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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를 흠뻑 맞고 마시는 막걸리와 부침개는 임금님 수라상도 부럽지 않다
▲ 막걸리 비를 흠뻑 맞고 마시는 막걸리와 부침개는 임금님 수라상도 부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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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와. 양푼에 막걸리 따르는 소리를 내며."
"내가 듣기에는 기름에 부침개 부치는 소리 같은데?"
"글쎄, 비가 온다니깐!!!"
"그래서 어쩌자구?"
"지금 바로 나와. 교보문고 뒷문 피맛골 첫 골목 첫 집인 '열차집'(피맛골 철거로 사라졌음 )에서 빈대떡 안주삼아 막걸리나 한잔 하게."

'우(雨)요일'이 시작되었다. 나그네는 해마다 우요일이 되면 그 어느 때보다 막걸리와 부침개를 즐겨 찾는다. 특히 내리는 비를 흠뻑 맞고 마시는 막걸리와 부침개는 임금님 수라상도 부럽지 않다. 이 이야기도 지난 해 이맘 때 비가 내릴 때 나눈 말이다. 비만 오면 일하는 시간에 관계없이 전화를 걸어 막걸리 한잔 먹자고 마구 보채는 살가운 벗이 있다는 것도 '작은 행복'이 아니겠는가.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비가 눈물방울처럼 촉촉이 내리는 날이면 자신도 모르게 막걸리와 부침개를 떠올린다. 새콤하면서도 단맛이 살짝 혀끝에 맴돌며 부드럽게 취기가 올라오는 대한민국 특산품 막걸리... 오소소 추운 몸을 은근히 데워주며 '피자, 너 이제 죽었다'는 소리가 절로 나오도록 감칠맛 나는 부침개...

나그네도 비 내리는 날 물안개처럼 뽀얀 막걸리를 마시며 부침개를 젓가락으로 아무렇게나 뜯어먹는 것을 참 좋아한다. 그렇게 막걸리를 마시다보면 마음이 착 가라앉으면서 '첫사랑 그 여자가 우리 이제 헤어져, 헤어지자구'라며 앙탈할 때 볼을 타고 줄줄 흘러내리던 그 눈물이 떠오르고, 함께 더 살지 못하고 이 세상을 먼저 훌쩍 떠나간 이들도 막걸리 잔 속에 실루엣처럼 피어오르기 때문이다.

비+막걸리+부침개. 근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 비만 오면 너나 할 것 없이 막걸리와 부침개를 찾는 것일까. 왜 비가 오는 날이면 늘 마시는 소주와 맥주도 널려 있는데 막걸리가 자꾸만 눈에 아리도록 밟히는 것일까. 

광장시장 부침개 파는 골목에 앉아 막걸리에 부침개를 먹는 것이 최고 아니겠어
▲ 광장시장 광장시장 부침개 파는 골목에 앉아 막걸리에 부침개를 먹는 것이 최고 아니겠어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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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부슬부슬 내릴 때면 이상하게도 막걸리와 부침개가 더 당긴다
▲ 막걸리 비가 부슬부슬 내릴 때면 이상하게도 막걸리와 부침개가 더 당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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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와 막걸리는 뗄 수 없는 '찰떡궁합'

첫째는 오랜 농경사회를 거친 우리 민족 정서가 그렇게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요즈음에는 소주나 맥주가 흔하지만 그때 술이란 것은 쌀로 빚은 막걸리가 모두였다. 게다가 비가 오면 농부나 가축이 일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막걸리와 부침개를 먹으며, 농사를 짓지 못하는 타는 속을 달랠 수밖에 없지 않았겠는가. 

한 살 때 백일해 약을 잘못 먹어 뇌성마비 2급 장애를 평생 화두처럼 짊어지고 힘겹게 살다가 훌쩍 떠나간 민족시인 이선관(1942~2005)은 비가 오는 날이면 마산 부림시장 들머리에 있는 '큰대포'에서 나그네와 막걸리를 나눠 마시며 이렇게 말했다. "비오는 날 막걸리가 당기는 것은 농경사회에서 내려온 오랜 전통 아이가. 그렇게 오래 길들여져 있기 때문에 우리네 정서도 그렇게 변한 기라"라고. 

