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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각하지 마라. 철장 안에 갇힌 건 당신이다. 아이들은 밖에서 당신을 들여다보고 있다.
▲ 가두지 마세요 착각하지 마라. 철장 안에 갇힌 건 당신이다. 아이들은 밖에서 당신을 들여다보고 있다.
ⓒ 김근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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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의 현장에서 '살아남은 자의 슬픔'

모지리 김근태(남, 53세). 사람들은 그를 이렇게 부른다. 뻔히 결말이 보이는 일에도 사람들이 부추기면 앞장서서 욕이란 욕은 다 얻어듣고 제 실속은 차리지 못하는 사람. 모지리는 머저리의 전라도식 표현으로 지능이 기준에 미치지 못한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그래서 소위 철밥통이라는 고등학교 미술교사 생활도 5년을 넘기지 못했을 것이다. 퇴근하면 방석집 여자들과 밤새도록 술을 마셨고 돈이 떨어지면 그림을 저당 잡혔다. 사행성 게임에 빠져 몇 날 며칠을 결근하기도 했다. 술에 취하면 실오라기 하나 없이 옷을 벗어던지고 알몸으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거리를 뛰어다니다 파출소 신세를 지는 등 감당 안 되는 주사(酒邪)와 기행(奇行)으로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사실 규칙이나 조직생활이라는 것이 애당초 그에게는 가당치 않은 족쇄였다.

주제를 한참 비껴간 어눌한 선문답과 사람의 심기를 뒤집어 놓는 불편한 말투, 도무지 평상심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허무, 불안, 결핍, 고통, 광기 이런 것들로 가득 찬 일상. 이것이 청년기의 김근태였다.

그는 4세 때 교통사고로 죽은 줄 알고 매장하던 중 극적으로 회생했다. 알코올중독자인 아버지와 어머니의 가정불화, 급기야 형들까지 술에 취해 툭하면 싸움질을 하면서 너무 빨리 절망과 친구가 되었다.

1980년. 조선대 미술학도 시절 그는 전남도청 문지기로 5․18광주민중항쟁에 참여했다. 처참한 학살의 현장에서 살아남은 것에 대한 부끄러움은 삶에 대한 회의로 이어졌고 특유의 냉소와 절망은 일상이 되었다.

1년 전까지 그의 화실은 항상 닫혀 있었고 덥수룩한 수염과 대낮부터 코를 찌르는 술 냄새가 진동했었다. 얼굴에서 그림자가 사라졌다.
▲ 너무나 말끔해진 김근태 화백 1년 전까지 그의 화실은 항상 닫혀 있었고 덥수룩한 수염과 대낮부터 코를 찌르는 술 냄새가 진동했었다. 얼굴에서 그림자가 사라졌다.
ⓒ 김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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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정상이 아니었다. 그는 심각한 우울증과 공황장애, 정신적 결핍이라는 장애를 앓고 있었다. 그리고 젊은 날의 방탕과 5번의 자살 시도는 한쪽 시력을 거의 잃게 만들었고 결국 그 또한 시각장애인이 되었다. 

'저놈 언제 사람 되려나?' 때로는 측은지심과 안타까움이었고 때로는 멸시와 조롱이었다. 그래서 그는 항상 외톨이였고 '왕따'였다.

그러던 그가 그림을 그리겠다고 학교를 뛰쳐나와 목포 앞바다의 작은 섬 고하도의 목포공생재활원으로 흘러들어간다. 150여 명의 정신지체아동들과 생활하며 그림을 가르치고 그리기 시작한다. 아이들은 생면부지의 그를 '아빠'라고 부르며 품으로 달려들었다. 그 따듯한 심장박동소리가 슬퍼 밤새도록 '펑펑' 울기도 했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자신을 버리지 않을 천사들이었다.

거울 안에 갇힌 아이들은 새들의 노랫소리와 달콤한 꽃향기, 나비의 날갯짓에 이는 바람까지도 궁금하다.
▲ 느끼고 싶어요 거울 안에 갇힌 아이들은 새들의 노랫소리와 달콤한 꽃향기, 나비의 날갯짓에 이는 바람까지도 궁금하다.
ⓒ 김근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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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시인 이대우, 김근태를 보듬다

"자네 그림을 누가 집구석에 걸고 싶어 하겠나."

