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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진보 진영에서 독재 타도를 외치며 3번의 징역살이를 한 서경석 목사(선진화시민행동 상임대표)에게 이제 '친북 좌파'는 선진국 발전을 가로막는 주적이요, 척결의 대상이었다. 그는 "지금 한국은 친북 좌파 세력 때문에 여간 어렵지 않다", "우물쭈물 잘못하면 좌파가 집권하고 나라 엉망이 된다"는 등의 말로 위기감을 조성하며 시종 "좌파 반대에 힘을 모아 달라"고 당부했다.

 

서 목사는 자신의 '전향'을 강조하고 보수 층의 일원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인지 "전교조, 한총련, 민주노총, 민주노동당 등은 100% 김정일 추종 세력", "88년 귀국하니 기독 학생운동, 기독청년운동, 산업 선교운동이 모두 주사파였다", "광우병 촛불 집회는 전교조 마누라들이 유모차 끌고 나온 것" 등 논쟁이 될 만한 발언들을 거침없이 내뱉기도 했다.

 

지난 15일 LA의 옥스퍼드호텔에서 열린 서경석 목사의 "한국 사회 어디로 가고 있나"에는 100여 명이 참석했다.  미국 내 한나라당 후원 조직인 'US한나라포럼'(회장 박형만)이 준비한 이번 강연회는 LA교회협의회의 34대 회장이었던 최학량 목사의 기도로 시작됐다.

 

서경석 목사 "민주주의가 과잉이면 선진국 못 간다"

 

최학량 목사는 "하나님 북한의 수용소들, 잘못된 제도, 특히 그 사상을 뿌리 채 뽑아주시길 원하옵나이다. 하나님 적화통일의 야욕을 물리쳐주시고, 자유민주주의 통일을 지켜주시고 내 조국 한반도에 복을 내려주시기를 간절히 바라옵나이다"라고 울먹였다. 박수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이어 연단에 오른 서경석 목사는 "30대, 40대의 40%가 천안함 폭침 사건이 북한의 소행이라는 것을 믿지 않는다. 6·2 지방선거 패배도 깜짝 놀랄 일이었다. 이대로 두면 2년 반 후 좌파 정권이 들어설 가능성이 높다"고 말문을 열었다.

 

"지금 민주당은 친북 좌파와 손을 잡고 있다. 민주당이 집권하면 맥아더 동상 철거하자고 덤벼들었던 전교조, 전농, 한총련, 민주노총, 민노당 이런 세력들이 설치고 다닐 텐데 어떻게 그 꼴을 보나."

 

천안함 사태를 "천안함 폭침 사건"으로 규정한 서경석 목사는 정부의 단호한 대응을 주문했다. 그는 케네디 대통령의 사례를 들며 "쿠바 사태 때 3차 대전을 각오하고 맞섰기 때문에 평화가 가능했다"며 전쟁 불사의 대응 의지를 확고하게 천명했다.

 

"천안함 폭침 같은 사건이 일어나면 당연히 강경책을 써야 한다. 전쟁 방지는 어떻게 해야 하나? 천안함 사건이 있으면 열 배 스무 배 더 (북한을) 고통스럽게 만들어서 뼈저리게 느끼게 해야 한다."

 

그는 6·2 지방 선거의 패배를 "요즘에 이 좌파들이 조직화가 되어 트위터, 이메일을 통해서 선동하면서 '이명박, 한나라당이 (선거에 이기게) 되면 우리나라에 전쟁이 난다'고 하니 젊은 사람이 부화뇌동한 결과"로 분석했다.

 

"후진국, 중진국을 거쳐 선진국으로 간 나라의 사례가 매우 드문데. 우리나라는 할 수 있다. 정말 선진국으로 가려면 선진화 세력이 나서서 선진국 발전을 가로막는 좌파를 물리쳐야 한다. 브라질을 보라. 브라질이 왜 선진국 못 갔나? 포퓰리즘, 민주주의 과잉, 과잉 평등, 사상의 자유를 주장하다 주저앉은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국정 운영 방향에는 문제가 없으나 시민사회와의 소통에 실패하고 있다는 것이 서경석 목사의 시국 진단이었다.

 

그는 "정부, 재계와 시민사회 이 세 영역이 같이 손을 잡고 공동으로 국정을 운영해 가는 것인데 선거 끝나고 선진국민연대 사람들만 챙겨줬다"고 지적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기업에만 있다가 친북 좌파 덕에 너무 쉽게 대통령이 돼 가지고" 시민사회운동의 필요성을 못 느낀다는 것이었다.

