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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청동기시대 마을 풍경>(2010.5.4~7.4)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청동기시대 마을 풍경>(2010.5.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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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기시대의 암각화:항아리로 두손을 뻗은 사람/따비로 밭을 가는 사람
 청동기시대의 암각화:항아리로 두손을 뻗은 사람/따비로 밭을 가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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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에서 현재 진행 중인 <청동기시대 마을풍경>(2010.5.4~7.4)은 3000여 년 전 이 땅에 살았던 청동기인들의 '삶과 문화'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볼 수 있는 전시회다. 

청동기시대의 가장 큰 특징은 '농경의 발달'과 '마을 형성'이다. 본격적인 농경생활로 농기구들이 다양하게 만들어지고 농업이 발달, 잉여 농산물이 가능해진다. 이에 따라 음식을 조리하거나 저장하는 등이 더욱 활발해지게 된다.

또한, 농업의 발달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다양한 문화와 풍습이 생겨나게 된다. 이와 동시에 노동력과 수확물을 관리하고 분배하는 계층이 등장하는가 하면, 마을 사람들 간의 갈등을 조정하고 통합으로 이끄는 지배자가 등장하기도 한다.

<청동기시대 마을풍경>은 이와 같은 청동기시대의 특징을 바탕으로 '농경의 발달', '도구의 발달', '마을의 발달', '의례', '갈등과 통합'으로 구성되었다. 제일 먼저 전시된 것은 청동기시대의 발전을 가능케 한 농경생활에 관한 것들이다.

경북 안동 저전리에서 발굴된 벼껍질(왼쪽)과 충남 부여군 송국리에서 발굴한 탄화미
 경북 안동 저전리에서 발굴된 벼껍질(왼쪽)과 충남 부여군 송국리에서 발굴한 탄화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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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부여군 송국리 주거지에서 발견된 탄화미와 경북 안동시 저전리 유적에서 발견된 벼껍질이다. 이 유물들은 청동기시대에 이미 벼농사를 어느 수준으로까지 지었으며 수확이 많아 저장까지 했음을 알려주는 자료들이다.

여주 흔암리에서도 탄화미가 발견되었으며, 울산 검단리 유적에서도 볍씨가 박힌 흔적의 토기가 발견되기도 했다. 이처럼 벼는 여러 차례 발견되었지만 논은 좀처럼 발견되지 않아 그 형태와 규모를 거의 알 수 없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울산 옥현유적을 시작으로 청동기시대 논이 조사되기 시작했다. 논의 형태는 구획식과 계단식으로 구분된다. 두둑이 있는 구획식 논은 울산 무거동 옥현유적이 대표적이며 구획의 면적은 9.9~100까지 다양하다. 계단식 논은 울산 야음동과 논산 마전리유적이 대표적이며, 지형의 경사에 따라 계단모양을 이룬다. 논은 주로 구릉사면 말단부의 계곡에 입지하는데, 그 이유는 물을 이용하기에 유리하고 하천범람의 피해가 적은 곳이기 때문이다. 한편, 논산 마전리유적에서는 논과 함께 나무로 만든 우물이, 대구 동천동유적에서는 돌로 만든 우물이 발견되기도 했다.-전시설명 중에서

그러다가 논이 발견된 것은 1999년, 울산광역시 남구 무거동 옥현유적의 논이다. 이 옥현유적의 논, 일명 '무거동 논'은 아파트 공사 중에 발견되었는데 연구조사 결과 기원전 8~9세기 즉, 청동기시대에 사용되었던 논으로 확인됐다.

이 논의 한 배미 면적은 1~3평 정도로 한사람이 겨우 작업할 수 있는 공간이다. 그 자리에서 손만 뻗으면 작업할 수 있는 정도란다. 사실 어떤 건축물이 아닌 자연 상태의 이런 유적이 사라지지 않고 3000년 동안 존재할 수 있음도, 이처럼 그 사실들을 밝혀냄도 놀랍다.

옥현 유적의 이 무거동 논은 발견과 동시에 현재까지 동아시아 최초의 논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 논이 발견되면서 '벼농사 일본 기원설'이나 한반도를 거치지 않고 인도와 같은 남방에서 직접 전래되었다는 일본의 주장은 더 이상 가치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청동기 시대 밭농사는 어땠을까? 청동기시대 밭은 진주 대평리유적에서 대규모로 발견된 이래 전국에 걸쳐 계속 발견되고 있단다.

청동기시대의 밭들은 하천 범람원의 자연제방에 입지하는 고랑과 이랑을 갖춘 형태로 오늘날의 밭과 거의 같다고 한다. 그런데 논과 달리 구획되지 않고 계속 연결되어 있어서 마을 사람들이 공동 작업을 하고 그에 따라 분배를 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때 재배되었을 것으로 확인되는 작물들은 밀과 보리, 기장과 조, 콩이다.

경남 산청 옥산리에서 발굴한 청동기시대 시루로 오늘날의 시루와 흡사하다
 경남 산청 옥산리에서 발굴한 청동기시대 시루로 오늘날의 시루와 흡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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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에서는 청동기시대의 논과 밭의 모형을 비롯하여 곡식을 저장했던 창고 모형, 여러 가지의 농기구들, 음식물을 조리하고 저장했던 시루와 절구공이, 저장용 커다란 항아리 등 농경 생활의 발전과 그로 인한 생활 변화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유물들이 전시된다.

