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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가능성의 문'을 걸어 잠그고 진행한 합조단의 조사

천안함 침몰 직후 이 사건에 대해 대통령을 위시한 정부와 군의 반응은 "침몰 원인에 대해 어떤 예단도 하지 않고,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철저히 조사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미 구조 활동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모든 가능성에 대해 열려있다'던 문은 외부 피격설을 제외한 모든 부분에서 견고하게 닫고 있다는 징조가 포착됐다.

함미, 함수의 인양 과정에서 국방장관을 비롯한 군 수뇌부는 공공연히 '어뢰 피격설'을 언론에 흘리기 시작했고, 급기야 대통령은 "침몰할 당시부터 외부공격에 의한 침몰이라는 감을 강하게 받았다"며 사실상 합조단 사건 조사의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하였다. 물론 여기서 대통령이 말하는 외부세력은 북한을 지칭한 것이다.

그 때부터 시작된 북풍 몰이는 마치 정치적 사건 수사에서 검찰이 피의 사실을 공공연히 유포하여 피의자를 여론심판대에 올려놓는 수법을 연상할 만큼 파상적이며 악의적으로 유포되었다. 처음 어뢰의 파편으로 추정되는 알루미늄 조각 발견 소식에서 화약 성분 논란 그리고 중국산 중형 어뢰에서 독일제 어뢰 그리고 다시 북한산 중어뢰로 최종 발표되기까지 관계자의 반응 역시 사건을 북한의 범행으로 몰아가는 데만 온통 열중했다.

중국산 중형 어뢰설이 나오자 여당 관계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과거 정권의 친북정책이 북한 어뢰를 불렀다"며 여론을 선동했고, 독일제 어뢰 가능성이 대두되자 이번에는 무기 중개상 개입설까지 거론하며 '이것이야 말로 북한이 자신들의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 치밀하게 준비했다는 간접 증거가 아니겠냐?'며 북한 개입설을 부추겼다.

결론을 '북한의 기습' 으로 미리 정해놓고 상황을 맞추어가다 보니 어뢰가 북한산이면 당연히 북한이 한 것이고, 어뢰가 서방 아니 설사 한국산이라고 해도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서..'라는 부연설명만으로 얼마든지 북한을 범인으로 몰아갈 수 있는 분위기를 사전 조성한 것이다.

MBC가 보도한 북한산 어뢰의 그래픽화면
▲ 북한산 어뢰 그래픽화면 MBC가 보도한 북한산 어뢰의 그래픽화면
ⓒ MBC TV화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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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런 정부와 군의 태도는 북한으로 하여금 전혀 상반된 결론으로 자신들을 변호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 한다. 어뢰가 서방 제품이라면 '우리는 그런 어뢰는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면 그 뿐이고, 정부가 북한산 어뢰 파편을 피격의 증거로 제시한다고 할지라도 '남조선이 다른 경로를 통해 우리 어뢰 파편을 구해 사건을 날조한 것'이라는 역공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지금 상황은 같은 사실에 대해서 남과 북이 처한 입장에 따라 180도 다른 결론을 주장한다고 해도 국민은 어느 한쪽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 없는 상황이 조성되었다. 물론 이것은 상황 브리핑이나 합조단의 인적 구성 그리고 조사 과정 등에서 정부와 군이 불신을 자초한 탓이니 정부를 믿지 않는 국민을 탓할 일이 아니다.

북한 기습이 아니라고 보는 몇 가지 이유

천안함 침몰이 정부와 군이 주장하는 대로 북한의 근접 기습타격에 의한 것이라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사건은 결코 우발적인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 치밀하게 계획하고 가장 적절한 시기를 골라 실행에 옮긴 계획범행이라 할 것이다.

아다시피 모든 계획범죄는 모의 단계부터 필연적으로 어떤 동기가 있어 범행을 부추기게 된다. 얼핏 북한이 우리를 기습 공격할 동기가 많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곰곰이 짚어보면 이 범행의 성패와 관계없이 이 일로 북한이 얻을 이익은 하나도 없다. 특히 이상한 점은 북한이 사건 개입 자체를 일관되게 부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휴전 이후 북한은 1.21사태, 울진. 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 판문점 도끼 만행사건, 프레볼로호 납치 사건, 칼기 납치사건 그리고 최근 NLL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고의적인 경계 침범 등 남한과 미국을 상대로 수많은 도발을 감행해 왔지만 이번처럼 은밀히 접근 도발한 후 조용히 꼬리를 감춘 일은 없었다. 오히려 도발의 원인 제공자가 미 제국주의자나 남한에 있다며 큰 소리를 쳐오던 북한이다.

그런데 왜 이번에는 북한이 검열단을 파견해서라도 자신들의 무관을 입증하겠다며 사건 개입 자체를 부인할까?

먼저 천안함 침몰이 서해상에서 있었던 두 차례의 교전에서 패배한 것에 대해 앙심을 품은 보복이라고 가정해보자.

이 차원에서 본다면 북한은 한미 연합 군사훈련이 진행되는 해역에서 미국과 한국 해군의 경계망을 감쪽같이 따돌리고 천안함을 일격에 침몰시킨 후 현장에서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가히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고 볼 수 있다.

