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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2월 12일 한나라당 청년위원회 초청 청와대 만찬 기념사진. 이명박 대통령 왼쪽에 강용석 청년위원장이 서 있다. 강용석 의원은 이 만찬에 참석했던 한 아나운서 지망 여학생에게 "대통령이 너만 쳐다보더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 "대통령이 너만 쳐다보더라" 2009년 2월 12일 한나라당 청년위원회 초청 청와대 만찬 기념사진. 이명박 대통령 왼쪽에 강용석 청년위원장이 서 있다. 강용석 의원은 이 만찬에 참석했던 한 아나운서 지망 여학생에게 "대통령이 너만 쳐다보더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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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강용석 의원(41·서울 마포을)이 '대형 사고'를 쳤다. <중앙일보> 20일 보도에 따르면, 강 의원은 지난 16일 서울 홍익대 인근의 한 고깃집에서 제2회 국회의장배 전국 대학생 토론대회에 참가한 남녀 대학생 20여 명과 저녁을 먹는 뒤풀이 자리에서 문제의 발언을 했다.

올해로 두 번째인 '국회의장배 전국 대학생 토론대회'는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차세대 주력인 대학생들에게 민주시민의 필수 자질인 토론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성숙한 토론문화를 유도하려는 데 그 취지가 있다. 월드컵 대회처럼 예선(15일, 12개 조별 리그전으로 48개팀 중 16개팀 선발)과 본선(16일, 16강전~결승전 토너먼트)으로 나눠 진행되었다.

한나라당 청년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심사위원이었던 강 의원은 이날 대회를 마치고 학생들에게 이렇게 조언을 했단다.

"사실 심사위원들은 (토론) 내용을 안 듣는다, 참가자들의 얼굴을 본다. (토론 패널은) 못생긴 애 둘, 예쁜 애 하나로 이뤄진 구성이 최고다, 그래야 시선이 집중된다."

한나라당에는 폭탄주와 성희롱의 '원조'와 '원죄'가 있다

대학생들과 함께한 저녁 식사 자리에서 성희롱, 성차별적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져 논란이 일고 있는 강용석 한나라당 의원이 20일 오후 국회에서 "성적 비하 발언을 한 사실이 전혀 없다"고 해명하며 진땀을 흘리고 있다. 강 의원은 이날 "정치생명을 걸고 사실을 끝까지 밝힐 것"이라고 밝혔다.
 대학생들과 함께한 저녁 식사 자리에서 성희롱, 성차별적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져 논란이 일고 있는 강용석 한나라당 의원이 20일 오후 국회에서 "성적 비하 발언을 한 사실이 전혀 없다"고 해명하며 진땀을 흘리고 있다. 강 의원은 이날 "정치생명을 걸고 사실을 끝까지 밝힐 것"이라고 밝혔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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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대회 때도 심사위원을 했던 경험자의 솔직한 토로이긴 하지만, 명색이 토론회 심사위원인데 토론 내용보다 미모를 본다는 조언이 민망하다. 문제는 그 다음 발언이다. 강 의원은 이 자리에서 장래희망이 아나운서인 여학생에게 "다 줄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래도 아나운서 할 수 있겠느냐"고 물으면서 "○○여대 이상은 자존심 때문에 그렇게 못하더라"고 말했단다.
강 의원은 "참석자들이 성적 수치심을 느낄 만한 말은 전혀 하지 않았다"고 강하게 반박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동료 여성의원의 미모를 품평했다는 다른 언론의 후속보도를 종합하면, 개연성이 큰, 부적절한 성희롱이다. 또 남자 아나운서는 실력으로 뽑지만 여자 아나운서는 그렇지 않다는 뜻이니 명백한 성차별이다. 전국의 아나운서들이 떨쳐 일어날 일이다. 게다가 '○○여대 이상'이라고 선을 그었으니 학력 차별이다. 전국의 '○○여대 이하' 학력자들한테는 몹시 기분 나쁠 일이다.

성희롱을 '지위를 이용하거나 업무와 관련하여 성적 언동을 통해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으로 고용환경을 악화시키고, 고용상 불이익을 주는 것'으로 법률적으로만 해석하면, 그 자리에 동석한 여학생들이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고 하더라도 법적 처벌 대상이 되는 건 아니다. 그러나 그는 육법전서를 끼고 사는 법조인이기에 앞서, '국민 정서법'을 존중해야 할 정치인이다.

