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6.2 지방선거 이후 새로운 정치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한국정치에 어떤 가치와 정책을 담을 것인가 고민도 여러 갈래다. <오마이뉴스>는 한국정치의 대변신을 위한 토론과 논쟁을 시작한다. 진보에서 자유주의까지 함께 하는 '무지개 정치'의 길을 묻는다. <편집자말>

"이번 선거에서 우리 국민은 복지국가에 대한 지향을 드러냈다. 그런데도 정치와 시민운동이 정치공학적 판단만 해서는 미래를 선도할 수 없다. 2012년 대선승리 프레임에 갇히면 오히려 패배할 것이다. 가치정치를 논할 때다. 복지동맹-연합정당론, 계속 토론하자."

 

한국정치를 비판하거나 평론하는 일은 있었지만 직접 정치에 화두를 던진 적은 없었다. 16년간 권력감시 운동을 해온 김기식(44) 참여연대 정책위원장. 그는 6.2 지방선거 직후 한국정치에 직격탄을 날렸다. 답답한 정치에 정면으로 나선 셈이다.

 

내용은 복지동맹-연합정당론이다. 우선 주목받은 건 연합정당론, 이른바 '빅텐트'론이다. 이 내용 자체로 어렵고 딱딱한 게 사실이다. 간혹 '운동권 사투리'도 엿보인다. 그러나 그의 말엔 진정성이 배어 있었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5일 오후 서울 통인동 참여연대 5층 회의실에서 그와 만났다. 이 자리에서 그는 가장 먼저 비애가 느껴지는 한국적 사회현실을 꼬집었다.

 

"물려받은 재산이 없는 평범한 사람이 직장을 다녀 모은 재산으로 사교육비나 주거비용, 노후생활을 준비할 수 있나. 쉰살만 되면 퇴직압박에 시달린다. 평균수명은 늘어나 30년은 더 살아야 하니 불안은 더욱 크다. 20대 젊은층은 그마저도 일자리 진입 자체에 어려움이 많다. 이걸 놓고 '경쟁해라, 경쟁해서 이겨라' 강요하는 이 사회를 이대로 둘 거냐."

 

김 위원장은 인터뷰 내내 "고도성장기 모델과 다른, 무한경쟁을 강요했던 신자유주의 모델이 아닌, 사회적 연대로 공동체가 함께 사는 사회시스템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또 그는 한국의 자유주의세력과 진보세력간 동맹도 강조했다. 두 세력은 1987년 6월 '민주동맹'으로 민주항쟁을 함께 치렀지만,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간 분열돼 있었다는 게다. 6.2 지방선거 결과는 해체된 민주동맹을 복원하라는 국민적 뜻이 담긴 선거였다고 본다는 김 위원장은 "이제 복지국가론을 모토로 제2차 복지동맹을 맺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야 2012년 진보의 집권 가능성이 열린다고 전망했다.

 

김 위원장은 "역사적 고비에서 현실적으로 가능한 정치공학적 대안만 논의해서는 안 된다"면서 "우리 사회와 정치가 나아가야 할 비전과 가치를 제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현실은 2012년 선거승리를 위한 정치기획에만 매몰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다음은 김 위원장과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자유주의 세력과 진보 세력의 역사적인 복지동맹이 필요하다"

 

- 빅텐트론을 제기한 뒤 정치적 화두가 됐다. 주변 반응은 어떤가.

"사람들이 옳은가 그른가보다는 가능하냐는 문제에 더 많이 착목하는 것 같다. (웃음) 빅텐트론의 문제의식보다는 결과물로서 연합정당의 형태, 형식에 더 관심이 많았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한국사회가 역사적 고비에 있다는 것이고, 현실적으로 가능한 정치공학적 대안만 얘기할 게 아니라 우리 사회와 정치가 나아가야 할 비전과 가치를 제시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것에 대해서는 별로 논의가 진전되지 않는 눈치다."

