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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말했다. 가방을 사야겠다고. 엄마친구 분들께서 자식들이 가방을 사줬다고 자주 자랑을 하니 엄마도 가방 하나 갖고 싶으셨나 보다.

사실 엄마는 비싼 가방, 좋은 가방에 관심이 없으셨다. 내 가방이나 언니 가방도 비싼 브랜드보다는 실용성 있고 디자인이 예쁜 가방이 주를 이룬다. 엄마와 언니, 그리고 나는 서로 가방을 번갈아가며 필요에 따라 쓰는 편이다. 엄마가 그 말을 했을 때 가방을 사줄 수 있는 유일한 '자녀'인 언니는 (나는 아직 소득이 없으니)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다. 게다가 엄마가 애용하시던 가방이 닳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명품에 관심 없는, 남들이 보기엔 특이한(?) 우리 언니도 더 이상 어쩔 수 없었는지 주말에 우리를 백화점으로 데려갔다.

사실 우리는 명품가방을 살 계획으로 백화점에 간 것은 아니었다. 마침 언니가 해외출장을 앞두고 있어서 면세점으로 직행한 것이었다. 휘황찬란한 진열대 위에 사뿐히 앉아 있는 수백 개의 가방들. 여기를 봐도 가방, 저기를 봐도 가방뿐이었다. 백화점 면세점에는 꼭 가방만 파는 것 같았다. 모든 매장에서 가방들이 조명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그러나 예쁜 가방을 구경하는 기쁨도 잠시, 가격은 참 사나웠다. 백만 원? 이백만 원? '대체 동그라미가 몇 개가 붙어 있는 거야?' 직장인의 한 달 월급을 훌쩍 뛰어넘는 가방 가격에 나는 기가 죽었지만, 매장 직원들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그래도 2백만 원을 넘는 가방 앞에서는 나도 모르게 "진짜 비싸네요"라는 말이 자동으로 튀어 나왔다.

가방 명품부럽지 않게 애용하는 내 가방들
▲ 가방 명품부럽지 않게 애용하는 내 가방들
ⓒ 김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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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 본 가방 중(다른 사람이 사준 것 말고)에 가장 비싼 것이 아마 5만 원짜리였을 것이다. 백화점에서 세일할 때 지하1층 매장에서 냅다 질러버린 그 가방을 아직도 요긴하게 잘 쓰고 있다. 면세점에서 본 오십만 원짜리와 디자인이나 가죽 면에서 10배 더 질이 좋거나 10배 더 이쁘다거나 하는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닌데 대체 무엇이 이렇게 큰 차이를 만드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계속 해서 솟아오르는 의구심들을 누르며 나는 그냥 가방 구경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디자인과 모양만 열심히 봤다. 가격이 대수냐. 이런 것도 있는가 보다 하고 열심히 들추어 보는 것이지.

한두 시간이 지났을까. 모든 매장을 다 둘러보았는데 엄마는 마음에 드는 가방이 없다고 하셨다. 디자인이 쏙 마음에 드는 것이 없다는 말씀이신지, 아니면 맘에 드는 '가격' 이 없다는 것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결국 우리는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빈 손'으로 면세점을 나서고 말았다.

21세기의 베블런 효과

얼마 전 친한 내 친구는 100만 원 가량의 명품가방을 하나 샀다. 명품가방의 트레이드 마크도 잘 못 알아보는 나는 깜짝 놀라 '이거 루이비통 아니냐'라고 물었다. 친구는 내게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원래 명품 이런 거 안 좋아하는데, 명품이 오래 쓸 수 있고 나중에 팔아도 돈을 받을 수 있어서 훨씬 이득이야"라고. 들어보면 맞는 말이다. 명품은 구제품이어도 '명품' 대접을 받으니 친구 말대로 디자인에 싫증나면 몇 년 후에 팔 수도 있을 것이다. 친구는 나름 합리적인 이유를 가지고 구매한 듯했다. 그런데 과연 그것이 우리가 그 비싼 명품을 사는 진짜 이유일까?

흔히 명품과 관련해 '베블런 효과'라는 말이 회자되곤 한다. 이는 부유층이 과시욕으로 인해 사치품 및 고가의 제품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는 말로, 미국의 경제학자이자 사회학자인 소스타인 번드 베블런(1857~1929)이 쓴 <유한계급론>에서 유래했다.

