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사고버스가 추돌한 마티즈 승용차
▲ 인천대교 버스사고 사고버스가 추돌한 마티즈 승용차
ⓒ 김창근

관련사진보기



속칭 '김여사(운전이 서툰 여성 운전자를 가리키는 말)'가 돌아왔다.

지난 3일 인천대교에서 일어난 교통사고로 13명이 사망한 후다. 이 참사의 원인을 두고 인터넷 세상이 시끄럽다. 안전거리를 지키지 않은 버스 운전기사와 비상등을 켜지 않은 화물차의 잘못을 지적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1차적 원인 제공자인 마티즈 운전자에게 비난의 화살이 쏠리고 있다.

사고의 씨앗을 제공했다는 점과 함께 그 운전자가 '여성'이라는 것 때문에 관심이 더욱 집중되는 모양이다. '마티즈 김여사' '인천대교 김여사'라는 자동검색어가 떴다. 그리고 예상대로, 미숙한 여성 운전자의 대명사처럼 되어 버린 '김여사' 이야기가 등장하고 있다. 김여사가 도로 위에서 저지른 실수 사진들이 시리즈로 재조명되고 '김여사 방지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여기에 막무가내 김여사에게 당했다는 여러 운전자들의 경험담이 여기저기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다.

마티즈 운전자인 여성의 잘못은 누가 봐도 분명하다. 톨게이트에서 고장이 감지됐고 과적차량 단속 직원의 경고를 받았음에도 무리해서 운행을 감행한 것은 무조건 잘못이다. 또 다시 이상이 발견되었을 때 얼른 갓길로 차를 빼지 못하고 2차선에 차만 방치한 것도 무모한 처사였다.

차들이 쌩쌩 달리는 고속도로 위에서 혼자 삼각대를 설치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므로, 삼각대 미설치의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마티즈 운전자가 자신만 생각하고 다른 차량의 안전은 고려하지 않았음은 틀림없다. 그런데, 이 같은 행동은 과연 여성만 하는 걸까?

미련한 김여사와 난폭한 김사장, 누가 더 위험한가

운전에 서툰 여성을 가리키는 '김여사' 시리즈 사진. 인천대교 고속버스 추락 사고 이후 김여사 시리즈가 다시 등장하고 있다.
 운전에 서툰 여성을 가리키는 '김여사' 시리즈 사진. 인천대교 고속버스 추락 사고 이후 김여사 시리즈가 다시 등장하고 있다.
ⓒ 인터넷

관련사진보기


여성 운전자들이 남성들보다 운전감각이 떨어진다는 건 대체로 사실인 듯하다. 도로연수 선생님도 남자들이 일주일이면 익힐 것을 여자의 경우엔 2~3주가 걸린다며, 만약 운전에 관련된 유전자가 있다고 한다면 남자 쪽이 우수한 것 같다고 했다.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공간지각이 떨어진다는 말도 들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여성 운전자들이 남자들보다 도로연수를 확실히 많이 받는다고 한다. 도로 연수를 50회 이상 받았다는 아주머니부터 누가 옆에 타지 않고서는 떨려서 차를 몰지 못하는 아주머니, '장롱' 면허는 간신히 면했지만 '동네' 면허(아는 동네 안에서만 운전하는)에 그치는 아주머니까지. 우리 주변엔 '김여사'일 듯한 아주머니들이 아주 많다.

그런데 정말 김여사들이 그렇게 다른 운전자들에게 피해만 끼칠까? 서울에서 운전한 지 이제 고작 1년 밖에 안 되는 나도 무수한 김여사들 중 한 명이지만 억울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순발력이 떨어지고, 상황 판단이 늦으며, 위급한 순간에 대응능력도 떨어지는 김여사.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많이 조심하고 양보하고 그 누구보다도 오래 참는다.