 

- 한국사회가 역사적 고비에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흔히 2012년~2017년까지를 한반도의 역사적 격변기로 해석한다. 북한의 김정은 후계체제 구축이 매끄럽게 진행될 것이라고 보지 않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남쪽의 정부가 어떤 쪽이냐에 따라 한반도 운명에 큰 변화가 수반될 수 있다고들 한다.

 

역사적으로 1987년 민주화 항쟁은 자유주의 세력과 진보 세력이 '민주동맹'을 맺었던 시기로 규정할 수 있다. 1차 민주동맹이다. 그런데 민주화 이후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간 '자유주의-진보' 동맹은 해체됐고 이른바 민주개혁과 진보진영의 분화를 당연시했다.

 

이번 지방선거 결과에는 이렇게 분화됐던 민주동맹을 복원하라는 국민적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본다. 해체된 동맹을 다시 이을 매개는 복지국가론이다. 역사적인 제2차 복지동맹을 맺을 시기가 됐다는 게다.

 

MB 당선 이후 민주주의가 얼마나 퇴행했는지 봤다. 이 과정에서 민주와 진보는 대립하거나 선택하는 게 아니라 상호보완적이며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러니까 나는 민주대연합이냐 진보대연합이냐 하는 논쟁은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민주진보대연합일 때 역사적인 2차 복지동맹이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 이번 선거에서 드러난 국민적 메시지가 또 있다면.

"지난 2년6개월여 MB집권 기간 동안 우리 국민은 '박정희 모델의 역사적 종언'을 구했다고 본다. 또 무상급식 지지를 통해 성장주의를 극복한 보편적 복지에 대한 지지를 나타냈다. 개발독재를 지나 민주화, IMF 경제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정책기조로 흘러왔는데, MB집권을 통해 더 이상 '박정희식 개발-성장주의'는 우리 국민의 삶의 문제를 긍정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을 자각하게 됐다고 본다."

 

- 지금 복지동맹을 강조하는 까닭은 뭔가.

"자유주의(민주당 등) 세력에게는 사민주의를, 사민주의(진보정당 등) 세력에게는 자유주의 가치를 새롭게 수용하라는 문제의식이 담겨 있다. 가만히 생각해보자. 물려받은 재산이 없는 평범한 사람이 직장을 다녀 모은 재산으로 사교육이나 주거비용, 노후생활을 준비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건 모두 아는 현실이다. 더 심각한 것은 젊은 세대들은 아예 노동시장 진입 자체에 어려움이 있다는 게다. 비정규직 같은 '배드잡(bad job)'은 널려 있어도 정규직 같은 좋은 일자리는 소수에게만 열려 있지 않나.

 

직장에 들어간다고 해도 과거세대와 달리 언제 잘릴지 모르는 위기에 시달린다. 40대 후반만 되면 퇴직이나 해고의 위험에 노출된다. 평균수명은 늘어서 30년은 더 살아야 되고. 번 돈은 사교육비와 주거비용에 다 들어가거나 묶여 있다.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는 점을 고민해야 한다. 과거 고도성장기처럼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면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하기 어려운 사회가 된 거다.

 

이걸 놓고 경쟁해라, 경쟁해서 이겨라, 이렇게만 해서 자기의 미래를 스스로 개척하고 담보받을 수 있는 계층은 객관적으로 한정돼 있다. 이런 사회를 이대로 둘 거냐는 문제의식이 있다. 고도성장기의 모델과는 다른, 무한경쟁을 강요했던 신자유주의적 모델이 아닌, 공동체가 함께 사회적 연대 속에서 미래 희망을 찾아갈 수 있는 새로운 공공성의 원리가 강화되는 사회시스템이 요구된다는 게다."

 

 

"지방선거에선 반MB로 이겼지만 대선에선 그것만으로는 안 돼"

 

- 반대로 진보세력이 자유주의적 가치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은 무엇을 말하나.

