를 돌아다녀 보다 대전을 거쳐 환승하는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계획이 이번 3박 4일의 일정이다.

욕쟁이 할머니, 노래쟁이 할머니… 그립네요

그런데, 그냥 집에 가버리고 싶어진다. 안동초등학교 앞에서 51번 버스를 타고 봉정사로 가는 길. 시내를 가로질러 점점 외딴 길로 접어든다. 여행길에 있는 이는 나뿐이고 다 제 집 찾아 들어가는 길이다. 가끔 교복 입은 학생들이 보이고 대부분 할머니, 할아버지들이다.

배터리를 제대로 충전해오지 않은 디카는 이미 어제부터 죽어 있다. 스마트폰이고 넷북이고 고화질 카메라고 간에, 배터리가 나가는 순간 무용해지는 최첨단의 문명이란 얼마나 허망한가. 사진만 연신 찍다가 제대로 구경을 못 하는 주객전도의 바보짓은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지만 그 순간의 빛과 공기를 포착해서 잡아두고 싶은 욕망에 부응하지 못하는 빈 손이 허허롭다. 손전화에 달린 것으로나마 몇 장을 찍어 보지만 화질을 신뢰할 수 없다보니 나중에는 의욕도 생기지 않았다.

날은 무덥고 몸은 피로했다. 어쩌면 내가 너무 무리해서 다니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침에 출발하는 순간부터 늦은 밤 잘 자리를 찾아 갈 때까지 한여름 햇살도 아랑곳없이 하나도 놓치지 않고 보러 다니고 싶어하니까. 의욕 넘치는 도보의 무리는 고스란히 여독으로 남는다. 잠자리를 가리는 편은 아니지만 아무리 고급 호텔이래도 집 밖에서 며칠씩 자는 건 피곤한 일이다. 결코 피로가 완벽하게 해소되지 않는다.

나는 물리적인 여건에 영향을 많이 받는 성격이다. 비가 오면 센치해지고 몸이 힘들면 마음도 지친다. 가을, 겨울이면 늘 장기 슬럼프에 빠진다. 춥고 어두운 2학기 말을 견디는 건 늘 고역이었다. 학점도 늘 가을학기 쪽이 형편없다.

그래서, 몸이 힘들어서일까? 어젯밤부터 객창감이 심했다. 해가 지니까, 외롭다고 표현하기엔 좀 다르고 혼자라 심심한 것도 아닌데 무어라 형언하기 어려운 느낌에 시달렸다. 누구와 함께 있다고 해도 사라질 건 아니고 단지 무뎌질 뿐인, 결국은 견디거나 혹은 극복해야만 하는 그런 쓸쓸한 느낌. 시골이라 그런 걸까? 돌아가신 외할머니 생각에 그런가?

 시골. 비포장도로. 쓸쓸한 어둠.
 시골. 비포장도로. 쓸쓸한 어둠.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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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외로울지언정 쓸쓸하지 않다. 환하게 불 밝히고 흥청대는 거리에서는 외로울지언정 쓸쓸하진 않다. 내가 자는 동안에도 누군가는 깨어 이 세상의 톱니바퀴를 열심히 돌리고 있구나, 생각하면 든든하여 쓸쓸하지 않다. 아니, 심심하지 않다는 표현 쪽이 더 어울릴까?

반면에 시골은 외롭진 않은데 쓸쓸하다. 도시에서 느끼는 것 같은 군중 속의 고독과 제 자리를 찾지 못하는 방황, 외로움은 없다. 그러나 다만 쓸쓸하다. 해가 진 뒤, 불빛 없는 그리고 잠도 오지 않는 몇 시간. 매미 소리 그리고 귀뚜라미 울음. 시골은 인간을 소외시키지 않으므로 외롭지는 않으나 다만 쓸쓸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소요 비용
내일로티켓 54700원
편의점 컵커피 2000원
안동시내→하회마을 버스비 1100원
하회마을 입장료 2000원
하회마을→안동시내 버스비 1100원
안동찜닭 반마리 14000원
안동초앞→봉정사 버스비 1000원
봉정사 관람료 1500원
봉정사→안동초앞 버스비 1000원
합계(내일로티켓 제외) = 23700원
아, 어쩌면 그건 돌아갈 수 없는 내 유년에 대한 향수다. 할머니 댁에 가서 사촌들과 아궁이에 나무 때며 불장난 했던 일, 주말에 엄마 아빠와 함께 어지간히 차멀미 해가면서도 나들이를 다닌 기억, 돌아가신 외조부모님 그리고 더 이상 가지 않는, 방학이면 내가 일주일씩 머물며 이모, 삼촌, 사촌들과 시끌벅적 어울렸던 그 시골집 마루…….

차를 꽉 채운 할머니들은 나로선 알아듣지도 못하는, 거센 경상도말로 끊임없이 떠들어댄다. 내 옆자리에 앉은 앞니가 다 빠진 할아버지는 딱 봐도 외지사람 티 풀풀 나는 내게 무슨 말인가를 하고 싶으신 눈치였는데 난 상념에 빠져 있는데다 말을 거신대도 그 억양을 제대로 알아들을 자신이 없어 살갑게 대하지 못했다.

앞쪽에는 꽃무늬 옷을 입고 주름살이 고운 할머니 한 분이 버스 바닥에 털푸덕 주저앉아 노래를 부르고 있다. 무슨 민요인가, 여러 번 들어본 듯한데 정확히는 모르겠는. 무언가 한스러운 그러나 익살을 잃지 않는 우리네 곡조. 그러다 누구에겐가 한참 욕설을 내뱉다가, 다시 흥에 겨워 노래를 한다. 거참.

봉정사에 도착했지만 현존 최고(最古)의 목조 건물이라는 극락전도 한국 10대 정원에 선정될 정도로 아름답다는 영산암도 눈에 들지 않는다. 다음 버스가 들어올 때까지 머무르겠다는 일정을 바꾸어 이십오 분 뒤에 시내로 돌아가는 버스에 다시 올라탔다. 몇 정거장을 지나니 아까 그 노래꾼 할머니가 다시 차에 오르신다. 이번에는 얌전히 좌석에 앉으신 할머니. 내겐 이제 없는 할머니.

 예정보다 하루 일찍, 집으로 돌아가버린다.
 예정보다 하루 일찍, 집으로 돌아가버린다.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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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로 안동역으로 돌아가 기차를 두 번 갈아타고 귀가했다. 집에는 퇴근한 엄마 아빠가 쉬고 있다. 결국은 돌아오기 위한 여행이라고 어떤 책에서 그랬던가. 할머니도, 시골집도 없지만 내게는 기차역이 가까운 아파트에 한 몸 편히 누일 작은 방이 있고 결국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될 내 든든한 지지자 엄마 아빠가 있었다.

덧붙이는 글 | 더 많은 사진과 정보는 기자의 블로그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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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없는 곳이라도 누군가 가면 길이 되는 거라고 믿는 사람. <청춘, 내일로>, <교환학생 완전정복>, <다낭 홀리데이> 등을 쓴 여행작가. 제4회 오마이뉴스 대학생 기자상(2010), 청춘 기자상(2013) 등 수상. 현 제주도 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