 

그는 이명박 정부의 인사 정책을 예로 들며 "여성 운동은 모르고 한식 세계화를 주장하는 인사의 여성부 장관 임용, 인권을 모르는 인권위원장 임용, 우파 운동이라고는 아무것도 모른 채 시류에나 영합하는 박인주 청와대 사회통합수석 임명" 등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노무현이 추진한 평화는 말 한마디에 깨지는 '사이비 평화'"

 

서경석 목사는 우파 운동 성장의 걸림돌로 "시민운동 안 돕는 기업"을 꼽았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이 선거 때 기업체의 돈을 한 푼도 가져다 쓰지 않고 나서, 기업들에게 시민운동 단체들에게 내는 준조세도 하지 말라고 했고, (이명박 정부가) 광우병 촛불 집회에 당하고 나서 좌파 돈줄을 다 끊어 우파들의 돈줄도 끊겼다"며 재정적 어려움을 호소했다.
 

서경석 목사는 희망을 기독교에서 찾고 있었다. 그는 "기독교인들은 북한 김정일 정권하고는 같이 함께 할 수 없다. 김정일 정권은 우리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보면 천적이다"며 기독교인들의 반공정신이야 말로 친북 좌파를 척결하는 데 가장 필요한 정신임을 강조했다.

 

북한 신천역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자신의 할아버지(당시 목사) 사진 설명에 "양키의 앞잡이 야소 교인들"이라고 설명이 붙어있었고 북한은 반기독교 정신으로 무장되어 있기 때문에 기독교인과 친북 좌파는 천적 관계라는 것이었다.

 

서 목사는 남북 문제에 대한 인식도 거침없이 드러냈다. 그는 "노무현이 추진해온 평화는 무슨 평화냐? 사이비 평화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서 인권에 대해 한마디 말하니 그냥 깨져버리는 사이비 평화였다. (평화를 위해서) 북 돕기를 해야 한다. 김정일 배불리는 일 말고 얼마든지 도울 방법이 있다"며 두만강에서 물자 유입을 통한 북 돕기가 매우 효과적이라고 강조했다.

 

서경석 목사는 이명박 정부의 '중도 노선'을 지지하며 "중간에 있는 사람을 끌어 들여야 한다. 친북 좌파만 제외하곤 다 묶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내가 왜 이 설명을 하느냐. 내가 예전에 친북좌파였기 때문이다. 70, 80년대 운동권은 모두 마르크스레닌주의와 김일성 주체사상으로 무장해 있었고, 기독교에서는 해방신학, 민중 신학 이런 걸로 무장해가지고 독재와 싸웠다"고 과거를 고백했다.

 

"참여연대의 낙선 운동은 히틀러의 포퓰리즘"

 

서경석 목사는 70년대를 회고하며 한명숙 전 총리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감옥에 갈 처지였다고 소개했다. 남편인 박성준씨가 징역 15년 선고를 받아 부인은 피해갔다는 것이었다. 그는 "나도 겉으로 싸울 때는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지만 (속으로는) 사회주의 혁명이 필요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했다"고 말하며 "나뿐만 아니라 다른 운동권이 다 그랬다"고 덧붙였다.

 

그는 "그런 생각으로 프린스턴 신학대학에 유학 가 있는 동안에도 사회주의에 대한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마음을 바꾸게 된 것은 당시 미국에서 이산가족 방문이 허락돼서 북한에 다녀온 사람들이 알려준 실상 때문이었다. 내가 한국에 돌아갈 때 사회주의는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귀국할 당시는 이미 마음을 정리한 상태라고 했다.

 

"귀국해서 돌아오니 후배들이 전부 김일성 주체사상론으로 완전히 통일돼있었다.  당시 기독 학생운동, 기독청년운동, 산업 선교운동, 일반 학생 운동 모두가 완전히 김일성주체사상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당시 나는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원장이었는데 우리 연구원에서 나온 성명서를 분석해보니 전부 평양방송을 베껴 썼었다. 사회 전반에 퍼져 있던 주체사상에 대해 매우 심각하게 고민했다. 이 과정을 겪으며 진보 운동과는 연을 끊었다"

 

그는 자신의 진보 운동 전력을 유념한 탓이었는지 자신의 청춘을 걸고 저항했던 박정희에 대해 "내가 요새는 박정희 대통령을 참 존경한다. 그분이 하신 처신을 보면 세상에 저렇게 훌륭한 지도자가 없다 생각한다"며 자신도 이제는 보수층의 일원임을 강조했다.

