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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한명숙 후보 선대위에서 자원봉사로 일을 도왔습니다. 자고로 패자는 말이 없다고 했던가요. 선거 개표 결과를 지켜보면서 하얗게 날밤을 새운 다음날 이런 글을 쓸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한겨레신문>에 실린 '김상곤과 한명숙'이라는 칼럼을 읽고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더군요. 이 칼럼에서 정남기 논설위원은 서울시장 선거 패배의 원인을 한명숙 후보 개인의 경쟁력과 민주당의 선거전략 탓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선거에서 졌기 때문에 이런 지적이 나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할 수 있습니다. 한명숙 후보의 선거운동에 대해 그동안 많은 지적이나 비판이 있었고, 귀담아 들을 만한 것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유권자인 국민들이 아니라 언론에서 이런 지적을 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합니다.

 

투표일인 6월 2일까지도 언론에서 한명숙 후보는 관심 밖이었습니다. 언론에서 기계적 균형을 맞추기 위해 한명숙 후보에 대한 기사를 실었지만, 이미 '패배한 후보'였습니다. 언론에서 그렇게 신봉했던 여론조사 결과에서 한명숙 후보는 오세훈 한나라당 후보에게 적어도 10% 이상, 많게는 20%가 넘게 뒤지고 있었습니다. <한겨레신문>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한명숙 후보를 취재하는 기자들에게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바닥 민심은 다르다'고 설명했지만, 그건 후보 캠프에서 그냥 하는 소리로 치부됐습니다.

 

정남기 논설위원의 지적처럼 한명숙 후보가 TV토론에서 기대만큼 잘하지는 못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선거기간 내내 '정권심판'과 '무상급식'만 앵무새처럼 외쳤을 뿐 자기가 왜 서울시장이 돼야 하는지, 시장으로서의 비전과 목표는 무엇인지, 삶의 질 개선을 위한 대안은 무엇인지 제시하지 못했다"고 단죄하는 것에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MB정부에 휘둘린 언론의 책임은 없는 걸까요?

 

한명숙 후보에 대한 선대위 실무자들의 불만 중에 이런 게 하나 있었습니다. "제발 유세 현장에서 5분 이상 연설을 하지 마십시오." 후보가 한 곳에 너무 오래 있으면 다른 유세 현장으로 가는데 차질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명숙 후보는 마이크를 잡으면 20분에서 30분 정도는 연설을 했습니다.

 

왜 이번 지방선거에서 이명박 정부를 심판해야 하는지, 그리고 자신이 내건 '사람특별시'는 어떤 내용인지, 서울시장이 되면 무엇을 꼭 하고 싶은지 등. 너무 하고 싶은 말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국민들은 한 후보의 정책적 비전에 대해 모를 수 있는데, 국민들의 알권리를 충족시켜야할 언론들은 자신의 의무를 제대로 수행했는지 한번쯤은 자문해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단 한명숙 후보만의 문제의식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번 선거에 나선 많은 후보들이 공감하는 대목일 겁니다.

 

물론 그건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리지 못한 후보나 캠프의 잘못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에게 휘둘린 언론의 책임은 없는 걸까요?

 

13일간의 선거운동이 시작된 첫날, 이명박 정부는 천안함 사건 중간조사 결과라는 것을 발표했습니다. 당일 방송이나 다음날 신문에서 선거와 관련한 기사는 제대로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한 신문은 보이지도 않는 구석에다 상자기사 하나 실은 게 전부였습니다.

 

선거가 실종된 것입니다. 그날 이슈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나기는 했지만, 역사상 언론에서 가장 홀대받은 전국 동시 지방선거로 기록될 것입니다. 후보나 선대위에서 알리고 싶은 것들을 제대로 알릴 수가 없었습니다.

 

사라져버린 '언론의 오만과 무지'란 자기성찰과 반성

 

한명숙 후보 선대위에서 선거 기간 내내 가장 고민스러웠던 부분은 선거 판세와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언론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번 선거는 도저히 이길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선대위 내부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특히, 후보와 함께 유세를 다니는 사람들의 생각은 확고했습니다.

 

"이길 수 있다. 바닥 민심이 너무 좋다."

