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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평원왕 때 외모는 누추하나 마음은 명랑한 바보 온달이라는 거지가 있었는데 집안이 가난하여 거리를 돌아다니며 구걸해서 눈 먼 어머니를 봉양했다. 평원왕에게는 울보인 딸 평강이 있었는데 부왕은 공주가 울 때마다 늘 바보 온달에게 시집보내겠다고 놀렸다. 공주가 자라서 왕이 공주를 상부 고씨와 결혼시키려 하자 공주는 어릴 때의 농담을 들어 이를 거역하였고 왕은 진노하여 공주를 궁궐에서 내쫓는다..." (중략)

"590년 온달은 임금에게 신라에 빼앗긴 한수 이북의 땅을 회복하겠으니 군사를 달라고 자청하여 신라군과 아단성(현 온달산성)에서 싸우다 유시(流矢)에 맞아 전사했다. 장례를 지내려는데 관이 땅에서 떨어지지 않으므로 공주가 와서 관을 쓰다듬으며 '생사가 이미 정해졌으니 돌아가라' 하자 관이 움직여 장사지냈다 한다." (<삼국사기> 열전 발췌, 다음 백과사전 검색어 '온달설화' 참조, 부분 인용)

남천변을 따라 걸으면서 만난 경치가 장관이었다.
 남천변을 따라 걸으면서 만난 경치가 장관이었다.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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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달과 평강이 사랑하던 곳, 온달 관광지를 뒤로 하고 무작정 읍내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두 청년과는 온달 관광지를 둘러본 뒤 헤어졌는데 둘은 30분 거리에 있는 영춘면 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간 뒤 버스를 타고 읍내로 들어간다고 했다. 나는 다리도 아프고 배도 고파서 일단은 뭘 좀 먹고 그 뒤에 걷든지 차를 알아보든지 할 생각이었다. '고구려식당'에서 시원하게 물냉면에 고기를 먹고 기운을 회복한 뒤 강변을 따라 홀로 걸었다.

"돈이 많으신가 봐요?" "…"

사실 두 청년과의 만남은 그닥 유쾌하지 않았다고 고백해야겠다. 읍내에 들어갔다가 버스를 타고 도담상봉으로 간다는 계획이 같았음에도 불구하고 갈라지게 된 건 어쩌면 그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뭐랄까, 나쁜 사람들이 아니란 건 알겠는데 영 동행하는 재미가 없었던 거다.

서울에서 왔다기에 나도 학교는 서울이라고 하니까 즉각 학교가 어디냐 되물어온 고리타분함(여행길에는 즐거운 화제들도 얼마든지 많은데 굳이 그런 뻔하고 일상적인 질문을 해야 했느냐는 말이다)은 그렇다 치자. 하지만 여행다니는 걸 정말 좋아해 이번 방학 때 전국일주를 할 작정이라는 내 말에 "돈이 많으신가 봐요?"라는 반문이 돌아왔을 때는 정말이지, 모욕을 당한 기분이었다.

사실 여행을 다니다보면 돈을 꽤 쓰게 되는 건 사실이다. 어디든지 나가면 돈인 세상이니까. 돈이 없어서 여행을 못 간다고 징징대는 이들도 많은 걸 안다. 하지만 글쎄, 서울에서의 자취하던 시절의 내 씀씀이가 크다고 비판하면 할 말 없겠지만 내 경우는 여행을 다니면서 그보다 특별히 더 쓰지는 않았다.

여행을 하면서 쓰는 돈은 다 필요에 의한 것이다. 배가 고프면 밥을 사 먹고, 걷다가 지치면 택시를 잡아 타기도 한다. 가장 필요하고 절실한 소비들이다. 도시에서처럼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생각없이 샀다가는 그게 바로 다 짐이 돼버리니까, 절약을 배우게 된다. 그러니까 돈 없어서 여행도 못 간다는 핑계 대면서 인터넷 쇼핑으로 카드 긁지 말고, 지금 당장 소박한 짐을 꾸려 떠나는 게 훨씬 경제적이라는 걸 보장할 수 있다.

