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누구를 위한 G20정상회의인가. 누구를 위한 4대강 사업인가. 누구를 위한 용산 재개발인가. 국격을 높이고 국토 균형발전에 이바지하고 지역민들에게 이익을 돌려주고 하는 이야기는 아무리 좋게 들어도 의심스럽기만 하다. 이런 의심을 해소해줄만한 미국의 사례를 기록한 책을 보았다.(그림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해 읽는 것보다 보는 것이라고 해야 한다) 21세기 10년, 즐겁고 유쾌한 저항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나. IMF는 우리에게 무척 친숙한 기관이다. 그들의 돈이 없었다면 한국은 국가부도의 상황에서 전혀 나아질 기회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그로 인해 실업자는 늘어났고 입사는 더 힘들어졌고 소득격차는 심하게 벌어졌다.

 

세계은행과 IMF는 빈곤국에게 대출해주는 역할을 담당한다. 이 돈은 대부분 다국적 기업들의 지갑에서 나오는 것이다. 70년대 빈곤국에게 대출해주면 댐·도로 건설로 환경을 파괴하고 거기에서 생기는 돈은 결국 시민이 아닌 '일부'의 주머니로 들어간다.

 

국가는 세계은행에 대한 채무로 희망이 없다. 빚을 갚기 위해 빚을 내고, 이 빚은 '구조조정'에 동의해야 한다. 다국적 기업의 이익을 위한 자국경제 변화에 동의하는 것이다. 이자율을 높여 집을 사는 것이 어려워지고 복지비용을 줄이고 공립교육은 제한되고 노조탄압은 극심해진다. 국가소유 산업과 천연자원은 다국적 기업의 손으로 넘어가게 된다.

 

세계은행 회의를 반대하는 학생들이 동맹휴업을 선언하고 시위에 참여했다. 뉴저지의 플로램 파크에서 열린 회의를 경비하는 합동기동대 앞에 대오를 짜고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는 학생들은 결국 체포된다. 60년대의 장면이 떠오른다.

 

둘. 2001년 9월 11일. 미국이 충격에 빠졌다. 누구의 책임인가. 막강한 힘을 자랑하는 미국이 아직도 흔적조차 찾고 있지 못한 오사마 빈라덴의 소행이라는 것이 일반의 상식이다. 그 뒤에 누가 있을까. 사우디가 빈라덴에 돈을 준다. 미국의 엑슨 모빌사가 제공하는 것이다. 그럼 이들의 책임만 있는 것인가.

 

칼라일 그룹은 부실기업을 사서 큰 이윤을 챙기고 파는 사모펀드 회사이다. 베를린 장벽도 무너지고 냉전이 끝날 무렵 국방예산은 감축되고 미국의 군수업체는 시련을 맞는다. 칼라일은 군수업체, 항공사, 사우디의 민간 군수용역 공급하는 베델사, 무겁고 커서 현대전에 어울리지 않는 크루세이더 대포를 생산하는 유나이티드 디펜스사를 매입한다.

 

이윤을 위해서 로비가 필요하다. 은퇴한 정치인들을 고용하는 것은 고전적인 수법이다. 전직 CIA부국장을 지내고 국방장관을 역임한 프랭크 칼루치를 영입하고 미국대통령을 지낸 부시를 영입한다. 2001년9월 11일, 칼라일 그룹 아침 회의 때 아버지 부시와 오사마 빈라덴의 형이 참석했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9.11은 칼라일에게 흥행요소였다. 그들이 사들인 사찰업체 USIS는 항공사 승무원들의 뒷조사로 바빠졌고 보트사는 스텔스기를 생산하기 시작했으며 의회는 쓸모없는 크루세이더를 승인했다. 유나이티드 디펜스 사는 상장으로 떼돈을 벌었다. 그리고 그들은 회사의 주식을 팔아치웠다. 곧 의회는 크루세이더의 승인을 취소했다.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의 전쟁을 통해 브래들리 장갑차들이 수익을 낳았다. 부시와 빈라덴은 회사를 떠났고 그룹 내 군수업체들을 매각하는 중이다.

 

1970년 석유 붐은 나이지리아에서 농사와 사냥으로 먹고사는 민중의 삶을 바꾸었다. 정부는 석유기업들의 송유관이 밭이나 마을을 통과하도록 강요했다. 송유관에서 기름이 새어나오면서 연기와 불길 속에 동물은 사라지고 땅·공기·물이 오염되었다. 식량이던 물고기와 농작물이 죽었고 그들은 생계를 위협받을 정도로 가난해졌다.

