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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들렌느 극장에서 상연된 <인형의 집>의 노라-헬메르 부부
 마들렌느 극장에서 상연된 <인형의 집>의 노라-헬메르 부부
ⓒ 마들렌느 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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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에서 남자는 부르주아요, 여자는 프롤레타리아의 역을 맡고 있다." (엥겔스)

노르웨이 작가 헨리크 입센의 대표작 중의 하나인 <인형의 집>이 올해 들어 파리에서만 4편의 공연이 이루어져 화제가 되고 있다. 작년 11월 14일부터 12월 20일까지 파리 20구에 위치한 콜린느 국립극장에서 제 1탄으로 연극이 올려진 것을 계기로 다른 세 극장에서도 올려졌다.

올 2월 16일부터 4월 17일까지 예정되었던 파리 시내 마들렌느 극장에서 올려진 연극은 장기 연장되어 5월 22일까지 지속되었다. 3번째 연극은 3월 10일부터 4월 17일까지 파리 서쪽 근교의 낭테르에 위치한 아망디에 극장에서 올려졌고 지난 5월 6일부터 22일까지 오페라 근처의 아테네 극장에서 4번째의 연극이 성황리에 올려졌다.

청소년 시절에 <인형의 집>을 감명깊게 읽은 기자는 파리에서 이 연극이 공연되어지기를 오랫동안 기다렸다. 가장 최근에 공연된 것이 1997년 오데옹 극장에서였는데 당시 지방에 살고 있었던지라 불행하게도 관람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올해 들어 이렇게 4개의 공연이 동시다발로 올려지고 있으니 그 동안의 기다림을 복수라도 하듯이 4개의 공연을 다 가서 보는 열성을 보였다. 그런데 이미 알고 있는 텍스트이고 거의 130년이나 지난 극본이라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현 시대에 맞지 않을 것 같은 내용이지만 매번 극장을 나올 때마다 한바탕 뒤통수를 얻어 맞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1878-79년 사이에 쓰여진 이 희곡은 1879년 12월 코펜하겐에서 첫 공연이 이루어졌고 1880년 1월에 스톡홀름과 오슬로에서 재차 공연이 이루어졌다. 여성이 남편에게 완전히 귀속되어 있었던 19세기 말기의 당시 사회에서 거침없이 가정을 버리고 집을 떠나는 여주인공 노라가 당시 부르조아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일으킨 바 있다.

1880년 이 연극이 독일에서 처음 공연되어질 때는 이 충격을 줄이기 위해 입센이 마지막 장면을 다른 버전으로 작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노라가 가정을 버리고 떠나는 대신에 아이들 때문에 차마 떠날 수 없다며 아이들 방문 앞에 주저앉는 것으로 결말을 맺었다. 입센은 그러나 이 새로운 버전이 자신의 희곡을 완전히 망치는 야만적인 행동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결국 새 버전의 인형의 집은 관객 동원에 실패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파리에서 <인형의 집>이 처음으로 무대에 올려진 것은 1894년 4월로 보드빌 극장에서이다. 당시 최고 여배우였던 마담 레잔느가 주인공 노라 역을 맡았다.

'노라'는 실제로 존재했었다

연극 <인형의 집>이 공연되고 있는 아테네 극장 외부에 몰려든 관객들. <인형의 집> 포스터가 보인다.
 연극 <인형의 집>이 공연되고 있는 아테네 극장 외부에 몰려든 관객들. <인형의 집> 포스터가 보인다.
ⓒ 한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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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센에 의해 그토록 생생하게 재현된 여주인공 노라는 입센의 상상력에서 나온 인물이 아님이 밝혀졌다. 입센은 당시에 로라 피터르슨이라는 젊은 여성을 알고 지냈는데 이 여인이 노라의 모델이 된 것으로 보여진다. 무명 작가였던 로라는 입센에게 자신이 쓴 원고를 보낸 이후 입센과 돈독한 친분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

그녀는 키엘레라는 이름의 덴마크 청년과 결혼하게 되는데 이들 부부가 하도 다정해 입센은 이들의 가정을 <인형의 집>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로라의 남편이 결핵에 걸리게 되고 경제적인 여유가 없었던 로라는 남편 모르게 빚을 지어 의사의 권유대로 기후가 좋은 남부 유럽으로 여행을 떠난다.

이 여행 덕으로 남편의 병은 치유되나 남편 몰래 빚을 갚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하던 로라는 결국 정신에 이상이 생겨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이 후 남편에게 이혼 당하고 아이 양육권도 뺏기게 되지만 결국은 아이들을 위해 다시 가정으로 돌아가게 된다.

기존 남성 권위주의 사회에 반기를 들고 자기 스스로의 교육을 위해 가정을 버리고 집을 떠난 노라는 1950-60년대 페미니스트들의 중요 모델이 되었다. 그리고 페미니스트들을 포함한 많은 노르웨이인들이 입센이 실제 존재한 한 불행한 여자의 삶을 극화한 것을 비난하였는데 로라 본인도 자신의 슬픈 이야기가 이런 식으로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된 것에 대해 많은 고통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입센은 자신의 희곡이 여권 신장을 위해 쓴 것이 아님을 거듭 밝힌 바 있다. 오히려 남녀를 포함한 모든 인간의 권리를 위해 이 희곡을 썼다고 밝히고 있는데 당시 열악한 위치에 처해있는 여성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여러 모습의 인간상 묘사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밝힌 바 있다.

