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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을 해준다니까 오긴 했지만, 내가 이곳에서 뭘 해야 하는지 혹은 뭘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도 컸던 게 사실입니다."

 

전주 남부시장에 예술가들을 거주하게 하고, 그곳에서 작업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남부시장 레지던스 프로그램 '장날-별별씨의 커뮤니티 아트'가 지난 11일 오픈스튜디오 행사를 열고 마무리됐다.

 

'레지던스'라는 단어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또한 유행처럼 그 이름을 걸고 다양한 문화기획이 이뤄지고 있다. 이미 다른 지역에서는 몇 년 전부터 다양한 시도가 있어왔지만, 전북지역에서 공식적으로는 이번이 처음 실행되는 것이어서 주목을 받을 만 했다.

 

전주의 교동아트 창작스튜디오, 군산의 프로젝트 그룹 '동문'과 문화공동체 '감', 장수의 장안문화예술촌 등 도내에서 레지던스란 이름을 사용하고 있는 단체 관계자들이 이날 행사에 참여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프로그램 실행 주체가 되는 이들 또한 레지던스에 대한 개념 정의가 쉽지 않음을 인정하고 있는 것.

 

레지던스는 귀에는 익었지만, 여전히 낯선 단어다. 외국에서처럼 아예 상업적으로 지원의 대가를 요구하거나, 국립현대미술관처럼 공공의 목적으로 지속적으로 실시된다면 몰라도, 특정 단체가 지원을 받아 단발성으로 실시하는 레지던스의 경우 그 시작과 끝을 규정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이번 프로그램을 주최한 사회적 기업 '이음' 또한 우리 지역이 레지던스의 기반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인 점을 감안, 실험적인 레지던스를 다각도로 진행하면서 전북의 현실에 맞는 올바른 방향성을 찾아가는 과정임을 밝히고 있다.

 

이번 남부시장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여한 작가는 총 7명. 정크아트를 하는 윤길현 작가를 제외한다면 나머지는 모두 외부지역 작가다. 남부시장을 외부에 알리는 의미도 있다는 해석이다. 분야도 순수회화가 아닌 그래피티 아트, 스크릿 아트, 퍼포먼스 아트, 설치미술, 정크아트, 미디어 영상 등 상인들과의 접촉을 염두에 둔 활동성 있는 작가들이 선택됐다. 이들에게 한 달 이란 시간이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7명 각자에게는 남부시장 내 빈점포가 하나씩 주어졌고, 그곳에 5월10일부터 6월12일까지 입주하며 자신들의 작업을 진행했다. 이들의 반응은 대체적으로 긍정적이다. "재미있었어요. 아주머니들이 뭐하냐고 묻기도 하고, 그러다 몇몇 분과는 친해지기도 했고요.", "전에도 전주를 여러 번 와 본 적이 있지만, 잠깐 다녀가는 것과 한 달을 머문다는 건 아주 달랐어요. 여기 있다 보니 날마다 생각이 바뀌더라고요.", "우리에게 충분한 사색의 시간이 주어졌다는 것에 감사드립니다." 등등.

 

하지만 그 반대도 있기 마련. "남부시장을 처음 와봤는데 이곳의 정서를 이해하는 데는 한 달이라는 시간도 부족하죠. 재미는 있었지만, 그 느낌을 제 작업으로까지 끌어들일 수는 없었습니다.", "무상으로 장소를 제공해준다니 고마웠죠. 근데 거기서 내가 뭘 해야 할지, 그 기간 안에 뭘 해낼 수 있을지 등의 고민도 많았습니다." 등등. 입주기간이 끝났지만, 당사자들에게조차도 레지던스란 단어는 여전히 낯설어보였다.

 

이날 오픈스튜디오 행사는 레지던스 개념 정립을 위한 세미나, 퓨전음악공연팀 달이앙상블과 비보이 그룹의 축하공연, 입주작가였던 김광철씨의 퍼포먼스, 그리고 뒷풀이까지 이어졌다.

 

입주작가를 대표해 공연을 펼친 퍼포먼스 아티스트 김광철은 총 3작품을 보여줬는데, 북경과 마닐라 등의 국제퍼포먼스아트페스티발을 통해 구미와 유럽, 아시아권에서 호평을 받은 작품들이었다. 그만큼 인지도가 있는 작가였고 손색이 없는 퍼포먼스로 관람객들의 시선을 붙잡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남부시장에 입주한 기간에 만들어진 작품이 아니라는 점에서 한계는 있었다. 물론 차후에 지금의 경험에 근거한 작품이 나온다면 그건 별게의 문제겠지만.

 

한 달이란 시간은 결코 짧지 않지만, 자신의 삶으로 예술을 하는 작가에게 있어 그 시간은 짧을 수밖에 없다. 단발성으로만 그친다면, 작가에게 있어 한 달이나 한 시간이나 비슷한 맥락의 이벤트일 뿐이다. 예술적 감성을 통해 시장 상인과 일반인들을 소통케 하고, 그로인해 남부시장 활성화와 문화예술시장으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해보겠다는 이번 프로그램의 당초 취지가 달성되기 위해서는 좀 더 장기적인 기간설정이 필요해 보인다.

 

또한 입주 작가 혹은 입주를 희망하는 작가들에게 사전에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고, 그들과 의 논의과정을 거쳐 세부적으로 구체화 된 지침을 공유하게 한다면 보다 의미 있는 결과물이 도출될 수도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전주일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레지던스, #남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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