선배들의 애정 어린 충고에 삿대질에 멱살잡이까지 하면서 사람들은 하나둘씩 그에게서 멀어져 갔다. 그가 흉금을 터놓는 유일한 친구는 중증지체장애인인 이대우 시인 뿐이었다. 그의 그림에는 서양화 하면 떠오르는 꽃과 나무가 들어간 아름다운 풍광도, 평화로운 표정의 사람들의 일상도 없었다. 소위 팔리는 그림은 존재하지 않았다.

실제로 정신지체장애인들을 화폭에 담으려는 시도가 국내외적으로 여러 번 있었지만 사회적 편견으로 판매가 아예 이뤄지지 않아 20년이 넘도록 장애인 그림을 그리는 화가는 김 화백이 세계적으로 거의 유일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무안군 삼향면 시골마을의 그의 화실. 뒤틀린 몸짓과 초점 없이 일그러진 표정의 아이들과 너무 짙어 평화를 망각해 버린 진녹색, 결국은 절망스런 보라색…. 그의 몸에 아직도 남아 있는 선명한 면도날 자국으로 몇 차례 자살을 시도했었다는 소문이 사실이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화가는 무작정 배낭을 짊어지고 인도로 떠났다. 사람들은 그곳으로 가면 길이 있다고들 했다. 지도에조차 나와 있지 않은 오지에서, 혹은 가장 낮은 자들인 하리잔들과 뒤섞여 잠을 자고 밥을 먹었다. 바라나시 버닝가트 화장터에서 하루 종일 죽은 자들을 지켜보기도 했다. 그러나 인도는 취한 자들의 몽환 속에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어김없이 허무가 밀려왔다. 껍데기만 남은 앙상한 몸을 이끌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 아이는 죄나 악을 모른다. 보는 대로 느끼고 느끼는 대로 행동한다. 우리 중 그 누가 이렇게 '함박' 웃을 수 있을까?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소 이 아이는 죄나 악을 모른다. 보는 대로 느끼고 느끼는 대로 행동한다. 우리 중 그 누가 이렇게 '함박' 웃을 수 있을까?
ⓒ 김근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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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이대우 시인은 사지를 움직이지도, 말도 하지 못해 입에 막대기를 물고 컴퓨터 자판을 두드려 시를 쓰는 자신보다 더 장애인 같은 그의 모습이 안타까워 기꺼이 친구가 되어준 것일 것이다. 무엇이 그리도 무거운 것일까? 시인은 가슴이 아려왔다. 시인은 '김근태 화백은'이라는 제목으로 시를 썼고 작곡가이기도 한 유종화 시인은 곡을 붙였다. 술판이 벌어지면 시인 유종화는 이 노래를 통해 작가를 어르고 달랬다. 

눈으로 볼 수 없는 것 마음으로 보게 하고
귀로 들을 수 없는 걸 가슴으로 듣게 하고
못나고 천한 것에 아름다움을 실어
없어진 것들에 희망이 보이게 하네
눈으로 볼 수 없는 것 마음으로 보게 하고
귀로 들을 수 없는 걸 마음으로 느끼게 하네

말하고 싶어 하는 걸 느낌으로 말하게 하고
보이지 않는 눈물도 사랑으로 보이게 하네
<작사: 이대우 작곡: 유종화>

외톨이 김근태. 외로움과 끝이 보이지 않는 절망과 벗이 되어 때로는 악마와 공모라도 해서라도 탈출구를 찾아보려는 그는 장애인 그림에 병적인 집착을 했다. 아마도 숨 쉬는 것조차 버거워 술과 여자, 담배로 호흡하며 겨우 생존을 확인했을 것이다. 장애인의 애환과 삶을 담는다는 소명의식이나 고상한 시대정신보다는 그것이 유일한 탈출구이자 은둔지였을 수도 있다.