이선관 시인은 나그네가 지난 1990년대 허리춤께부터 10여 년쯤 창원에 살 때 비가 내리지 않아도 틈만 나면 서로 만나 막걸리를 즐겨 마셨다. 사발에 담긴 막걸리 잔을 툭툭 부딪치며 이런 저런 세상이야기와 문학이야기를 때론 즐겁게 때론 성질을 내어가며 나누곤 하는 살붙이 같은 사이였다.

이선관 시인은 그때 "농경사회에서는 비 오는 날이면 일을 할 수 없다 아이가. 특히 장마 때 눅눅한 날씨에는 농부뿐만 아이라 가축도 지치거든"이라며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그런 날 농부들이 뭐하겠나. 막걸리에 부침개 생각이 절로 안 나것나?"라며 비와 막걸리는 찰떡궁합이라고 쐐기를 박았다.

비가 오는 날이면 촉촉하고도 눅눅한 분위기 때문인지 마음이 착 가라앉으면서 예전에 겪었던 슬펐던 기억이 훨씬 더 많이 떠오르며 막걸리 생각이 절로 난다
▲ 막걸리 비가 오는 날이면 촉촉하고도 눅눅한 분위기 때문인지 마음이 착 가라앉으면서 예전에 겪었던 슬펐던 기억이 훨씬 더 많이 떠오르며 막걸리 생각이 절로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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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도 비가 오는 날이면 약속이라도 한 듯이 부침개를 안주삼아 땅에 떨어지는 빗방울이 내뿜는 물보라처럼 허연 막걸리를 홀짝홀짝 마셨다.
▲ 막걸리 나그네도 비가 오는 날이면 약속이라도 한 듯이 부침개를 안주삼아 땅에 떨어지는 빗방울이 내뿜는 물보라처럼 허연 막걸리를 홀짝홀짝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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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 '막걸리+부침개'는 '오랜 정서가 빚어낸 길들임'

"피자가 외국 부침개라면 부침개는 우리나라 피자 아이가."
"아, 애들이나 피자, 피자 하면서 자주 찾지, 나는 느끼해서 피자 그거 돈 주고 먹어라 해도 못 먹겠더만. 근데 우리 애들은 왜 멀쩡한 우리 부침개를 멀리 하고 피자만 찾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어. 혹 영어 공부를 너무 많이 시키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외국 것만 마구 찾는 건 아닌지 모르겠어."
"멀쩡한 애들 탓 하지 마. 어른들 잘못이지. 우리나라 교육정책 좀 봐. 가만 보면 애들에게 외국 것이 무조건 좋은 거라는 식으로 밀어붙이는 것 같지 않아?"

둘째는 비가 내리는 날이면 주변 환경이 모두 눅눅해지면서 오슬오슬 추워지기 때문에 막걸리와 부침개를 즐겨 찾을 수밖에 없다. 왜? 우리 몸 스스로 허기진 배를 채워주고 온몸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막걸리와 기름진 부침개를 찾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몸이 바라는 음식을 먹으면 만병을 이길 수 있다고 하지 않던가.

그렇다면 비가 오는 날 소주나 맥주에 수육이나 피자를 먹어도 되지 않을까. 맞는 말이기는 하다. 하지만 '탁주 반 되는 밥 한 그릇'이란 옛말이 있듯이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누구나 쉬이 빚을 수 있는 막걸리를 즐겨 마셨다. 예전에는 수육은 잔치나 초상이 나야 겨우 먹을 수 있을 정도로 귀했고, 피자는 아예 없었다.

그랬으니 앞서 이선관 시인이 말했듯이 비가 오는 날 막걸리와 부침개를 먹는 것은 '우리 오랜 정서가 빚어낸 길들임' 아니겠는가. 막걸리 집 사장들과 피자 집 사장들도 요즈음 비가 오는 날을 아주 좋아한다고 한다. 실제로 비오는 날 오후 2~4시가 되면 맑은 날보다 막걸리와 부침개, 피자 판매 매출이 7~8배쯤 더 오른다고 하니 비와 막걸리, 부침개, 피자는 떼려도 뗄 수 없는 찰떡궁합 아니겠는가.