농경생활 관련 유물에 이어 전시되는 것은 '의례'에 관한 것이다. 청동기시대의 의례는 크게 생활의례·농경의례·장송의례로 나누어진다. 장송의례, 즉 장례에 관해서는 고인돌 정도로라도 우리에게 많이 알려져 있지만, 생활과 농경의례는 그 존재 자체부터 인식하지 않을만큼 거의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전시 설명에 따르면 청동기인들의 생활 및 농경의례는 주거지 안에서 지내는 것부터 경작하는 논이나 밭, 하천 등에 나가 지내는 것까지 다양하다.

하천가 절벽에 새겨진 암각화나 농경문 청동기, 돼지 등의 형상을 간략하게 형상화한 것으로 농경신에게 뿌리며 풍요를 기원하던 부리형석기, 하천과 우물 등에서도 제사가 행해졌음을 추측하게 하는 토기편과 석기편 등은 생활과 농경의례를 알 수 있는 유물들이다.

선사인들의 무덤 고인돌은 북방식과 남방식으로 분류된다. 이들은 어떻게 다를까? 전시실에서는 그동안 전국 각지에서 발굴된 고인돌 및 청동기시대 무덤들을 통해 당시 사람들의 장례 및 풍습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영상물이 상영되고 있다.

청동기시대 무덤에서 출토된 붉은간토기 및 가지무늬토기
 청동기시대 무덤에서 출토된 붉은간토기 및 가지무늬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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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기시대인들의 문화와 풍습이 새겨진 암각화 관련 영상화면 촬영
 청동기시대인들의 문화와 풍습이 새겨진 암각화 관련 영상화면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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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기시대 마을풍경>에서 상영되는 영상물은 4가지다. 논과 밭, 고인돌과 암각화, 그리고 청동기시대 종합편이다. 영상물을 통해 청동기인들의 삶과 문화를 더욱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제작됐다.

박물관에 갈 때마다 종종 느끼는 것인데, 영상물을 보는 사람들이 그다지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냥 스치고 마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데 이는 큰 손해다. 이처럼 상영되는 영상은 그 전시의 핵심을 일목요연하게 정리, 전시 전체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덧붙이면, 청동기시대 마을의 지배자급 인물에 대한 장송의례는 마을 전체의 행사로 장송의례를 통해 지배자의 지위를 확고히 하는 동시에 마을 전체 공동체 의식을 고취시키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또 어떤 유물들을 만날 수 있을까?

무기 혹은 지휘봉으로 썼을 것으로 추정하는 달모양 별모양 토기
 무기 혹은 지휘봉으로 썼을 것으로 추정하는 달모양 별모양 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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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푸집과 같은 청동기제작도구와 금속배합을 알 수 있는 자료
 거푸집과 같은 청동기제작도구와 금속배합을 알 수 있는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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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을 만드는 도구와 제작을 알 수 있는 자료로 화면 맨 위 일정 굵기가 있는 것이 일종의 옥을 만드는 틀이다.
 옥을 만드는 도구와 제작을 알 수 있는 자료로 화면 맨 위 일정 굵기가 있는 것이 일종의 옥을 만드는 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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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우리에게 청동기시대 대표적인 유물로 널리 알려진 청동검 ▲마을의 일부 계층이나 소유했을 것으로 추정하는 여러형태의 석검 ▲지난해(2009년) 출토된 것으로 이번 전시를 통해 최초로 공개되는 요령식 동검을 비롯한 다양한 형태의 한국식동검 ▲청동기인들의 문화와 풍습을 추정할 수 있는 야러 암각화 ▲지휘봉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하는 달과 별의 모양을 본뜬 도끼 ▲각종 사냥도구들 ▲청동기 도구 제작의 금속 배합과 제작과정을 알 수 있는 자료 ▲곡옥과 관옥 및 옥 제작관련 유물 등이다.

진주 대평리 마을 유적을 바탕으로 청동기인들의 삶의 형태를 추정하여 만든 청동기시대 마을 모형도 눈길을 끈다. 마을 모형에는 환호라는 것이 있는데 일종의 방어시설로 목축과 비슷하다. 오늘날과 유사한 망루도 발견되는데, 청동기 시대에는 거의 매일 외부 침입자와 전쟁을 치룰만큼 전쟁이 일상화 되었었다고 한다.

진주 대평리 유적 모형으로 청동기시대 마을의 형태와 습을 쉽게 해할 수 있다.
 진주 대평리 유적 모형으로 청동기시대 마을의 형태와 습을 쉽게 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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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청동기 시대 사람들의 마을풍경에 관한 전시는 내겐 썩 좋은 자료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배우고 배워왔음에도 대표적인 유물 일부 외에는 그 시대만의 뚜렷한 특징을 거의 몰랐는데 이번 전시를 통해 가닥 지어가며 정리해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이처럼 한 시대만을 주제로 한 전시가 지속적으로 열렸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청동기시대 사람들은 어떤 집에서 어떻게 살았을까? 청동기인들은 어떤 기구들로 어떻게 농사를 지었을까? <청동기시대 마을풍경>은 대략 3000년 전, 이 땅에서 살았던 우리 조상들의 삶과 문화를 마을이라는 사회 기초단위로 정리한 전시회이다. 전시는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1층에서 7월 4일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덧붙이는 글 | ※6월 9일에 다녀왔습니다.



태그:#청동기시대, #농경생활, #암각화, #고인돌,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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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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