강용석이 누구인가.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하버드 로스쿨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사법시험(33회)도 합격했으니 요즘 젊은이들이 강조하는 '스펙'으로 따지면 한나라당에서 가장 장래가 촉망되는 소장파 정치인이다. 그가 청년위원장에 재임된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그래서 이런 생각마저 든다. 필자는 운명론자는 아니지만, 한나라당은 아무래도 성희롱과 폭탄주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운명'을 타고난 모양이다. 왜냐고? 한나라당에는 폭탄주의 '원조'와 성희롱의 '원죄'가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대표 지낸 박희태 국회의장은 폭탄주 '원조'

박희태 국회의장은 폭탄주의 '원조'나 '중시조'로 통한다. 지금은 국회의장이 당직을 이탈해야 하는 국회법 규정에 따라 당적을 잠시 비워두고 있지만 그는 민정당 시절부터 당적을 가진 오리지널 한나라당맨이다. 한나라당 대표도 지냈다.

여러 설이 있지만 맥주잔에 양주 '뇌관'을 담은 형태의 폭탄주가 국내에 처음 등장한 것은 5공 시절인 1983년 당시 박희태 춘천지검 검사장이 춘천지역의 검찰과 군, 언론사 관계자들과 함께한 술자리에서 선보였을 때라는 것이 거의 정설이다. 그는 1988년 부산 고검장을 끝으로 정계에 입문해 이번에는 정치권에 폭탄주를 전파하게 된다. 오죽했으면 국회의장 취임 직후, 1988년 정계에 입문한 뒤 무엇이 가장 기억에 남느냐는 질문에 주저하지 않고 '술'이라고 답했을까 싶다.

- 정치인생 22년째입니다. 무엇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까.
"술이죠. 고래 경(鯨)에 술 음(飮), 이 두 글자로 설명하면 되겠습니까. 참 많이 마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제가 마신 술의 양만 5대양은 될 거라고도 하더군요. 22년간 국회 사람들도 참 많이 바뀌었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남아 있는 사람이 별로 없죠. 요즘은 와인이 유행하는 것 같던데 저는 아직도 소주가 좋습니다. 소주랑 맥주랑 섞은 폭탄주도 좋죠. 김진표 전 의원이 저한테 폭탄주를 배운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한국경제>, 6월 10일)

다른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도 "폭탄주 문화의 원조로 알려져 있는데 요즘도 폭탄주를 즐겨 마시느냐"는 질문이 빠지지 않았다. 박 의장도 "아내랑 주위에서 걱정을 많이 해 줄이고 있다"면서도 "지금까지 한 번도 술 먹고 병나거나 실수한 적이 없죠"라고 답변해 여전히 폭탄주 애호가임을 과시했다.

폭탄주의 '민폐'와 최연희 의원의 성추행

그러나 그가 전파한 폭탄주 문화는 그가 몸담았던 검찰은 물론 민정당과 민자당, 신한국당, 한나라당에 숱하게 많은 '민폐'를 끼쳤다. 일부 계층에서만 유행한 폭탄주 문화의 대중화에 기여한 1986년 '국방위 회식 사건'(실제로는 폭탄주에 취한 군 수뇌부가 정치인들을 두들겨 팬 집단 난투극)과 1999년 6월 진형구 대검 공안부장의 '조폐공사 파업 유도 발언' 사건이 대표적 사례다.

5공 정권의 군에 대한 문민통제를 우습게 만든 국방위 회식 사건의 경우, 국방장관과 참모총장이 국회에 출석해 사과하고, 당사자는 예편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검찰 출입기자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폭탄주 낮술 발언으로, 내정됐던 대전고검장 자리에는 하루도 앉아보지 못하고 옷을 벗은 진 검사장은 국회 청문회에 출석해 "왜 폭탄주를 마시냐"는 한 의원의 질문에 "양주가 너무 독해서"라는 유명한 일화를 남기기도 했다.

2004년 9월에는 한나라당 김태환 의원이 골프를 친 뒤 폭탄주를 마시다가 60대 경비원을 폭행해 물의를 빚었다. 2005년 6월에는 역시 한나라당 곽성문 의원이 대구 출신 의원들 및 상공인들과 골프를 친 후 폭탄주를 돌리다가 대구상공회의소 회장과 말싸움이 벌어져 술자리를 난장판으로 만든 '맥주병 투척 사건'이 벌어졌다.