내 경우는 평일엔 여행을 하고 주말 이틀 간은 집에 돌아와 동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여기에 지난 학기 휴학하고 벌어둔 돈 그리고 용돈을 조금씩 보태는 걸로 얼추 여행 경비가 충당된다. 알바를 하는 짬짬이, 열차에서, 떠나기 전날 새벽까지 날 새워 쓰는 연재 기사의 원고료도 도움이 된다.

남들 눈에는 여행에 목숨 건 사람처럼 보이겠는데 사실 맞다. 여행을 하지 않고는, 떠나고 또 떠돌지 않고 살 수 없는 게 나의 삶이기에. 그러니까 나의 삶을 충실하게 살고자 하는 노력이 '돈지랄' 취급을 받았는데 아무리 장난말이었대도 어찌 모욕이 아니겠는가.

이래서 내가 혼자 여행한다! 호젓하게 걷기 그리고 히치하이크

남천변에서 물고기를 잡고 있는 낚시꾼들의 모습
 남천변에서 물고기를 잡고 있는 낚시꾼들의 모습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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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남천변을 걸으니 차라리 후련하고 호젓하다. 단양 주변에는 남한강이 따라 흐르고 있는데 영춘면 쪽의 남천계곡에서 내려오는 물이 남천을 따라 내려오고 그게 남한강으로 합쳐지는 것이다. 남천을 건너서 보이는 소백산 허리에는 물안개가 서려 있고 산 그림자가 물빛에 반사된다. 7월초답게 덥긴 하지만 햇볕이 따스해 좋다.

'지방하천 남천'이라는 파란색 표지판을 지나는데 고라니인지, 노루인지가 날 보고 달아난다. 여행을 하면서 만날 수 있는 건 사람만이 아니다. 도시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생명들과의 조우, 빠뜨릴 수 없는 여행의 매력이다. 그러고보니 온달산성 가는 길에서는 주먹만한 개구리를 만나기도 했다. 그렇게 큰 놈은 처음 봤다.(신기해 하고 있는데 동행한 청년들은 "군대 가면 자주 본다"고 찬물.)

읍내로 들어가는 차가 많을 거라는 생각에서 무작정 나섰으니 이제는 히치하이크를 안 할 수가 없다. 한참을 쭈뼛거리며 몇 대인가의 차를 그냥 보내고 다만 남한강 경치를 감상하며 걷다가 영춘교 위에서 젊은 부부의 차를 얻어탔다. 사실 온달관광지에서 단양읍내까지는 다리를 세 개나 건너야 하고 차로도 30분은 걸릴 거리니까 끝까지 걸어갈 생각은 애초에 안 했다.

군간교가 있는 데까지 고마운 분들의 차로 편하게 달렸다. 우유도 하나 주셔서 목을 축였다. 그리고 걸어서 다리를 건넌 다음 또 다시 얻어탄 차. 삼십대쯤 되어보이는 여자분이었는데 읍내로 가는 차가 있다는 가곡면 버스정류장까지 태워다주셨다. 나를 내려 주고 언덕 위로 차를 몰아 가시는데, 지도를 보니 그 즈음에 초등학교가 하나 있다. 선생님이신가? 이런 곳에 있는 학교에는 아이들이 얼마나 있을까? <오마이뉴스>에서 했던 '나홀로 입학생' 기획이 떠오른다.

정류장에 붙은 시간표를 보니 버스가 오기까지는 아직도 한참이나 남았다. 다시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이렇게 어딘지도 모르는 곳을 무작정 걷다 보면 보물을 발견하게 되는 법인데, 이번에 찾아낸 건 강변의 갈대숲. 지도를 보니 '남한강갈대공원'이라는 표시가 돼 있다. 여름이라 아직 갈대에 제 빛이 나지 않지만 갈대밭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들어가봤다. 일부러 찾아올 리는 없을 것 같은 작은 공원인데 기대한 바 없이 우연히 만나면 사소한 것도 반갑다. 공원 근처의 정자에는 가곡면 할머니들이 나와 삼삼오오 모여 계셨다.