며칠 전만 해도 2차선 도로에서 직진 신호가 떨어지길 한참 기다리는데 우회전 차선에 서 있던 차가 잽싸게 새치기를 해서 튀어 나갔다. 얌전히 차례를 지키며 무려 신호가 3번 바뀌기를 기다리던 내 차는 덕분에 빨간 신호에 딱 걸려 2~3분 가량을 더 기다리게 되었다. 튀어나간 운전자, 물론 운전 잘하시는 남성 운전자(혹시 김사장?)이시다.

저런 얌체가 있냐고 혼잣말을 하다가 불쑥, 묵묵하게 기다리던 내가 바보가 된 것 같아 울화가 치밀었다. 남녀 성별을 따지고 싶진 않지만 많은 분들이 '김여사'의 미숙함과 우둔함을 탓하니, 그 수많은 남성 운전자 '김사장'의 조급함과 난폭함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미련한 '김여사'와 난폭한 '김사장' 중 누가 더 나쁜 운전자일까? 묻고 싶어지는 것이다.

도로연수를 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교통흐름을 타고 방어운전을 하라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여성 운전자를 무시하는 남자들에게 절대 기죽지 말라는 것이었다. 규정속도 대로 가고 있다면 뒤에서 아무리 속도를 내고 달라 붙어도, 경적을 울리면서 안달을 해도 아랑곳하지 말라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운전하는 중에 어디선가 경적소리가 들리면 내 차에다 대고 하는 것 같아 괜스레 가슴이 뜨끔하다. 다른 운전자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소위 '김여사'가 되지 않으려 노력하는 건 비단 나 '신여사' 혼자만은 아닐 것이다.

인터넷을 보면 갖가지 '진상' 김여사들이 나온다. 하지만 대부분 교통사고를 내는 건 남성들이다. 올해 5월 교통안전공단이 보고에 따르면 최근 2년간 운전면허 소지자 100명당 남성은 1.13건, 여성은 0.34건의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남성이 여성에 비해 약 3.3배 발생빈도가 높았다. 분석에 따르면 여성이 순발력 등 운전 기능에서는 남성보다 떨어지지만 급가속, 급출발 등 난폭운전이 적고 조심스럽게 운전을 하기 때문에 교통사고율이 떨어진다고 한다.

교통사고는 사고일 뿐... 남녀로 구분하지 말자

마티즈 운전자 옆에 나이와 성별을 분명하게 명기해 놓은 기사를 보며, 여성 운전자에 대한 세상의 편견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된다. 운전 잘하는 여성분들도 많고, 오랫동안 초보 운전을 벗어나지 못하는 김여사들 또한 전부 이번 사고의 주인공 같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하니 비난의 화살을 한국의 김여사들에게 돌릴 것이 아니라 저마다 자기 자신에게 물어보면 어떨까?

당신이라면 고장이 의심되었을 때 바로 보험회사에 연락했을지. 과연 응급상황에서 침착하게 차를 갓길에 댔을지. 안전수칙을 떠올려 곧바로 삼각대를 설치했을지. 당신의 차에 삼각대가 들어 있기나 한지. 

처참하고 안타까운 이번 사건에 관계된 사람들에게 엄중한 책임을 묻고 싶은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끔찍한 사건이 터질 때마다 인종이나 출신 국가, 사는 지역, 성별, 심지어 혈액형 같은 것을 들먹이며 몰아가기 식 비난이 일어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마티즈 운전자가 남성이었다면 호된 비난을 받았을지언정 이런 식으로 조롱거리가 되지는 않았을 거라 생각하면 씁쓸하다. 더구나 사고에 대한 원인조사가 진행중인데도 '김여사 방지법' 운운하며 '마티즈 김여사'를 확신범으로 몰고가는 누리꾼들의 분위기는 더욱 성급해 보인다. 왜 유독 여성 운전자에게만 성별을 들이대는지 이해할 수 없다. 교통사고는 사고일 뿐이다.


태그:#인천대교참사, #김여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