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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머니 사진
 할머니 사진
ⓒ 송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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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에 흐르는 시냇물 미움의 골짜기로
물살을 가르는 물고기떼 물 위로 차오르네
냇물은 흐르네 철망을 헤집고
싱그런 꿈들을 품에 안고 흘러 구비쳐 가네
(중략)  
자 총을 내려~ 두 손 마주 잡고
힘없이 서 있는 녹슨 철조망을 걷어버려요
자 총을 내려~ 두 손 마주 잡고
힘없이 서 있는 녹슨 철조망을 걷어버려요
녹슬은 철망을 거두고 마음껏 흘러서 가게
자 총을 내려~

- 김민기 노래 <철망 앞에서> 중

현실이 소설보다 기구하고 애절할 때가 많다. 그래서일까. 역사적으로 전란을 많이 겪은 기성세대의 경우 "내 이야기를 쓰면 소설보다 더 잘 팔릴 거다"라고 스스럼없이 이야기한다. 돌아가신 외할머니(이하 할머니)께서도 이런 푸념을 자주 하셨다. "내가 글재주가 있었으면 이렇게까지 가슴이 답답하지 않았을 턴데…" 하고 말이다. 내 할머니의 삶은 '대의멸친'과 '이산애수' 두 낱말로 대신할 수 있다.

할머니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말씀처럼 '나라가 없고서 일가와 일신이 있을 수 없고, 민족이 천대를 받을 때 나 혼자만 영광을 누릴 수 없다'는 애국심을 항상 가지고 사셨던 분이다. 내가 이렇게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할머니가 남긴 유품 때문이다.

할머니의 유품은 하얀 보에 싸여 있었는데, 그 안에는 빛바랜 광목 태극기와 열쇠가 들어 있었다. 함경북도 청진집 곳간 열쇠. 그 할머니의 유품을 끌어안고 오래도록 오열하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어느새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뀌었다. 할머니, 어머니가 모두 이산가족인 나는 이산 3세대이다.

나의 할머니 92세 생애 속에는 대한제국의 멸망과 일제 강점기, 6·25 전쟁 가운데 있었던 이산과 별리의 고통과 슬픔이 굽이쳐 흐른다. 지금도 그것을 생각하면 가슴 한켠이 서늘하게 무너져 내린다.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새벽이면 하얀 소복에 정갈한 비녀 머리로 촛불을 밝히고 정화수를 떠 놓고 두 손 모아 합장하시던 할머니의 통일에 대한 기도와 염원….

"두 갈래로 나뉜 모든 것 하나 되게 하소서..."

 가시철책을 거둬 버리고...
 가시철책을 거둬 버리고...
ⓒ 영화 <비단구두>, 오리영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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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아카시아 향기 분분한 유월이 오면 내가 태어난 서울 신당동 산 16번지 본가(本家), 그 유년의 뜰이 너무 그립다. 하루에도 수십 번이 넘는 할머니의 걸레질로 윤이 반짝반짝 나던 대청마루와 싸리비로 싹싹 쓸어서 깨끗한 안마당, 장독대에 핀 분꽃, 채송화, 맨드라미, 해바라기, 뒤뜰의 탱자 울타리와 키가 큰 은행나무며 아카시아, 후박나무, 꽝꽝나무, 숲 속의 후룩 후루루 울던 휘파람 새소리가 그립다.

하얀 창호지에 단풍잎, 은행잎을 발라 참 예뻤던 본가 할머니 방에는 촛불이 항상 밝혀져 있었다. 칠성신을 모신 업단지와 달마 불화 등 다락방 올라가는 문짝에는 알록달록 십장생 그림이 붙여져 있었다.

할머니 성격이 깔끔하고 아기자기한 것을 좋아하셔서 집안은 늘 밝았다. 항상 하얀 행주치마를 두르고 동백기름을 발라 곱게 빗어 넘긴 할머니의 비녀 머리도 그립다. 할머니를 회억할 때면 늘 설명하기 힘든 어떤 전율의 아픔을 느낀다.

'고통 중에서 가장 심한 고통은 사랑한다는 고통'이라고 누군가 말했듯이, 할머니를 회상하면 어릴 적 보았던 할머니의 뼈만 남아 야윈 모습과 중첩된다. 할머니는 평생 눈물과 기도로 살아오셨다. 이런 할머니를 철없던 유년의 나로서는 정말 이해하기 어려웠다.

"나라가 두 동강이 났는데 머리를 두 갈래로 묶어 달라니… 안 된다. 일제 왜경이 얼마나 무섭고, 전쟁이 얼마나 무서운지 너는 모를 것이다."

혹은 사과를 두 쪽으로 가르면 안 된다, 아이들과 패를 갈라 놀면 안 된다, 할머니는 무엇이든 둘로 갈라지는 것에 대해 지극히 예민하게 반응했다. 그리고 할머니는 늘 일상이 기도 생활이었다. 칠성신께 새벽마다 염불처럼 '통일이 되게 해 주십시오… '하고 기도를 올리셨던 것이다. 더러 할머니는 기도를 올리시다가도 치맛자락으로 눈물을 인장처럼 찍어내셨다.

