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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2003년 성미산 싸움' 이야기인가?

 

2010년 6월 현재 성미산은 커다란 위기에 있다. 홍익재단이 성미산의 가장 아름다운 남사면 숲을 훼손하고 그 자리에 홍대 안에 있는 홍익초중고를 이전시키겠다며 학교건축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미산 주민들은 서울시가 홍익재단에 대체부지를 마련해주어 교육권을 보장하고, 성미산은 서울시민에게 돌려달라고 주장하며 성미산지키기 비상행동을 하고 있다. 매일 밤 100명 이상이 모여 문화제를 하고, 매일 두 차례 일인시위를 하고, 성미산에 텐트를 치고 24시간 내내 5명씩 산에 상주하여 산의 훼손을 몸으로 막고 있다. 활동비 한푼 나오지 않지만, 주민들은 앞장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아내어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먹고 살기 바쁘고, 자식 키우기 바쁘고 자기 계발하며 살기에도 너무 바쁜 서울 도심에서 성미산 인근에 살고 있는 주민들을 이렇게 움직이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그건 바로 '2003년 성미산 싸움의 승리'에 대한 자부심과 그 자부심을 이어서 아름다운 성미산을 후대에 전해주고 싶은 나름의 사명감이다.

 

'2003년 성미산 싸움'은 성미산 정상에 배수지를 짓겠다는 서울시와 성미산을 깎아 아파트를 짓겠다는 한양대의 시도에 맞서서 2001년 7월부터 2003년 10월까지 2년 3개월 동안 주민들이 맞서 개발을 막아낸 경험을 말한다. 생활협동조합(생협)과 공동육아 어린이집(우리어린이집, 도토리방과후, 날으는어린이집, 풀잎새방과후, 참나무어린이집) 식구들을 비롯한 2003년 성미산 지키기 주역들은 그 긍정의 에너지로 '성미산 마을 공동체'를 키워나갔다. 대안학교(성미산학교)도 세웠고, 마을택견학습터(꿈터), 마을반찬가게(동네부엌), 마을카센터(성미산차병원), 마을공동 자동차타기운동(성미산카쉐어링), 마을카페(작은나무), 마을극장(성미산마을극장 나루), 마을식당(성미산밥상)이 생겨났다. 마을 주민들은 7년째 마을축제를 하고 있고, 노인부터 아이들까지 연극, 사진, 동영상, 풍물, 노래, 축구, 야구, 글쓰기, 그림그리기 등 다양한 동아리에서 삶을 즐기고 있다. 성미산 마을 공동체는 좋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자력을 가진 것처럼, 점점 더 젊은 세대로 채워지고 그 수도 많아졌다. 지금 홍익재단과 맞서 성미산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은 바로 이런 마을의 역사 속에서 마음을 모아온 사람들인 것이다.

 

이 글은 <성미산이 우리를 지켰지요>라는 기획으로 여덟 번에 나눠 '2003년 성미산 싸움의 기록'을 연재할 예정이다. 글쓴이 유창복은 아이를 키우려 십여 년 전에 성미산 마을로 이사 와서 2003년 성미산 싸움을 주도적으로 해온 경험을 가지고 있다. 지금은 '짱가'라는 이름으로 성미산마을의 고참 주민으로, 성미산마을극장의 대표로 살고 있다. 이 글은 성미산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 8월 말경 출판될 책의 일부분이다. 이 글은 홍익재단에게 '불의와 불법 단체'라는 딱지를 받은 사람들, 환경 시민단체에게 '서울 도심에서 생태와 대안적 삶을 실현하는 아름다운 사람들'이라는 찬사를 받는 사람들, 성미산마을공동체와 그들의 2010년 성미산지키기 비상행동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서울시의 <성미산 배수지 계획>을 듣다

 

어느 날 아들아이가 다니는 도토리 방과후 어린이집에서 엄마 아빠들은 급히 모여 달라는 전갈을 받았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해기'(우리 마을은 부모나 교사 대부분 별명을 씀)가 착잡한 표정으로 말문을 연다.

