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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시국을 접하다 보면 변덕스러운 날씨를 맞는 농부마냥 뒤숭숭하다. 한마디로 꼴이 말이 아니다. 사실 꼴 한 번 제대로 서지 못하고 있다. 온갖 의혹 속에 진실찾기 게임이 돼 버린 듯한 일련의 사건들을 보라.

봉은사 논란, 천안함 침몰사고, 스폰서 검사 등. 화제성이 충만하다 보니 일단 사건만 터지면 해당 분야의 총체적 위기라느니 불통(不通)의 난맥상이라니 위협적인 지적이 쏟아진다. 여기저기 이런저런 지적질에 벙어리 냉가슴 앓듯 그냥 속만 터진다. 불안과 혼돈, 불확실성의 사회 속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고통스러운 것이 정상 아니겠는가.

게다가 천안함 사고의 경우는 여러 가지 의혹에 더해 참모들이 대통령에게 보고되는 정보를 일부 은폐하고 왜곡하여 전달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설왕설래했다. 간신배들이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는 것 아니냐며 날선 비판들도 더러 오갔다.

그러다 보니 때 아닌 간신 공방도 일었다. 사실 지난 봄에도 MB정권의 대표적인 참모인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이 "어차피 한국에서 대통령과 참모는 운명을 같이 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며 "대통령이 잘되면 충신이 되고, 잘못되면 역사의 간신으로 남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는 평소 "미학과 사생관을 갖고 대통령을 모신다"며 "오직 성공하는 대통령을 만드는 것 이외엔 퇴로가 없어서 모든 걸 걸고 있다"고도 했다. '오직 성공하는 대통령을 만드는 것'에 모든 것을 걸고 있다는 그분의 충정심은 높이 살 만하나 그 극진한 마음의 발로가 때로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자주 오르내리니 기분이 오묘해질 뿐이다.

정조 즉위 후 왕의 전폭적인 신임을 얻었던 홍국영의 경우도 그의 지나친 충성심이 문제가 되지 않았던가. 홍국영은 자기 자신을 지키듯 정조를 지켰고 그러다보니 자신과 정조를 구분하지 못했다고 한다. 조정의 실무직을 독점하며 매사를 독단하더니 결국 지나친 전횡이 물의를 일으켜 탄핵을 받았다.

역사의 페이지에는 늘 간신이 있다

난세에 간신 춤춘다, 최용범&함규진 지음, 페이퍼로드 출판사
▲ 난세에 간신 춤춘다 난세에 간신 춤춘다, 최용범&함규진 지음, 페이퍼로드 출판사
ⓒ 페이퍼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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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간신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역사책을 보면 간신들은 세상 돌아가는 일에 아주 밝고, 생각이 민첩하고 눈치가 빠르며, 마음 씀씀이 또한 보통이 아니라고 한다.

임기응변에도 능하고 부지런히 뛰어다니며 주선하는 마당발의 자질이 많고 기꺼이 도박하며 감추기를 잘할 뿐더러 말을 교묘하게 한다고 한다(<간신론>, 김영수 편역).

<난세에 간신 춤춘다:한국사 간신열전>(최용범·함규진 지음, 페이퍼로드 출판)의 저자들은 우리 역사 속 간신들을 네 가지 유형으로 분별하기도 했다.

책에 따르면 첫 번째 간신의 유형은 '왕의 남자'형. 즉 좁은 의미의 간신으로서 왕의 신임을 믿고 권력을 농단했던 자들이다. 삼국 시대의 도림, 고려 시대의 묘청, 김돈중, 김용, 그리고 조선 시대의 홍국영이 그들이다.

두 번째 유형은 왕과의 관계를 뛰어넘어 왕보다 더한 독재적 권력을 추구하는 유형으로서 고려의 이자겸, 염흥방과 조선 시대 한명회, 윤원형 등이 그들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역사의 패자이기에 혹은 시대 상황으로 인해 간신으로 몰린 유형이다. 고려 시대의 신돈, 조선 시대의 임사홍, 남곤, 원균, 이이첨이 그들이다.