 

경실련을 만들어 시민운동이라는 새 지평을 열었다고 자평한 서경석 목사는 그 뒤를 이은 참여연대와의 경쟁에서 진 이유를 참여연대가 히틀러도 써먹은 대중주의로 정도를 벗어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2000년 낙선·낙천 운동이 하나의 예가 될 수 있다. 시민운동의 원칙으로 따지면 옳은 게 아니다. 시민운동은 지식인들의 양심에 입각해서 운동을 해야지 여론조사를 해서 80%의 지지를 받았다고 해서 무조건 옳다라는 식으로 가면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런 식으로 치면 히틀러도 절대 다수의 지지를 받고 총통이 됐다. 국민이 절대 다수 지지한다고 옳은 것은 아니다. 기독교적으로 말하자면 하나님의 뜻이 옳은 것이다. 낙선 운동을 통해 참여연대가 (경실련을) 이겼다. 그때부터 포퓰리즘이 나온 것이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에서 일을 했던 서경석 목사는 "맥아더 동상 철거 사건 때 친북 좌파가 얼마나 많은지 알게 됐다. 3000명이 죽창을 들고 모여서 맥아더 동상을 무너뜨리겠다는 거 보고 잠을 못 잤다"며 자신이 왜 보수 우익 운동에 나섰는지를 설명했다.

 

"전교조, 한총련, 민주노총, 민주노동당 등 100% 김정일 추종 세력"

 

그는 전교조, 전농, 범민련, 한총련, 민주노총, 민주노동당, 통일연대, 민중연대, 30~40만 명의 맥아더 동상을 철거하겠다는 세력을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 때문에 한반도 통일을 못 한 것이라고 아쉬워하는 완전 빼도 박도 못하는 100% 김정일 추종 세력"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국가보안법 폐지, 과거사 진상 조사, 언론법, 사학법 개정 등을 추진한 노무현 정부 들어서면서 중도 시민운동을 포기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친북 좌파가 국정을 농단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그는 친북 좌파가 척결된 후에야 자신이 다시 중도로 돌아갈 수 있다며 "이명박 대통령 당선 이후 친북 좌파를 척결할 절호의 기회를 놓친 탓이 광우병 촛불 집회였다. 촛불이 애들이 촛불 들고 나온 자연발생적인 사건인 것처럼 좌파가 선전하는데 생 거짓말이다"며 광우병 촛불 시위의 배후를 적시했다.

 

"(내가) 문서들을 분석해보니 광우병촛불집회 주도자 오종렬, 천영세, 강기갑, 한상렬, 박석운, 이 다섯 명이 정확하게 5년 전에 맥아더 동상 철거 사건을 주도한 사람들이었다. 광우병 촛불 집회는 친북 좌파가 자기들이 몰리고 있는 상황 돌파를 위해 이슈를 만들고, 전교조가 중·고생들이 촛불을 쥐고 나오게 하고, 전교조 교사들이 자기 마누라, 애 데리고 유모차 끌고 나와서 한 것이다."

 

광우병 촛불 집회의 배후를 설명한 그는 이러한 현실에서 "지금이야말로 정말 우파가 대오각성해야 할 때다. 이제 여기서 우리가 우물쭈물 잘못하면 좌파가 집권하고 나라 엉망이 된다. 두 가지가 우리한테 필요하다. 첫 번째는 지금부터 MB 정부를 믿지 말자는 것이다. 우리가 우파 정권을 우리 힘으로 지키겠다는 각오가 필요하다. 두 번째는 우파가 각성해야한다. 나는 현재 선진화시민운동회의와 우파 기독교 단체 만들었는데 이 단체들을 큰 단체로 키우겠다. 이 세력들이 나중에 선거 때 가서 우파정권을 지키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서 한 노인이 "80년대만 해도 공안 공무원들이 잘 활동해서 별 문제가 없었는데 도대체 지금 공안들은 뭘 하고 있는 것인지 답을 좀 해 달라"는 질문을 던졌다. 80년대에 서경석 목사를 잘 잡아넣었던 공안의 분발을 촉구하는 질문에 서경석 목사는 씁쓸한 표정으로 "공무원들 하는 일은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사회자는 "우리 박정희 대통령께서도 일찍이 (좌파에서 보수주의자로) 전향하셨듯이, 서경석 목사야 말로 이 시대의 지도자"라고 추켜세웠고 9시까지 남아있던 사람들과 함께 "자유·민주·통일 만세, 5000만 한국 동포 애국으로 무장하고 궐기하는 만세, 1,000만 해외 동포들의 승리 만세"를 외치는 것으로 행사를 마쳤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주뉴스앤조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서경석, #주사파, #뉴라이트, #기독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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