 

 "성미산 소식 아세요?"

 우리 재현이 선생님이기도 한 해기는 늘 생글생글 밝은 낯빛을 하고 있다. 얼굴만 봐도 괜히 기분 좋은 사람, 해바라기라는 본래 별명처럼 늘 이글이글 밝고 환한 사람이었다. 그런 해기가 좀 비장해 보였다.

 "성미산이 배수지 용도로 헐린답니다."

 

 실은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발 빠른 단하아빠가 며칠 전 우리에게 알려줬었다. 해기는 말을 이었다.

 

"성미산은 아이들이 매일 해 뜨면 나들이 가는 곳이에요. 큰 아이들도 낮이면 하루가 멀다 하고 올라 다니는 정다운 동산입니다. 아이들은 나름대로 비밀 장소를 만들어 놓고 그늘나무니, 비둘기집이니 자기들만 아는 이름을 지어 놓았지요. 성미산은 우리 아이들의 추억과 꿈이 담긴 곳이에요. 그런 의미에서도 이 산은 헐리면 안돼요. 만약 헐리게 되면 우리 아이들의 꿈과 추억의 창고가 영원히 사라지게 됩니다. 성미산은 공동육아의 이념이 자리하고 있을뿐더러 우리 마을의 중요한 상징적 장소로서 여느 장소와는 그 의미가 정말 다릅니다."

 

 

 

 사실 며칠 전 <성미산 배수지 건설> 계획을 들은 후 마을사람들의 마음도 복잡하긴 했다. 뭘 하기는 해야겠는데 뭘 어찌해야 할지 머뭇거리는 중이었다고나 할까. 환경을 생각하면 성미산에 배수지 건설을 막아야 한다. 하지만 배수지가 말 그대로 지역 급수를 원활하게 하기 위한 공익 시설이라면 무작정 반대하기도 어렵지 않겠느냐는 의견도 있었다.

 

나만 해도 그랬다. 그동안 4년여 성미산 자락에 살았지만 산에 올라가 보기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사실 난 생태적 감수성이란 것도 거의 없었다. 게다가 산을 지키네, 어쩌네 하면 그 후 벌어질 갖가지 실랑이가 안 봐도 비디오였다.

 

 마을 돌아가는 눈치만 힐끔힐끔 보며 말을 아끼고 있던 나는 해기의 단호하면서도 간절한 말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게다가 우리 가족 모두가 너무 좋아하는 해기가 목에 핏대를 올리며 '거창하게 환경을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우리 아이들의 꿈과 추억이 담긴 동산, 우리 아이들의 고향을 지키자'고 말할 때 나의 마음은 크게 흔들렸다. 

 

 

 

"내 아이와 어르신들의 고향을 지켜주자"

 

 고향이라는 말에 나는 감동했다. 사실 나는 시골에서 태어났지만 가끔 벌초하러 가는 그곳에는 별 반가움도 추억도 없다. 하지만 내가 학교를 다니면서 자란 곳, 지금도 내 부모님이 살고 있는 곳은 다르다. 지금 가서 보면 거기서 어찌 축구를 했을까 싶은 좁다란 골목, 내 어린 시절 대부분을 보낸 미아리가 나에게는 고향이다. 그러고 보니 내 아들에게는 성미산이 바로 고향인 것이다.

"그래, 아들의 고향을 지켜주자."

 

나는 다음 날 바로 성미산에 올랐다.

 "관에서 하는 걸 우리가 어찌 막아?"

새벽녘 성미산에는 오래 전부터 날마다 산을 오르던 마을 어른들이 계셨다. 60~70대 노인들과 40~50대 아주머니들에게 성미산은 중요한 건강의 터전이었다. 벌써 마을에 소문이 퍼졌는지 다들 한마디씩 하신다.

 "산이 헐린대."

 "그럼 아침에 산에서 체조도 못하는 거야?" 

 "성미산이 종합병원인데, 이거 없어지면 난 어쩌나."

