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분단의 시대, 우리는 누구를 보고 배울 것인가."

 

한 책을 찾고 있었다. 오래 전부터 찾고 있는 책인데 왜 이리 포위망에 안 걸려드는지 초조해하고 있었다. 자주 가는 중고 서적 집에 미리 수배령을 내리고 있던 터지만 시간이 해결해 줄 것 같지도 않았다. 중고 서적 집이 아니더라도 방문하는 서점마다 찾아봤지만 한 권도 찾을 수 없었다. 하긴 이미 오래 전 절판이 되었을 테니 어쩔 수 없나보다. 그래서 구입은 포기하고 도서관을 뒤지기 시작했는데 국회도서관을 포함한 서울에서 몇 군데 되지 않는 곳에 간신히 위치하고 있는 책이었다.

 

내가 찾으려던 이 책은 한국 현대사에 관하여 굉장히 중요한 내용을 다룬 책이다. 남, 북 분단의 강화 속에서 비극의 현장을 걸어가게 된 인물들을 해석하다 보면 저절로 숙연해짐을 느낀다. 그래서 찾는 데 더욱 집착이 갔다. 꼭 알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이태호 기자가 쓴 <압록강변의 겨울>은 북한의 최고 지도자 그룹에 있었던 신경완 전 조국통일 민주전선 부국장과의 대담을 통해 6·25전쟁시 납북되었던 남한 지도자들의 자취를 따라간 책이다. 이미 고인이 된 신경완씨는 1997년 북한 대남 총비서 황장엽씨의 망명 이전까지 망명인사로서는 가장 고위층 인사였다.

 

1950년 6월 28일 인민군이 장악한 서울, 서울시 인민위원회 사무실(현 서울시청)에서는 특별한 공작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른바 '모시기 공작', 남한 사회에서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지도자들에 대한 납북이 시작되었다. 모시기의 대상답게 철저하게 예의를 갖췄지만 효과가 없으면 회유, 마지막으로는 강제 납북이 시작되었다.

 

이들은 누구인가. 당시 좌익의 핵심들은 남한단정 이후로 대부분 월북한 상태에서 전쟁이 발발했다. 때문에 서울에 남아있는 지도자 그룹은 대게 한 평생 독립운동을 했던 비타협 민족주의 계열, 좌우합작 세력, 중도파들이었다.

 

이들은 45년 해방 이후로 국제정세의 분단 압박 속에서도 민족대단결을 외치며 북한의 공산주의 그룹과도 손을 맞잡을 필요가 있다고 외친, 어찌 보면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할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왜 그들은 현실에서 배척받을 수밖에 없었고 끝내는 납북을 당했는가. 이러한 질문이 꼬리를 물다 결국 발견한 것이 이 책이었다.

 

김규식, 조소앙, 조완구, 김붕준, 류동열, 최동오,윤기섭, 오하영, 원세훈, 엄항섭 등의 임정요인들과 민족자주연맹 소속들을 비롯해 안재홍, 박열, 백관수, 설민호, 정인보, 이광수, 방응모 등 국회의원 및 정당, 사회단체 인사들이 주 대상이 되었다. 훗날 평가되는 것이지만 이로써 남한의 이승만 정권에게는 큰 위협 세력들이 대부분 사라져버린 것이다. 또한 북한에서는 이들을 통해 북한정권의 정통성을 확대 강화하려는 정치작업을 끊임없이 시도했다. 대개 중간파는 이렇게 역사 속에서 비참한 말로를 그리게 되었다.

 

평생을 고생한 납북 인사들의 대부분은 자신을 신념을 꼿꼿이 지켰으며 지조 있는 자세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를 통해 조직하는 한편, 구체적인 통일론을 제시해나갔다. 그러나 커다란 소용돌이 안에서 이들의 목소리는 너무나 작았다.

 

납북의 과정 속에서 지도자들은 그렇게 한두 명씩 스러져갔다. 민족혁명당을 조직하고 후에 좌우합작위원회의 주석을 역임한 김규식은 그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가고 임정의 김붕준, 국군 창설에 힘쓴 류동열 역시 납북의 과정에서 사망했다. 친일에 앞장선 이광수 역시 1950년 10월 25일 쓸쓸히 객사했으며, 해방 후 조선일보를 복간한 방응모 역시 그 해에 사망했다.

 

전쟁은 많은 것을 정리시켰다. 남한과 북한은 각각 체제를 강화시키는 논리로 반대파에 대한 숙청을 단행했다. 남한은 반대세력이 상당 수 납북되어 자연히 이승만 체제로 확고하게 재편되었고, 북한은 전쟁 패배 및 프락치 죄로 남로당파에 대한 숙청이 시작되었다. 조만식을 비롯한 민족주의자 그룹은 이미 북한 정계에서 의미 없는 존재일 뿐이었다.

 

왜 하필 이런 납북인사들의 행방의 궁금했냐는 스스로의 질문에 대해 답을 찾는다면 이들의 대부분이 '나라의 진정한 독립과 민족의 평화적 통일'을 평생에 걸쳐 주장한 진정한 애국자들이라는 점이다. 분단의 시대 속에 살고 있는 청년으로서 어떤 진로를 좇아야 될지 답이 나올 것 같다.


태그:#압록강변의 겨울, #김규식, #방응모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여유가 생기면 항상 펜을 잡는 자유기고가. 시민단체 흥사단에서 이사로 활동했으며, 최근까지 국회 정무위원장 비서관으로 일했습니다. '근거있는' 소통의 공간을 열기 위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