무작정 걷다 만나게 된 갈대밭, 남한강갈대공원
 무작정 걷다 만나게 된 갈대밭, 남한강갈대공원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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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이 무거워 힘이 들긴 했지만 그래도 시원하게 뚫린 길을 따라 가로수와 함께 걸으니 기분은 최고였다.
 배낭이 무거워 힘이 들긴 했지만 그래도 시원하게 뚫린 길을 따라 가로수와 함께 걸으니 기분은 최고였다.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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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길을 따라 걷다가, 덕천교를 지날 즈음 또 다시 히치하이크를 했다. 아저씨 둘이 타고 가시던 차. 뒷좌석에 기타와 색소폰 등이 실려 있는 걸 보니 음악을 하시는 분들인가보다. 음악을 즐겨서 그런지 확실히 재미있는 분들이셨다. 내가 걸어서 이렇게 다니고 있다니까
"우리도 빨리 서울까지 한 번 걸어가야 되는데!" "그럼, 언제 시작할까?" 하며 농담을 주고 받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

단양읍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관문, 고수대교! 남한강을 가로질러 난 다리를 넘어가면서 보이는 풍광이 너무 좋아 나는 연신 창 밖으로 사진을 찍었다. 어느새 읍내. 아저씨들은 나를 버스정류장에 내려주고 떠나셨다. 그 악기들을 가지고 어디에 가서 어떤 음악을 연주하실까?

남편, 처와 첩... 사랑싸움 보는 듯한 도담삼봉

왼쪽부터 처봉과 남편봉, 첩봉. 재미있는 이야기가 얽혀 있는 도담삼봉은 단양팔경에도 들어간다.
 왼쪽부터 처봉과 남편봉, 첩봉. 재미있는 이야기가 얽혀 있는 도담삼봉은 단양팔경에도 들어간다.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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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팔경의 하나인 도담삼봉. 조선시대 정도전이 이곳에서 유년을 보내다 그 풍광에 반해 자신의 호를 삼봉이라 했을 정도로 절경을 자랑한다. 탁 트인 경치를 보니 이곳에 오기까지 겪은 고생이 씻은 듯 말끔해진다.

도담삼봉이란 봉이 세 개라는 뜻인데, 각각 남편봉과 처봉, 첩봉이라 한다. 가운데 있는 큰 봉우리가 남편봉이고 오른쪽에 배가 불러 있는 돌이 첩봉, 그 반대에 등을 돌리고 있는 돌이 처봉이란다. 남의 가정사를 훔쳐보는 듯한 재미가 있다.

역시 단양팔경의 하나인 석문. 도담삼봉에서 상류 산기슭으로 약 200미터만 가면 나온다.
 역시 단양팔경의 하나인 석문. 도담삼봉에서 상류 산기슭으로 약 200미터만 가면 나온다.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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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분수를 지나 산 속으로 조금 올라가니 또하나의 단양팔경에 해당하는 석문이 등장한다. 아주 오래 전 석회동굴이 무너져 내리면서 그 천장의 일부가 남아 이런 모양이 된 것으로 추정한다고. 동양에서 가장 큰 규모라는 이곳 단양의 석문은 그 자체의 생김도 희한하지만 그 너머로 볼 수 있는 남한강의 풍경도 참 잔잔하게 아름답다.

석문의 왼쪽 아래에는 마고할미가 살았던 동굴이 있다고 한다. 마고할미가 하늘나라에서 물을 길러 내려왔다가 비녀를 잃어버려서 이곳에 살게 되었다는 거다. 마고할미는 죽어서 바위가 되었는데 지금도 긴 담뱃대를 물고 술병을 든 마고할미 바위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둘 다 나로서는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이 동네는 동굴이고 삼봉이고 석문이고 간에 하여튼 희한한 돌들도 참 많다!

석문으로 가는 길에 있던 정자. 잠시 가방을 내려놓고 쉬었다.
 석문으로 가는 길에 있던 정자. 잠시 가방을 내려놓고 쉬었다.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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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의 고딩과 서울의 고딩, 어떻게 같고 또 다를까

근처 식당 주인 아주머니의 호의로 차를 얻어타고 읍내로 나가서, 다시 버스를 타고 단양역으로 향했다. 날이 지고 어두워 밖이 잘 안 보이는 바람에 내릴 곳을 지나쳤는데, 다행히 어디 서는 것 없이 한 바퀴 돌아 오는 버스다. 그대로 앉아 버스 안팎의 풍경을 관찰했다.