 

이 분들 중에는 성미산 진짜 토박이들이 많다. 이 자그만 산을 오른 지 30년도 넘었다는 할아버지, 할머니에서부터 날마다 새벽이면 산에서 에어로빅을 하는 동아리도 있었다. 산 중턱에 설치된 운동 기구를 이용하는 주민들도 제법 되었다. 산이 만병통치약이니 성미산은 곧 이 동네 종합병원이라며 배수지 설치로 산이 없어질 것을 무척 아쉬워하시는 할머니에게 슬쩍 말을 건넸다.

 

"배수지 짓는 거 막아야지요."

 "관에서 하는 걸 어찌 막어? 막을 수 있으면 우리야 좋지만…."

 한편으론 자포자기의 심정을 토로하며, 한편으론 당신보다 젊고 열성적인 우리에게 은근히 기대를 거는 눈치였다.

 "할아버지 할머니, 우리 같이 힘을 합하면 이 산 지킬 수 있어요!"

 "…."

 대답이 없으시다. 답답했지만 이해 못 할 바도 아니다. 말로 될 일이 아님을 바로 알았다. 

이제 나는 내 아들 놈의 고향이기도 하지만, 이 어르신들의 고향인 성미산을 지켜줘야겠다는데까지 생각이 이르렀다.

 

'성미산을 지키는 주민 연대' 줄여서 성지연을 만들다

 

어린이집 엄마 아빠들이 모였다. 우선 우리들만이라도 산에 자주 올라 어르신들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대책을 세워 나가기로 의견을 모았다. 성미산 인근에 있는 교회, 절, 성당 등의 종교 단체와 이야기를 나누니 모두 공감을 했다. 산 밑에 배드민턴 코트를 치고 운동하는 배드민턴 동호회 회원들을 비롯해서 체조부, 청년회, 산악부 등등 지역의  여러 주민단체들이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누가 나서나?'

 '나선다고 될까?'

 처음에는 회의적이던 이들도 지역의 동참 분위기를 실감하자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이렇게 성미산 배수지 건설 반대를 위한 공식적인 주민 대표조직, '성미산을 지키는 주민 연대'가 결성되었다. 일명 '성지연'. 성미산의 친구가 탄생한 것이다. 마포두레생협, 우리어린이집, 도토리방과후, 날으는어린이집, 풀잎새방과후, 참나무어린이집, 성만교회, 성림사, 신체조교실, 건우회, 나무회, 성미향우회, 성산향우회, 체조교실 등이 함께 참여했다.

 

조합원 모집과 사업 정비에 한창이던 '마포두레생협' 상무인 구교선(상호엄마)씨가 활동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여러 공동육아 어린이집 조합원들이 생협의 주축이기도 하고, 지역 차원에서 공동의 발언과 행동을 할 수 있는 틀로서는 무엇보다 생협이 적합했다. '성지연'의 위력은 대단했다. 처음 공동육아 어린이집 조합원 엄마 아빠들의 항의와 움직임에는 콧방귀도 안 뀌더니, 어엿한 지역 사회의 여러 주민 단체들을 망라하는 연합체가 결성되니 서울시나 마포구청 측에서도 우리를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지역 어르신들의 기대와 후원 또한 절대적이었다. 양측의 대립이 정점에 달했을 때, 서울시 측 흑색선전에 맞선 지역 어르신들의 엄호는 참으로 효과적이고도 감격적이었다. '다른 지역에서 원정 온 데모꾼들이다.', '이 동네에 살지도 않는다.' 배수지 공사를 도급받은 업체 직원들이 시위에 참여한 우리를 보고 하는 막말에 60, 70대의 허연 어르신들이 우리를 역성들어 주었다.

 "이 양반은 우리 뒷집 사는 아무개 아빠여! 이 동네에 산 지가 벌써 5년째여! 이 엄마는 어떻고?"

 

어르신의 단호한 말에 그들은 오히려 머쓱해져 버리고 말았다. 참으로 통쾌하고 가슴 뭉클한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공동육아 식구들과 지역 어르신들과의 극적인 만남은 이렇게 바로 성미산에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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