최연희 전 한나라당 사무총장의 여기자 성추행 후 발언 피켓
 최연희 전 한나라당 사무총장의 여기자 성추행 후 발언 피켓
ⓒ 진보신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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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탄주가 폭력과 실언을 넘어서 성희롱이나 성추행으로 연결된 대표적 사건은 2006년 2월에 발생한 최연희 한나라당 사무총장의 <동아일보> 여기자 성추행 사건이다. 술이 약한 최 의원은 한나라당 당직자들과 함께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들을 서울 시내의 고급 한정식집에 초청해 폭탄주 술판을 벌이다가 여기자를 성추행한 이 사건으로 한나라당을 탈당해야 했다. 그 때문에 최 의원은 아직도 한나라당에 입당하지 못한 채 무소속으로 남아 있다.

폭탄주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폭소클럽'(폭탄주 소탕 클럽)이라는 모임이 결성되기도 했다. 폭소클럽 회장인 박진 의원은 그해 3월 국회 기자실에서 "언론인과 만찬을 하고 폭탄주를 돌려 거나하게 취한 상황에서 그런 사건이 벌어진 것"이라며  맥주잔에 양주잔을 넣은 '폭탄주잔'을 손에 들고 망치로 깨는 '퍼포먼스'를 선보여 국민들에게 '폭소'를 선물했다.

MB의 '마사지걸' 발언과 강용석의 "대통령이 너만 쳐다보더라"

그러나 폭탄주의 '뇌관'이 소주로 다운그레이드되었을 뿐 폭탄주 문화는 좀처럼 '소탕'되지 않고 있다. 왜 그럴까? 대한민국이 폭탄주의 '원산지'이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가 바로 대한민국 폭탄주를 유럽의 상류사회에 전파한 장본인이다. 그것에 대한 자부심을 피력한 적도 있다.

정 의원은 1994년 FIFA(국제축구연맹) 부회장에 당선돼 세계 축구계에 처음 명함을 내민 뒤에 여권으로 책을 만들 만큼 부지런히 5대양 6대주를 돌아다니며 월드컵 유치를 위한 표를 모았다. 그 과정에서 '폭탄주 외교'를 펼친 것은 유명한 일화다.

정 의원은 특히 월드컵 유치 과정에서 주로 유럽지역의 귀족이나 명문가 출신 체육계 인사들에게 폭탄주를 선보여 상당한 인기를 얻었다고 무용담을 자랑하기도 했다. 암튼 그는 일본이 거의 따낸 월드컵을 1996년 5월 FIFA 총회에서 '한-일 공동 개최'라는 전무후무한 형식으로 변경시켜 따냈으니 폭탄주는 월드컵 유치의 '숨은 공신'인 셈이다.

그런데 <중앙일보> 보도와 강용석 의원 주장을 종합하면, 강 의원은 테이블을 옮겨 다니며 소주 3~4잔을 마셨을 뿐, 폭탄주를 마시지도, 낮술을 마시지도 않았는데 낯 뜨거운 발언을 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지난해 2월 한나라당 청년위원회 초청 청와대 만찬 당시 자신과 함께 청와대를 방문한 적이 있는 여학생에게 이렇게 말했단다.

"그때 대통령이 너만 쳐다보더라. 남자는 다 똑같다, 예쁜 여자만 좋아한다. 옆에 사모님(대통령 부인 김윤옥씨)만 없었으면 네 (휴대전화) 번호도 따갔을 것이다."

5공 때는 '육사 위에 여사', 이명박 정부에선 '장로 위에 사모님'?

