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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남아공 월드컵을 이용해 쓰촨(四川) 파오차이(泡菜)를 흉내 낸 김치를 홍보하고 있다." - 투젠화(涂建華) 쓰촨성 농업청 부순시원

 

"파오차이, 자차이(搾菜) 등 쓰촨의 발효음식은 그 유래가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역사가 짧은 김치와는 비교가 되질 않는다." - 거우더(苟德) 쓰촨요리박물관장

 

지난 8일 중국 쓰촨성 인민정부가 운영하는 <쓰촨신문>은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인 김치가 파오차이의 모방품이라는 주장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투젠화 부순시원은 "쓰촨 파오차이의 큰 특징은 조상 대대로 내려져 온 단지를 이용하는 점"이라며 "한국의 김장독은 파오차이 단지의 짝퉁"이라고 주장했다. 부순시원은 국장급에 해당하는 고위관료다.

 

중국 관리의 이 같은 주장은 지난 달 20일 한국 언론을 통해 보도된 한 장의 사진에서 비롯됐다.

 

한 어린이 축구팀 선수들이 김치공장을 견학하는 과정에서 김장독을 앞에 두고 우리 대표팀의 선전을 기원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사진에 등장한 김장독이 파오차이 단지의 모방품이라는 것이었다. 투 부순시원은 "파오차이 단지는 엄연히 중국의 것인데 한국에 의해 표절당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김치를 폄하하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파오차이가 채소를 단지에 담아 발효시킨다면 김치는 독 속에서 소금에 절여 만든다(腌菜)"며 김치가 발효를 거치지 않고 유산균도 없는 음식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김치는 소금 절여 만든 파오차이 표절품"

 

중국 내에서 '파오차이'는 절임 채소를 뜻한다. 김치는 중국인에게 '한궈파오차이(韓國泡菜)'로 불린다.

 

중국에서 김치가 독자적인 이름을 가지지 못한 데는 1992년 한·중 수교 이전 조선족에 의해 만들어진 김치가 유통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화북지방에서는 김치가 '차오센(朝鮮) 파오차이'라 불리며 널리 알려지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불고기, 냉면 등과 더불어 한족에게도 인기 있는 조선족 음식이었다.

 

남방에서도 오래 전부터 쓰촨 파오차이가 서남지방을 중심으로 확고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고유의 이름을 갖지 못하고 '한궈파오차이'라는 애매한 이름을 얻게 된 김치는 적지 않은 중국인에게 파오차이의 아류 정도로 인식되어 있다.

 

중국 관리나 요리 전문가가 김치에 대해 도발적인 발언을 내놓은 것이 이번만이 아니다.

 

작년 7월 리웨이민(李維民) 쓰촨성 상무청 부청장은 "김치의 원조는 쓰촨"이라고 주장했었다. 리 부청장은 "문헌상 쓰촨 파오차이는 1500여 년 전부터 만들어졌다"면서 "발 빠른 김치산업의 성장과 세계화 때문에 파오차이가 김치에게 추월당했다"고 말했다.

 

쓰촨요리박물관장이자 유명요리사인 거우더도 "지난 30년간의 발굴과 노력으로 기원전 쓰인 파오차이 단지를 찾아냈다"면서 "파오차이가 김치보다 훨씬 먼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은 역사적 유물과 문헌으로 증명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쓰촨요리박물관은 중국 내에서 유일한 음식전문 박물관이다.

 

 

"시세를 잘 타고 홍보를 잘해 앞질렀을 뿐"

 

쓰촨성 사람들이 뜬금없이 김치 짝퉁설을 언급하는 것은 커져가는 김치산업의 발전에 대한 자극과 시기 때문이다.

 

지난달 31일 관세청 발표에 따르면, 작년 한해 수출된 국산 김치는 8938만6000달러(한화 약 1070억원)에 달했다. 김치 수출이 1000억원을 돌파한 것은 작년이 처음이다. 수출량도 2만8505톤에 달해 수입을 앞질렀다. 수출 대상국은 일본, 미국, 대만, 홍콩, 호주 등 54개로 늘어났다.

 

김치 수출은 2004년 처음 1억 달러를 넘어섰으나, 2005년 중국산 김치의 기생충 알 파동으로 크게 줄었었다. 하지만 한국산 김치의 고품질화, 브랜드화가 효과를 본데다 발효건강식품으로 인식되면서 김치의 인기는 더욱 커져가고 있다.

 

이에 비해 쓰촨 파오차이의 무역 규모는 미미해, 한해 300만 달러도 되질 않는다. 중국 내에서 소비량은 65만톤, 금액으로는 52억 위안(약 9100억원)으로 한국의 김치산업과는 비교가 되질 않는다. 리웨이민 부청장은 "한국 김치는 연간 매출액이 24억 달러(약 2조8730억원)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며 부러워했다.

 

중국 관리와 산업 관계자는 김치의 성장을 시세를 잘 탄 홍보의 승리쯤으로 여기고 있다.

 

중국에서 김치는 2003년 사스(SARS)의 유행 시 '한국인이 사스에 걸리지 않은 것은 김치를 즐겨 먹기 때문'이라는 언론 보도로 열풍이 불었다. 여기에 <대장금> 등을 앞세운 한류의 영향과 건강을 중시하는 웰빙 추세로 중국인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다.

 

 

고유 이름도, 제조 표준도 없어... 중국산에 압도될 위기

 

김치를 따라잡기 위한 파오차이의 노력이 이미 시작됐다.

 

작년 쓰촨성 정부는 파오차이를 우수 산업품목으로 선정해 2015년까지 300억 위안(약 5조2800억원) 규모의 생산량을 달성키로 했다. 이를 위해 곳곳에 표준화된 파오차이 전용의 채소 원료 생산기지를 건설하고 관련 기업들의 규모를 확대해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쓰촨성 식품공업협회도 여러 연구단체와 제조 표준을 제정하고 기업의 생산기술을 통일했다. 이는 2001년 7월 한국이 국제 식품규격위원회로부터 김치의 국제식품 표준을 인정받아 대외무역의 발판을 마련한 것을 따라한 행보다.

 

중국에서 가장 많은 쓰촨요리 전문식당, 광둥(廣東)요리와 더불어 중국 양대 요리로 자리잡은 쓰촨요리의 시장장악력 등이 파오차이의 도약을 도울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당장은 김치의 맛과 품질이 파오차이보다 월등히 우수해 걱정할 필요는 없다. 쓰촨 파오차이는 배추, 무 등을 소금에 절인 후 시게 해 먹어 김치와 전혀 다르고 산도와 염도도 매우 높다.

 

하지만 앞으로가 문제다. 현재 중국 내에는 수백 개의 김치공장이 운영되고 있다. 초창기와 달리 지금은 중국인이 운영하는 공장이 절반을 넘는다. 이들은 한국에서 전문가나 기술자를 초빙해 품질 향상에 노력하고 있다. 일정한 품질과 가격 경쟁력을 확보한 중국산 김치 때문에 한국의 김치 무역은 수년간 적자를 면치 못했다.

 

중국 내의 김치도 '절임채소위생표준(醬菜衛生標準)'에 맞추어 생산, 유통되어 한국의 전통 김치와 차이가 있다. 중국의 한 지방정부는 지난 2007년 조선족의 김치제조 기술을 국가비물질(무형)문화유산에 신청하기도 했다.

 

고유의 이름을 갖지 못하고 독자적인 제조 표준을 제정하지 못하는 한 중국에서 김치는 파오차이의 한 부류로 영원히 인식될 공산이 크다.

 


태그:#김치, #파오차이, #산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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