4편의 서로 다른 미장센느

마들렌느 극장 <인형의 집> 포스터
 마들렌느 극장 <인형의 집> 포스터
ⓒ 마들렌느 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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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린느 극장과 아망디에 극장에서 올려진 <인형의 집>의 시간적 무대는 현 시점이다. 아테네 극장에서 올려지고 있는 무대의 배경은 1960년대이고 마들렌느 극장에서의 공연이 유일하게 19세기의 시점을 그대로 재현했다.

그런데 왜 4명의 연극감독들은 올해 <인형의 집>을 동시에 무대에 올리게 된 것일까? 단순한 우연의 일치일까?

콜린 극장의 브라운슈바이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입센은 오늘날에 있어서도 효과가 발휘되고 있는 작가이다. 그는 막힌 사회 속에서 개인이 처한 자리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는데 노라와 남편의 종속적인 부부관계가 지금은 통하지 않는다 해도 돈과 사회적 야망만이 지배하는 현 사회가 입센이 살았던 19세기 사회와 그리 다르지 않다."

아망디에 극장의 마르티넬리 연극 감독의 의견은 이렇다.

"이 작품을 지금 올리는 이유는 사회의 구속 앞에서 자율성의 중요함을 강조하는 입센의 입장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60년대를 배경으로 잡은 아테네 극장의 올룬드 감독의 선택은 이렇다.

"우리 부모님이 결혼한 시기가 60년대이기 때문에 연극의 시점을 60년대로 잡아봤다. 프랑스에서 기혼 여성이 남편의 동의 없이 은행구좌를 열 수 있게 된 게 1965년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유일하게 작품의 원본 배경을 재현한 마들렌느 극장의 포 감독은 이 연극에 표현주의의 터치를 가했다. 배우들의 심한 화장과 과장된 연기가 이 점을 보여주고 있다.

결국 시대에 따라 사회의 양상은 변할지라도 그 속에 처한 인간의 조건, 구속 등은 변한게 하나도 없다. 130년 전에 쓰여진 <인형의 집>이 지금도 많은 관객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관객동원에 항상 성공하는 <인형의 집>

워낙 원작이 탄탄한 <인형의 집>은 어느 누구에 의해 연극이 올려져도 항상 관객 동원에 성공하는 작품이다. 이번에 올려진 4편의 작품도 항상 극장이 만원을 이루었다. 원래 프랑스 연극장은 중년, 노년 부부들의 관람이 많은 데 이 연극도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부부들이 관람객의 반 이상을 이루었다.

이들은 연극 대본에서 헬메르가 아내 노라에게 현재 시각으로 볼때 여성차별이 현저한 대사를 할 때는 "우우~" 소리를 지르기도 했는데 특히 60년대를 배경으로 한 아테테 극장 감독은 연극 끝부분에 헬메르 입으로부터 여성차별적인 언사를 많이 첨가해서 나이 지긋한 마담들의 항의를 수시로 자아내게 했다. 그러나 연극장을 떠나는 이들의 표정은 다들 흡족해 보였다.

<인형의 집>의 노라 역을 맡은 마리나 포이스와 오드레 토투
 <인형의 집>의 노라 역을 맡은 마리나 포이스와 오드레 토투
ⓒ Pascal Victor/Artcom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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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여배우들의 공통된 소망은 언젠가는 노라의 역을 맞는 것이다. 우연의 일치로 인해 4편의 서로 다른 미장센느를 거친 다른 스타일의 연극을 관람하게 된 파리지엥들은 또한 4명의 서로 다른 노라를 보게 되는 특권을 누린다.

4편의 연극 중에서 2편은 유명 배우가 노라 역을 맞고 있는데 마들렌느 극장의 노라 역을 맞고 있는 오드리 토투는 2001년 <아멜리에>, 2009년 <코코 샤넬> 등의 영화로 한국 관객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배우이고, 아망디에 극장 노라 역의 마리나 포이스는 2009년 <레나를 위한 계획짜기>에서 여주인공 키아라 마스트로야니의 여동생 역을 맡은 유명 배우이다.

어렸을 때는 아빠의 <앙팡-푸페(아이 인형)>였던 노라가 결혼 후에는 남편의 <팜므-푸페(여인 인형)>으로 위치만 바뀌면서 계속 인형에 지나지 않았던 노라가 결국 자신의 위치를 깨닫고 인형에서 벗어나 인간으로 거듭나기 위해 집을 떠나는 막바지 장면에서 4명의 노라는 모두 전율을 일으킬 만큼 깊이 있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연극의 감동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로 눈물을 글썽거리며 관객에게 인사하는 노라를 보며 오늘을 살고있는 우리 모두의 노라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외형적으로는 여성의 위치가 130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이 향상되었지만 아직도 얼마나 많은 앙팡-푸페와 팜므-푸페가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을지. 새장 속에 여성을 가둔게 남성인 것은 확실하지만 새장의 문이 열린 지가 한참 지났는데도 아직도 새장 속을 떠날 줄을 모르는 여성들에게 <인형의 집>을 선사하고 싶다.


태그:#인형의집, #입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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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 자유기고가, 시네아스트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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