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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이야기 된 것 중 하나가 '인권과 민주주의 위기'였다. 반면 이명박 정부가 가장 강조한 것 중의 하나는 '법치주의'(혹은 떼법청산, 준법, 법질서 확립)였다. '인권과 민주주의를 보장하라!'라는 요구에 '법대로 하겠다!', '법을 지켜라!'라고 대답하는 형상이다.

 

그러나 인권·민주주의에 법치로 맞서는 구도는 인권·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대립하는 개념으로 보는 (다분히 의도적인) 오해에서 비롯한다. 법치주의와 (이런 용어 자체를 인정할 수 없지만 어떻든 이 정권이 쓰는 말인) 떼법청산, 준법, 법질서 확립을 동등한 개념으로 사용하는 것 역시 법치주의에 대한 심각한 오해와 왜곡이다.

 

더군다나 법치를 강조하는 이 정부가 정작 스스로는 법치주의를 전혀 따를 생각이 없고 법 알기를 우습게 안다는 것은 더욱 큰 문제다. 법원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전교조 명단공개를 감행한 조전혁 한나라당 의원과 그에 동조한 한나라당 의원들의 행태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

 

법치주의는 국민이 통치권자에게 요구하는 것

 

법치주의, 법의 지배란 무엇인가. 말 그대로 '법대로 다스리는 것'이다. 주어와 목적어를 넣어 보완하면 권력자가 법대로 국민을 통치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인치(人治) 즉 사람에 의한 지배, 다시 말해 권력자가 자기 마음먹은 대로 하는 통치에 반대되는 개념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때 '법'은 단지 법의 형식을 갖춘 모든 법이 아니라, 적법하게 선출된 대표들의 심의를 통해 적법할 절차를 거쳐 제정된(형식적 정당성), 그 내용 역시 기본권과 헌법정신에 부합한(내용적 정당성) '정당한 법'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 날치기한 법은 법이 아니며, 기본권을 침해하는 법은 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를 실질적 법치주의라 하며, 굳이 '실질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이지 않더라도 오늘날의 법치주의는 당연히 '실질적 법치주의'를 의미한다.

 

그리고 법치주의는 대통령을 비롯한 행정부뿐만 아니라, 입법부와 사법부 모두에게 적용된다. 입법부의 입법행위, 국회의원의 직무수행행위, 판사의 판결 모두 법치주의의 예외일 수 없다. 그렇다면 법치주의란 통치권자가 권력을 법대로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그래서 국민을 억압할 수 있는 원리가 아니라, 통치권자의 권력을 형식적으로, 그리고 내용적으로 제한하는 윈리임이 분명해 진다. 다시 말해 법치주의란 통치권자가 국민에게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통치권자에게 "니 맘대로 하지 말고 법대로 해!"라고 요구하는 원리다.

 

[MB의 오해①] 인권·민주주의와 법치주의는 대립 개념이다?

 

따라서 인권·민주주의와 법치주의는 대립하는 개념일 수가 없다. 법치주의를 지킬 때만이 입법, 사법, 행정 전 영역이 적법하게 제정된 정당한 법률에 따르게 되고, 그로 인해 인권· 민주주의가 보장되고 향상된다. 인권·민주주의에 반하는 법, 헌법에 반하는 법은 이미 법이 아니며 개정의 대상이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불복종과 저항의 대상일 뿐이다.

 

그런데 누구보다 법치를 강조하는 이 정부에서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기본적 인권이 억압받는 것은 왜인가. 이유는 간단하다. 이 정부가 말하는 법치주의는 진짜 법치가 아닌 사이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한 법치가 아닌, 통치의 효율성만을 강조하는 법치, 권력과 자본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한 법치는 법치가 아니며, 법치를 가장한 폭력에 불과하다.

 

합법을 가장한 독재, 그것이 이 정부가 말하는 법치의 실체다. 아마도 이명박 정부는 인권·민주주의를 무언가 무질서하고 시끄럽고 소란스러우며 성가신 것, 그래서 제압하고 처벌해야 하는 어떤 것(떼법)으로 보는 듯하다. 반면 법치주의는 이러한 무질서를 제압할 수 있는 효율적인 강제수단으로 본다. 우리의 불행은 이처럼 인권·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조차 없는 자를 대통령으로 뽑은 데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MB의 오해②] 법치주의와 준법은 같다?