한 무리의 고등학생들이 우르르 탔다가는 차가 설 때마다 몇 명씩 내린다. 서로 "내일 봐~"하고 인사를 나눈다. 외진 곳으로 여행을 다니면서 늘 궁금한 게 청소년들의 삶이다. 이런 지역에서 유년기를 보낸다는 건 한 사람의 인생에서 어떤 의미일까? 서울의 청소년과 이곳 단양의 청소년은, 어떻게 같고 또 어떻게 다른가? 나 자신도 조그만 동네에서 십대 시절을 다 보냈지만, 난 그 시절에 대해 이상한 회한이 있다.

좀더 다르게 지낼 수 있지 않았을까. 좀더 놀 수도 있고, 좀더 즐길 수도 있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면 또 그럴 수는 없었다. 아직도 기억나는 고등학교 자습 시간표. 7시에 시작해서 8시 35분에 15분 동안 쉬고 다시 10시 30분까지 자습. 기숙사에 올라가서는 11시 10분에 점호를 하고 다시 11시 20분부터 1시간 동안 자습. 12시 20분이 된다고 해서 다들 자러 가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어서 시험 기간 같은 때는 '올나잇'을 하는 게 너무나 당연했다.

다들 너무나 '열공'하는 친구들이어서 중학교 때는 그저 평범한 범생이었던 내가 거기선 튀었다. 자습을 땡땡이치는 것도 나뿐이었고 담임선생과 싸우는 것도 나뿐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시절이 후회가 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닌 것이 내가 선택해서 간 학교였고 그 당시로서는 그게 최선이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 해도 내 선택에 큰 차이가 있을 것 같진 않다.

그런데도 아쉬운 시절이기 때문에 이상한 회한이 남는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어쩌면 그건 입시에 대한 강박관념이 원인이다. 그렇게 치열한 입시 경쟁이 아니었다면 난 좀 다르게 십대 시절을 마무리할 수도 있었을텐데. 입시 지옥이라는 현실이 너무나 공고해서 나는 그 시절을 맘껏 후회도 못 한다. 다시 고딩이 된대도 수능을 쳐야 한다는 사실은 같을 테니까. 그래서 이러니저러니 해도 나름 열공했던 것 같은 그 시절이 아쉽지만 어쨌든 최선을 다한 것 같아 후회는 안 하기로 맘먹는 거다.

어느새 고등학생들은 다 제 집을 찾아 가고 차에는 나뿐이다. 버스는 가로등도 거의 없는 깜깜한 밤길을 달린다. 어느 마을회관 앞에 할머니 몇 분이 마실을 나와 계신다. 버스가 지나가자 고개를 돌려 쳐다보신다. 버스도 자주 다니지 않는 동네, 이나마도 구경거리인 모양이지.
소요 비용
내일로티켓 54700원
제천역 내일로숙소 구내식당 2500원
제천역→구인사 버스비 4300원
온달관광지 입장료 5000원
고구려식당 고기+물냉면 6000원
단양읍내→도담삼봉 버스비 1050원
칠레산 거봉 2000원
간식거리 구입 5000원
단양읍내→단양역 버스비 1050원
합계(내일로티켓 제외) = 26900원
양가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다 일찍 돌아가셔서 우리 엄마는 종종 나와 내 동생이 불쌍하다고 했다. 어릴 땐 어차피 자주 뵙는 것도 아닌데 불쌍할 것까지야, 했지만 이제는 엄마의 말이 이해가 된다. 살아 계셨다면, 그래서 찾아갈 시골집이 있다면 참 좋을 것을.

어느새 버스는 단양역 앞에 도착했다.

덧붙이는 글 | 더 많은 사진과 정보는 기자의 블로그에 있습니다.



태그:#단양, #도담상봉, #바보온달, #내일로단양, #석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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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없는 곳이라도 누군가 가면 길이 된다고 믿는 사람. 2011년 <청춘, 내일로>로 데뷔해 <교환학생 완전정복>, <다낭 홀리데이> 등을 몇 권의 여행서를 썼다. 2016년 탈-서울. 2021년 10월 아기 호두를 낳고 기르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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