김근태는 오염된 우리들의 눈이 아니라 아이들의 눈을 통해 현재의 나의 삶은 행복한가 되물어야 한다고 말한다.
▲ 아이들은 화가의 자화상 김근태는 오염된 우리들의 눈이 아니라 아이들의 눈을 통해 현재의 나의 삶은 행복한가 되물어야 한다고 말한다.
ⓒ 김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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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지리의 변심.... 세상의 것들에 욕심을 품다

사람 좋은 것을 유세라도 하는 듯 인심 좋게 보증까지 서줘서 말아먹었고 뜬금없이 후배화가들과 영암군으로 건너가 폐교를 임대해 미술인공동체를 만들었는데 각자의 견해 차이로 오래가지 못했다. 결국 보따리를 쌌다. 

거기다 갑자기 명예욕에 사로잡혀 한 예술단체 대표를 한다고 설레발을 치다가 소도시에 한 차례 폭풍우가 몰려왔다. 아마도 그는 터무니없는 치기와 오만함에 대한 대가를 얼마나 혹독하게 치러야 할지 그때는 몰랐을 것이다. 그가 손대는 일치고 제대로 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이번에도 그는 모지리였다. 초등학교 교사로 홀로 네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온 아내의 얼굴에서는 표정이 사라져 버렸다.

지천명을 넘겨 쉰셋이 돼 흰머리가 성성한 그에게도 행복한 시절이 있었냐고 물었다. 세상을 떠나 장애인들과 생활하던 청년 시절이었다. 공생재활원에서, 목포장애인요양원에서 정신지체아들과 함께 기숙하며 캔버스를 채우는 약간 정신 나간 서양화가에겐 사지는 못 쓰지만 정신은 자기보다 멀쩡한 이대우 시인, 그리고 정신지체아동들과 함께한 젊은 날이 가장 푸른 시절이었다.

"이 아이들은 죄나 악을 모른다. 선하다. 보는 대로 느끼고 느끼는 대로 행동한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사람의 감정은 냄새와 색깔을 가지고 있다. 눈에 보이는 형체와 색을 과감하게 버리고 마음을 그리는 화가가 되고 싶었다. 이 아이들은 나의 자화상이다. 힘든 시기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이 아이들을 그림으로써 그들에게 기댔다. 이 아이들을 통해 여러분과 내가 얼마나 행복한가 느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고 자신에게 질문해야 한다.…돌에 이야기했으면 메아리라도 있었을 텐데 지난 세월 허상뿐인 허수아비들에게 나를 물었다. 명예에 집착했는데 그 사이 내 가정은 멍들고 아이들은 스스로 자라 버렸더라. 이제는 들꽃처럼 바람처럼 살고 싶다. 내가 평생 만났던 그 어떤 비평가보다 냉혹한 비평가들을 만난 것 같다. 아이들에게 인정받는 화가가 진짜 화가다."
<2009 10. 1 오마이뉴스 인터뷰 중에서>

그는 신은 백인에 근육질의 남성이어야 하며 권위적이어야 한다는 우리들의 상식을 조롱한다.
▲ 신성모독(?), 신의 자리를 차지한 정신지체아 그는 신은 백인에 근육질의 남성이어야 하며 권위적이어야 한다는 우리들의 상식을 조롱한다.
ⓒ 김근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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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모독(?), 신의 자리를 차지한 정신지체아

나는 그의 화실에서 개신교도의 그것이라고는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는 신성모독(?)의 그림 한 점을 발견했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를 새롭게 형상화한 듯 전라의 그가 손가락을 뻗어 신에게 생명을 부여 받고 그 옆에는 에덴에서 새롭게 태어난 그와 아내가 태초의 인간 아담과 하와가 되어 있다. '아담+하와+나=생명의 잉태'라는 작품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신이 자리 잡고 있어야 할 자리에는 사시기로 초점을 잃은 정신지체아 하나가 해맑게 웃고 있다. 아마도 개신교식으로 '거듭남'을 이야기하고 있는 듯하다. 아이를 통해 '죄 사함'을 받고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다. 심지어 '새 예루살렘'이라는 작품의 하늘에는 신 대신 정신지체아가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다.

