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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진해서 날지 못하는 백로 한마리가 바닥에 쓰러져 퍼덕거리고 있다.
 탈진해서 날지 못하는 백로 한마리가 바닥에 쓰러져 퍼덕거리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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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폐화된 백로 서식지 땅 바닥에 백로 한마리가 죽어 있다.
 황폐화된 백로 서식지 땅 바닥에 백로 한마리가 죽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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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지를 잃어버린 갓 태어난 백로 새끼가 나무가지를 타고 올라가고 있다.
 둥지를 잃어버린 갓 태어난 백로 새끼가 나무가지를 타고 올라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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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목된 나무더미 사이에 백로 한 마리가 죽어 있다.
 벌목된 나무더미 사이에 백로 한 마리가 죽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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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환경운동 하면서 이런 참혹한 광경은 처음"

아무렇게나 쓰러진 나무 더미들 위로 수백 마리의 백로들이 무리지어 앉아 있다. 나무 더미 위는 차라리 평온하다. 바닥 곳곳에는 장비에 깔리거나 나무가 떨어지면서 죽은 백로들의 사체가 널려 있다. 갓 태어난 듯 아직 축축하게 젖어 있는 새끼 백로들의 사체도 보인다. 사체들 위로는 파리들이 꼬여 있다. 부화해 나오기 전에 떨어져 깨진 것으로 보이는 백로 알껍데기들도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다.

14일 오후 찾은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사리현동 도로변의 한 사유지 벌목 현장의 광경이다. H건설사는 전날(13일) 이곳에서 벌목을 강행했고, 그 결과 150여 마리의 백로들이 죽거나 다쳤다. 150마리는 전날 백로들의 사체를 처리하면서 박평수 고양시 환경운동연합 집행위원장과 마을 주민들이 일일이 센 수치다.

탈진해서 날지 못하는 백로 한마리를 박평수 고양환경운동연합 집행위원장이 구조하고 있다.
 탈진해서 날지 못하는 백로 한마리를 박평수 고양환경운동연합 집행위원장이 구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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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목된 나무더미 사이에서 백로 한마리가 취재진을 바라보고 있다.
 벌목된 나무더미 사이에서 백로 한마리가 취재진을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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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목된 백로 서식지에 갓 부화한 백로 새끼가 죽어 있다.
 벌목된 백로 서식지에 갓 부화한 백로 새끼가 죽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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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과 둥지를 잃어버린 백로와 겨우 살아남은 어린 백로 수백마리가 황폐화된 서식지를 떠나지 않고 모여 있다.
 자식과 둥지를 잃어버린 백로와 겨우 살아남은 어린 백로 수백마리가 황폐화된 서식지를 떠나지 않고 모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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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디디는 곳마다 널려 있는 백로의 흰 깃털들은 사건 당일의 참혹한 광경을 대변하고 있었다. 사건 현장에 들어가 30분 정도 둘러보는 동안 네 마리의 죽은 새끼 백로, 장비에 깔려 죽은 어른 백로, 수도 없이 많은 깨진 백로 알들을 목격했다. 이미 13일 한 차례 백로들의 사체를 처리한 후였지만 아직도 곳곳에서 사체가 발견되는 것을 보면 150여 마리보다 더 많은 백로들이 죽었을 가능성이 농후해 보였다.

"원래는 높고 무성한 나뭇가지들 위에서 백로들이 사이좋게 모여 살고 있었다"는 주민들의 말을 믿기 힘들 정도다. 현장을 찾은 박평수 고양시 환경운동연합 집행위원장은 "10년 동안 환경 운동을 했지만 이런 참혹한 광경은 처음 본다"고 혀를 찼다.

13일 새벽(주민들 제보, 건설사 주장은 12일 오전 8시), 3년 전부터 이곳의 키 큰 느티나무, 단풍나무 위에 지붕을 틀고 평화롭게 살고 있던 백로, 왜가리 등 1천여 마리 새들의 터전에 건설장비들이 들이닥쳤다.

