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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정부가 참여연대를 엄청 키워주고 있는 거다. 유엔 안보리가 어떤 조직인데, 전 세계 수십만 개 NGO 중의 하나가 보낸 서한에 신경을 쓰나. 안보리는 정부 간 협의에만 초점을 맞춘다. 참여연대가 잘했다는 것도 아니고 옹호하려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정부가 이 사안을 국내정치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거다."

정부가 참여연대의 '유엔 서한'을 맹비난하고 있는 상황에 대한 송민순 민주당 의원의 평가다. 정부가 참여연대를 공격함으로써 '천안함 외교' 실패에 대한 알리바이를 만들려 한다는 점에서, 문제의 핵심을 짚고 있다.

야당 의원의 말이기에 객관성을 상실했다는 시각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여당으로부터 합리적이라는 평을 듣고 있고, 정부의 천안함 조사결과 발표에 대해서도 야당에서는 처음부터 "인정해야 한다"고 나선 인물이기도 하다. 또 외교부 북미국장 등 33년에 걸친 외교관 생활을 통해 유엔 안보리 시스템에도 밝다.

윤덕용 합조단장 "안보리에서 참여연대 서한에 대한 언급 전무"

정운찬 총리.
 정운찬 총리.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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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지난 14일(현지시각) 뉴욕 유엔 본부에서 안보리 이사국들에 대한 브리핑을 마친 뒤 윤덕용 천안함 사건 민군 합조단장은 "안보리는 정부 간 협의이기 때문에 참여연대 서한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고 했다.

참여연대는 국내의 첨예한 쟁점에 대한 일상적인 의견전달 차원에서 보낸 것이고, 유엔 안보리의 의사결정 시스템상 크게 영향을 미칠 수 없는 편지 한통에 대해 정부와 조중동, 보수단체들이 나서서 온갖 마녀사냥 공세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이에대해 외교통상부가 "우리 정부가 기울이고 있는 외교 노력을 저해하는 것으로 극히 유감스런 행동"(14일 김영선 대변인)이라고 한 것은 그래도 점잖은 편이다.

"어느 나라 국민인지 의문이 생겼다"며 애국심을 운운한 정운찬 총리의 발언은 과거 보수정권이 해온 '색깔론 공세'를 그대로 재생한 듯하다. 야당 국회의원들조차도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는 '천암함 미스터리'를 국제적으로 제기하면 대한민국 국민도 아니라는 마타도어인 셈이다.
 
참여연대는 사실상 '국민도 아니다'라는 주장은 '이적행위', '반국가행위'로 직결되는 분위기다. 이는 보수단체의 수사의뢰로 이어졌고, 정부에서도 "법적 검토가 응당 있어야 한다.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천영우 외교부 2차관)는 말까지 나왔다.

일제시대에도 '비(非)국민'이란 용어가 창궐했다. '불령선인'(不逞鮮人) 즉, 불순한 조선인을 의미하는 말로 황국신민임을 인정하면 국민이고 그렇지 않으면 비국민이라는 것이었다. 해방 뒤 좌우 갈등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국민과 비국민을 나누는 기준은 이념으로 바뀌었고, 좌익이나 친북은 비국민으로 제거대상이 됐다.

6·2지방선거가 한창이던 지난 5월 21일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도 비슷한 표현을 했다. 천안함 사건 조사결과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유시민 경기지사 후보에 대해 "국민의 자격이 없다"고 한 것이다. 이것이 한나라당의 선거기조였다.

동시에, 그로부터 한 달도 안 돼 국민들이 거부했던 행태를 똑같이 반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은 이명박 정부가 지방선거에서 왜 참패했는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조중동 등 보수언론과 보수단체들도 마찬가지다. 참여연대 서한 문제가 불거지자 <조선일보>는 주특기를 살려 '80년대 학생운동 출신들이 장악… 이념에 치우치며 촛불시위 등 주도'라며 색깔부터 칠하고 나왔다. 다른 견해는 절대 인정할 수 없다는 흑백논리로 중무장한 경직된 보수진영. 그들에게 프랑스 드골 전 대통령의 일화를 소개하면 이렇다.  

