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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2008년 2월 2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제17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선서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2008년 2월 2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제17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선서하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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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새로운 60년을 시작하는 첫해인 2008년을 대한민국 선진화의 원년으로 선포합니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결실을 소중하게 가꾸고, 각자가 스스로 자기 몫을 다하며, 공공의 복리를 위해 협력하는 사회, 풍요와 배려와 품격이 넘치는 나라를 향한 장엄한 출발을 선언합니다."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 이명박은 취임사에서 '선진화의 원년'을 선포하면서 스스로 '장엄한 출발'을 선언했다. 해외 축하사절단은 물론 역대 대통령들까지 다 참석한 경사스런 자리였다. 그래서였을까? 이 대통령은 "지난 10년, 더러는 멈칫거리고 좌절하기도 했지만 이제 성취의 기쁨은 물론 실패의 아픔까지도 자산으로 삼아 우리는 다시 시작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승자의 아량'으로 '잃어버린 10년'도 자산으로 안고 가겠다는 거였다.

그러나 집권 반환점을 돌기 직전인 지금, 결론부터 말하면, 최근에 불거진 '공조직의 탈을 쓴 사조직의 민간인 불법 사찰'에서 보듯, 산업화와 민주화의 결실을 소중하게 가꾸기는커녕 민주화의 결실을 짓밟기 일쑤였다. 또 공공의 복리를 위해 협력하는 사회, 풍요와 배려와 품격이 넘치는 나라를 향해서는 '장엄한 출발'은커녕 첫걸음도 떼지 못한 상황이다.

100일도 못 가서 발병 난 MB의 '신발전체제'

왜 이런 얼토당토않은 일이 벌어진 것일까? 간단히 말하면, 이명박 정부가 국민과 한 약속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처음부터 약속을 지킬 생각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취임사에서 선언했듯, 이 정부는 산업화와 민주화의 결실을 소중하게 가꾸어 공공의 복리를 위해 협력하는 사회, 풍요와 배려와 품격이 넘치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그것은 출범 전부터 '국민'과 '참여' 같은 보통명사의 고유명사화를 거부하고 '이명박'이라는 고유명사 브랜드로 평가받겠다는 '이명박 정부'가 '선진'이라는 연호(年號)를 내걸 때부터 예정된 대국민 약속이었다.

그 약속의 이론적 틀거리를 제공한 사람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아우르고 그것을 뛰어넘는 '선진화' 개념을 창안한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이다. 참여정부가 직면한 '좌파 신자유주의'라는 역설과 '좌회전 깜박이 켜고 우회전한다'는 자동차 논쟁에 비유하면, 이명박 정부의 선진화 동력은 '실용'과 '변화'의 쌍라이트를 켜고 '신(新)발전체제'를 향해 질주하는 '산업화'와 '민주화'의 두 바퀴로 요약된다.

그러나 구호는 단지 구호일 뿐이었다. '지난 10년 실패의 아픔까지도 자산으로 삼아 다시 시작할 것'이라는 약속은 정치적 수사(修辭)나 언어의 유희에 지나지 않았다. 인재 풀로서 '올드 보이'와 '강남 어뢴지'만 선호한 신발전체제는 처음부터 민심과 동떨어진 과속으로 헛돌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100일도 못 가서 '발병'이 났다.

'선진'은 개발독재시대의 전형적인 프로파간다

사실 '선진'이라는 개념은 '후진'국에서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군사정권이 집권을 합리화하기 위해 채택한 개발독재시대의 전형적인 프로파간다였다. '선진조국 창조'는 박정희 정권이 내건 새마을운동의 최종 목표였고, 박정희의 양자를 자처한 전두환 정권의 국정목표였다. 보수진영의 대표적 정책이론가인 박세일이 거기에 '창조적 세계화론'와 '공동체 자유주의'를 불어넣어 박정희 향수에 젖은 대중에게 30년 만에 리바이벌 시킨 것이다.

그러나 대중이 박정희 향수와 이명박 환상에서 깨어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008년 5~6월 주말마다 서울시청 앞 광장과 세종로 4거리를 가득 메운 촛불시위는 여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부자'와 '고소영 S라인'으로 상징되는 '올드 보이'들을 중용하고, 국민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협상 요구를 외면한 오만과 독선 정권에 대한 경고였다.

결국 이명박 대통령은 '선진화 원년'을 선포한 지 100일도 안 되어 국민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것도 한 번으로는 부족해 두 번씩이나. 그는 촛불시위가 절정에 달한 5월 22일 대국민담화와 6월 19일 특별기자회견을 통해 "시가지를 메운 촛불 행렬을 보며 제 자신을 자책했다"면서 "뼈저리게 반성"하고 "앞으로 정부는 더 낮은 자세로 더 가까이 국민에게 다가가겠다"고 약속했다.

자신들의 '주군'이 국민에게 머리를 숙이는 모습을 지켜본 대통령 참모들은 주군의 굴신(屈身)을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로 받아들였을 법하다. 국민은 헷갈렸으나 상당수는 전두환 정권이 6월 민주항쟁 당시 6.29선언을 한 것처럼 국민에게 항복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반성과 사과를 담은 이 약속 또한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미봉책이었음이 얼마 안 가 드러났다.

실제로 그는 그해 7월 11일 국회 개원 연설에서 "부정확한 정보를 확산시켜 사회 불안을 부추기는 정보전염병은 경계해야 할 대상"이라고 말했다. 또 "우리 사회에서 법과 원칙이 무시되는 일이 빈번해지고 있다"면서 "국민들의 적극적인 정치 참여와 인터넷의 발달로 대의정치가 도전을 받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6월 19일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에 관한 특별기자회견에서 반성과 사과의 뜻을 표명했다.
▲ 고개 숙인 MB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6월 19일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에 관한 특별기자회견에서 반성과 사과의 뜻을 표명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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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에 '고개 숙인 명박'과 '버럭 명박' 중에 MB의 본심은?