비 오는 날, 막걸리 40% 더 팔린다

국순당은 "지난해 6월부터 8월까지 막걸리 매출이 18억 원을 기록했다"며 "이는 예년 같은 기간에 비해 18배 오른 수치"라고 밝혔다. 국순당은 "지난해 5월에 내놓은 국순당생막걸리도 장마철 들어 하루 판매량이 이마트와 업소에서 훨씬 더 많이 팔려나가고 있다"며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다.

국순당에서는 막걸리가 많이 팔리는 까닭으로 여름철에 자주 내리는 비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국순당 관계자는 "이마트 등지에서 판매된 국순당 생막걸리 수량을 보면, 비가 오지 않은 날은 평균 5950병이 팔린 데 비해 비가 온 날은 8328병이 판매됐다"라며 "비온 날이 갠 날에 비해 약 40% 막걸리 판매가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왜 비가 오는 날 막걸리가 많이 팔릴까. 나그네는 비가 오는 날이면 물기가 촉촉한 주변 환경이 마음을 착 가라앉히기 때문에 옛 기억이 흑백필름처럼 떠오르면서 옛 추억이 물씬 풍겨나는 막걸리와 부침개를 찾는다고 믿는다. 사람들 대부분은 비가 오는 날이면 마음이 울적해지면서 기쁜 일보다는 슬픈 일을 더 많이 떠올리지 않던가. 

이러한 때에는 자신도 모르게 이 세상살이가 귀찮아지고 힘들어지면서 스스로 현실도피를 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마음이 이렇게 울적한 때, 그대라면 어떡하겠는가. 왁자지껄한 호프집에 앉아 생맥주를 마시는 것이 좋겠는가, 아니면 사람이 뜸한 허름한 막걸리 집에 앉아 막걸리+부침개를 먹으며 앞마당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듣는 것이 더 좋겠는가.

막걸리 빛 물보라 일으키는 굵은 빗방울

나그네와 가까이 지내는 살가운 벗들은 "비가 오는 날이면 촉촉하고도 눅눅한 분위기 때문인지 마음이 착 가라앉으면서 예전에 겪었던 슬펐던 기억이 훨씬 더 많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소주나 맥주를 즐기는 벗들도 "비가 부슬부슬 내릴 때면 이상하게도 막걸리와 부침개가 더 당긴다"고 입을 모아 말하곤 했다.

그렇다. 어릴 때부터 비를 아주 좋아하고 있는 나그네도 그랬다. 나그네도 비가 오는 날이면 약속이라도 한 듯이 부침개를 안주삼아 땅에 떨어지는 빗방울이 내뿜는 물보라처럼 허연 막걸리를 홀짝홀짝 마셨다. 그렇게 '생각하는 로뎅'처럼 앉아 있으면 은근히 스며드는 취기에 어느새 추위가 달아나면서 아주 슬펐던 일들도 슬며시 꼬리를 내리곤 했다.

그뿐이 아니다. 비가 오는 날 막걸리 생각이 더 많이 나는 것은 산 허리춤께 낀 막걸리 빛 물안개 때문이기도 했다. 아스팔트 위에 투둑투둑 떨어지며 막걸리 빛 물보라를 일으키는 빗방울도 한몫했다. 비에 촉촉이 젖은 어깨에서 보일락 말락 하며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막걸리 빛 김도 막걸리를 더 당기게 했다.   

"오늘은 비가 오고 있어서 그런지 말이야. 오슬오슬 추워지면서 배가 자꾸 고파."
"그래서?"
"이런 날은 말이야. 광장시장 부침개 파는 골목에 앉아 막걸리에 부침개를 먹는 것이 최고 아니겠어. 막걸리 몇 잔 마시고 있으면 은근히 몸도 데워지면서 고픈 배까지 채워주거든."
"그래, 그래. 비 오는 오늘은 광장시장에나 가서 막걸리에 부침개나 먹자구. 첫 사랑 그 여자 이야기도 하면서 말이야."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글쓴이가 지난 5월 끝자락에 낸 '간추린 막걸리 백과사전' 이란 덧글이 붙은 <막걸리>란 책에 담긴 내용 가운데 일부를 옮겨 고쳐 썼다



태그:#막걸리, #비와 막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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