 

이 정부의 법치주의에 대한 두 번째 오해는 법치를 준법과 동일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법질서 확립이 강조되고 이를 위해 경찰, 검찰, 기무사 등 권력기관이 총동원된다. 그러나 앞서 보았듯이 법치주의는 국민이 권력에 대해 요구하는 것이지, 권력이 국민에게 법을 지키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설령 준법이 법치주의의 한 내용이라고 인정하더라도, 무조건 법을 지키라고 강요할 것이 아니라 적법한 절차에 따른 정당한 법을 만든 다음, 이를 지키라고 요구하는 것이 마땅하며, 국민에게 준법을 요구하기 전에 스스로 지켜야 한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법을 적용해야 한다.

 

그러나 이 정부는 국민에게 준수할 것을 강요하는 법의 정당성, 합헌성 따위는 고려하지 않는다. 게다가 정작 자신들은 법을 잘 지키지 않는다. 자기편과 반대편을 구별하여 철저히 차별적으로 법을 집행한다.

 

잇따른 무죄판결에도 무리한 수사와 기소는 멈추지 않는다. 1인시위도 기자회견도 집시법을 적용하여 무차별 연행한다. 아무 법적 근거 없이 기무사가 민간인을 사찰한다. 4대강 사업은 당연히 해야 하는 사업이므로 환경영향평가법이니 국가재정법이니 하는 것들은 지키지 않아도 무방하다. 법률로 임기가 보장되고 법이 정한 해임사유가 없는 한 해임할 수 없는 공공기관이나 국책연구기관의 장들도 정권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무조건 아웃이다.

 

이건희씨는 판결문의 잉크도 마르기 전에 사면되지만, 살기 위해 망루로 올랐던 철거민들은 기약 없는 감옥살이를 감당해야만 한다. 대다수 국민이 반대하는 법도 헌법이나 국회법이 정한 절차를 무시하고 날치기 처리한다. 이러면서 준법이라니 가소롭지 않은가?

 

전교조 명단공개는 법치주의 위반

 

조전혁 의원이 선동하고 한나라당 의원들이 동조한 전교조 명단공개 역시 마찬가지다. 조전혁 의원 등은 이를 사법권에 의한 입법권 침해에 맞선 비장한 행위로 포장하고 있다. 마치 시민불복종 또는 저항권을 행사하는 듯하다. 물론 법원의 판결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기에 재판진행 과정의 문제점은 물론 판결의 내용에 대해서도 얼마든지 비판할 수 있다. 다만 지켜야 할 금도가 있다. 일단은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항소나 상고를 통해 다투거나 이번처럼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할 수는 있지만 판결 내용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모든 법적 분쟁의 최종적 판단권을 사법부에 부여하면서 모든 당사자가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하고 따를 것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전제가 무너지면 민주주의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판결 불복종? 해당 판결에 명백히 헌법과 법률을 무시한 중대한 하자가 있고, 이를 따르는 것이 오히려 법치주의를 훼손하는 지극히 예외적인 경우라면 일종의 시민불복종으로 정당화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전교조 명단공개는 판결문에서 조목조목 지적하고 있듯이 위법한 행위에 불과하다. 아닌가? 아니라면 조전혁 의원의 반론을 기대한다. 비장한 각오를 내비치던 조전혁 의원은 정작 판결문이 송달됨으로써 현실적으로 이행강제금을 물게 될 상황에 처하자 슬그머니 꼬리를 내려버렸다. 이런 행태를 불복종으로 미화하는 것은 가압류, 손해배상, 벌금 등 재산상 손해는 물론 구속까지 감수하면서 투쟁하는 수많은 노동자들과 운동가들에 대한 모욕이다.

 

조전혁 의원은 그냥 솔직하게 시인하시라. 반(反)전교조 정서를 자극하기 위한 한판 쇼가 필요했을 뿐이라고. 그 쇼에 방해되는 법원의 판결이 싫었을 뿐이라고. 사실상 무산된 '조전혁 콘서트'의 비참한 결과가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덧붙이는 글 | 유제성 님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무차장입니다.


태그:#전교조, #조전혁, #법치주의, #전교조명단, #판결불복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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