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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패배

정세균 민주당 대표와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가 함께했다.
▲ 마지막 유세에 나선 한명숙 후보 정세균 민주당 대표와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가 함께했다.
ⓒ 이래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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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지방선거의 선거운동이 공식적으로 마무리 되는 1일 밤, 동대문의 마지막 유세에서 연설에 나선 한명숙 후보가 광장에 가득 매운 시민들에게 "여러분 우리는 이미 이겼습니다"라며 주먹을 불끈 쥐자 군중들은 "이겼다, 이겼다!"를 함께 외쳤습니다. 개표결과 0.7%p 간발의 차이로 당선되지 못했지만 지방선거를 앞두고 전개된 정국을 회상해본다면 한명숙 후보를 위시한 야당 후보들은 뚜껑을 열기 전에 이미 이겨 있었던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이번 지방선거를 역대 어떤 선거보다 비열하고 치졸했던 관건선거라고 규정하고 싶습니다. 1980년 5공 헌법 개헌 찬반 투표를 시작으로 30년간의 선거 경험에서 군부독재 시절 군에서 부재자 투표를 했던 것을 제외하고 어떤 선거에서도 이번 선거처럼 편파적이며 노골적인 관건 선거를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한명숙 전 총리가 유력한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기 시작하자 검찰은 한전 사장 인사개입 혐의로 한 후보를 법정에 세웠을 뿐 아니라 확인되지 않은 피의 사실을 수시로 언론에 유포하여 한 후보의 도덕성에 흠집을 내는 데 치중하였습니다. 심지어는 무죄 평결이 예상되는 1심 공판 일을 하루 앞둔 시점에서 또 다른 불법자금 혐의에 대한 수사에 착수하는 치졸한 작태까지 서슴지 않았습니다.

예비후보 등록 기간에 선관위는 4대강 반대나 세종시법 개정 등에서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시민단체들의 통상적인 사회 활동조차도 선거법에 위반한다며 공공연히 제제를 가한 반면, 정부 여당의 정책을 홍보하는 집회나 광고물에 대한 규제는 애써 외면하여 편파시비를 불러일으키기도 했고,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 후보의 공보물 발송을 고의로 누락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공영 방송 KBS의 편파적인 후보자 초청 토론회 논란 그리고 언론의 선거전에 대한 편파 보도와 드러난 선거 결과와 비교해 볼 때 확연히 조작을 의심해 볼 수밖에 없는 선거 판세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 발표 그리고 천안함 침몰이 몰고 온 북풍까지 야당이 상대해야 할 적은 너무 많았습니다.

야권은 정부 여당, 검찰과 언론, 심지어는 공정한 선거를 관리해야 하는 선관위까지 상대해야 하는 불리한 상황에서 16개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9곳을 승리했을 뿐 아니라 서울시장 선거에서도 사실상 승리했습니다. 마지막 여론조사가 공표될 때까지도 두 자리 수 이상 격차가 벌어졌다고 보도됐었던 서울시장 선거는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0.5%차 초박빙 접전이었습니다.

이런 결과를 놓고 보니 지난 5월 27일 광화문 광장 한명숙 후보 유세장에서 언론노조 대표가 "이 정권이 언론을 장악하여 편파보도와 여론 조작을 서슴지 않고 있다"던 연설 내용이 모두 사실이었음을 실감했다고 할까요.

깨어있는 시민이 민주주의를 지킨다

젊은층의 투표를 독려하기 위해 거리로 나선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 젊은층의 투표를 독려하기 위해 거리로 나선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 이래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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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 인근에서 있었던 마지막 유세장의 분위기는 흡사 축제를 방불케 했다. 참석자들은 "이겼다!!"를 외쳤다.
▲ 마지막 유세장 동대문 인근에서 있었던 마지막 유세장의 분위기는 흡사 축제를 방불케 했다. 참석자들은 "이겼다!!"를 외쳤다.
ⓒ 이래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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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정권 출범 이후, 피부로 실감할 수 있는 민주주의의 후퇴를 경험하면서 지방선거에 무엇인가 작은 힘이라도 기여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몇 몇 사람이 젊은층을 투표장으로 이끌어내 투표율을 높이는 데 노력을 기울이기로 의기투합하여 대학가와 젊은 층이 밀집한 지역을 중심으로 선거 참여 캠페인을 전개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들이 우리들만은 아니었습니다.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걱정하는 많은 시민들이 장소와 시간을 불문하고 청년층의 투표를 독려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대학가에서, 거리에서 그리고 야당 후보의 유세장에서 만난 이들은 처음 만나는 사이임에도 마치 오래 전부터 알고지냈던 것처럼 소통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선거의 진정한 승리자는 아무런 사심 없이 평화와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스스로 거리로 나선 이런 행동하는 양심들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한편, 이번 선거 결과는 어떤 권력도 민심을 이길 수 없다는 지극히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번 일깨워 주었습니다. 하지만 이제까지의 선거가 모두 그러하진 않았습니다. 고질적인 지역 패권주의는 선거철이면 늘 기승을 부렸고 이번 선거에도 그 폐해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번 선거에서 희망적인 부분이 있었습니다.  정치권에서는 MB폭정에 대한 반발로 야권 연대가 형성되었고 민주주의와 평화를 사랑하는 시민들이 자신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 입니다. 이번 선거는 정치권과 유권자가 민주주의의 가치 수호라는 대승적 차원에서 서로 협력하여 나름대로의 성과를 거두게 된 것 입니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경직된 진보와 유연한 진보?