백로들이 잘려나간 나무더미 주위에 모여 있다.
 백로들이 잘려나간 나무더미 주위에 모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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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폐화된 서식지 주변 하수구에서 먹이를 찾던 백로들이 서로 부리를 물며 싸우고 있다.
 황폐화된 서식지 주변 하수구에서 먹이를 찾던 백로들이 서로 부리를 물며 싸우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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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주인의 대리인이라고 밝힌 H건설사의 한 관계자는 "나무들에서 백로들이 시끄럽게 울어대 땅을 매매할 수가 없어, 나무들을 전부 깎아 달라는 땅 주인의 부탁이 있어 벌목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여기 주민들도 백로들이 시끄럽게 울어대고 배설물 냄새가 난다고 민원이 많았기 때문에 겸사겸사 한 일이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인근 주민들의 말은 달랐다. 이 동네에서 7년째 살고 있는 한 노인은 "백로들도 밤만 되면 조용해진다"며 "시끄럽게 운다거나 배설물 냄새가 나는 것 때문에 불만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이 지역에 사는 또 다른 노인도 "막무가내로 나무를 밀어버렸다"며 "지금 저렇게 어린 새끼들을 그냥 놔두면 다 죽는다, 한 달만 벌목을 늦춰도 이 정도는 안 됐을 것을…"하고 혀를 찼다.

"한달 정도만 늦게 벌목을 했어도…"

갓 태어난 어린 백로가 죽은 채 광주리에 담겨 있다.
 갓 태어난 어린 백로가 죽은 채 광주리에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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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로들이 꼼짝없이 떼죽음을 당한 이유는 날아갈 준비가 돼 있지 않은 새끼 백로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박평수 집행위원장은 "늦게 산란해 알을 품고 있는 백로들이 많았고, 알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된 새끼들이 많았다"며 "한 달 정도만 늦게 벌목을 했어도 백로 새끼들이 최소한 날아서 도망갈 수는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벌목으로 인해 다리가 부러지는 등 다친 백로들은 평택의 야생동물보호센터로 수송되기 위해 플라스틱 박스에 옮겨진 채로 애처롭게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일부 새끼 백로들은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고, 일부는 힘겨운 숨을 내쉬며 버티고 있었다.

할머니 손을 잡고 나온 초등학교 4학년 학생은 "구조해 온 알에서 새끼가 나왔는데 나오자마자 바로 죽는 것을 보고 안타까웠다"며 "여기 있는 새끼들을 데려가 씻겨 키우고 싶다"고 말했다.

동네 주민들이 황폐화된 백로 집단 서식지를 지켜보고 있다.
 동네 주민들이 황폐화된 백로 집단 서식지를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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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목된 나무가 군데군데 쌓여 있는 가운데 둥지를 잃은 백로들이 벌목된 나무위에 모여 있다.
 벌목된 나무가 군데군데 쌓여 있는 가운데 둥지를 잃은 백로들이 벌목된 나무위에 모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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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 나와 있던 고양시청의 한 관계자는 13일 49마리의 다친 백로들이 보호센터로 수송됐고 한 마리를 제외한 나머지는 목숨을 건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환경단체와 주민들은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고양시에서는 이번 사태에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는 태도다. 고양시의 무책임과 무관심이 이번 사태를 낳았다는 시민들의 지적에 대해 송이섭 고양시 환경보호과장은 "사유지에서 개인이 하는 일에 대해 시가 나서서 설득하기란 사실상 쉽지 않다"며 "우리도 안타깝다, 미리 알았다면 업자를 설득 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박 집행위원장은 "고양시가 직접적으로 제재를 하지는 못하더라도, 매년 하는 환경조사에서 정확히 백로 서식지 파악을 하고 백로들이 나는 시기를 고려해 벌목 시기를 늦추기만 했었어도 이런 지경까지는 안 됐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현재 고양시는 H건설사의 벌목으로 인한 백로들의 떼죽음이 야생동물보호법 위반 사례에 해당하는지 검토중이다.

한편 송 과장은 "백로들을 좀 처리해달라고 작년 한 차례 고양시에 요구했었다"는 건설업체의 주장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고 말했다.

현장을 떠날 때쯤 갑작스레 소나기가 내렸다. 아직 날지 못하는 작은 백로들은 비를 피해 다리를 절뚝거리며 나뭇가지 덤불 사이로 비집고 들어갔다. 새끼를 잃은 어미 백로들은 그때까지도 공허한 듯 주변 하늘 위를 맴돌고 있었다.

▲ 백로 떼죽음 현장, "인간의 탐욕이 어디까지..."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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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 12기 인턴기자입니다.



태그:#고양시, #백로 떼죽음, #벌목, #백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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