김흥겸이라는 요절한 신학생이 1983년에 만든 '민중의 아버지'라는 민중가요가 있었다. 진보적인 개신교 동아리 청년들은 윤동주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십자가'라는 노래와 함께 밤새도록 깡소주를 들이키며 목을 혹사했다. 보수적인 개신교 동아리 친구들은 질겁을 했고 자주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우리들에게 응답하소서/ 혀 잘린 하나님/ 우리 기도 들으소서/ 귀먹은 하나님/ 얼굴을 돌리시는/ 화상 당한 하나님/ 그래도 내게는 하나뿐인/ 민중의 아버지
하나님 당신은/ 죽어 버렸나/ 어두운 골목에서/ 울고 계실까/ 쓰레기 더미에/ 묻혀버렸나/ 늙으신 하나님
얼굴을 돌리시는/ 화상당한 하나님/ 그래도 내게는 하나뿐인/ 민중의 아버지
<김흥겸 곡, 민중의 아버지, 1983년>

신은 남성에 백인이여야 하고 완벽한 근육질의 몸매에 권위적인 수염까지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우리의 고정관념을 가차 없이 조롱한다. 신은 바라보는 사람에 따라 어머니이며, 흑인이며, 장애인이며, 노동자이며, 밥이며, 연인이기도 하다.

아이의 표정이 슬퍼 보인다거나 굳어 있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이미 세속적이다.
▲ 아이의 몸에 꽃이 피었다 아이의 표정이 슬퍼 보인다거나 굳어 있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이미 세속적이다.
ⓒ 김근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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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신은 정신지체장애아동의 모습으로 나타나 '치유의 은사'를 베푼 것이다. 그림 속의 아이들은 자신의 감정으로 표출하는 일종의 '치유 의식'이며 '고통의 씨앗'이었다. 또한 정신적인 위기를 넘기는 결정적인 처방이 되기도 했다.

세상의 높은 곳에는 없다. 세상의 낮은 곳 가장 밑바닥에 그를 치유할 치료제가 있었다. 지천명의 그가 낮은 자들의 세계에서 신을 발견하고 개신교로 개종한 것은 어쩌면 운명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따라서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장애아들은 그의 자화상이자 세상에 잠시 소풍 나온 신의 초상화이다. 

"우연히 '두 줄기의 풀잎'이라는 사진을 보았다. 한 줄기 풀잎에는 정확히 초점이 맞아 맺힌 이슬이 선명하게 보였고 다른 한 줄기의 풀잎은 포커싱(초점) 밖에(아웃포커싱) 있어서 흐릿하게 보였다. 초점이 맞은 것은 그대로, 초점이 맞지 않은 것도 그대로 아름다웠다. '초점이 맞은 것(지적장애아)과 초점이 맞지 않은 것(일반인)을 그대로 그려라. 풀잎 사진을 통하여 '더불어 행복한 세상' 메시지를…." (이하 생략)
<화가 김근태의 전시회 팸플릿 중에서>  

고하도에서 만난 이 아이는 김근태를 '아빠'라고 부르며 상처받은 화가의 품으로 달려들어 얼어붙은 심장을 녹였다. 화가는 밤새 아이를 안고 '펑펑' 울었다.
▲ 아이 꿈을 꾸다 고하도에서 만난 이 아이는 김근태를 '아빠'라고 부르며 상처받은 화가의 품으로 달려들어 얼어붙은 심장을 녹였다. 화가는 밤새 아이를 안고 '펑펑' 울었다.
ⓒ 김근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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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태는 말한다.

"나의 그림에 등장하는 지적장애인들은 나의 자화상이자 잠시 인간 세상에 소풍 나온 신의 초상화이다. 이번 전시회를 통해 장애인들이 동정과 베품의 대상이 아니라 소통과 공존의 동반자라는 인식이 확산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음 전시회는 신앙인의 눈이 아니라 아이들의 눈으로 본 천국과 지옥은 어떤 모습인지 그려보고 싶다."