"486세대(과거 386) 이전까지 민주주의는 권력의 문제였다면, 30대 이하 세대는 시민적 자유의 문제로 생각한다. 자유권이 핵심이다. MB에 대해 반감을 갖는 20·30세대는 사실상 시민적 자유권의 억압에 그 이유가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한국에서 민주주의 문제의 핵심은 시민적 자유가 될 것으로 본다.

 

또 대안학교를 보자. 교육철학적으로 보면 자유주의 철학이다. 국가공교육시스템 밖에서 자기가 원하는 교육을 받도록 해달라는 요구다. 굉장히 진보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자유주의적인 발상이다. 성적 자기결정권을 주장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진보주의자라는 사람들이 스스로 자유주의적 요구를 하고 있고 그게 현실이다. 그런데도 관념적으로 자유주의는 보수적인 것으로 치부하면서 자기모순이 발생하고 있는 거다."

 

- 이번 지방선거에서 빚어진 연합정치는 어떻게 평가하나.

"가치와 정책에 기반한 연합정치를 한다고 할 때, 연합정치의 1단계는 가치를 지향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공학적 지분 나누기 이상이 안 된다. 거기에 미래비전은 없다. 중간선거에서는 반MB연합이 가능하지만, 미래비전을 공유해야 하는 대선에서는 곤란하다.

 

또 민주당 정체성에 아무런 변화 없이, 그저 민주당이 소수야당에게 약간의 지분을 내주고 승리의 대부분을 독식하는 구도가 강화되는 건 올바르지 않다. 이미 그런 조짐이 나타나고 있어 문제다. 

 

실제 지난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은 서울이나 경기에서 거의 양보 안 했다. 다른 야당이 반MB라는 당위 속에서 투항적으로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는 형태로 단일화를 이뤘다. 결국 민주당은 '버티면 우리가 이긴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이 점이 문제다. 

 

이러면 유력주자들이 갖고 있는 마의 30% 한계를 넘지 못한다. 변화와 혁신이 제기됨에도 그렇게 하지 않고, 다른 당 후보의 지지와 합쳐 30%의 한계를 이길 수 있다는 논리로 가면 안 된다. 선거연합이 기득권을 지켜내는 정당화의 기제로 작동되면 안 된다.

 

문제는 MB 중간평가 성격이 짙은 지방선거는 반대의 논리를 극대화하는 것으로 이길 수 있지만 대선은 심판과 동시에 미래비전의 동력이 있어야 이길 수 있다. 더구나 한나라당 유력 주자가 박근혜일 경우에는 더욱더 심판의 동력만으로 이길 수 없다."

 

- 선거연합의 결과로 만들어진 공동지방정부 구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전망하나.

"연립정부는 안정적으로 되기 어렵다는 게 역사적 경험이다. 쌍용자동차의 1/10 수준만 되는 사건이 벌어져도 진보정당에서 들어간 노동 관련 공직자는 사표 던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린 아직 연립정부의 경험을 축적해오지 못했다. 정책연합도, 본인 스스로 서명한 것도 못 지키는 판에 가능할까 싶다. 1년간 공동지방정부 활동을 보면 알게 될 것이다."

 

- 빅텐트가 결국 민주당으로 다 들어가자는 것 아니냐는 반문도 있다.

"틀린 얘기다. 가치와 비전을 가지고 각각의 세력이 하나의 연합정당을 공동으로 건설하자는 문제다. 우선 민주당은 사민주의 가치를 가지고 기득권적 구조를 깨고 나와야 한다. 복지동맹-연합정당 담론이 민주당의 변화를 지속적으로 강제해야 한다. 또 진보의 혁신을 강제하는 담론이 될 것이다. 양쪽 모두 변화와 혁신이 필요하다."

 

- 빅텐트는 어떤 경로로 가능하게 할 것인가.

"그 얘긴 의도적으로 안 하고 있다. 그래도 나름 권력감시운동을 20년 가까이 해왔는데 이상적인 그림만 그리고 있겠나. 지금 그 얘기를 안 하는 것은 구체적 경로나 단계, 시기를 판단하는 순간 문제의식은 실종되고 정치공학적 이합집산의 경우의 수만 따지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은 더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논할 때라고 생각하고 복지국가 동맹과 연합정당에 대한 인식적 공유와 합의를 마련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이 위에서 각각의 주체들이 움직이면 구체적인 경로가 만들어진다고 본다."