"그냥 놔두게, 그도 프랑스야"

"알제리 독립운동이 한창일 때 사르트르는 알제리 독립자금 전달책으로 나섰다. 당시 프랑스의 대표적인 지성이 프랑스에 살고 있는 알제리인들이 갹출한 독립지원금이 들어 있는 돈가방의 전달책임자를 자원했던 것이다. 프랑스 경찰의 감시를 피해서 그의 책임 아래 국외로 빼돌린 자금은 알제리인들의 무기구입에 필요한 돈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그의 행위는 문자 그대로 반역행위였다. 당연히 사르트르를 법적으로 제재해야 한다는 소리가 드골 측근들의 입에서도 나왔다. 이에 대해 드골은 이렇게 간단히 대꾸했다. "그냥 놔두게. 그도 프랑스야." (홍세화,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 44쪽)

물론 이런저런 정치적 배경이 깔려 있겠지만 드골의 이 빛나는 '관용'을 지금의 한국정치, 특히 이명박 정부에게 본받으라고 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그럼에도 그 배포와 담대함은 '드디어 하나 걸렸다'며 집단 구타에 여념이 없는 이명박 정부와 한국의 자칭 보수들이 밑바닥까지 보여주는 '배타성'과 비교될 수밖에 없다.

정부 지원금을 한 푼도 받지 않는 참여연대에 대해 "참여연대 같은 시민단체는 사법처리 문제 외에도 정부 보조금 지원에 대해 전면적인 검토를 하겠다"(고흥길 한나라당 정책위원장)고 하니 실소만 나올 뿐이다.

통일외교안보분야에서 이 정부가 보인 배타성의 사례는 또 있다. 6·15선언 기념행사에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으로 통일부 장관을 보내지 않았다. 올해 10주년 행사에는 작년과 달리 차관까지 보내지 않으려다 '속좁다'는 비판이 나오자 결국 엄종식 차관을 보냈다.

겉으로는 6.15선언의 정신을 존중한다고 하고 6.15를 훼손하는 것은 북한이라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10주년 행사장에 가서 입에 발린 인사 한마디도 못한다. 그래서 결국은 6.15선언과 10.4선언을 부정한다는 비판을 피하지 못한다.

대한민국어버이연합, 탈북자단체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앞에서 천안함 사건 관련 의문점을 담은 서신을 유엔에 보낸 것에 항의하며 "참여연대는 북으로 가라", "참여연대 건물에 불을 지르자", "이적행위를 처벌하라" 등 격렬한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시위에 참석한 한 보수단체 회원이 참여연대 건물로 물병을 던지고 있다.
 대한민국어버이연합, 탈북자단체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앞에서 천안함 사건 관련 의문점을 담은 서신을 유엔에 보낸 것에 항의하며 "참여연대는 북으로 가라", "참여연대 건물에 불을 지르자", "이적행위를 처벌하라" 등 격렬한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시위에 참석한 한 보수단체 회원이 참여연대 건물로 물병을 던지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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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안보리 의장 "남북 모두 자제하라", 대망신

또 그런 정도의 협량이니, 북한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유엔 안보리로 달려가서 내 편 들어달라고 매달리다가 유엔 안보리 의장으로부터 "남북 모두 긴장을 높일 수 있는 행위를 자제하라"는 훈수를 듣는 망신을 당하면서도, 망신인 줄도 모르고 있는 것일 게다.

오죽하면, 보수 내부에서조차 "이명박 정부하면, '꼰대'라는 말이 생각난다", "자신과 다를 수밖에 없는 진보좌파를 '박멸해야 할 적'이 아닌 국민의 신임을 받기 위해 같이 경쟁하는 선의의 '경쟁자'로 생각하고 그 존재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 "사회를 뒤덮고 있는 경직되고 음울한 분위기에 숨통을 트는 방향으로 국정 기조를 선회해야 한다"(15일 '바른사회시민회의' 토론회)는 말이 나오겠는가.

참여연대에 대한 무분별한 마타도어는 '북풍'을 활용하려다가 유권자들로부터 호된 질타를 받은 지방선거 결과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태그:#참여연대, #천안함, #드골, #이명박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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