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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천안함 등으로 뒤숭숭하다. 북풍한설 기류를 투표 한방으로 뒤엎어 지방선거 혁명군이 된 백성들이고 보면 하필 이 시점에서 지리산 빨치산 이야기를 출판했느냐는 반문은 오히려 부질없는 일일 게다.

현장 취재 등을 통해 원고지 700매 분량으로 엮은 지리산 빨치산의 이야기를 엮은 대서사시집이다.
▲ 달궁아리랑 책표지 현장 취재 등을 통해 원고지 700매 분량으로 엮은 지리산 빨치산의 이야기를 엮은 대서사시집이다.
ⓒ 박상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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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만 뜨면 자기 진영의 사람이 아니면 좌빨~ 좌빨~ 하는 세상에서 여전히 빨치산 이야기는 그 맥을 함께 한다. 남도의 한(恨)을 구성지게 노래해온 송수권 시인은 지방선거 이전 <달궁 아리랑>이라는 장편 서사시집을 완성했다.

우문이지만 왜 하필 이 시점에 빨치산이냐고 묻자, 송수권 시인은 "야구에 열광하면서 왜 시인들은 지리산에 대해서 말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그래서 "한평생 시를 쓰고 이 시대의 삶을 살면서 한반도적인 부끄러움으로 남은 절름발이 시인이라는 반성에서 집필을 시작했다"고 그 동기를 밝혔다.

서사시는 다른 장르와는 달리 이야기를 진솔하게 구현한다는 특징이 있다. 지금 우리시대 화두 역시 진실이다. 역사는 강물처럼 흐르고, 흐르면서 과거의 성찰과 내일의 전망을 되묻는다. 이런 패러다임의 문학 장르 중 하나가 장편 서사시이다. 진실의 노래이다. 진실을 목 놓아 부르는 민초들의 이야기이다. 이미 장편소설이나 영화로는 이병주 '지리산', 조정래 '태백산맥', 이태의 체험수기 '남부군', 임권택 영화 '태백산맥', 정지영의 '남부군', 오봉옥의 서사시 '검은 붉은 피' 등이 있다.

저마다 열정의 창작물이고 일정한 문학적 성과를 거둔 작품들이다. 이런 가운데 시인 송수권(순천대 문창과 교수)은 밀레니엄 시대에도 여전히 걷히지 못한 이념 대립과 그런 과정의 희생과 아픈 상흔들이 잔존하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시적 은유와 직설화법으로 질타하고 분노한다. 그런 점에서 빨치산의 역사를 현재적 입장에서 접목하여 전면적으로 다룬 최초 장편 서사시이다. 이 작품은 김동환의 '국경의 밤', 신동엽의 '금강', 이산하의 '한라산'으로 이어져온 현대 서사시의 계보를 정통으로 잇는다고 할 수 있다.

이 시집은 실존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지리산을 중심으로 한 빨치산의 투쟁과 몰락을 그려가는 데 정통 서정 시인답게 때로는 지리산 푸른 산 빛과 계곡에 햇살과 함께 찰랑이는 물소리를 담은 한 폭의 그림처럼 묘사하고 경쾌한 음악처럼 읊조린다. 그런가 싶으면 다시 눈물 나도록 서러운 전통가락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때로 오일장 엿장수 가락처럼 흥미진진하게 풀어낸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눈 위에 불꽃같은 싹을 내밀 무렵,/오긴 왔더란다/오긴 왔는데 죽어 왔더란다/보쌈 해 간 길례가 아닌 길례의 아들,/'위대한 남부군의 혁명군 아들 윤관'이란/명패 하나를 들고(중략)
달궁 달궁 달궁 간다/진달래꽃 피고 온 산이 깨어나/철쭉꽃 물들 때/남도 백구두 도당인민위원장 빨갱이 아들로/한세월 떠돌던 시인/지천명 환갑을 다 넘기고서야/젊은 애인 따라/눈 녹을 때 달궁에 간다(달궁 아리랑 2)

가시내야 山가시내/산삼 잎에 구르는 네 목소리/꿈속에서도 자주 설해목 넘어지는 소리 들리고/늦은 2월에서야 저 줄을 선 닥나무 밭/노오란 닥꽃으로 피어나가겠네/그 닥나무 껍질로 참종이 떠내고/구절초 꺾어다 창호문 바르고/신방 차리면/꾸다 둔 꿈 다시 꾸겠네(달궁 아리랑8)

남부군은 다시 육십령을 넘어/기백산, 함양의 백운산을 넘어/하룻밤 내 일백 리를 주파하고/거창양민학살 현장인/신원면 청마산에 나타나/거창읍의 방어선을 통과/5개 보투를 일거에 처부셨다/아, 우리는 지리산에 돌아왔다고/만세를 불렀다/병력 손실은 30명이었다(달궁 아리랑10)

고희를 맞은 송수권 시인은 수많은 자료 수집과 지리산 골짜기, 골짜기를 누비는 현장검증을 거쳐 좌와 우, 진보와 보수를 뛰어넘어 원고지 700매 분량의 장편 대서사시를 완성했다. 이번 시집에는 '서시'를 비롯 28편의 서사시와 빨치산의 약사로 구성돼 있다. 시집에 등장하는 주인공 '나'는 좌도 우도 아닌 인간의 관점, 민족의 관점, 역사의 관점에서 빨치산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독자들에게 현실성이 담보된 빨치산 이야기이면서, 그런 비극적 이야기를 결코 단조롭거나 건조한 역사적 서술에 머물지 않고 생명력 넘치는 사람의 역사 그리고 산촌의 가락이 살아 숨 쉬는 서정적 스토리텔링이다. 그래서 서사시가 어렵고 장황할 것이라는 고정관념과 편견 대신에 설득과 감동의 역사적 진술로 잔잔하게 여울져 온다.

덧붙이는 글 | 박상건 기자는 시인이고 성대 언론정보대학원 겸임교수이다.



달궁 아리랑 - 송수권 장편 서사시집

송수권 지음, 종려나무(2010)


태그:#지리산, #빨치산, #송수권, #달궁아리랑, #박상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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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언론학박사, 한국기자협회 자정운동특별추진위원장, <샘이깊은물> 편집부장,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위원, 한국잡지학회장, 국립등대박물관 운영위원을 지냈다. (사)섬문화연구소장, 동국대 겸임교수. 저서 <주말이 기다려지는 행복한 섬여행> <바다, 섬을 품다> <포구의 아침> <빈손으로 돌아와 웃다> <예비언론인을 위한 미디어글쓰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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