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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시>로 제63회 칸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한 이창동(56) 감독과 주연배우 윤정희(66)가 23일 프랑스 칸 뤼미에르 극장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취재진에 손을 흔들고 있다.
 영화 <시>로 제63회 칸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한 이창동(56) 감독과 주연배우 윤정희(66)가 23일 프랑스 칸 뤼미에르 극장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취재진에 손을 흔들고 있다.
ⓒ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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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다시피 이창동은 본래 소설가다. 글쟁이 출신답게 그의 작품은 영화라기보다는 한편의 소설을 읽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게 한다. 이번 작품(영화 <시>)도 예외는 아니어서, 진정 영화적 문법을 즐기는 이들이라면 아무래도 마땅찮은 느낌이 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와 소설이라는 서로 다른 장르의 미덕을 충분히 구분하지 못한다는 한계를 감안하더라도, <시>는 대단한 작품이다. 나는 영화가 끝난 뒤에도 한참동안 자리를 뜰 수 없었다. 감독이 나에게 던진 화두와 끝없이 흐르던 눈물이 설혹 아무런 상관이 없다 할지라도, 도저히 그 자리를 쉽사리 박차고 일어날 수 없었다.

돌이켜보면 그의 초기 작품들은 현실의 구조에 종속된 인간의 고통을 다룬 리얼리스트 박광수(이창동은 처음에 박광수의 영화작업을 도와주며 감독수업을 하였다)의 완성도 높은 아류작이었다(박광수의 <그들도 우리처럼>과 이창동의 <박하사탕>을 비교해보라).

그러나 이제 그는, 현실에서 고통 받는 인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리얼리즘의 기반위에서 용서와 구원, 이해와 같은 인간 내면의 성찰적인 화두들을 원숙하게 덧입히고 있다. 

확실히 이창동은 진화하고 있다. 그의 영화적 리얼리즘은 <시>에 의해서 거의 완성되었다. <초록물고기>나 <박하사탕> 그리고 <오아시스>도 훌륭했지만, <밀양>이 보여준 용서와 구원에 대한 지극히 인간적인 성찰을 따라가지는 못했다. 그런데 <시>는 밀양보다 더 훌륭하다. <밀양>이 용서하고 싶은 사람의 내면을 그린 작품이라면, <시>는 용서받고 싶어 하는 사람의 고통을 그렸다. (내가 볼 때) 후자가 전자보다 더욱 어렵다.

영화 <시>, 그리고 영화감독 이창동의 진화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의 한 장면.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의 한 장면.
ⓒ 파인하우스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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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다시피 칸영화제는 <시>에게 각본상을 선물했다. 평소 이창동의 영화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3대 영화제에서 아직까지 최고 작품상을 타지 못했던 속물적 아쉬움을 이 영화가 풀어주리라 믿었다. 그러나 각본상이라는 '아쉬운' 결과가 나와서 약간은 속상할 수밖에 없었다. 영화제의 상이 예술의 세계를 측정하는 바로미터가 될 수는 없겠으나, 그래도 1등주의의 피식민자인 나 같은 이들에게, '칸'의 결정은 아무래도 아쉬웠다.

그런데 이런 결과에 대해 나 같은 사람들과는 다른 종류의 '아쉬움'을 느끼는 이들이 있는것 같다. 한 언론에 따르면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광부) 장관이 "각본상은 작품상이나 연기상에 비해 순위에서 밀리는 것"이라며 "(칸 영화제 심사위원을 맡았던) 이창동 감독에 대한 예의 차원에서 준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물론 문광부는 이를 부인했다. 오히려 유장관이 "<시>가 황금종려상을 수상하지 못한 것에 대해 여러 차례 아쉬움을 표명하였고 '아니면 윤정희씨가 여우주연상을 받았으면 좋았는데'…"라고 말했다고 한다.

어떤 것이 진실인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보기엔 아마도 둘 다 사실일 것 같다. - 물론, 나의 이러한 판단이 틀린 것일 수도 있다. 말 한 번 잘못하면 명예훼손에 걸리는 무서운 세상에서, 괜한 확신은 피하고 싶다. - 하지만, 유인촌 장관의 상반된 언사가 모두 사실이라는 추정은, 여러 가지 정황증거로 볼 때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영화인'에서 '고급 정치관료'로 진화한 유인촌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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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정부 산하기관인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마스터영화 제작지원사업 심사위원 중 한 명은 세계 최고 권의의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은 <시>에 대해 "시나리오가 각본이 아니라 소설 같은 형식"이라며 0점을 주었다고 한다. 바로 그것이, "특수매직으로 적힌 1번" 혹은 "북한 아니면 누가 우리 잠수함을 쏘겠는가!" 등의 정황증거에 비해, 더 개연성 있는 것이지 않겠는가?  