2009년 2월 12일 한나라당 청년위원회 초청 청와대 만찬 기념사진. 이명박 대통령 왼쪽에 강용석 청년위원장이 서 있다. 청와대에서 강용석 의원실에 제공한 사진 2장 중의 하나다.
▲ 문제의 청와대 만찬 2009년 2월 12일 한나라당 청년위원회 초청 청와대 만찬 기념사진. 이명박 대통령 왼쪽에 강용석 청년위원장이 서 있다. 청와대에서 강용석 의원실에 제공한 사진 2장 중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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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강 의원은 "대통령과 관련된 부분도, 이 학생이 다른 연세대 토론팀 학생 4명과 함께 청와대 초청 청년위원회 만찬(에 참석했을) 때 대통령께서 그 학생에게 대학교와 전공을 물었던 사실을 얘기했을 뿐"이라며 "(<중앙일보>) 기사 내용과 같은 대통령 관련 내용을 말한 사실은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치생명을 걸고 사실을 끝까지 밝히겠다"며 해당 매체에 대한 법적 대응 방침을 밝혔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미 2007년 8월 후보시절에 "마사지걸들이 있는 곳에 갈 경우 덜 예쁜 여자를 고른다더라"면서 "얼굴이 덜 예쁜 여자들은 서비스도 좋다"는 이른바 '마사지걸' 발언으로 여성을 비하하는 어록을 남겼다. 그러니 놀랄 일도 아니다.

그런데 강 의원이 '천기'를 누설한 바람에 이명박 장로의 가정이 파탄(?) 나게 생겼다. 한나라당이 유례없이 신속하게 현역의원에 대해 '제명'이라는 극약처방을 내린 까닭도 어쩌면 여기에 있는지 모르겠다. 지난 5공 당시 "학사 위에 석사, 석사 위에 박사, 박사 위에 육사, 육사 위에 여사 있다"는 유행어가 있었다. 이 공식을 강 의원의 천기누설에 대입하면 '장로 위에 사모님'이다.

그래서일까? 한 누리꾼은 관련 기사에 "장로보다 무서운 게 싸모님인데 맛싸지걸 발언보다 파문 크겠다"는 촌철살인의 댓글을 남겼다. 강 의원 본인의 극구 부인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이 그를 전광석화처럼 제명 처분한 건 어쩌면 7.28 재보궐 선거보다는 대통령의 '성희롱 원죄'와 천기누설 탓 때문 아닐까? 제명은 당 징계조치 중 가장 강도가 센 것이다.

그런데 한나라당 중앙윤리위원회의 부위원장인 주성영 의원(대구 동구갑)의 주도로 20일 오후에 열린 윤리위에서 '당원으로서 당의 위신을 훼손하였을 경우'에 해당한다는 판단에 따라 강 의원에게 '제명조치'를 의결한 것도 코미디다. 주 의원은 초임 검사 시절부터 폭탄주 사고 전력이 화려한 '시한폭탄 정치인'이다. 다음은 그중의 한 사례일 뿐이다.

주성영 한나라당 윤리위원회 부위원장이 20일 오후 국회에서 '성희롱 발언' 논란으로 물의를 빚은 강용석 의원을 제명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힌 뒤 회견장을 나서고 있다.
 주성영 한나라당 윤리위원회 부위원장이 20일 오후 국회에서 '성희롱 발언' 논란으로 물의를 빚은 강용석 의원을 제명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힌 뒤 회견장을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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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지검에 근무하던 1998년에 또 한번의 음주 사고가 벌어진다. 그는 관내 공안기관 간부 회식에서('설화' 한 순배 및 폭탄주 4잔 상황) 국정원 간부와 사소한 말다툼 끝에 술병을 집어든다. 이어 내리친 것이 말리던 사람(유종근 전북지사의 비서실장 박영석씨)의 이마를 찍어 눈썹 주위가 6cm쯤 찢어지도록 했다.

그는 대검 감찰부 조사 끝에 천안지청으로 전보되는 경징계로 '검사 생명'을 잇는다. 그는 '청와대 비서실장을 하던 김중권 선배의 덕을 좀 봤다'고 밝혔다. 김중권씨는 울진중, 고려대 법대 선배이다. 세상을 눈 아래로 깔아놓고 보는 기고만장함의 이면에, 든든한 '빽'에 대한 믿음이 자리 잡았던 셈이다." (<한겨레21>, 2004. 12. 31)

한나라당은 2005년 9월에도 주성영 의원이 국정감사 기간에 피감기관 검찰 간부, 동료 의원들과 폭탄주를 마시다가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비유컨대, 어쩌면 '죄 없는 사마리아인'을 돌로 친 한나라당은 아직도 폭탄주 '원조'와 성희롱 '원죄'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헤롱당'이자, 여전히 정체성을 알 수 없는 '헤롯당'(유대 통치자 헤롯의 지배를 따르는 예수의 반대자들)이 아닐까.


태그:#강용석, #성희롱, #폭탄주, #헤롱당, #헤롯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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