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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오늘 11시 30분에 교장선생님을 만나기로 했습니다. 여의도에서 10시 30분에 출발했는데 차가 엄청 밀려 약속 시간에 도착하기 어려울 것 같았습니다. 교통법규를 제대로 지키면 여러분과 약속한 시간을 지키기 어렵게 됩니다. 두 가지 방법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요?"

개인적 약속을 위해 벌금을 감수하면서 법을 어길 것인가. 아니면 법을 준수하기 위해 개인적 약속을 어길 것인가. 대통령 후보 시절이던 2002년 7월, 노무현 전 대통령은 배명중학교 일일교사 수업에서 자신의 지각을 토론 주제로 삼아 학생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이 경우라면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그리고 사람들은 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까? 만약 어느 쪽이 옳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살다보면 누구나 이렇게 두 가지의 선택을 놓고 도덕적 딜레마를 경험할 때가 있다. <정의란 무엇인가>는 그런 상황에서 어떤 쪽을 선택하는 것이 더 '옳은'지를 깊숙하게 다룬 책이다. 이 책에서는 '자유', '평등', '이익 추구' 등 현재 한국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기본 원리를 되짚어보며 시민들이 도덕적 딜레마를 겪는 이유를 설명하고 논리적으로 적당한 해결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정의란 무엇인가>
 <정의란 무엇인가>
ⓒ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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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에서 매년 1000명이 듣는 강의 책으로

'정의'는 다소 애매한 단어다. 국어사전에서는 '정의'를 '진리에 맞는 올바른 도리'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사실 설명에 동원되고 있는 '진리'나 '올바른'은 때와 상황에 따라 의미가 바뀔 수 있는 낱말들이다. 그래서 정의의 내용 역시 때와 상황, 사람에 따라 변하게 된다. 정의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이유다.

그래서일까. <정의란 무엇인가>는 그 이름처럼 정의가 무엇인지 탐구하는 데 400쪽의 분량을 아낌없이 쓰고 있는 책이지만 정의가 명확히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말을 아낀다. 그 대신 이 책은 많은 부분에서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정의와 도덕성, 신념에 대해 생각하도록 유도하고 있으며 그때마다 당장 활용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조리된 철학을 생각의 도구로 지급한다. 아리스토텔레스와 칸트, 제레미 벤담, 존 스튜어트 밀, 존 롤스 등의 정치 철학자들은 매 장마다 적당한 간격으로 배치되어 있다.

'자유 사회의 시민은 타인에게 어떤 의무를 지는가?', '정부는 부자에게 세금을 부과해 가난한 사람을 도와야 하는가?', '자유 시장은 공정한가?', '도덕적으로 살인이 허용되는 때도 있는가?', '개인의 권리와 공적인 이익은 항상 상충하나?'······.

무엇 하나 명쾌하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이 책을 펴면 차근차근 쏟아진다.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다루고 있는 질문들은 하나같이 선뜻 답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정답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가 고대부터 근대를 거쳐 어떤 사상들의 영향을 받아 지금의 모습으로 구성된 것인지 깊게 이해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비교적 이해가 쉽다'는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쉽지 않은 주제를 다뤘다는 점에서 더욱 부각된다. 저자는 매 장마다 서로 다른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했던 실제 사건들을 예로 들고, 서로 다른 이상이 충돌할 때 그들이 주장하는 정의에는 어떤 정당성이 있고 어떤 약점이 있는지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정의란 무엇인가>가 비슷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다른 책들에 비해 쉽게 느껴지고 유독 눈에 들어오는 사례들로 구성돼 있는 이유는 이 책의 내용이 실제 토론을 통해 오랜 시간동안 다듬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책은 하버드 대학에서 매년 1000명 이상의 학생이 수강하는 강의인 <Justice>의 대표적인 내용들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저자인 마이클 샌델은 하버드 대학 교수로 정의론 분야의 세계적 학자이자 공동체주의 이론의 대표적인 이론가로 꼽히고 있다. 

토론으로 알아가는 정의

샌델이 <정의란 무엇인가>를 통해 전달하고 싶은 바는 간명하다. 정의란 여러 사람이 모여서 토론하는 과정에서만 얻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설득하기 위해 아리스토텔레스부터 20세기 존 롤스에 이르기까지 저명한 정치 철학자들이 정의에 대한 연구에서 사용했던 논리들을 길게 재현한다. 

고대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정의는 곧 미덕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란 마땅히 받아야 하는 것을 주는 것"이라고 했는데 이는 사회적으로 정의에 대한 '모범답안'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가장 바람직한 삶의 방식을 고민해야만 정의에 다다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근·현대 정치 철학자들은 개인이 자유롭게 각자 자신에게 좋은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사회를 정의로운 사회로 보았다. 고대 철학에서 정의는 곧 미덕이지만 근·현대 철학에서 정의는 자유 그 자체인 셈이다.

재미있는 것은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에게서는 개인의 자유가 강조되는 정의와 도덕적인 미덕이 강조되는 정의가 공통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대학의 농어촌 우대 전형의 비중을 늘리는 것을 비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당연히 비중을 늘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어떤 사람은 낙태를 개인의 권리라고 주장하지만 어떤 사람은 낙태는 살인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한다.

우리 시대의 정의란 개인적인 성찰과 자신이 몸담고 있는 공동체의 생각을 모두 고려해야만 알 수 있다는 얘기다. 책 속에서 샌델은 질문과 대답, 재질문이 급박하게 이어지는 구성을 통해 독자들에게 정의에 대한 자기 생각을 다듬고 다른 사람과 토론해 적극적으로 소통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투표가 어렵다면 이 책 어떨까

정의로운 사회는 단순히 공리를 극대화하거나 선택의 자유를 확보하는 것만으로는 만들 수 없다. 좋은 삶의 의미를 함께 고민하고, 으레 생기게 마련인 이견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문화를 가꾸어야 한다.

하나의 원칙이나 절차가 있어서, 그에 따라 소득·권력·기회를 정당하게 분배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런 원칙을 찾을 수만 있다면, 좋은 삶을 토론하는 과정에서 생기게 마련인 논란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논란을 피하기란 불가능하다. 정의에는 어쩔 수 없이 판단이 끼어든다. 어떤 논란을 벌이든, 정의는 영광과 미덕, 자부심과 인정에 대립하는 여러 개념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정의는 올바른 분배만의 문제는 아니다. 올바른 가치 측정의 문제이기도 하다.

샌델은 10개의 장 중 마지막 주제로 '공동선'을 다뤘다. 그는 다원화된 사회에서 의견이 다른 사람들이 모두 참여해서 열심히 얘기를 나누다 보면 각계각층의 목소리가 반영된 공동의 선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희망하고 있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사회 구성원들이 정의를 추구하는 것은 더 나은 정치의 밑거름으로 기능하는 셈이다.

공동체주의 이론가인 그의 주장을 우리 현실, 우리 정치에 그대로 대입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 그러나 사회 속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의 좌표가 어디쯤 있는 건지, 왜 나는 어떤 문제를 그렇게 판단하는지 되짚어보고 싶은 이에게는 유용한 도구가 될 것으로 보인다. 6월 2일 지방선거에서 내게 맞는 후보를 고르기가 도무지 어려웠던 경험이 있다면 이 책을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 자기 생각을 가지는 데 훌륭한 교과서가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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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kg. '밥값'하는 기자가 되기위해 오늘도 몸무게를 잽니다. 살찌지 않는 기자가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