유인촌 장관은 많은 이들이 무시하는 것처럼 예술적 안목이 부족한 사람이 절대 아니다. 그는 대학원까지 다니며 정식으로 연극·영화학을 연구했고, 중앙대학교 예술대 교수, 같은 대학 아트센터 소장 등을 역임한 인물이다. 또한 전 시대 최고의 연기파 배우이기도 했다. 일례로 임권택 감독의 <연산일기>에서 보여준 그의 연기는, 지금도 역대 연산군 역중 단연 최고로 평가받고 있다. 다시 말하면, 영화에 대해 이론적·실제적 안목을 (그가) 충분히 갖추고 있다는 뜻이다. 

나는 이점에서, '영화인 유인촌'이 '정치인 유인촌'으로 완전히 진화하게 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마도 영화인(예술가적 개인)으로서는 <시>의 작품성을 높이 평가하되, 장관(정치관료적 개인)으로서는 마음에 들지 않는 다는 뜻일 것이다.

그가 보기에 <시>는 불순한 정치·사회적 파장을 일으킬 위험이 있는 작품이다. 아무리 예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할지라도, 자신의 정치적 입장과는 다른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면, 이는 폄하되어야 하고 진압되어야 한다는 신념을 그는 지니고 있는 듯하다. 이제 그는 '영화인'에서 어엿한 '고급 정치관료'로서 의식의 진화를 이룩해 낸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메시지 "시는 죽었다"

작년 이맘 때쯤 노무현은 우리 곁을 떠났다. 바보 노무현에 대한 인간적인 성찰을, 그의 친구인 이창동이 <시>를 통해 (중의적으로) 보여주었다면 지나친 확장일까? <시>는 용서, 순수함, 성찰 등의 내면적 주제들을 우리에게 던져주는 동시에, 저 세상으로 간 어느 '바보'에 대한 '헌정'이기도 하다. 이 영화를 통해, 비로소 '정치인 노무현'은 '인간 노무현'으로 우리곁에 진화하게 되었다.

<시>에 나오는 인물들의 상당수는 지극히 현실적인 속물들이다. 그들은 현실적 조건이라는 핑계로 용서, 성찰, 반성과 같은 '순수 이성'을 완전히 망각한다. 현실의 곤궁함과 가족에 대한 책임감, 개인적 죄책감 등이 뒤엉킨 상황에서 시를 통해 자신의 내면을 순수하게 성찰하고자 했던 주인공(양미자, 윤정희 분)의 고통은, 속물인 주변인들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영화에서 나오는 "시는 죽었다"라는 어느 술 취한 젊은 시인의 주정은,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메시지일지도 모른다. 죽어버린 시의 세계에서, 진정어린 그 무언가를 쓰고 싶었던 양미자는 괴로워한다. 이런 척박한 세상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한(혹은 마감할) 여중생(혹은 주인공, 혹은 어느 바보)에게, 그녀는 가슴 시린 '시'를 헌정한다.

그곳은 어떤가요 얼마나 적막하나요
저녁이면 여전히 노을이 지고
숲으로 가는 새들의 노래소리 들리나요
차마 부치지 못한 편지 당신이 받아볼 수 있나요
하지 못한 고백 전할 수 있나요
시간은 흐르고 장미는 시들까요

이제 작별을 할 시간
머물고 가는 바람처럼 그림자처럼
오지 않던 약속도 끝내 비밀이었던 사랑도
서러운 내 발목에 입 맞추는 풀잎 하나

이제 어둠이 오면 다시 촛불이 켜질까요
나는 기도합니다
아무도 눈물은 흘리지 않기를
내가 얼마나 간절히 사랑했는지 당신이 알아주기를…

제63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한 이창동 감독과 배우 윤정희가 26일 오후 서울 신촌 현대백화점 유플렉스에서 열린 '시' 칸 수상 기자간담회를 마친 뒤 취재진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제63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한 이창동 감독과 배우 윤정희가 26일 오후 서울 신촌 현대백화점 유플렉스에서 열린 '시' 칸 수상 기자간담회를 마친 뒤 취재진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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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영화 '시', #이창동, #유인촌,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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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에게 사회와 역사를 가르치며 먹고사는 장똘뱅이 인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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