 

"7.28 재보선? 현재로서는 개인적인 권력의지를 발견 못했다"

 

- 미안한데, 빅텐트는 정말 가능하겠나.

"미국의 경우 1960년대 뉴딜동맹 해체가 1968년 닉슨부터 2008년 아들 부시까지 40년 보수주의 공화당 전성시대를 열었다는 점은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이라고 본다. 자유주의세력과 진보세력 간 분열이 된 채로 간다면 우리도 미국처럼 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2012년 총선 및 대선 승리라는 목표만 갖고 정치방침만 논의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는데 이러면 안 된다. 이런 논의가 과연 한국사회와 한국정치의 미래와 희망을 만들어내는 대안이 되고 있는지 진지하게 묻고 싶다.

 

예를 들어 지금 민주당의 어떤 후보가 대통령 후보가 되든간에 그를 염두에 둔 선거연합과 연립정부 구성이 과연 노무현과 참여정부의 한계를 넘어선 발전적 대안이라고 얘기할 수 있나. 김대중과 노무현을 넘어서는 능력을 가졌다고 단언할 수 있나.

 

더군다나 지금은 확고한 정치주체도 없는 상황이다. 설혹 집권한다한들 참여정부 하에서 일어났던 내부분열과 갈등, 개혁의 정체, 그로 인한 국민적 좌절과 실망이 재현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나.

 

따라서 나는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가 보여줬던 성과와 한계, 오류를 극복하는 방식으로 혁신된 콘텐츠와 주체형성에 힘써야 한다고 본다. 그럴 때 한국사회는 더 진보적인 방향으로 변화를 꿈꿀 수 있다고 본다."

 

- 정치주체들이 지금은 2012년 대선승리 전략에만 매몰돼 있다고 보는 건가.

"2012년 대선승리라는 절대명제 앞에서 상상력이 제압당하고 있다고 본다. 반MB의 당위를 인정하고, 2012년 대선승리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점도 인정하지만 그 프레임에 갇힌다면 오히려 승리를 담보하기 더 어려워진다고 보는 것이다. 가치정치를 복원하고 미래비전을 밝혀나가는 것이 오히려 승리가능성을 높이고 한국정치를 희망적으로 만들어낸다고 본다."

 

- 7.28 재보선 영입대상으로 거론됐다.

"기사에도 나왔듯이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다. 이미 정치사회와 시민사회의 경계는 무너졌고 시민운동을 하다 정치를 하는 것에 전혀 부정적이지 않다. 유능한 시민운동가가 정치를 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원칙 차원에서 거부반응이나 반대는 없지만, 남들이 하도 정치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해서 나 자신에게 물어봤다. 그런데 나에게선 아직 권력의지를 발견할 수 없었다. 정치는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권력의지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게 없으면 본인도 행복하지 않고, 정치를 잘하기도 어렵다고 본다. 현재로서는 개인적인 권력의지를 발견할 수 없다."

 

-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복지국가론을 다시 들고 나왔다.

"내 아버지의 꿈은 최종적으로 복지국가였다거나, 꾸준히 보건복지위원회에서 활동하는 걸 보면 다음 대선에서 복지문제를 자기 어젠다로 가져가려는 것은 분명해보인다. 시대흐름을 잘 읽고 있다고 본다. 따라서 다음 대선에서 복지국가 논쟁은 불가피할 것으로 본다.

 

그 점에서도 민주개혁진보진영이 반MB-정권탈환론으로 나서서는 안 된다. 자칫 진보의 가치를 보수에 빼앗기게 될 수 있다. 그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직면하지 않도록 가치정치에 대해 사람들이 주목했으면 좋겠다. 큰 정치는 가치정치 속에서 나오니까."


태그:#김기식, #빅텐트론, #복지동맹, #연합정당론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