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홍이포. 화약의 힘으로 발사되는 홍이포는 오늘날 미사일만큼이나 가공스러운 무기였다. 특히 소리가 공포심을 유발했다. 하지만 포탄이 폭발하지않아 살상력은 떨어졌다.
▲ 홍이포. 화약의 힘으로 발사되는 홍이포는 오늘날 미사일만큼이나 가공스러운 무기였다. 특히 소리가 공포심을 유발했다. 하지만 포탄이 폭발하지않아 살상력은 떨어졌다.
ⓒ 이정근

관련사진보기


대포(大砲)는 대포(大泡)였다

병조판서 이시백을 내보낸 인조가 김자점과 구인후를 불렀다.

"역당이 포를 가지고 있다하니 어떻게 대처하면 좋겠는가?"
애써 위엄을 갖추었으나 두려운 기색이 역력했다.

"경상 감사를 문경으로 와서 머무르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조선 초기, 경주에 있던 경상감영은 경상도가 경상좌도와 우도로 나뉘면서 상주에 경상우도 감영이 자리 잡았다. 임진왜란 와중에 경상도를 합쳐 달성에 감영을 마련한 선조는 안동으로 잠시 감영을 옮긴바 있으나 1601년 대구로 감영을 옮겨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니까 경상감사를 새재 어름으로 불러올리자는 것은 경상도의 행정력과 군사력을 한양 가까이 북상시키자는 것이다.

"조정에서 장수를 임명하여 역당을 진압하는 것이 옳을 듯합니다."

"전라 병사를 한양 가까운 지방으로 나오게 하고 외방의 어영군도 모두 도성으로 집결시키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좋은 생각이다. 총융사를 도성과 가까운 경기 고을에 나가 주둔하게 하여 위아래에서 접응하도록 했으면 어떨지 모르겠다."

"지당하십니다."
김자점과 구인후가 윤당(允當)하다고 머리를 조아렸다. 총융사를 겸하고 있는 병조판서 이시백을 다시 불러들였다.

포를 가진 역당이 두렵다, 군사와 군량을 줄테니 즉시 출동하라

"총융은 즉시 동원할 수 있는 군사가 얼마나 되는가?"
"신의 아병(牙兵)이 5백여 명이고 군영의 포수(砲手)와 사수(射手)를 끌어 모으면 1천여 명은 될 것입니다."
"즉각 출동 준비를 하라."
벼락같은 명이 떨어졌다.

"갑자기 군대를 출동시키게 되면 군량 조달이 어렵습니다."
이시백이 난색을 표했다.

"남한산성에 비축해둔 군량미 2백 석을 먼저 보내주고 강화의 미곡 5백 석은 뱃길로 보내 주겠다."
"그럼 신이 먼저 단기(單騎)로 현장에 달려가고 군졸들이 약속 날짜에 진위로 오게 하면 군사를 지휘하는데 무리가 없을 듯 합니다."
이럴 때 써 먹는 것이 충정이다. 이시백은 순발력 있는 자신의 입이 스스로도 놀라웠다.

"그도 좋은 생각이다. 총융은 즉각 떠나라."
"넵, 명 받잡고 소신 진위로 출동하겠습니다."
절도 있게 복명한 이시백이 편전을 물러나왔다. 말에 오른 이시백이 채찍을 감아쥐었다.

패해도 빠져나갈 구멍을 마련하라

궐문을 빠져 나와 군영으로 향하는 이시백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그려졌다.

"전하의 성심을 어지럽힌 것은 도리가 아니지만 그래도 이쯤 했으니까 정예군이 움직이고 군량미가 배를 타지 않은가. 역도들의 존재를 미미하게 보고했다면 언감생심 총융사의 군대가 움직이겠는가?"
어깨가 으쓱해졌다.

"역도들이 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나도 확실히 모른다. 하지만 군관의 보고를 그대로 주상전하께 전했을 뿐, 허위보고는 아니잖은가?"
애써 자위해 보았지만 켕기는 구석이 있었다.

"포 있는 역당을 포가 없다고 보고했다면 군율에 따라 엄히 다스려질 범죄행위다. 허나, 역당들이 가지고 있을 수도 있는 화승총을 포라 보고했다면 죄로 다스리기에는 과하지 않은가. 내가 친히 역당의 소굴에 들어가 확인할 수야 없으니 군관의 보고를 믿을 수밖에..."
합리화해 보았지만 문제가 되었을 때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 같았다.

난세에는 장수들이 적정을 과대포장 하는 습관이 있다. 일종의 관습요령이다. 적이 크고 강하다고 해야 패했을 때 빠져나갈 명분이 있다. 또한, 승리했을 때 전공이 배가된다. 군영에 다다른 이시백의 뇌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적정을 과대 보고하는 것이 장수들의 공개된 비밀인데 영상은 왜 병자년에 적정을 축소보고 했을까?"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렇다면 영상은 이 나라가 청국의 손아귀에 떨어지기를 바랐단 말인가?"