그는 상층계급이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기 위한 소비를 하기 때문에 베블런 효과가 생긴다고 보았다. 그런데 베블런이 내 친구나 요즘 한국의 상황을 보면 당황스러워 할지도 모르겠다. 요즘 백화점에서는 고가의 가방뿐 아니라 20대를 겨냥한 '의류'도 어중간한 브랜드는 가격이 저렴하면 잘 안 팔리는 반면 값비싼 브랜드는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간다고 한다. 상층 계급도 아니고 사회적 지위를 과시할 필요도 없는 여대생뿐 아니라 남고생들에게 까지고 명품열풍이 불고 있는 것이다.

사실 브랜드의 인지도나 명성으로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고 싶은 마음은 어떤 시대, 어떤 계급에 속하든 다 마찬가지일 것이다. 특히 베블런이 살았던 1900년대 초반과 지금의 시대적 상황이 다르니 모든 계층에게 이러한 경향이 퍼져있는 것이 이상한 일도 아니다. 찰나의 시간에 '이미지'로 사람을 인식하고 소통하는 요즘 세상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외모나 이미지를 돋보이게 하려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을 해소하는 방식에 있다. 시대는 변했는데 남들과 같은 '명품' 가방을 메고 '명품' 옷을 입어야 내 가치가 높아진다는 발상은 왜 베블런이 살았던 1900년대와 똑같이 머물러 있는지 모르겠다. 오히려 획일화된 디자인의 가방을 '명품'이라는 이유로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더 이냥저냥 해 보일 뿐인데도 말이다.

뉴욕의 거리에서 명품의 도시 뉴욕에서도 당당한 나의 가방
▲ 뉴욕의 거리에서 명품의 도시 뉴욕에서도 당당한 나의 가방
ⓒ 김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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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여대생의 '루저발언'으로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던 지상파 프로그램에서 나를 격분하게 했던 것은 '루저발언'이 아니라 '명품'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 프로그램에서 사회자는 게스트로 출연한 여대생들에게 "명품가방을 가진 사람 손 들어보라"고 했고 대부분의 여학생들이 손을 들었다. 그리고는 왜 한국의 여대생들은 명품을 선호하냐는 등의 질문이 이어졌는데, 같은 여대생으로써 나는 어째서 저런 표본이 방송에 나오고 있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 주위의 친구들은 10명 중 1명이 명품가방을 가지고 있을까 말까인데, TV에서는 10명 중 8명은 족히 된다. 그런 잘못된 표본이 오히려 명품열풍을 부추기는 것이다. 실상은 명품에 관심이 없는 여대생들이 더 많더라도 TV에서 한국의 여대생들이 그러하노라고 보여주게 된다면, '어, 저렇게 많이 가지고 있는데 나는 왜 없는 거야, 우리 부모님은 왜 안사주시는 거야'라고 생각할 사람이 생겨나지 않겠는가. 또 "요새 다들 명품 하나씩 있다던데 넌 왜 없냐"라는 하찮은 소리도 듣게 되지 않겠는가. (실제로 나는 그런 말을 들었다)

우리가 명품이다

나이와 지위에 맞는 브랜드를 선호하는 것을 비판하자는 것이 아니다. 연륜이 있고 능력이 있는 분이 맵시 입게 차려 입는 것도 사회생활에서 중요한 부분이고, 부자들이 고가의 제품을 많이 소비해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부분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 과소비를 해서라도 '명품'을 사야한다는 생각을 하는 젊은이들이나 직장인들이 많다면 그것은 사회적 문제가 된다. 그런 것을 강요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상대적 박탈감을 견디기 힘들게 하는 오늘날의 빈부격차가 그 기저에 자리 잡고 있겠지만, 남들과 같아지려고 할 때 우리의 개성이 빛을 바랜다는 것을 깨달으며 마음을 다잡아야 하지 않을까.

내가 무엇을 입고 메든, 나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로 신이 만든 신 '명품'이기 때문이다. 어떤 장인이 결코 따라올 수도 흉내 낼 수도 없는 명품!! 그 명품의 내면과 외면을 가꾸는 것은 우리 자신에게 무한대의 방법으로 열려 있음을 기억하자! 그리고 당당히 이렇게 말해보자, 내가 명품인데 명품이 왜 필요해?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위민넷 2060다이어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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