마지막으로 격변의 상황에서 대의를 잊고, 일신의 이익을 위해 철새처럼 이리 붙고 저리 붙은 자들이다. 무신의 난 때의 권세가 송유인, 원나라 침략기 홍복원 3대, 연산군과 중종 때의 유자광, 구한말의 이완용 등이 그들이다.

경술국치 100년, 간신 이완용을 돌아본다

친일 매국의 상징, 이완용
▲ 이완용 친일 매국의 상징, 이완용
ⓒ 네이버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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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8월 22일은 경술국치 100년이다. 100년 전 그 날, 을사오적 중 하나인 이완용은 어전회의를 주도하며 한일 강제병합을 밀어붙였다.

나라 팔아먹은 매국노, 20세기 대한민국 비극의 원흉 이완용. 그렇기에 한국사 최고의 간신을 들라면 이완용을 주저 없이 꼽을 수 있겠다.

<난세에 간신 춤춘다:한국사 간신열전>에서 조명한 이완용은 처음부터 철두철미한 친일파였던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는 관계에 진출한 후 5년간 친청파, 3년간 친미파, 14년간 친러파였으며 친일파로는 1904년부터 죽을 때까지 21년 정도 활동했다고 한다.

이렇게 많은 변신을 한 그가 친일파의 대명사로 기억되는 것은 을사조약 이후였다. 을사조약 당시 매국에 앞장선다는 비난이 두려워 눈치만 보던 외부대신 박제순을 대신하여 이완용이 '조약을 수용하되 내정간섭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함으로써 총대를 맨 것이다.

고종은 이렇게 비겁하게 남들 뒤에 숨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또렷하게 밝히는 이완용을 신임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는 일본 측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토 히로부미는 이완용이 냉정하고 똑똑하며 대세에 순응하는 인물임을 간파했다.

이후 이완용은 독립을 바라는 고종과 식민지화를 바라는 일본 사이의 불화를 무마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그리고 대부분의 상황은 일본에 유리한 쪽으로 정리됐다. 이완용은 항상 '대세'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 대세에서 자신이 최대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계산했다.

정치적 거래에 능숙했던 이완용이었지만 그러나 근본적인 명분에서 간신일 수밖에 없었다. 그는 비록 생전에는 패배하지 않았어도 역사적으로 패배자였던 것이다.

멍한 리더 앞에 간신 춤춘다

암울한 정치, 혼란의 사회, 고난의 민중. 그 속에는 반드시 어리석은 권력자와 간신들이 있었다. 또한 망한 조직에 멍한 리더가 있고, 멍한 리더를 부추기는 입 속의 혀와 같은 간신이 있다.

멍한 권력자 뒤에는 반드시 간신이 있기 마련이다. 멍한 리더 밑에는 기생처럼 들러붙어 리더의 눈과 귀를 막아 결국 조직을, 기업을, 나라를 망치는 간신들이 있다. <난세에 간신 춤춘다:한국사 간신열전>의 저자들은 말한다.

오늘날에도 대통령이나 CEO가 다양한 목소리를 듣기 싫어하고 측근 위주로 일을 해나갈 때 폐단이 빚어질 수 있다. 마찬가지로 대통령이나 CEO가 인(人)의 장막에 둘러싸여 통제력을 상실할 때 국가 또는 조직이 흔들리게 된다.

그렇다면 한 사회가 잘 돌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여러 가지 답이 있겠지만 나라든 기업이든 조직이든 리더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 흥망성쇠를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그 자신의 재능과 자질만으로 최고의 리더가 될 수 없다. 유능한 브레인들의 충성이 있어야 톱 리더로 설 수 있다.

그리고 누가 '충인'인지 '간인'인지 분별해 사람쓰는 일에 신중한 리더라야 진정한 톱 리더라 할 수 있다. 역사 속 간신들을 반면교사 삼아 우리 역시도 오늘 우리 사회, 우리 조직, 우리 주변의 간신을 경계하고 또 경계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김남희 기자는 현재 페이퍼로드 출판사 기획·편집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난세에 간신 춤춘다 - 한국사 간신열전

최용범.함규진 지음, 페이퍼로드(2010)


태그:#간신, #이완용, #홍국영, #경술국치, #참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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