과연 그가 기존의 고정되고 도식화된 성화(聖畵)의 틀 속에 자신을 가두지 않고 가장 투명하고 순결한 영혼으로 세상에 소풍 나온 정신지체아들(혹은 신)의 눈으로 세계를 새롭게 형상화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혹여 그 살얼음 같은 경계선에서 줄타기를 하든, 결국은 타협해 어느 한쪽으로 발을 담그든, 부실한 하체와 상체비만으로 헐떡거리든, 그것은 순전히 그의 몫이다. 이제 오랜 타렴질과 핑계와 엄살을 끝내고 야물게 되어야 할 시기이기 때문이다.

또한 14년 전 그가 고하도공생재활원에서, 소망장애인요양원에서, 목포장애인요양원에서 체현했던 스케치가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과제도 안고 있다. 새로운 스케치를 해야 한다. 그래서 작가가 창작물을 세상에 내어 놓는 것은 첫 번째보다 두 번째가 어려운 것 같다. 천재들은 대부분 두 번째에 사라진다.

애타는 어미의 마음. 아이들의 재활은 오롯이 어머니의 몫이다. 수많은 제도와 복지정책은 그림의 떡이다. 누구도 책임져 주지 않는다.
▲ 아들아, 일어나라 애타는 어미의 마음. 아이들의 재활은 오롯이 어머니의 몫이다. 수많은 제도와 복지정책은 그림의 떡이다. 누구도 책임져 주지 않는다.
ⓒ 김근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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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창 안에 갇힌 건 아이들이 아니라 우리들

오랜 침묵을 깨고 그는 14년 만에 개인전을 한다. 그와 그의 그림은 예전의 그것과는 조금씩 달라졌다. 연분홍과 노랑, 연푸른 하늘색이 조금씩 기지개를 편다. 새로운 형상화에 옷을 입기 시작했다.

심벌처럼 느껴지던 콧수염도 사라졌고, 술은 1년 넘게 입도 대지 않는다. 새벽 일찍 일어나 매일 아내 최호순씨와 함께 집을 나서 인근 부주산을 1시간 넘게 오르며 25년간 멈추었던 대화를 나눈다. 두문분출. 종일 캔버스에 진한 유화물감을 칠해가며 창작에 열을 올린다. 이제는 허풍과 호기로 자신을 감추고 아이들을 통해 너무도 여린 자신의 마음을 보호받으려고 움츠리지 않겠다고 각오를 다진다. 아내는 '행복해요'를 연발한다.

6월부터는 그의 화실에서 전남여성장애인연대(대표 서미화)와 같이 정신지체장애인들이 참여하는 그림수업도 시작한다. 그 마음이 고마워 전남여성장애인연대는 오는 5월 14일부터 목포문화예술회관 2층 전시실에서 '들꽃처럼 별들처럼'이라는 주제로 1주일간 열리는 개인전 행사를 모두 주관하기로 했다.

서미화 대표는 말한다.

"창작의 소재에서조차 소외당해 왔던 장애인들의 삶과 애환을 양지로 끄집어 낸 김 화백의 용기에 감동해 전시회 내내 우리 활동가들이 손님 접대와 행사 안내 등 행사를 주관하기로 했다. 비록 앞을 잘 보지 못하지만 그의 그림을 귀와 마음으로 들어볼 예정이다. 이제야 우리 장애인들이 꼭 미술관을 가야 하는 이유를 발견했다."

화가는 아이들의 눈을 통해 발견한 에덴의 표정을 생생하게 담아낸다. 에덴의 동쪽의 우리들은 끝내 모를….
▲ 에덴은 있다 화가는 아이들의 눈을 통해 발견한 에덴의 표정을 생생하게 담아낸다. 에덴의 동쪽의 우리들은 끝내 모를….
ⓒ 김근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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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호오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그에게 집착하는 것은 그가 더 이상 과거에 있지 않고 미래를 보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20년을 끈질기게 지속해 온 그의 외로운 시도가 '소재에서조차 소외된 장애인의 삶'을 미술관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관공서에서, 학교에서, 가정에서, 우리 사회의 모든 일상에서 공존의 이름으로 자유로워져야 함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히 말한다. 이제 '모지리 화가 김근태'의 그림은 세상의 모든 집구석에 걸려야 할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다.


태그:#김근태, #정신지체장애인, #들꽃처럼 별들처럼, #장애인, #모지리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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