인터넷 정보를 격리와 불가촉의 대상인 '전염병'으로 규정하고, 인터넷을 통한 직접민주주의 가능성을 대의정치와 양립할 수 없는 도전으로 보는 인식이 놀랍다. 그러나 어쩌랴, 그것이 촛불 민심과 인터넷 여론에 대한 그의 '본심'인 것을.

그런데 지금 와서 보면, 대통령의 대국민담화에도 불구하고 촛불 시위가 고조된 2008년 5월 31일 "이 대통령, 촛불집회 관련 단순 보고 받고 '버럭'"이라는 제목의 <조선일보> 기사는 당시 상황과 그의 본심을 꿰뚫은 것으로 보인다.

"민정수석실은 쇠고기 대책회의에서 '어제 촛불집회가 열렸고 1만 명이 참석했다'고 보고했다가 혼쭐이 났다. 이 대통령은 '신문만 봐도 나오는 걸 왜 보고하느냐. 1만 명의 촛불은 누구 돈으로 샀고, 누가 주도했는지 보고하라'며 화를 냈다고 한다." (<조선일보>, 2008년 5월 31일)

대통령의 참모라면 촛불 민심에 '고개 숙인 명박'(5월 22일 대국민담화)과, 촛불 배후와 자금을 밝히라고 역정을 낸 '버럭 명박'(5월 31일 <조선일보> 보도) 가운데 어느 쪽이 대통령의 본모습이라고 여겼을까? 정상적인 참모라면 물론 전자일 것이다. 그러나 권력에 눈먼 맹목의 충성분자들이라면 사정이 달라진다.

대통령의 역정은 맹목의 충성분자들에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촛불 시위 주동자와 자금을 댄 배후를 캐내 보고하라는 지시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국민 앞에서는 고개를 숙이고 뒤로는 칼을 가는 전형적인 면종복배(面從腹背)다. 그렇다고 민정수석실에서 대통령의 표리부동을 드러내는 짓을 공개적으로 수행할 수는 없었다. 숨어서 은밀하게 하려면 비선(秘線)이 제격이다.

'공조직의 탈을 쓴 무법의 사조직'의 탄생 배경

촛불 정국에서 대통령한테 민정수석설이 깨지는 모습을 지켜본 맹목의 충성분자들은 청와대서 직접 나설 수는 없으니 총리실에 공직윤리지원관실을 만들어, 대통령에게 물불 안 가리고 충성할 수 있는 대통령의 고향(영일-포항) 출신의 '영-포 라인'으로 채운 것이다. 사실상 대통령의 부름을 받아 촛불시위에 자금을 제공한 배후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된 이들에게 조사대상은 공직자건 민간인이건 중요하지 않았다.

이것이 '공조직의 탈을 쓴 무법의 사조직'의 탄생 배경이다. 이는 2008년 7월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청와대가 아닌 총리실 조직으로 출범했으면서도 지휘보고는 청와대의 영-포 라인을 통해서 은밀하게 처리한 데서 드러난다. 그래서 대통령이 '전염병'이라고 매도했던 인터넷 여론과 촛불 민심의 배후를 캐는 은밀한 작업이 진행 중인 것을 아무도 몰랐던 것이다. 민간인 사찰 사건은 '공조직의 탈을 쓴 무법의 사조직'의 암약상 중의 하나가 이번에 불거진 것이다.

사유화된 권력은 김종익씨라는 한 민간인의 3년치 신용카드 사용내역과 통화내역 등을 무차별적으로 훑었다. 사유화된 권력은 이미 이성을 상실한 조직폭력일 뿐이다. 이건 권력 차원의 조직범죄다. 이 정부가 국정목표로 내건 '선진'과는 정반대로 '후진' 짓이다.

그것은 미셀 푸코가 <감시와 처벌>에서 파헤친, 지배계급이 권력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활용하는 통치구조와 억압적 방식을 떠올리게 한다. 한국 사회를 거대한 '팬옵티콘'(중앙의 감시자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모든 죄수를 감시하는 구조로 만들어진 원형감옥)으로 만들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이런 무법의 사조직이 활갯짓하는 토양을 갈아엎어야 한다.

법치국가에서 무법 사조직이 활갯짓하는 물질적 토양은 '영-포 라인'과 대통령의 후보 시절 사조직이었던 '선진국민연대' 출신을 지칭하는 '선진 라인' 같은 권력과의 사적인 연고주의다. 이들은 조직개편이나 인사를 통해 전광석화처럼 도려내면 그만이다. 문제는 이들의 활갯짓을 고취하는 정신적 토양이다. "민심의 소통 구조를 인터넷이 묶어낸 것"이 아니라 "민심을 배후에서 선동한 것이 인터넷"이라는 대통령의 촛불관이 그것이다.

그래서 대통령의 말처럼 "어설픈 사람들이 권력을 남용"한 것은 이번 사건의 본질이 아니다. '영포-선진 게이트'의 불씨는 대통령의 그릇된 '촛불관'과 어설픈 '선진화'였고, 검찰이 추적 중인 민간인 불법 사찰의 '배후'는 이명박 대통령 자신이다. 그것이 이번 사건의 본질이다.


태그:#원형감옥, #촛불시위, #민간인 사찰, #파놉티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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