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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년째 만리동 고개 언덕배기 도로변에 살고 있다.

 

주인집 할머니는 3층에, 나와 비슷한 형편의 세입자들은 지하 또는 반지하에 족히 5가구는 살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세입자들의 모두를 본 적은 없다. 다만 우편함에 쌓이는 공과금과 독촉물을 보며 이들의 삶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는 소시민들이구나 하는 추측을 할 뿐이다.

 

선거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지방 출장을 다녀오면서 두툼한 후보자 공보물이 우편함에 꽂혀 있는 발견했다. 몇 개의 공보물은 팽개쳐 있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봉투를 뜯고, 먼저 투표장소를 확인했다. 만리경로당? 약도를 대충 살펴보니, 그야말로 "略圖"로 그러져 있었다.

 

인터넷도 검색하고 내가 그동안 다녔던 우리 동네의 개략적인 거리 감각을 동원해도 도대체 감이 오질 않았다(참고로 우리집 근처에는 중림동사무소, 손기정 공원이 있다). 어쨌든, 다음날 약 1시간 동안 후보자 공약집을 숙독하고 투표소로 향했다.

 

일단, 중림동사무소를 기점잡아 걸어올라 갔다. 가는 길에 투표소 표지판이 들어왔다. 내 투표소인가? 확실하게 하기 위해 '만리경로당'이라 했으니 노인분들은 알 수 있겠다 싶어, 지나가는 어르신께 물었다. 역시 나의 예상이 맞았다. 일단 윗쪽으로 한참 올라가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집은 도로변에 있기 때문에 많이 올라가야 한다는 자체가 곤혹스러웠다. 아니, 바로 옆, 손기정공원에서 하면 안 되나? 어쨌든, 조금 올라가니 골목이 나왔다. 다시 주변을 기웃거려 사람을 찾아 물었다. 계단을 타고 쭉 더 올라가라고 했다. 날씨는 약간 더웠다. 약간 더운 날씨에 씩씩 거리며 계단 30여 개를 오르니 정말 하늘 아래 투표소가 나왔다. 

 

"그러니까 투표하지 말라니까!!"

 

이해가 안 되는 투표소 위치에 대해 나는 분노하지 않았다. 투표를 하고 내려오는 길에 저절로 중얼거렸다.

 

"그런다고 투표 안 할 것 같아?"

 

대문을 들어서자, 정말 2년 째 살면서 말을 섞으지 않았던 이웃에게 처음으로 말을 던졌다.

 

"투표하셨어요?"

"네. 저두 1년째 여기 살지만 산꼭대기 투표소는 처음입니다."

"투표를 하라는 건지, 하지 말라는 건지..."

  

나는 밤새도록 개표 상황을 지켜봤다. 하늘 아래 투표소에서 선택은 다행히도 나와 같았다. 이웃의 푸념도 나와 같은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태그:#이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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