거의 모든 유세장에서 이정희의원은 마치 자기 선거처럼 열성적으로 한명숙 지지를 호소했다.
▲ 이정희의원 거의 모든 유세장에서 이정희의원은 마치 자기 선거처럼 열성적으로 한명숙 지지를 호소했다.
ⓒ 이래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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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합정 유세연설에서 "대통령 종자를 잘못심어 민주주의 농사를 망쳤다."고 하여 큰 박수를 받았다.
▲ 강기갑 대표 그는 합정 유세연설에서 "대통령 종자를 잘못심어 민주주의 농사를 망쳤다."고 하여 큰 박수를 받았다.
ⓒ 이래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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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왕에 힘을 합친다는 말이 나왔으니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에 대한 얘기를 빼 놓을 수 없습니다.

이번 선거전을 치루면서 크게 감명 받은 것 중에 하나가 민주노동당의 역할이었습니다. 사실 민주노동당이 야권 단일 후보에 합류하더라도 야당 후보의 당선을 위해 이렇게 헌신적으로 봉사할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거의 한명숙 후보와 같은 일정을 소화하며 가는 곳곳 마다 한반도 평화 정착과 민주주의 회복 그리고 정권 심판을 외쳤던 이정희 의원의 열정과 혼신은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시민들의 가슴 속에 오래도록 남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농민 정치인 강기갑 대표 역시 "지난 대선 농사에서 대통령 종자를 잘못 심어서 민주주의 농사를 망쳤다"는 식으로 대중의 귀에 쏙쏙 들어오는 연설로 큰 감동과 카타르시스를 선사해 주었습니다.

서울시장선거 개표 결과가 0.7%차이의 석패로 나오게 되니 자연 진보신당의 노회찬 후보의 책임론이 거론되며 그에게 많은 비난이 쏟아지는 것 같습니다. 그가 득표한 3.3%는 단지 민주당 지지자뿐 아니라 MB 폭정에 제동을 걸기를 바라는 수많은 민주시민의 입장에서 너무 아쉬운 수치입니다. 진보신당 측에서 어떤 이유를 대더라도 노 후보의 완주가 오세훈의 재선에 일등공신이 된 것이 사실이므로 노회찬 후보와 진보신당은 설사 그들 나름대로의 억울함이있더라도 여론의 따가운 질책과 비난을 감내해야만 할 것입니다.

정확한 기억인지 모르겠지만 애초에 이들이 민주노동당과 결별하게 된 이유가 '설득력 있는 진보, 유연한 진보'를 추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이번 야권 단일화 협상 테이블에 나선 진보신당은 설득력이 있지도 유연하지도 않았습니다. 지지율 3%의 정당이 수도권 광역 후보 중 하나를 할애해 달라는 조건을 내세운 것은 협상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협상을 깨기 위한 딴지걸기로 비쳐졌습니다.

서울시장 선거뿐이 아닙니다. 민주노동당 후보가 나름대로 선전한 울산시장 선거에서도 진보신당이 단일화로 힘을 실어주었다면 보다 의미 있는 성과를 낼 수도 있었다는 아쉬움을 남깁니다. 그런데 진보신당의 이런 태도가 이제까지 그들이 주장해 왔던대로 민주노동당은 경직된 진보이고 자신들이 유연한 진보라서 홀로 마이웨이를 걷게 된 것인지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이번 지방선거가 민심의 승리로 일단락됐지만 완전한 승리는 아닙니다. 가장 상징성이 큰 서울시장을 거의 손에 잡았다가 놓쳤고 우리는 이 실패(실패라고 해서 정말 미안합니다)에 대해 철저하게 검증하고 복기해 봐야만 합니다. 우리는 그 동안 승리에 도취한 세력의 자만이 어떤 결과를 낳는 다는 것을 너무도 많이 경험해 왔으니까요.

선거 결과가 권력의 폭주에 나름대로 제동을 걸 수 있는 성과를 내긴 했지만 기쁘지는 않습니다. 다만, 어제와 달라진 것이 있다면 작으나마 내일에 대한 희망의 불씨가 지펴졌다는 것입니다. 대적해야할 상대가 아무리 견고하고 거대하더라도 깨어있는 시민과 평화와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모든 정파가 사를 버리고 대의로 뭉친다면 반드시 이길 수 있다는 교훈을 남긴 선거입니다. 6.2지방선거가 우리에게 남긴 가장 큰 유산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과 한겨레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6.2지방선거 결과, #시민의식, #한명숙, #이정희, #노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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