이런 혁혁한 전과는 두 차례의 교전에서 패배한 이후 우리 해군이 경고 사격만 해도 도주하는 약한 모습을 보였던 북한 해군 아니 나아가 북한 군 전체의 사기를 진작시켜 줄 수 있을 뿐 아니라, 체제 붕괴의 위협에 노출된 정권 수뇌부의 지도력을 과시하는 데 아주 유용한 선전 수단이 될 수 있음에도 어쩐 일인지 북한은 사건 개입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

미국이나 남한의 보복이 두려워서? 천만의 말씀, 치밀한 범행을 모의하는 입장에서 사건의 결말이 자신들에게 미칠 파장을 두려워했다면 그들은 결코 모의를 실행으로 옮기지 않았을 것이다.

두 번째, 실리적인 부분에서도 의문은 남는다. 최근 북한은 금강산 관광 정상화, 개성공단 활성화 등 남북 경협을 정상화시키는 일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극심한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는 북한이 금강산 구역의 남측 시설을 압류하거나 직원을 추방하는 등 압박을 가해온 것은 정치적 대립 여부를 떠나 경제적 부분에서 남북 관계 회복을 원하는 그들 방식의 절박한 시도였다고 볼 수 있다.

위축된 남북 경협을 회복하는 데 나름대로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었던 북한이 남측의 초계함을 기습 침몰시키는 것이 남북 경협에 과연 어떤 도움을 줄 것이라고 판단했을까? 북한 수뇌부가 몽땅 미치지 않고는 실행 불가능한 일이다.

세 번째, 최근 북한 권력 승계자로 떠오르고 있는 김정운의 지도력을 과시하기 위한 도발이라는 일각의 주장 역시 북한이 사건 개입을 부정한다면 이 일은 지도력을 부각시키는 데 아무 선전 효과도 없다는 점에서 고려의 가치가 없다.

마지막으로 더 큰 범행을 도모하기 위해 북측이 이번 사건 개입을 부정했다고 가정해보자.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공격이었다는 것을 기정사실로 하고 더 큰 범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북한의 향후 공격 목표는 이지스함이나 독도함 같은 최신예 함정들이 될 것이다.

그런데 북한이 이런 함정들을 잠수함으로 공격한다면 사실상 전면전을 불사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만약 이런 식으로 전면전이 시작된다면 북한은 단지 남한군만 상대하는 것이 아니다. 한미 방위조약에 의해 미군은 즉각 개입이 가능하지만 냉전 체제가 종식된 오늘날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을 지원할 명분이 없다.

즉, 북한 입장에서는 이런 도발은 곧 자멸을 시도하는 것과 다름없다 할 터인데, 아무리 무모한 정권이라도 이런 시도는 하지 않는다. 당신이라면 하겠는가?

11년간 누명쓴 남자

지난 주말 중국 발 외신은 11년간 억울하게 옥살이한 남자의 사연을 보도했다. 이웃과 앙숙지간인 어떤 남자가 있었다. 시비의 단초가 무엇이든 간에 두 사람이 마주치면 늘 다툼이 지속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한 남자가 감쪽같이 사라져버리자 주변 사람들은 이 남자가 사라진 사람을 해쳤을 것이라고 의심하였다.

수사에 나선 경찰 역시 이 사건을 평소 사이가 나쁘던 남자가 상대를 살해한 것으로 보고 그 남자를 심문했고 범행을 부인하자 고문까지 자행하여 자백을 받아내려 했다. 법정 역시 명확한 증거는 없지만 여러 가지 정황이 일관되게 이 남자가 상대방을 살해한 점이 인정된다며 유죄를 판결했다.

그런데 11년이 지난 시점에 살해당했다던 남자가 돌아왔다. 감옥에 갇혀있던 남자는 아무 죄도 없었다. 그에게 죄가 있다면 평소에 사라진 남자와 사이가 아주 좋지 않았다는 것 뿐 이었다.

남북이 적대적으로 대립해온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비록 김대중-노무현 집권 기간에 약간 훈풍이 불었다고 할지라도 여전히 남과 북은 서로에게 있어서 가장 큰 경계의 대상이며 가장 위협적인 잠재적 적이라는 인식이 양측 모두에게 잠재되어 있었던 것이 사실이며, 이런 긴장은 이명박 집권 이후 더 고조된 것이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남한의 군함이 침몰됐다는 소식을 접하면 누구나 한국 사람뿐 아니라 남북 관계를 알고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이 '혹시 북한이?'라며 북한을 의심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남한과 관련된 모든 테러행위에 있어서 북한은 항상 가장 유력한 용의자인 것이다.

하지만 11년 만에 살해당했다던 사람이 멀쩡하게 돌아온 것처럼, 천안함 침몰의 진짜 원인은 다른데 처박아 둔 채 애먼 북한만을 몰아세우고 있는 게 아닌지 싶다. 더욱이 그런 결론이 단지 편견에 의해 관성적으로 행해진 단순한 오류가 아니라, 다른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서 또는 어떤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진행된 의도적 사건 조작이라면 이것은 결코 용서할 수 없는 범죄행위라 할 것이다.

언젠가는 이 사건에 대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진실이 드러날 수 있기를 기대하며.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과 한겨레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천안함침몰, #조사결과발표, #북한어뢰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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