 

무지하고 힘없어 보이는 그들은 뜻밖에 저항했다. 600명의 여성들이 석유회사 셰브린의 수출기지를 점거했다. 셰브린이 마을을 떠날 것을 종용했다. 그들이 들어줄 수 없는 요구였다. 12개 석유공장에서 나체시위로 이들을 위협했다.(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여성의 나체를 보는 것은 저주다. 이를 본 남자는 성불구나 미치거나 죽게 된다고 여기고 있다)

 

석유생산량 40% 감축되었다. 정부는 천백만 달러의 손해를 봤고 기업은 이백오십만 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당연히(?) 보복이 있었다. 석유회사의 경비원들이 시위하던 수십 명의 여성을 성폭행한 것이다. 기자회견을 통해 이를 밝힌 용감한 여성들의 소식은 세계로 퍼져 나갔다.

 

이를 접하게 된 미국과 유럽의 여성들은 셰브린 텍사코의 불매운동을 벌였다. 이라크 전쟁 때엔 여성들이 옷을 벗고 평화심벌을 만들어 저항했다.

 

셋. 대부분이 종교 갈등 정도로 생각하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도 그렸다. 직접 보고 듣고 공부한 내용으로 채워졌을 '사실'을 실감나게 그리고 있고 이를 널리 알리기에 주저하지 않는다.

 

팔레스타인인의 원조격인 베두인들은 네게브에서 수세대에 걸쳐 유목하며 살아왔다. 1948년 시오니스트들이 이스라엘 건국을 선언하면서 이들은 이스라엘 국민이 되었다. 많은 베두인들은 국가에 충성을 선언하며 군대에 들어갔다. 이스라엘은 그들의 땅 20%를 구획하여 그곳에 거주하도록 제한했다. 18년이 지나 그곳을 벗어나 새로 만든 마을로 강제 이주시켰다. 그 '신도시'는 좋은 곳이 아니었다. 일자리 없는 거주지는 곧 슬럼화 되었다.

 

인정받지 못하는 베두인들의 마을은 비참한 생활에 놓인다. 물·전기·교육을 제공받지 못하고 발전소 쓰레기 매립지 등의 혐오시설을 마을 인근에 건설한다. 제초제로 경작물을 죽이고 이스라엘의 '녹색경찰'이 중기로 집들을 부순다. 베두인들을 쫓아낸 후 유대인들의 주택을 짓고 있다. 유대인들은 아랍인과 평등할 수 없는가.

 

이스라엘 정착촌 미국근교의 풍경과 유사하다. 팔레스타인 거주지 'A구역'은 도로로 둘러져 있다. 그리고 그 안쪽에 거대한 시멘트 담장이 에워싼다. 그들은 안전을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벽은 농민들의 경작지와 거주지를 갈라놓는다. 벽은 농민들이 아랍상권에서 농작물을 팔 수 없게 만든다. 벽은 마음대로 원하는 곳에 다닐 수 있는 자유를 빼앗는다. 결국 이곳을 포기하고 떠나게 하려는 목적이 분명하다.

 

이스라엘인, 팔레스타인인, 전 세계에서 온 사람들이 벽의 건설을 중단하라고 가두행진을 했다. 군인들은 최루탄, 고무탄 총을 쏘아댔다. 벽으로 둘러진 팔레스타인 국가는 감옥에 다름 아니다. 이를 막기 위해 목숨을 걸고 저항하는 사람들이 있다.

 

책의 원제는 '재앙과 저항 Disaster and Resistance'이다. 우리가 겪는 대부분의 재앙은 신이 주는 것이 아니라 몇몇 인간들에 의해 이루어진 제도와 현상에 따른 것이다. 그 재앙의 확산을 막거나 저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저항'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세스 토보크만은 만화가다. 굵직한 선들로 이루어진 그림은 마치 그 옛날 학교 다닐 때 접했던 강렬하고 선동적인 민중 화가들의 것이 생각난다. 이 책은 그가 직접 다니면서 그린 '21세기 첫 십년의 저항 기록'이다. 지역의 일이나 일상보다 '지구적 차원'에서 발생하는 굵직한 문제들의 '사실'을 보다 극적으로 묘사한다.

덧붙이는 글 | 왜 우리는 저항하는가/ 세스 토보크먼 글,그림·김한청역/ 다른/ 14,000\ 


저항하라

세스 토보크먼 지음, 김한청 옮김, 다른(2016)

이 책의 다른 기사

"행동이 세상을 바꾼다"

태그:#세스토보크먼, #반전시위, #세계은행, #9.11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는데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는데로 살기 위해 산골마을에 정착중입니다.이제 슬슬 삶의 즐거움을 느끼는 중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