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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전통의 색깔. 막걸리.
 술, 전통의 색깔. 막걸리.
ⓒ 예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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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술을 처음 마신 것은 아주 어렸을 때였다. 아마 두 세살 때였을 수도 있다. 컵에 있는 술을 모르고 벌컥 마셨다가 해롱대다 쓰러져 잤다는 고모의 증언이다.

대여섯 살 즈음에 남겨놓은 맥주병을 따서 벌컥 마셔버리고 동생과 싸운 것이 기억난다. 모아놓은 양주 샘플들을 비우고 몰래 보리차를 채워서 뚜껑을 잠가놓고 시치미를 떼던 일도 생각난다.

무엇보다도 나에게 추억이 깊은 술은 산행 후 마시던 한 잔 막걸리였다. 아버지는 항상 당신이 막걸리 심부름하다가 몰래 홀짝거리고 비틀거리며 집에 왔다는 이야기를 하시곤 했다.

그런 아버지는 기회가 되면 두 아들과 함께 술 마시는 것을 즐거움으로 여기는 것이다. 물론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이었다. 명절 때와 등산 후엔 두 아들과 술을 나누는 것을 즐거움으로 생각하셨고 나와 동생 또한 즐겼다.

어릴 때 아버지 친구 차에 끼어 타고 주말이면 산에 갔는데 산에 올랐다 내려와서 파전에 동동주를 마시는 시간이 그렇게 기다려졌다. 막걸리는 포천의 이동막걸리가 가장 맛이 좋았다. 아니, 좋았다고 생각한다. 하도 마실 때마다 "최고"를 연발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각인이 되었을 것이다. 지금은 오히려 그때의 맛이 아닌 듯 느껴지는데 취향이 변했거나 만드는 이들의 공정과 원료가 바뀌었거나 한 것 같다.

김연아를 제치고 모 연구소 발표 히트상품에 당당히 1위를 차지한 막걸리. 예약판매로 매년 성황인 보졸레누보에 대항한 '막걸리누보(햅쌀막걸리)'가 이겼다는 신문의 기사를 접하고 작은 기대감이 생겼다. 점점 인기가 있어지면 소주나 맥주를 구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나 막걸리도 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최근까지 이어져 온 막걸리 열풍은 서울과 같은 도심에도 근사한 와인바와 같은 분위기의 막걸리바를 낳고, 전주 삼천동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막걸리 골목으로 급부상했다.

막걸리가 상하지 않는 겨울철엔 근동의 막걸리 주조장에서 말통으로 막걸리를 떼어다가 조금씩 마신다. 동네 이웃들과 나누어도 좋고 부부가 식사와 곁들여 한잔씩 마셔도 그만이다. 부드럽고 세지 않아서 여자들도 편안하게 마실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 은근하게 오르는 취기가 흥을 돋아 술자리의 즐거움을 경지에 오르게 한다. 많이 마셔야하는 맥주나 금방 취하는 소주와 다르게 풍부한 미감과 색감, 향을 지닌 전통주 막걸리.

흔히 탁주라 하기도 하는데 투명하지 않다는 뜻의 한자어이고 청주의 상대적 표현이다. 막걸리는 '막 걸렀다'는 뜻의 우리말이다. 막걸리라고 부르면 무방하며 동동주는 술을 빚을 때 거칠게 빚은 술을 뜻한다. 이때 쌀알이 동동 뜨기도 하기 때문에 동동주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런 막걸리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누룩과 고두밥을 물과 섞어 발효를 시키면 술이 탄생한다. 누룩은 보통 밀로 만들며 쌀 소비를 위한 정부시책과 쌀 100%의 표현에 맞추기 위해 쌀로 만들기도 한다. 일본의 술이 쌀로 만든 누룩을 사용하기 때문에 한국의 술이 가진 정체성을 위해서라도 밀로 만드는 누룩의 유지를 고려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쌀을 쪄서 고두밥을 만들고 이것을 누룩을 부셔서 섞어 치댄다. 풀처럼 곤죽이 되면 물과 섞어 항아리에 넣어 발효시키는 것이다. 이 일반적인 과정은 거의 같다. 술맛이 달라지는 것은 밑술인 누룩의 발효과정이나 환경의 차이, 고두밥 원료의 차이와 누룩과의 비율, 물의 비율과 발효과정의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막걸리는 식사를 대신할 만큼 풍부한 영양소가 가득하고, 많이 마셔도 살이 찌지 않는다. 첨가물에 따라 여러 약성을 띠게 된다. 콩, 오미자, 산수유, 오디 등을 첨가해서 다양한 맛과 색을 낼 수 있으며 건강도 챙길 수 있는 술이 막걸리다.

오늘 막걸리를 한잔하기 전에 좀 더 우리 술에 대한 지식을 가진다면 술맛도 풍요로워 질것이 뻔하다. 안다는 것은 즐길 수 있는 준비가 되었다는 것과 마찬가지니 말이다. 오늘, 투표 후 기분좋게 막걸리 한잔, 어떨까.

허시명의 <막걸리 넌 누구냐>는 전통과 현대의 필요가 만나 어떻게 조화되어 미래를 바라보는지 '우리 술'의 관점을 다각도로 분석한 책이다. 더불어 각 장마다 풍부한 제조비법(?)이 소개되어 있어 흉내 내어 빚는 나만의 막걸리를 시도해봄직하다.

덧붙이는 글 | 막걸리, 넌 누구냐/ 허시명 지음/ 예담/ 13,000원



막걸리, 넌 누구냐? - 색깔 있는 술, 막걸리의 모든 것

허시명 지음, 예담(2010)


태그:#막걸리, #동동주, #탁주, #막걸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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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데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는데로 살기 위해 산골마을에 정착중입니다.이제 슬슬 삶의 즐거움을 느끼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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