 

투표일을 불과 이틀 앞두고 이해찬 선대위원장이 선거 판세를 설명하기 위한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었습니다. 이렇게 가다가는 우리 쪽 지지자들이 실망감에 투표를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이해찬 선대위원장이 설명한 판세의 요지는 '선거가 박빙이고, 투표율이 55%를 넘으면 우리가 이긴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거의 기사화되지는 않았습니다. 선거 막판에 한 번 해보는 소리로 치부됐습니다.

 

선거 결과로만 보면, 한명숙 후보 선대위의 판단은 거의 정확했습니다. 이번 서울시장선거의 투표율은 53.9%였습니다. 그리고 0.6% 차이로 석패했습니다. 오후에 젊은 층이 몰렸기 때문에 투표율이 55%까지 갔다면 이길 수 있었을 것입니다.

 

많은 유권자들이 한명숙 후보가 이길 수 있다고 보고 투표하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한나라당 후보가 아닌 범야권 단일후보를 뽑아야 한다는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한명숙 후보가 이길 수 있다고 보았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실제 선거에서 차지하는 의미가 다릅니다.

 

선거에선 흔히 될 만한 후보로 몰린다는 '밴드웨건' 효과를 많이 거론합니다. 언론에서 한명숙 후보가 박빙이었다고 보도했다면, 선거 결과가 어떻게 됐을까요? 선거에서 패한 모든 책임을 언론에 돌리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언론에서 한명숙 후보를 비판하는 칼럼을 읽기 전에 '언론의 오만과 무지'라는 진솔한 자기성찰과 반성부터 읽고 싶었다면 너무 욕심이 과한 건가요?

 

불어난 촛불시민의 물결 외면한 언론

 

 

한명숙 후보 선대위 내에서는 매일 오후 6시에 했던 광화문광장 '촛불유세'가 선거운동전략과 관련해 가장 논란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광화문 유세에 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참여할 것인가에 대해 이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한명숙 후보 선대위는 조직동원력이 거의 '제로'에 가까웠습니다(정남기 논설위원은 "25개 구 가운데 21곳을 휩쓴 민주당이 정작 서울시장을 내지 못했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하는데, 이 부분은 한 마디 툭 던질 게 아니라 정확한 분석이 필요한 대목입니다). 그래서 광화문광장, 그 넓은 공간을 매일 어떻게 채울 것인가에 대한 회의가 존재했습니다.

 

'광장이 텅비면 얼마나 궁색해 보이냐, 그러지 않아도 언론에선 이미 선거에서 진 후보 취급을 하는데' 등의 반론은 나름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광화문광장에서 해야 한다는 논거는 단지 '시민들을 믿고 가야 한다'는 것뿐이었습니다.

 

광화문 유세 첫날, 광장을 매운 1000여 명의 촛불을 든 시민들은 바닥 민심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 옳았음을 보여줬습니다. 그 후 1500여 명, 3000여 명, 5000여 명으로 하루가 다르게 늘어난 '촛불시민'들은 이번 선거에서 한명숙 후보가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줬습니다. 뜨거운 바닥 민심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러나 언론은 이마저도 외면했습니다.

 

국민은, 촛불시민은 정말 위대했습니다

 

보수언론까지도 국민들이 이번 선거를 통해 이명박 정부의 밀어붙이기식 정책 추진에 대한 불만을 터뜨렸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갑작스럽게 방송과 신문의 보도가 달라졌습니다. 특히, 이명박 정부가 민심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질타합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민심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게 만든 장본인은 언론 아닌가요?

 

이명박 정부의 독주와 실정을 비판해온 진보언론까지 도매금으로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진보언론도 이번 선거에서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한 부분이 있는 건 아니었는지 묻고 싶습니다.

 

6·2 지방선거 결과는 많은 변화를 가져올 것 같습니다. 앞으로 많은 분석과 주장, 그리고 아전인수식 해석이 난무하겠지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선거 결과를 보도하면서 "국민은 위대했다"고 쓰는 것 외에도 언론에게 성찰이 필요한 대목이 있다고 봅니다.

 

국민은 위대했습니다. '촛불시민'은 정말 위대했습니다. 그리고 한명숙 후보가 자신들의 후보인 것처럼 선거운동을 도운 민주노동당 관계자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덧붙이는 글 | 안영배 기자는 전 한명숙 서울시장 범야권 단일후보 선대위 공보특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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