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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정권의 힘은 무섭다. 게다가 언론까지 여기에 가세할 경우 그 파괴력은 대단하다. 합동조사단(합조단)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의혹이 해결되지 않았지만, 천안함을 북한이 침몰시켰다고 믿는 국민이 훨신 많다는 게 그 반증이다.
 
굳이 <동아일보> 여론조사를 들먹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21일과 22일에 걸쳐 <경향신문>이 조사한 여론조사만 봐도 국민의 71.3%가 합조단의 발표를 믿는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의혹이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지만 국민 다수가 천안함 사건에 대한 정부 발표를 국민 다수가 믿는 이유는 무엇일까.

 

천안함 사건 의혹 여전한데, 정부 발표 믿는 까닭은?
 

 

첫 번째 꼽을 수 있는 요인은 다른 무엇보다 이것이 '정부 공식 발표'이기 때문이다. 옳든 그르든 간에 정부의 공식 조사기구가 "천안함 침몰은 북한 소행"이라고 결론을 내린 이상, (결정적인 반증이 없는 이상) 일단은 그렇지 않다고 공개적으로 반론할 여지가 없다.특히 민주당이나, 지방선거 후보 개인 자격으로서는 더욱 그렇다.
 
두 번째는 정부의 철저한 정보통제가 주효했다. 민주당이 추천한 민간조사위원(신상철 서프라이즈 대표)은 거의 '왕따' 수준으로 배제되었다. 그 덕분에 정부가 욕을 먹을대로 먹었지만, 정부의 공식발표를 뒤집을 만한 주장이 나올 여지는 원천봉쇄됐다.
 
세 번째는 방송의 영향이다. 합조단 발표에 대한 방송 보도를 보면 왜 이 정권이 KBS와 MBC를 장악하려고 그토록 애썼는지 그 이유를 실감케 해주고 있다. 물론 자칭 보수언론들의 '행패'에 가까운 일방 보도도 큰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정부 발표를 신뢰하지 못한다고 응답한 사람이 <경향신문> 여론조사에서 27.3%나 나왔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스럽다고 할 수 있다. 
 
정부의 노림수는 현 단계에서는 적중했다. 경향신문 조사를 인용하면, 투표에 가장 영향을 줄 이슈로 '천안함 침몰 사고'가 37.4%로 단숨에 1위로 치고 올라왔다. 2, 3, 4위를 기록한 '4대강 사업'(30.8%) '세종시 수정논란'(11.0%) '무상급식'(9.1%)은 모두 현 정권에 불리한 이슈들이다. 정치적인 측면에서 현 정권의 '천안함 장사'는 성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니나 다를까, <국민일보>의 지방선거 여론결과는 이 성공한 '천안함 장사'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21일과 22일 이틀간 조사된 결과에 따르면 수도권에서는 오세훈, 김문수, 안상수 세 후보가 한명숙 유시민 송영길 세 후보를 모두 10% 포인트 이상 차이로 따돌리는 결과를 보였다.

 

유시민이 야4당 단일후보로 결정되면서 일기 시작했던 '유시민 바람'을 차단시키는데 일단 성공한 셈이다(이런 와중에서도 충남의 안희정과 경남의 김두관 등 이른바 '친노 후보'가 앞서는 걸 보면, 여전히 한나라당은 가슴이 떨릴 게 틀림없다. 충남과 경남에 '천안함 장사'가 통하지 않는다면 지금은 몰라도 선거일 가서는 수도권에서도 그 영향을 미칠 게 틀림없기 때문이다).
 
현 정권의 노림수는 박근혜 세력?
 
그렇다면 현 정권은 천안함 장사에서 무엇을 얻으려 하고 있나? 두 달이나 질질 끌면서 사실상 죽은 이슈인 천안함을 북한 소행이라는 '빅 카드'로 지방선거까지 끌어온 것은 그들의 '반대자', 이를테면 '촛불세력' '친노세력' '호남세력'들를 '전향'시키고자 하는데 있지 않다. 이명박-박근혜의 대립으로 인한 보수계층의 분열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이 사실은 제1의 목표라고 할 수 있다.
 