 좌측, 송유미(필자), 우측 서재필 박사 증손 서동성 변호사(필자의 외척, 오라버니)와 함께, 서재필 박사, 부친 서광효 진사 묘소 앞에서
 좌측, 송유미(필자), 우측 서재필 박사 증손 서동성 변호사(필자의 외척, 오라버니)와 함께, 서재필 박사, 부친 서광효 진사 묘소 앞에서
ⓒ 송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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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할머니 서기석씨가 태어난 곳은 은진(현재 충남 논산군 구자곡면 화석리). 할머니는 청나라의 속화 정책에 대항하여 조선의 완전 자주 독립과 근대화를 추구하며 일으킨 '갑신정변'에 가담한 오라버니(서재필 박사)가 역적이 되자, 이에 연좌된 부모 형제가 모두 참멸 당해야 했다. 생전 할머니께서는 이에 대해 일체 함구하셨다.

이미 시대가 바뀌었지만 할머니는 '역적'을 입에 담는 것 자체도 두려워하셨다. 나라를 위해 부모 형제를 버린 대의멸친의 핏줄로 인해 하루 아침에 역적이 된 할머니는 구사일생 누군가의 도움으로 함경도 땅에 삶의 뿌리를 내리지만, 6·25 전쟁이 터지고 말았다. 할머니는 이남 땅으로 이주한 막내딸을 보러 오셨다가, 38선에 가로막혀 외할아버지와 남겨진 자식들 곁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됐다.

할머니의 통일 기도는 곧 당신의 가족을 만나려는 목숨과 같은 의지의 소산이었다. 할머니는 블랙홀 같은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당신의 개인적인 정체성마저 상실했는데 다시 6·25 전쟁으로 고통스러운 이산의 세월로 생을 마감하신 것이다.

할머니의 빨래는 얼룩진 역사의 아픔을 씻어내던 정화의식

사위였던 나의 아버지가 끔찍하게 할머니를 위하였으나, 할머니의 얼굴에는 수심의 그늘이 떠나지 않았다. 그런 외할머니가 즐겁게 콧노래까지 부르며 하신 유일한 일이 빨래였다. 제법 먼 빨래터까지, 무거운 빨래감을 이고 갔다 오셨다.

그리고 그 빨래를 빨랫줄에 널 때면 항상 환하고 흐뭇한 표정이셨다.

"난... 빨래가 참 좋구나. 빨래하면 근심 걱정이 다 깨끗해지는 것 같아 좋아…."

할머니는 그렇게 빨래터에서 만나 웃고 떠드는 이웃들의 위안에 뼛속을 스미는 고독과 쓸쓸함을 얼마간이나마 위로 받으셨던 것이다. 할머니에게 '빨래'는 슬픔이나 아픔, 상처, 그리움과 외로움을 잊고자 하는 성스러운 의식과 다름 없었다.

당시 나는 결핵을 앓고 있었다. 의사 선생님은 더 이상 내가 살 가망이 없다고 말씀하셨지만, 할머니는 지극정성으로 바람 앞 촛불 같은 손녀 딸의 목숨을 힘들게 살려내셨다. 당시엔 약이 귀했던지라 수세미, 지렁이, 개구리를 달여주고, 병이 씻은 듯 나으라고 댓가지로 가슴이며 다리, 머리를 쓸어주시던 할머니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생각하면 나는 할머니 덕분으로 이렇게 오늘까지 살아있는 셈이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것은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무렵이니, 할머니는 내 곁을 너무 빨리 떠나셨다…. 그러나 할머니가 어린 시절 내게 준 정신적 영향력은 깊었다. 내가 문인이 되어 글을 쓰고 있는 것도 그 옛날 길고 긴 겨울밤 동안 끙끙 앓는 손녀의 머리맡에서, 마음 달래며 할머니가 읽으시던 김삿갓 시편의 간접 영향이 컸을 터이니 말이다.

태산도 옮긴다는 기도의 힘으로, 통일이 눈앞에 다가오리

열 살 안팎 어린 시절 기억의 편린들이 모자이크처럼 맞추어지는 할머니와의 추억들은 이상하게 나이가 들수록 생생해진다. 그리고 당시 할머니 백년의 고독과 같은 그 잉여의 세월들이 내 뇌리에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간다.

이제 나도 매일 할머니처럼 새벽이면 통일에의 기도를 올린다. 할머니에게서 시작된 그 기도가 이제 나의 소원기도이자, 내 가족의 통일 해원을 위한 기도가 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집은 친가, 외가가 다 북한에 있다. 나의 친할아버지(송종섭옹)는 함경북도 무산군 연사면 사지리 155번지에 아직도 살고 계실까. 그리고 나의 큰 외삼촌(이수동옹)은 함경북도 청진시 신암동 16번지에 살고 계실까. 한번도 만나지 못한 조부, 조모, 외조부 등 이북에 있는 나의 일가 친척이 정말 보고 싶다.

어디 나의 할머니와 나뿐이랴. 이 땅의 숱한 실향민들을 생각하면 참으로 마음이 아프다. 나는 오늘도 할머니가 하시듯 맑은 정화수를 올리고 촛불 켜고, 할머니의 통일 기도를 이어가고 있다.

누군가 그랬다. 기도의 힘은 태산도 옮긴다고. 어쩌면 통일은 삼백예순 날 빠짐없이 기도하던 돌아가신 할머니와 영혼을 모두 쏟아내는 국민들의 진실한 기도의 힘으로 어느 날 갑자기 눈앞에 다가올지도 모른다.

 통일의 기도
 통일의 기도
ⓒ 송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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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월간 '마음수련(6월호)'에도 게재되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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