생각하면 할수록 무서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욱 요즈음에 들어 영상이 역관 정명수와 비밀 내통한다는 첩보가 총융사에 접보되었다. 자꾸만 청나라와 밀착해가는 영상의 행보가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지 그 귀추가 염려되었다.

홍타이지 그가 잠들어 있는 심양 북릉 공원에 있다.
▲ 홍타이지 그가 잠들어 있는 심양 북릉 공원에 있다.
ⓒ 이정근

관련사진보기

정묘호란으로 맺어진 '형제맹약'을 파기한 청나라가 제고지문을 보내 군신관계를 요구했다. 이에 조선이 불응하자 11월 25일까지 왕자를 보내라고 최후통첩을 보내왔다.

조선은 주화파와 척화파가 첨예하게 대립해 논쟁하느라 통첩시한을 넘겼다. 자신의 요구를 묵살했다고 분노한 홍타이지는 동정군(東征軍)을 일으켜 사령관에 도르곤을 임명하고 조선을 벌(伐)하라 명했다.

압록강을 건넌 청나라군은 파죽지세로 한성을 향하여 내달렸다. 의주부윤 임경업이 지휘하는 군대는 '후미를 도모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백마산성으로 들어가 버리고 저항하는 조선군은 없었다.

청나라 침공 사실을 국경수비대로부터 보고받은 도원수 김자점은 '소식이 도성에 알려지면 민심이 놀란다'며 정방산성에서 봉화를 차단했다. 황해도 사리원에 있는 정방산성은 관서 군사요충이며 김자점의 군영이었다.

청나라의 침공사실이 조정에 알려진 것은 '청군이 송도를 지났다'는 개성유수의 장계였다. 이 때 이미 청나라군은 도성 밖 양철평에 이르렀다.

사장(四將)이 서로 견제하는 조정

심야의 회의는 계속되었다.

"영남에 보낼 장수를 정해야 합니다."
김자점이 아뢰었다.

"최만득이 어떻겠습니까?"
구인후가 천거했다.

"그는 장사입니다만 대임(大任)을 맡기기에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김자점이 반대했다. '적합하지 않다.'라는 기준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누가 장수에 적합한지 경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라."
인조가 구인후에게 눈길을 주었다.

"김운해가 어떻겠습니까?"

"김운해는 명성이나 지위가 미약해서 제대로 사태를 진정시키지 못할 듯합니다."

김자점이 또 반대했다. 그는 자신의 수족, 변사기를 보내고 싶었으나 그가 훈국 중군(訓局中軍)에 근무하고 있어 내려 보내지 못한 것이 안타까웠다. 훈련도감 중군은 지방으로 파견할 수 없도록 법으로 규정해놓은 것이 원망스러웠고 평안 병사로 있던 변사기를 너무 일찍 도성으로 불러들인 것이 발등을 찍고 싶을 만큼 후회스러웠다.

반정으로 등극한 인조를 떠받치고 있는 4인이 있다. 이들을 저자에서는 넉 장(四將)이라 조롱했다. 다섯 장이라야 제 몫을 할 수 있는데 낙장이라는 비아냥이다. 김류, 김자점, 구인후, 이시백이다. 이들은 세력이 커지면서 서로 반목했고 갈등했다. 자신의 수하를 요직에 앉히려 경쟁했고 공을 세울 곳이면 자신의 수족을 파견하려 눈에 쌍심지를 켰다.

믿는 것은 피붙이 뿐이다

심야의 회동은 역당 진압 적임자를 정하지 못한 채 파했다. 나가려는 구인후를 인조가 돌려세웠다.

"적도들의 동향이 염려스럽기 그지없으니 경은 동영(東營)에 머물면서 다른 변고를 살피도록 하라."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도 있지 않은가. 강 건너 역당도 걱정이었지만 권력 핵심부의 동요가 두려웠다. 누가 반기를 들고 궐을 넘볼지 모른다.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이 밤, 인왕산 기슭에서 검은 그림자가 작당하여 창의문을 부수고 도성에 들어 올 것만 같았다.

이튿날, 총융사 이시백이 군사 5백 명을 이끌고 경기 진위로 떠났다. 인조는 이와 때를 같이하여 선전관을 공청도에 보내 공청 병사 배시량으로 하여금 군사를 출동시켜 적의 소굴을 섬멸하게 하였다.

덧붙이는 글 | 훈국(訓局)-훈련도감
동영(東營)-대궐에 주둔하고 있는 훈련도감과 어영청의 분영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