박근혜를 지지해온 세력들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현 정권이 압승할 경우 박근혜가 자동적으로 고사된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이들은 정상적으로 선거가 치러진다면, 다수는 기권할 가능성이 높았고, 일부는 '엿먹으라'는 식으로 야당을 지지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물론 아무리 보수층이 분열해도 한나라당이 '기본'은 할 것이란 믿음이 밑바닥에 깔려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면에서 천안함이 북한의 공격으로 침몰했다는 정부의 결론은 박근혜 지지세력들에게 먹혀들어갈 소지가 매우 크다. 설령 박근혜에게 좀 불리하게 작용한다손 치더라도 이른바 '친북세력'들이 지방정권을 장악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이명박을 지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다는 얘기다. 그것은 아무리 이명박을 싫어한다 해도 박근혜 지지세력들의 근본은 보수층이며, 반북세력이며, 노령층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40대와 50대 연령층에 산재하는 '부동층' '중간층'을 흡수하는데도 이만한 카드가 없다는 판단을 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 서거 1주기인 23일을 하루 앞두고 발표하는 '교묘성'을 보인 것도 결국은 이 연령층을 노린 것이라고 보겠다.
 
즉 현 정권은 천안함 발표를 계기로 영남과 보수층의 투표율을 높이고, 박근혜 지지세력의 이탈만 방지한다면, 수도권에서 '싹쓸이'할 수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현 정권의 노림수라고 결론지을 수 있다. 더불어 현 정권이 안고 있는 가장 골치 격인 박근혜를 말라죽게 할 수 있다는 건 일종의 '덤'이라고나 할까.
 
한나라당의 압승 예상, 그러나 아직 기회는 있다 
 

현 정권은 앞으로 남은 10여일 동안 '천안함 장사'를 고착시키기 위한 일련의 조치를 계속 밝혀나갈 것으로 보인다. 대북 강경조치의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흘려 '반북성향'이 농후한 박근혜 지지세력의 이탈을 방지하려 들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시간과 상황이 꼭 현 정권의 편인 것만은 아니다. 기성언론들이 현 정권에 휘둘려 춤추고 있는 동안 인터넷에서는 지속적으로 합조단의 발표에 대한 의문이 제기돼 왔다.
 
정부 발표에 대한 신뢰성에 정면으로 의문을 제기한 도올 김용옥의 23일 봉은사 강연이 보여주듯이, 현정권에 비판적인 지식인들의 목소리도 계속 커질 것으로 보인다. 다른 무엇보다 지난 2년여 동안 보여준 이명박 정권의 '철권통치'가 이대로 갈 경우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란 위기감이 야당 지지세력들의 단결도를 강화시켜줄 수도 있다.

 

현 정권만 이명박 대 박근혜로 분열돼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야당 역시 민주당 지지세력과 영남 야당세력의 갈등, 내부의 진보대 보수의 갈등 등이 상존하고 있다. 하지만 이명박이 압도할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은 분열된 야당의 '화학적 결합'을 촉진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천안함 장사'에 고무된 현 정권이 오버할 가능성도 다분하다. 벌써부터 그런 조짐이 보이고 있다. 일부 극우세력들이 주장하듯이 '무찌르자 공산당, 물리치자 김정일' 식의 과격한 대응도 역풍을 불러올 공산이 있다.

 

'막후 거래'의 의심이 들 정도로 미국과 일본이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는 있으나, 중국까지 호락호락 현 정권의 손을 들어주기에는 현재 발표한 증거가 빈약하다는 지적이 많다. 28일로 예정된 원자바오와의 회담을 앞두고 현 정권의 외교력을 총동원할 것이 틀림없지만, 그 결과가 그리 신통할 것 같지는 않다.
 
그렇지만 현 정권은 '천안함 장사'로 확실한 '현찰'을 챙기고 있다. 야당은 '천안함 장사 역풍'이라는 불투명한 가능성 밖에 없다. 남은 10여일간에 내재하는 '유동성'이 여기저기서 폭발하지 않는 한 한나라당의 압승은 어쩌면 기정사실일지도 모른다.

 

'유시민 바람'으로 일말의 가능성을 본 야당은 '천안함 장사'로 다시 좌절하고 있다는 게 현 시점에서 솔직한 평가라고 하겠다. 다만 '가능성'의 수준에서 다시 판이 흔들릴 수도 있다는 게, 깨어있는 시민의 힘이 그리 만만치 않을 것이란 게 어쩌면 야당의 남은 '희망'일지도 모르겠다.


태그:#천암함, #원자바오, #유시민, #선거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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